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이미지 시론을 위한 시 교육 방법론 연구
초록키워드
이미지는 현대시의 중요한 시적 장치다. 20세기 시가 회화의 영향을 받아 시각 중심의 감각 이미지를 극대화하였다면, 21세기 시는 영화의 영향을 받아 카메라 작동방식과 편집기술을 모방해 영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이미지란 감각이자
경험이고, 물질이자 상상이다. 기억이자 사유이고, 정동이자 정치이다. 또한 순간이자 지속이고, 정지이자 운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존의 이미지 개념으로는 최근 시의 복합적인 이미지 양상들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본고는 오늘날 이미지 시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 현대시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창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21세기 시론으로서의 이미지를 대학 시 교육에 적합한 개념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미지가 작동하는
주된 범주로서 지각, 의식, 인식의 차원으로 나눈 후, 여기에 더해 이미지가 구축 방식에 따라 순간성, 지속성, 운동성을, 그리고 이미지가 구축된 형태로서의 표상, 현상, 수행적 특성 등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갈래화하였다.
1. '순간적이고 표상적인 이미지'는 감각 지각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1)감각 이미지와 2)비유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이미지즘이나 신비평에서 논의되었던 20세기 이미지 시론을 대표하는 개념들이다.
2.지속적이고 현상적인 이미지'는 의식현상학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3)물질 이미지와 앙리 베르그송의 4)기억 이미지를 포함한다.
3.'운동적이고 수행적인 이미지'는, 질 들뢰즈의 5)운동 이미지와 시간 이미지를 원용한 영화 이미지와, 브라이언 마수미의 정동 이미지론이나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민중 이미지를 원용한 6)정동 이미지를 포함한다. 이로써 여섯 가지 유형의 이미지를 도출하였다. 또한 이렇게 갈래화한 이미지들이 실제의 작품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분석의 실례를 제시하였으며, 이를 통해 대학에서의 이미지 시(론) 교육 현장에 유효한 새로운 모형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21세기 시론 혹은 시학으로서의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연구 관점과 교육적 활용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http://www.cultur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0
4장
이미지의 운동성과 영상화된 이미지
이미지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우리는 이미지 시대, 이미지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때 이미지는 주로 시각 이미지를 지칭하지만 그렇다고 이미지를 시각 포함의 감각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이미지란 감각이자 경험이고, 물질이자 상상이다. 기억이자 사유고, 정도이자 정치다. 또한 그림이나 사진처럼 순간적으로 정지된 것이면서, 영상이나 홀로그램처럼 지속해서 움직이
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지에 관한 연구 또한 감각적인 것과 사유적인 것,매체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들 사이에서 실현되는 인간의 모든 표현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시의 이미지 역시 재현과 표현, 신체와 물질, 감각과 상상, 기억과 자유, 순간과 지속, 정지와 운동,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언어적 실현체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1970년대부터 김춘수를 필두로 개진되었던 이미지 시론의 논점을 그 갈래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춘수: 비유적 · 서술적 심상
이승훈 : 정신적·비유적 · 상징적 이미저리
김준오 : 정신적 · 비유적 · 상징적 심상, 절대적 · 상대적 심상
오규원: 정신적·비유적 · 상징적 이미지, 서술적 · 비유적 이미지"
이미지는 비유(메타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현대시론사에서 이미지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시 속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한눈에 보여준다.
김준오, 이승훈, 오규원은 프린스턴대학의 『시학사전』의 개념을 원용한다. 그들은 이미지를 "신체적 지각에 일어난 감각이 마음속에 재생된 것"이라 정의하면서, 대상에 대한 감각적·지각적 특질로서의 '정신적(mental) 이미지', 원관념을 보조관념으로 비유하는 '비유적 (figurative) 이미지', 다수의 원관념을 하나의 보조관념으로 상징하는 '상징적(symbolic) 이미지'로 구분한다.
기존 시론에서 감각 이미지와 비유 이미지를 차용하고, 이에 더해 현상학적 이미지 연구의 핵심을 이루는 물질 이미지와 기억 이미지의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감각 이미지는 감각기관 중심의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이미지와 감각이 교집합되는 공감각 이미지, 다른 신체기관들에 의해 지각되는 근육감각(심장박동, 혈압, 호흡, 소화, 근육운동) 이미지 등으로 구분된다. 한국 현대시의 면모가 형성되었던 1930년대 이미지즘 운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회화적 요소가 극대화된 시각 중심의 감각 이미지는 현
대시는 물론 현대시 이미지의 핵심이었다. 이러한.감각 이미지는 점차 시각을 넘어서 다른 감각으로 확장했으며 감각뿐 아니라 대상에 대한 주관적 인식 혹은 정서적 반응을 동반했다. 그런 의미에서 묘사적 차원이든 비유적 차원이든, 음성적 차원이든 의미적 차원이든, 모든 시어는 감각 이미지를 내포한다.
(2) 비유 이미지는 은유, 제유, 환유, 상징, 알레고리 등의 비유 체계에 의해서 생성된다. 시에서 비유는 시인의 정서나 사상을 직접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관념, 달리 표현하면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구체화됨으로써 미적 가치를 구현한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이미지를 비유 이미지라 한다. 기존 시론에서는, 상징 이미지 (한 시인이나 작가의 작
품 전체를 통하여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 패턴이나 이미지군으로 원형적 이미지까지 포함)를 감각 이미지, 비유 이미지와 나란히 위치시켜왔으나, 상징 또한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비유의 하나라는 점에서 비유 이미지에 상징 이미지를 포함시키고자 한다. 시의 언어가 비유의 언어이기에, 비유 이미지는 보조관념으로 시 전편에 배치되어 정신적이면서 심리적인 의미를 환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이미지는 감각 이미지이거나 비유 이미지를 환기한다. 그 둘이 겹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3) 현상학적 차원에서 생성되는 '물질 이미지'가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에 따르면 세계를 구성하는 4원소 불, 물, 공기, 흙에서 파생된 물질이미지는 물질 자체로서의 대상과 물질에 대한 주체의 상상력 사이의 상호주관성에 의해 생성된다. 물질의 질료적 상상력이 강조되는데, 이 질료적 상상력에 의해 내면화된 기억의 총체를 중심으로 역동적 이미지가
발생한다. 이 역동적인 물질 이미지의 근간은 시인의 경험과 욕망이 반영된 의식 지향성에 자리한다. 그러므로 물질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으로서의 몽상은, 물질 자체에 대한 주체의 의식작용의 결과인 것이다. 이는 이전의 이미지들이 일방적인 주체의 감각이나 지각 작용으로 간주되었던 것과 대비된다. 이러한 현상학적 상상력에 의한 물질 이미지는 대
상에 대한 시적 지향성을 반영하며 시인의 체험과 내면 의식을 드러내는데, 시인 개인의 무의식적 지향성이 집단적이고 근원적인 신화와 결합하면 물질적 콤플렉스'나 '원형'으로 발전한다.
(4) 앙리 베르그송의 기억 이미지도 물질적 실재이자 현상으로서의 의식에 해당한다. 물질 이미지에서 물질의 질료적 특성이 강조되었다면,기억 이미지에서는 기억의 총체가 더 강조된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지속해서 이완하고 수축하는 기억으로 인해 물질적 실재로서의 이미지는 재구성된다. 이미지의 지각 과정에서 기억의 매개 작용을 강조하는 것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사물은 감각기관에 포착되는 과정에서 이미지의 형태로 표상된다. 이때 외적 실재의 일부이면서 우리에게 포착된 이미지 다발들은 아직 무의식에 가까운 순수 지각의 상태에 놓인다.
이 순수 지각을 현실적 지각으로 이끄는 것이 기억의 매개 작용이다. 기억이 순수 지각의 이미지들을 실처럼 잇고, 현실적 지각에 의해 표상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원래의 순수한 기억의 다발들은 '주의깊은 식별"에 의해 새로운 이미지 기억으로 재생산되는데, 과거 기억으로 현재 지각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대상을 바라볼 때 이 주의깊은 식별이 필요하다. 특히 연대기적이고 선형(形)적 시간 인식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할 때 기억 이미지의 창조적 가능성은 극대화된다.
(5) 이 외에도 철학, 사회 미디어, 심리학 분야를 포함해 회화, 영화와 같은 타 매체 영역에서 논의되었던 서구의 이미지론을 원용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현대시 이미지 개념들이 제시되고 있다. 관념의 구체화나 사물(또는 구체적인 것을 묘사하는 이전의 '순간적이고 정태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서사나 사건, 사유나 정념, 영화나 정치 등을 묘사하는 '지속적
이고 동태적인' 차원으로 이미지 개념이 변화한 것이다. 이미지를 제시하는 단위 또한 단어 또는 구를 넘어서, 문장 또는 행과 연의 시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그리하여 기존의 감각(정신) · 비유 이미지, 물질 이미지, 기억 이미지들로부터 이미지들의 이행과 변이라는 특성이 강조된 '사유 이미지' '영화 이미지' '정동 이미지'나 '서사 이미지'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비유기적이고 초선형적인 이미지에 천착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변화는 산문화, 서사화, 환유화, 영상화, 가상화되고 있는 최근 시의 현장이 직면한 새로운 이미지 환경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