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다와 마리아 두 여자의 비유 강사 이영권 후사
(요12:1-8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저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합니다. 성령님은 항상 저와 함께 하십니다. 신앙생활의 승리는 성령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할레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저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저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고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고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것을 성령의 생명의 법으로 해방시키시고 곧 재림하실 만왕의 왕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저는 지체가 됩니다.
> 지금까지 오병이어의 기적을 계속해서 시리즈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비유와 기적과 표적의 말씀이 기록된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는데 실질적으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왜 첫 번째로 행하신 것은 마지막 때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데려감을 당하는 여자와 버려둠을 당하는 여자들의 실체가 있는데 그들이 바로 하늘과 땅에 속한 두 교회에서 율법과 복음의 열매를 맺게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추수하는 구속사를 온전히 드러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말씀드리는 오병이어 시리즈는 하나님의 아들과 종들을 추수하는 구속사의 비밀을 다 드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록되어 있는 사복음서는 모든 것이 마지막 때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한 계시를 이 말씀속에 아들과 종을 추수하는 비유의 말씀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께서 이 오병이어의 기적안에 들어 있는 두 여자의 실체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마리아와 마르다라는 그 두 여자를 드러 내셔서 그들의 신앙을 통해서 두 교회의 실체를 드러나게 하시는 그 말씀이 본문(요12:1-8 )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말씀을 상고하면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로 감춰 놓은 보화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본문 1절에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절에 나사로를 살리던 곳이에요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 가신 곳은 나사로를 살리신 곳인데 그곳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위해서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잔치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렸기 때문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이 잔치를 행할 때 그 안에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하는 일과 나사로가 행하는 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로 하나님의 아들들과 종들을 추수하는 비밀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먼저 2절에 예수님의 잔치를 할 때 마르다는 일을 보고 있고 죽은 나사로는 살아나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함께 앉아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계시다가 마지막에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에도
(행4:2-3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에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전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부활하신 몸으로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잔치에 앉아서 마리아야 만든 떡이 참 맛있게 만들고 여기에 잡채도 맛있게 했고 맛있는 것이 참 많구나 이러한 세상에 있는 일을 가지고 논하시는 게 아니고 잔치하는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이때에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가 잔치하는데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고 또 예수님이 잔치에 섬기는 열심인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왜? 일을 보고 있는 마르다는 그 잔치 준비하느라고 예수님이 새 언약의 말씀을 전하는데 하나님 나라의 비밀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데 이 말씀안에 감춰진 함축된 의미를 마르다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한 복음을 듣지 못하여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온전히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그 섬기고 분주하게 그 예수님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차려 드리고 잔치하는 일에는 분주하고 열심이었지만 정작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여자들이 하는 행위들인데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행위로 구원함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단에 가서 제사하고 재물을 갖다 드리고 또 율법의 규례를 따르고 그 계명을 따르는 그 행위를 지킴으로서 내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는다는 그런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르다의 신앙을 엿보면 그 때는 아직 율법 아래있는 시대이므로 마르다는 율법의 계명과 어린 양 예수가 우리의 구원주이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새 언약의 말씀을 듣지 못하므로 성령의 약속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마르다는 등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미련한 다섯 처녀의 신앙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미련한 다섯 처녀의 신앙은 마르다와 같이 새 언약의 말씀의 기름 부움을 받지 못하고 율법의 계명과 어린 양 예수가 우리의 구원주이심을 믿고 새 언약의 성령의 기름 부움은 받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같은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는 종의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일어날 후삼년반 일곱 대접의 대 환란 때 버려둠을 당하는 땅에 속한 여자(교회)의 자손(성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새 예루살렘성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우편 열두 보좌를 섬기는 제사장의 신분이라고 사도 요한은 (계1장, 5장)에 제사장(종)의 신분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구원의 표를 인맞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곧 율법 아래 있는 회개에 합당한 성결의 표를 받은 여자의 남은 자손의 열매로 어린 양 예수님께서 시온산에 재림하실 때 제사장 나라의 조상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으로 구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중 혼인잔치에 데려감을 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지상 재림을 하실 때까지 버려둠을 당하는 여자로 이 세상의 광야에서 하나님이 피난처로 예비한 곳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1260일 후삼년반 동안 양육과 보호를 받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구속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마르다의 신앙은 바로 하나님의 종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편 나사로의 신앙을 보면 나사로는 예수님이 무덤에서 4일째 살아 나와서 말씀하시는 곁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에 대해서 깊은 부활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올 때는 오순절날 성령의 세례가 임하기 전입니다.
나사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의 세례를 받은 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 (요3장)에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물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선지자는 율법 아래 있는 육신의 죄를 정결하게 씻는 세례법으로 물세례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의 세례를 지금 주고 있습니다.(요4:1-2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이 세례는 예수님이 직접 주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물로 세례를 줬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을 계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 이름으로 죄 사함의 세례를 받았다는 증거는 그 이후에 나사로가 죽었는데 (요11장)은 나사로가 죽어있는 것을 예수님이 살리는 것이고 (요12장)은 살아있는 나사로가 예수님이 전하는 새 언약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올 때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와라.’할 때 죽은 나사로가 살라서 나올 때 나사로는 얼굴에는 두건을 쓰고 있었고 몸에는 베의 세마포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죽은 자를 장사할 때 얼굴에 두건을 씌우고 세마포를 입히는 유대인의 장례법인데 무덤안에 있는 나사로가 예수님이 ‘나오라.’할 때 그것을 입고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율법 아래에서 육신의 죄를 정결하게 씻은 물세례를 받은 성결의 표를 받은 하나님의 종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었던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은 자도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 아들의 명분으로 세워지는 성령의 세례가 아니고 예수 이름의 세례는 죄를 사함 받는 세례입니다. 따라서 나사로의 육신의 죄를 예수의 피로 씻어서 그가 무덤에서 죽어있을 때 그가 두건과 세마포를 입고 있었다는 것은 흰옷이 성결의 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그것을 입고 나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고의로 입은 베옷을 ‘풀어주고 다니게 하라.’는 것은 장차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이 계시를 예수님이 보여 주셨는데 이 나사로는 살아나서 잔치할 때 예수님 옆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경청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영과 영생하는 부활을 일으키는 생명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있기 때문에 나사로는 오순절날 성령의 선물로 약속을 받은 좋은 씨의 열매로 맺게 되고 복음의 아들의 신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이제 장차 오순절날 성령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르다와 나사로의 말씀 한 구절 안에 신앙의 삶을 보면 하나님 종의 열매와 하나님의 아들들의 열매로 율법의 씨와 복음의 씨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요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에 붓고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이렇게 증거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마리아의 신앙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다가 붓고 마리아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 발을 씻는 이 행위는 율법의 규례를 따라 율법의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에서 복음으로 그것을 완성시켜 주는 것으로 마리아의 머리털로 그것을 비유한 것은 머리털로 발을 씻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창3:15 )에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상하게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사단인 뱀의 후손들이 죽이는데 마리야가 그 발을 씻는다는 것은 이분이 바로 장차 하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시는 대속제물로 오신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리아가 발을 씻는 것으로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담겨있는 뜻은 율법의 선지자 모세가 쓴 수건을 마리아의 머리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선지자 모세가 쓴 수건을 상징하는 것으로 마리아는 그 이전에는 율법의 계명을 따르는 법에 포로가 되어있는 자들을 비유해 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머리털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도바울은
(고후3:13-14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에 이렇게 증거한 것은 수건을 벗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건이 벗어지지 않는 이유는 수건은 율법의 법에 매여 있는 것을 말합니다. 첫 남편인 율법에 매여있는 돕는 배필 여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라진다는 것은 그 수건을 벗기 때문에 남자는 머리에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1:3-6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할렐루야!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