호랑이를 쫓아낸 강감찬 장군
서울특별시 관악구 낙성대동에 ‘낙성대(落星垈)’가 소재해 있다.
낙성대는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姜邯贊, 948~1031)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곳을 ‘낙성대’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 낙성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고려시대에 강감찬 장군의 공적을 칭송하기 위해 장군의 집터에 세운 ‘삼층석탑’을 비롯한 사당과 부속건물들이 있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는 날 밤에 중국에서 온 사신이 지나가다가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져 어느 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중국 사신은 이를 이상히 여겨, 관원들을 보내 별이 떨어진 집을 찾게 하였다.
한 관원이 중국 사신의 명을 받아 별이 떨어진 집을 찾아가니, 때마침 그 집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강감찬 장군이다.
후에 마을 사람들은 강감찬 장군을 기리며, 강감찬 장군의 집터 자리에 ‘낙성대’라는 글자를 새긴 기념비와 기념탑을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무렵, 왜군들이 석탑을 비틀고, 맨 위층을 빼어 한 층을 낮추고, 탑 안에 있던 부장물들도 훔쳐갔다.
또한 탑 주위에 있던 병풍바위와 선돌바위도 부수었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의 혈맥을 끊기 위해서였다 한다.
강감찬 장군은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였고, 영특하였다.
그가 관직에 나가 예부시랑(禮部侍郎)으로 있을 때, 송나라 사신이 와서 강감찬 장군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뜰 아래로 내려가 절하며, “문곡성(文曲星)이 오래도록 보이지 않더니,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라고 했다.
또한 강감찬 장군이 한양판관(漢陽判官)으로 있을 때, 한양에는 나무가 무성하여 호랑이, 승냥이 등과 같은 맹수들이 자주 출몰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이 생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강감찬 장군이 한양판관으로 처음 부임한 날, 군수도 이를 염려하여 강감찬 장군에게 말했다.
그러자 강감찬 장군이 “사흘간의 시간을 주십시오.”하더니 종이에 글을 써서 아전에게 주며, “내일 새벽에 북문 밖 산골짜기로 가면 노스님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을테니, 이것을 주고 데리고 오너라.”고 하였다.
다음날 아전이 북문 밖 골짜기를 가보니 과연 노스님이 앉아 있었기에 강감찬장군이 써준 종이를 전해 주었다.
그러자 노스님은 머리를 숙이더니, 아전을 따라서 강감찬장군 앞에 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강감찬장군이 “너는 짐승 중에 영물(靈物)로 사람을 해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내가 말미를 줄 터이니 너희 무리들을 모두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가거라.”라고 명령하였다.
노스님은 강감찬 장군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군수가 이상히 여겨, 강감찬 장군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강감찬장군이 “너의 본 모습을 보이거라.”했고, 노스님은 호랑이로 변해 사람들에게 대들며 으르렁 거렸다.
강감찬 장군이 그만 두라고 하니, 호랑이는 다시 노스님으로 변해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강감찬 장군은 아전을 보내어 살펴보고 오라고 하였다.
아전이 가서 보니, 과연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수십 마리의 호랑이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한양에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위의 설화는 별이 떨어지고 태어났다는 강감찬 장군의 탄생과 한양에 출몰하던 호랑이를 강감찬 장군이 퇴치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설화들은 강감찬 장군이 이룩한 업적을 칭송하려고 민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에 그의 출생을 담은 설화부터 신이하게 형성하였으며, 한양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영웅적 인물로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