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꿈꾸는 카페 네버랜드
- <<카페 네버랜드>>를 읽고 / 양선례
세상에는 어떻게 이리 글 잘 쓰는 사람이 많은지. 밤을 새며 소설을 읽던 시절에는 그저 소설의 소비자였기에 줄거리 따라가며 읽으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동화를 배우는 초보 창작자로서 글을 읽으면 구성과 형식을 따지게 된다. 이 작가, 어찌 이리 글을 맛깔나게 잘 쓰는지 부러웠다.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과 직업군이 등장한다. 일은 잘하지 못하고 상사의 눈치와 비위 맞추기에는 능통한 공무원이 나온다. 그는 주인공 연주의 직속상관인 송과장과 쓸데 없는 일로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노인복지과 박 주무관으로 대변된다. 반대로 일을 성실하게 잘하고, 관계도 원만하며 말 없이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지만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버려지는 비정규직도 나온다.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연주가 낸 작은 친절이 루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카페 네버랜드가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인물로 나온다.
잘 짜인 각본처럼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는 인물이 없이 개연성을 확보한 사건 전개가 이 소설가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를 느끼게 한다. 대학 시절에 어느 교수님이 그랬다. 대한민국은 젊은이만 대접받는 사회라고. 어느 한순간 늙은이가 되는 게 아니라, 젊음을 저당 잡히고 치열하게 살았기에 나이를 먹지만 사회는 그분들의 경험과 지식을 대접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꼰대라고 뭉개고 ‘라떼족’이라고 몰아세운다. 젊은이만 대접받는 사회, 정규직만 목에 힘줄 수 있는 사회 대한민국에서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이라서 우선 반가웠다.
<카페 네버랜드>라는 제목은 소설 <피터 팬>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나이를 먹지 않으며 살아가는 데서 따왔다. 즉 어디에도 없는 곳(Never+Land)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따뜻하고 이처럼 살맛 나는 세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걸 작가는 미리 알았던 것일까? 이야기는 까칠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은 채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쌓아가는, 그러면서 기회만 있으면 승진하기를 꿈꾸는, ‘찔피노’(찔러도 피 한 방울 안(NO) 나올 년) 별명을 지닌 동사무소 7급 공무원 연주가 우연히 기획한 카페 기획안이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선정되는 데서 시작한다. 내용은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하기에 철밥통 공무원은 아무도 희망하지 않는다. 결국엔 사업자금을 끌어온 찔피노 연주가 그곳의 총 책임자가 된다. 그녀는 적당히 이 일을 끝내서 그 실적으로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승진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커피를 내리고, 포스기를 이용하여 계산하고, 홀 서빙을 담당할 인턴을 만 65세 이상의 노인 중에서 뽑는다. 그런데 기껏 뽑힌 인턴이 하나같이 이상하다. 먼저 나이가 가장 많은 신기복(78세) 씨는 난청이 심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재산은 많으나 자식과 아내가 미국에서 사는 독거노인이다. 자격증을 마흔 개 넘게 땄으나 융통성이 없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여 한 번도 제대로 된 직장에서 근무해 본 적이 없다. 49번이나 해고당했기에 이 카페에서만큼은 절대로 해고되지 않으리라는 의지의 사나이다. 똑딱 악어 역할을 맡았다.
이석재(70세) 씨는 전직 교장이다. 억울하게 명예퇴직 당한 게 트라우마로 남아 비슷한 일을 당하면 말을 잇지 못하고 옷에다 실수도 한다. 하루 종일 벤치에 앉아 ‘물멍’하다가 우울증으로 몇 번이나 자살 시도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랜 공직 생활을 한 사람답게 책임감 강하고, 교양이 있으며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포스기 작동도 베테랑급이다. 카페가 자리를 잡고 마음이 안정되면서 트라우마까지 치유한다.
백준섭(65세) 씨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말이 없지만 주말이면 노인보호센터에 가서 초상화 그리는 봉사를 한다. 미술 도구라도 사려고 늦은 시간까지 자동차 세차하는 일을 한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는 어린이의 말에 영감을 받아 수제 청을 담그고, 점심시간이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팔면서 카페가 자리를 잡는데 큰공을 세운다. 나중에 다른 노인과의 질투에 사로잡혀 과거가 드러나는 반전의 사나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오만영(65세) 씨가 있다. 이혼 전문 흥신소를 운영했다. 다혈질에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못하는 직선적인 성격 탓에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마음 따뜻한 의리의 남자이다. 세 번 결혼하여 세 번 이혼한 전력이 있으며 지금은 가진 게 없지만 ‘폼생폼사’로 세상을 산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꽃집 사장님을 짝사랑한다. 누가 나이가 들면 사랑의 감정이 무뎌진다 했던가? 그녀에게 순정을 바치는 그의 열정은 아무도 못 말린다. 가슴 뛰는 일에 목숨을 거는 영원한 청년이다.
-2편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첫댓글 이번 주는 글 쓸 여유가 없어서 몇 달 전에 쓴 글을 올립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두 번으로 나눕니다.
소설 <<카페 네버랜드>>의 독후감입니다.
광양시 올해의 책이라고 받고서는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글 읽으니 올해 안에 꼭 봐야 할 거 같아요. 2편도 기대됩니다.
<<카페 네버랜드>>를 소개하니 관심이 커지네요.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이 올해 '광양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왔습니다. 작가가 광양 사람인데, 책 속 카페의 모티브가 된 곳이 용강에서 동생이 운영하는 샌드위치 가게라고 하더군요. 돌아오는 목요일에는 이 책으로 광양시립중앙도서관에서 소리극도 한답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