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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위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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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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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5월의 주말. 안산에서 난지도 하늘공원을 가는 길은 역시 수월하지 않았다. 결코 먼 거리도 아니었건만 성산로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밀렸으며, 난지도 월드컵 공원쯤에 도착하니 주말의 공원을 찾아 나온 사람들로 상암동 일대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때마침 월드컵 D-30을 맞아 MBC에서 특별 공연을 한다고 하니 꾸역꾸역 밀려드는 인파로 정신이 없을 수밖에. 그러나 20년 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내게 난지도의 변화는 아직까지도 낯선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 강서구에서 근 30년 가깝게 살아온 내가 가장 많이 건넌 한강의 다리는 성산대교였다. 빨간색의 아치형 난간이 근사하게 장식하고 있는 성산대교. 지금에야 염창동 인공폭포를 지나 성산대교에 올라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확연히 드러나는 북한산 비봉줄기에 감탄을 하곤 하지만, 성산대교를 건너는 어렸을 때의 나는 항상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그것은 안그래도 뿌연 서울 하늘에 불쾌한 색감을 가지고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는 인공 산, 바로 난지도라는 이름의 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굳어진 난지도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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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 아닌 다리를 따라 산 아닌 산을 오릅니다. 저 밑으로 보이는 수많은 자동차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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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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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원에서 하늘공원으로 나아 있는 다리 아닌 다리를 따라 산 아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에 공원은 이 곳 밖에 없었는지 좁은 길은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밑에서 들려오는 ‘대한민국’ 응원의 소리는 매우 시끄러웠다.
조용하고 한가하게 시간을 소여해야할 이곳에서조차 사람들은 전투적으로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공원은 더 이상 사색의 공간이 아닌 소비의 공간일 뿐, 많은 사람들은 남아 있는 시간을 소비하려는 듯 매우 조급해 보였다. 급격한 산업화는 우리에게 삶의 여유와 함께 그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마저도 앗아간 것이리라. 물론 안산을 내려와 여기까지 한 걸음에 달려온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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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지도 하늘공원의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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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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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도착한 하늘공원의 정상. 워낙 부지가 넓었던 탓인지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뜨문뜨문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커다란 나무가 없어 그늘은 아직 부족했지만, 하늘공원은 전체적으로 매우 특이한 이국적인 멋을 선사하고 있었다. 하늘은 공원 이름만큼이나 가깝게 보였으며 저 멀리 북한산과 관악산 그리고 남산을 위시한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과거 난지도에서 바라본 풍광은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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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하늘공원의 첫인상. 저 멀리 보이는 관악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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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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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관악산과 여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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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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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남산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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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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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본격화했던 산업화는 서울의 지도뿐만 아니라 서울의 옛 지명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이미지마저도 변화시켰다. 50년 전만 해도 서울의 변두리 뽕밭으로 인식되던 잠실은 '금싸라기 땅'이 되었으며, 비행장이나 존재했던 황량한 모래밭 여의도는 소위 '한국의 맨하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역시 서울의 지역명 중에서 가장 극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은 '난지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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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 정선의 '금성평사'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모래섬 난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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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홈페이지 |
난지도(蘭芝島). ‘꽃섬’이라고도 불렸다는 한강 하구의 이 작은 모래섬은 그 이름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예로부터 온갖 꽃이 만발하던 아름다운 섬이었다고 한다. 물이 맑고 깨끗해 먹이를 찾아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날아들었고, 화창한 날이면 데이트 코스로 청춘 남녀가 즐겨 찾았다는 난지도.
난지도는 1978년 쓰레기 매립장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명성을 다른 식으로 이어갔다.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 서울의 배수구로서 난지도는 악취를 풍기며 오물이 넘쳐나는 우리의 자화상으로 거듭난 것이다. <택리지>에서도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묘사되었던 난지도는 그렇게 저주받은 삼다도(먼지·악취·파리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로 흉물스럽게 변해버렸고 넝마주의들만이 난지도를 그래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슴 아프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지도는 쓰레기 매립지로서의 기능을 다함과 함께 새롭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쓰레기 더미였던 난지도를 하나의 생태공원으로 복원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뒤로 상암동의 월드컵 경기장과 함께 난지도는 새로운 개발구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기존의 쓰레기 더미 위로 엄청난 양의 흙이 쏟아 부어졌으며 쓰레기 침출수를 막기 위해 엄청난 두께의 콘크리트 벽이 둘러쳐졌다. 자연복원을 위한 인공적인 조치.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가 이 시대의 성형미인으로서 공원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잘못된 과거라도 흙으로 덮어버리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고 마는 이 시대가 낳은 또 다른 이름의 욕망의 배출구 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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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쓰레기 매립지의 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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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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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새파란 풀밭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직 난지도에는 과거 성형 전 모습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시대의 성형의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한들 그 존재가 가지고 있던 근본적 바탕을 완전히 지을 수는 없는가 보다.
쓰레기 더미가 그 전 ‘꽃섬’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했듯이 지금의 공원이 이전의 쓰레기 더미를 완벽하게 덮을 수는 없는 법. 아마도 만물유전이라는 세상이치가 다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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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활한 하늘공원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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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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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국적인 하늘공원의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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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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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였고 나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 월드컵 기념 MBC 공연의 사회를 맡아 리허설을 하고 있는 이효리와 김제동의 목소리였다. MBC는 그전 '상주참사'의 기억 때문인지 비교적 삼엄한 경계를 펴는 듯 '강한 친구들'이라는 문구의 조끼를 입은 이들이 하얀 테이프로 칭칭 감아놓고 공연장 주위를 맴맴 돌면서 관람객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무슨 ‘좋은 친구들’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전부터 잘 할 것이지. 공연장 뒤로는 빨간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입장만 기다리고 있었다. ‘강한 친구들’에게 가서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나 조건이 뭐냐고 슬쩍 물어보았더니 역시 주최측에서 나누어주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어야 한단다. 어느덧 선택이 아니라 강요로 다가오는 월드컵과 빨간 티셔츠의 궁합.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 멀리 방화대교 너머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 노을을 노을 공원에서 보면 더 아름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