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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가 없는
이홍사
새로운 걸 알았다.
미얀마, 이 나라 사람들은 진달래를 모른다.
그렇다면 진달래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 진달래를 모르는 나라라고 해야 마땅하겠다. 전혀 모르는데 진달래를 설명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이 나라 사람들과 계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갈증을 느낀다는 부분이 바로 눈이다. 백설.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쏟아내는 백설 이야기.
그 눈을 직접 본 적이 없다는 점이 대다수 사람의 공통점이다. 특히나 눈길을 밟아본다는 일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비단이 깔린 꿈결을 밟아보는 일에, 다름이 아니다.
진달래를 얘기하고 설명하며, 눈은 술래 파고다 부근의 난전을 더듬었다.
옆에는 그림자로 데리고 다니는 현지 매니저 녀석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인도계의 검둥이인데 한국에 근로자로 오 년을 다녀오며 덤으로 익힌 한국어를 내세워 선택받은 녀석이다.
녀석에게 진달래를 설명하며.
왜 진달래 이야기가 나왔는지 그건 알 수가 없지만, 진달래를 이야기하며 서성거리던 술래 파고다의 광장. 시내에 나간 김에 도수가 낮아 눈을 괴롭히던 돋보기를 버리고 한 단계 업 그레이더 된 새 돋보기를 사려는 작정으로 찾은 골목이었다.
늘 보이던 길거리의 가판대의 안경을 파는 곳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내려갔다. 술래 파고다를 끼고 형성된 좁은 골목마다, 가판대의 상권이 형성된 이 나라, 미얀마의 모든 길은 술래 파고다를 기준점으로 한다. 만달레이까지 몇 마일, 네피도까지 몇 마일이냐 따질 적에도 술래 파고다를 기점으로 한다.
어쩌면 이 나라 사람의 마음이나 본성까지도 술래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술래 광장, 민주화나 무슨 시위가 있으면 꼭 이 광장에 사람이 모인다. 아무튼, 술래 광장 가장자리에 서서 검둥이 녀석에게 진달래에 관해서 설명했다. 무슨 이야기 끝에 진달래가 등장해 주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녀석에게 핏대를 세워 진달래에 관해서 한참 설명하는데, 바로 옆 가판대에 보이는 볼펜의 유혹, 그건 실로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냥 눈을 돌리기에는 모양이 너무 예뻤다, 싸구려 티가 나지 않고,
볼펜만은 싸구려를 쓰지 않는다.
나는 그랬다.
밥은 아무 데나 난전에서 싸구려로 먹어도 볼펜은 고급을 쓴다. 내가 쓰는 볼펜은 전부가 세계의 명품 파카나 몽블랑이다. 그걸 한 자루만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라, 여러 자루가 있다. 속주머니에 한 자루, 들고 다니는 손가방에 하나, 한국의 사무실 책상에 하나, 심지어 자는 침대 머리에 놓인 다이어리에도 한 자루가 꽂혀 있다.
볼펜에 대해서는 욕심이 좀 많은 편인가.
누구에게 가볍게 선물로 주더라도 볼펜을 주면 기분이 좋다. 그 배면에 누구에게 볼펜을 받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일단 가볍게 주고받을 수가 있어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볼펜을 주고받는 데는 포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주머니에 꽂혀 있던 걸 쑥 빼서 주면 그만이다. 내가 지금 네게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는 표정으로, 그 표정으로 포장을 하면 금상첨화.
비행기에서 가끔 기내 면세판매 시간에 파카 볼펜 세트를 산다. 다섯 자루가 든 선물용 포장으로 된 것인데 그 다섯 자루를 포장도 뜯지 않고 한 사람에게 몽땅 선물하는 일은 없다. 주머니에 넣어 다니다가 귀한 친구나 손님을 만나면 한 자루씩 주는 형편. 그렇게 하면 다섯 명에게 줄 수가 있다.
볼펜에 대한 기억은 많다.
지금은 정년 퇴임을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대학 교수라는 친구가 술을 마시다가 속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더니, 이게 자네한테 삼 년 전에 선물로 받은 것인데 지금은 볼펜 약이 다 떨어졌는데 심을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버리자니 아까워 그냥 나오지 않는 볼펜을 가지고 다닌다며 볼펜을 참 요긴하게 잘 썼다고 얘기를 가공하지 않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무심히 던졌다.
그 친구는 볼펜을 쓸 적마다 나를 떠올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선하며 상큼한 충격이었다.
준 기억이 없는데, 그의 말은 너무나 진솔해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날 술좌석에서 그 나오지 않는, 볼펜으로 기능을 상실한 그 볼펜을 돌려받고 주머니에 꽂고 있던 볼펜을 기어이 그 친구의 주머니에 꽂아주었다.
비행기에서 그런 볼펜을 면세로 한 통을 사면 한 자루에 만 원 정도 먹힌다. 문방구에서 사는 값의 절반이 조금 넘을 뿐인데 다섯 자루의 모양은 다 다르다. 그걸 사면 바로 거추장스럽고 짐이 되는 포장은 뜯어 버린다. 그리고 알맹이만 손가방에 담는데 그게 요긴하게 쓰이는 일이 가끔 있다.
고급 볼펜을 누구에게 주면 쓸 적마다 기억한다?
얼마나 깔끔한 선물인가?
아무튼, 술래 파고다에서 눈에 들어온 볼펜을 기어이 샀다.
두 자루에 만 원
누군지 모를, 아직 정해지지 않은 타인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충동구매를 한 것이다. 그 골목의 난전에서는 깎아도 되는 곳이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현지인과의 흥정. 그것도 재미가 독특한 장난이다.
두 자루에 만이천 원을 달라는 걸 만 원으로 내리기에는 많은 말들이 소요되었다.
그 과정에서 매니저라는 검둥이 녀석의 입과 귀는 빌리지 않았다. 좀 엉뚱한 얘기지만, 나는 녀석을 이미 길들여놓았다. 그런 일에는 나서지 못하게. 말이 통하지 않음으로써 즐기는 재미에는 녀석을 절대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
너 빠져!
이 한마디면 녀석은 무슨 뜻인지 안다. 그런 볼펜 두 자루를 깎아서 사는 일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야 흥정이 더 재미가 있는 법.
물건을 파는 놈이야 애가 달았겠지만, 나는 그 애가 타는 장사의 표정을 읽어가며 즐기고 있었다. 그런 유희, 사람을 상대로 하는 행위를 유희라고 하니 이상하지만, 그런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반드시 이걸 사겠다고 확신이 섰을 때 즐겨야 하는 행위다. 깎으려고 실컷 애만 태워놓고 사지 않는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장난이다. 이국에서 항상 그런, 사소한 일에 뒤통수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런 방법으로 볼펜을 사지 않으리.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다짐을 하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사무실로 꾸며놓은 이 층 거실, 책상 앞에 앉아 왼손 중지의 깊게 파인 상처에 휴지를 감고 있다. 피는 멈추질 않고 휴지를 금세 적시고 다른 휴지 한 장을 필요로 했다.
장사치에게, 그만큼 약을 올렸으니 죗값인가?
볼펜을 살 적에 흥정했던 장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이천을 부르는 걸 기어이 두 자루에 만 원에 샀다. 그 차액 이천 원은 그 난전을 하는 아저씨가 가져야 할 순수한 이윤이다. 그걸 생각하지 않고 매정하게 깎았다. 이 나라에서 만 원이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이 나라의 화폐단위는 짯으로 쓰지만, 매니저라는 녀석과는 원이라는 한국 단위로 소통하고 있으니 그대로 쓴다.
지금은 예전과 달라졌다. 달러 가격으로 환산하면 미얀마 돈이 좀 싸다, 한국의 원화 만 원을 가져와 환전하면 여기서는 만오천 짯이 넘는다. 예전에는 미얀마 돈이 더 비쌌지만, 달러 가격에 안정되지 않은 나라라 금세 역전이 되었다.
볼펜 두 자루에 만원.
그렇게 고급스러워 보였던 볼펜 두 자루에 만원이라.
싼 가격으로 생각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싼 가격으로 보이지만. 아니다.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다. 이 나라에서 하는 일은 집을 짓는 일이다. 그래서 인부들의 노임을 알고 있다. 현지 노임은 달러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기술 없이 단순 노무로 현장에 일하면, 하루에 만칠천 원 정도, 물론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쓰는 건 당연하고, 종일 벽돌을 나르거나, 이 도회의 고약한 진흙에서 삽질을 종일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금액. 그걸 계산하면 볼펜 두 자루에 만원이면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볼펜을 사면 파카나 몽블랑 볼펜을 기준으로 세우고, 그 잣대에 맞추어서 살 것인가, 그냥 지나갈 것인가, 판단한다.
파카 볼펜을 기준으로 세워둔 내 눈높이였으니 그 볼펜이 당연히 싸게 보였다.
상당히 오랜 시간 흥정하며 통하지 않는 언어를 즐겼고, 흥정을 마치고 볼펜을 건네기 전에 돈을 쥔 그 아저씨는 볼펜으로 옆에 있던 종이 상자를 북, 찢어 볼펜이 나오는가, 다시 확인했다. 선명하게 그어진 볼펜을 자국을 보며, 볼펜을 파는 사람은 볼펜이 잘 나온다는 걸 확인하라며 나에게 종이 상자 조각을 같이 내밀었다.
순간적으로,
이 자식아! 새 볼펜인데 당연히 나오지, 뭘 확인해?
시내에서 돌아와 사무실로 들어오지 않고 바로 건축 자재 도매점에 갔다.
자재 시세를 대충 파악하고, 다음 공정에 들어갈 건축 자재에 드는 비용을 다시 뽑아볼 요량이었다. 그 사이에 자잿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파악해두는 게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으로 들어가서 꼬마 점원을 데리고 다니며 겨우 소통이 가능한 현지어로 철골에 대해서 하나하나 단가를 묻던 참이었다.
그 순간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인터넷을 사라는 문자였다. 가끔 이 나라 통신에서는 그렇게 인터넷을 판매하는데 그때 사면 좀 싸다. 몇 개의 숫자를 누르고, 순간을 포착해서 만 원어치 샀다. 인터넷 만 원어치 사면 거의 보름 넘게 쓴다. 전화기로 게임을 하는 방법을 모르기에 그 정도는 여유를 부리며 쓰는 형편이다.
그 자재 가격을 노트에 적는 과정에서 손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손에 잡힌 볼펜은 공교롭게도 조금 전, 술래파고다 부근 난전에서 산 볼펜이었다. 그 볼펜이 아니더라도 손가방엔 파카 볼펜 두 자루가 들어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볼펜이 손에 잡혔는지, 잡혔으면 술술 나와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노트에 자재 가격을 적었는데 볼펜이 나오지 않았다.
왜 이래?
조금 전에 나오는 걸 확인했는데?
중얼거리며, 다시 그렸지만, 볼펜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새로 산 다른 볼펜을 꺼냈다. 그 볼펜도 나오지 않았다.
뭐가 이래?
그런 의심을 하면서도 그게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무실에 와서 자잿값을 다이어리에 다시 기록하며 볼펜을 그려보았더니, 나오지 않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이거, 남에게 덜컥, 주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군!
그런 소리를 하며 이면지를 놓고 동그라미를 마구 그렸다. 두 자루를 번갈아 그렸는데 볼펜이 나오다가 나오지 않다가, 또 나오다가 나오지 않다가,
두 자루를 샀는데 한 자루에 그런 일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두 자루 다 그 모양이니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볼펜은 미얀마에서 만든 게 아니다.
이 나라에는 이런 볼펜을 생산할 기술이 없다. 전부가 수입이다. 어느 나라에서 수입이라는 이름으로 흘러들어온 볼펜인지 모르지만, 술술 잘 나오는 볼펜보다 이렇게 나오다가 나오지 않는 볼펜을 만들기가 더 어려울 터인데, 그런 면에서 따진다면, 두 자루 다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는 말이 되는가.
이면지에 볼펜을 힘주어 누르고 마구 그리다가 생각했다. 어쩌면 볼펜을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두 자루 다 똑같은 현상이 생기도록 만들기가 참으로 어려울 터인데. 이런 볼펜이 시중에 유통되다니?
힘을 주어 이면지에 내 생각을 마구 그렸다. 생각, 역시 나오다가 나오지 않다가 했다. 이번에는 이면지에 그리는 게 내 오늘의 일정이라 생각하고 마구 그렸다. 오늘의 일정마저도 이어지다가 끊기다가 했다.
므ㅝ가 이래?
입안 가득 침처럼 욕이 생성되고 있었다.
욕을 꿀꺽 삼켰지만, 약이 올랐다.
이 볼펜을 판 장사치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이라면 볼펜 두 자루를 사면서 그렇게 흥정으로 약을 올린 내 잘못이거나, 볼펜을 만든 놈의 잘못이다.
그렇다. 내 잘못이다. 그렇게 약을 올렸으니 천벌 받은 거다.
버리자.
버릴 때는 이곳의 시세를 기준으로 잡으면 안 된다. 이 나라 시세를 기준으로 잡으면 가슴이 쓰리도록 아깝다. 한국 문방구에서 산 볼펜 한 자루 값이라 생각하고 버려야지 마음을 비울 수가 있겠다.
볼펜의 한국 시세!
그걸 생각했었다. 적어도 책상 옆 쓰레기통에 던져넣기까지는 그랬다. 던져넣고 쓰레기통 뚜껑을 닫은 순간 잊어야 했는데, 물욕이 추잡스레 붙은 내 눈은 그러질 못했다. 쓰레기통에 넣은 순간 한 장의 사진이 덜컥, 눈에 찍혔다. 그렇게 버리기에는 볼펜 디자인과 색깔이 너무 예서서 눈에 사진이 찍힌 모양.
저걸 꺼내서 알맹이만 파카 걸로 바꾸면 어떨까? 그러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또 다른 창작 볼펜이 되겠는데? 볼펜 심이 파카나 몽블랑이랑 맞을까?
퍼뜩 스친 아이디어, 불쑥 솟구친 그런 생각에 기어이 쓰레기통을 뒤져서 볼펜을 꺼냈다.
볼펜을 켜는 방식이 하나는 원터치고 하나는 돌리는 식이었다. 나오기만 한다면 아주 세련된 디자인과 방식이었다. 파카 볼펜 심을 꽂아서 사용한다면 훨씬 싫증 내지 않고 새 기분으로 쓸 볼펜이 되겠다.
디자인이 예쁘고 볼펜 잘 나오고, 볼펜 똥이 생기지 않고,
쓰레기통에 던진 볼펜을 꺼내서 분해해서 볼펜 심을 꺼냈다.
심을 꺼내고,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이면지에 알맹이만 잡고 그려보았다.
껍데기가 있다고 나오지 않던 볼펜이 심으로 그린다고 나오겠는가? 역시였다.
인간의 심리는 왜 이런가? 아니, 내 심보는 왜 이리 고약한가?
껍질만 빼고, 볼펜이 나오지 않는 심은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으면 좋을 일을, 꼭 분질러서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무슨 심보가 그래?
쓰레기통에 처넣을 볼펜 심을 분지르는데, 이 강철로 된 심이 굽으면서 부러지는 순간 뒤틀리며 튀어 왼손 중지를 건드렸다.
왼손 가운뎃손가락의 살점이 강철로 된 볼펜 심이 부러지면서 깊게 파이고 살점이 뭉텅 날아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난폭하고 거칠게 분질렀던 모양이다. 떨어져 나간 성냥개비만큼의 살점, 허옇게 보이다가 금세 피가 몽글몽글 솟구쳤다.
이걸 왜 분지르려고 했을까?
상처를 보고 약이 올랐고 부러진 볼펜 심을 보니 마음이 더 고약해졌다.
대체 이걸 왜 분지르려고 했지? 그냥 버려도 되는데?
그 심리는 대체 뭔가? 정말 고약한,
언뜻 심리를 헤아리니 자괴감으로 기우는, 서글픈 찰라. 진달래가 눈앞에 펼쳐졌다.
난데없이 웬 진달래?
진달래 이야기를 유독 많이 했던 까닭인지 모른다, 아니면 손가락의 피를, 선홍빛 피를 보고 진달래 색깔이 연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을 짓기로 맘을 먹었다.
이 땅에서 집 장사를 했으니, 집을 어지간히 지어보았겠지만, 이번 집은 수익을 배제하고 짓는 집이라 도면조차 없고 들어가는 경비를 가늠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생각대로 짓고 생각대로 설계변경을 할 참인데, 아직은 누구에게 집을 짓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 나라의 집은 돈이 있는 대로 고만고만하게 짓는다. 설계에 맞추는 게 아니라 돈에 맞춘다. 백만이 있으면 백만짜리를 짓고, 억이 있으면 억짜리를 짖는 나라. 겨울이 없고 사시사철 먹을 게 있으니 집이 없어도 무방한 나라. 한국과는 집의 개념이 확실히 다르다. 한국은 집이 없으면 당장 얼어 죽는데 반해 이 나라에선 집이 없으면 밀림 나무 밑에서 생활해도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일은 없다.
비약적인 말인지 모르지만,
밀림 나무 밑에 살아도 비만 피할 수 있으면 정글에 흔하게 열리는, 주인 없는 과일을 따 먹고 살아도 몇 년은 버틸 수가 있는 환경이다.
축복받은 나라지.
그렇게 치부할지 모르지만, 아니다. 신은 공평하다. 인간에게 주는 게 정말 공평하다. 이런 자연환경 조건을 주는 대신에 명석한 두뇌와 근면성은 부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안 돌아간다. 이 나라 사람들은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말인즉. 인간의 두뇌도 자꾸 연마해야 돌아가는 모양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굳어서 녹이 설었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은혜는 더 모르고,
지금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것은 집에 가사도우미, 말을 좋게 해서 가사도우미지 가정부다. 가정부 에모의 고향 집을 짓기로 마음을 도사리고 있다. 에모는 나랑 한집에 사니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이 층짜리 단독주택, 주방이 딸린 일 층에 혼자서 서식하는데, 그것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방이니, 삶의 질로 따지면 더없이 안락한 생활을 하지만,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바로 시내에서 양곤강 건너 딸린이라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읍소재지 정도의 마을에 나무로 된 집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나무로 된 집이 문제다. 원래 저지대에 지은 집이라, 마룻장 밑에는 항상 오물이 고여있고, 그 위로 듬성듬성,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큼직한 쥐. 마루를 바치는 나무가 썩어 삐딱하게 기울었고, 거기다가 지붕을 고이는 기둥마저 썩어 삐딱하게 기우는 바람에 비가 오면 함석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비가 집으로 들어온다는 점.
도저히 집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기애는 무색할 정도.
그 집에 들렀다가 커피를 얻어마신 적이 있는데 커피가 넘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집 장사를 하는 집쟁이 목에는 도저히 커피가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집.
그 집을 짓기로 맘먹었다.
처음에는 좀 고쳐서, 수리할까 생각했는데 그 상태로는 수리를 해도 헛돈만 날아가지, 때깔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집쟁이라야 감이 잡힌다. 집을 짓는 게 아주 간단하다. 사각 쇠 파이프 여섯 개로 기둥을 잡고 파이프를 얼기설기 걸쳐서 양철지붕을 덮고, 그다음부터 돈이 허락하는 대로 꾸미면 된다.
그 집을 짓기로 맘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에모의 할아버지가 1932년생이라는 점. 그 숫자는 내 아버지와 공통함수, 돌아가신 지 삼십 년이 넘는 내 아버지께 지어드린다는 생각, 두세 달 용돈을 줄이고 시작하겠다는 다짐.
그런 게 굳어졌다.
에모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재가해서 연락이 지금까지 두절된 상태며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이 박복해서 그런지 그녀의 삶도 순탄하지 못했다. 아이 하나 낳고 남편이 죽는 바람에 청상과부가 되어 할아버지를 봉양하다가 어떻게 연락이 닿아 외국인인 내 집의 가정부로 들어오게 되었다. 일단 이 집 가정부로 들어오면 신분이 한 단계 격상하는 셈. 딸린 고향 집에서는 일 년에 돈이라고는 현금 삼만 원 만지기가 힘든 실정이었는데 나에게 와서 고정 월급을 받고 또 생활비로 주는 돈을 맘대로 주물럭거릴 수가 있으니, 삶의 질을 따지면 이 나라 사람들의 평균 이상으로 올라선 셈.
거기다가 고향 집까지 지어준다면 무엇이 더 부러우랴?
그러나 에모나 딸린의 할아버지에게 그런 고마운 마음을 기대하면 상처받는다. 그런 말을 들으려며 집을 짓는다는 건 포기해야 마땅하다. 이 나라에서 그런 고마움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그냥 지어주고 내 맘이 편한 것에 만족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그건 안다.
남에게 베푼 것은 누누이 강조하며 남에게 받은 건 금세 잊어버리는 민족, 남에게 큰소리칠 입장이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마구 삿대질하며 큰소리를 치는 인간, 그러다가 오 분 후에 입장이 뒤집히면 비굴해 보일 정도로 굽실거린다. 정말 희한한 건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비약적이긴 하겠지만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제가 사는 집에 전기가 고장 났다. 하도 징징대서 음악을 들으며 쉬고 있던 내가, 내 돈으로 전기 재료를 사다가 수리를 해주러 갔다. 물론 돈을 받는 일은 아니다. 집 앞에 차를 세울 곳이 없어, 아무 데나 세웠는데 차를 빼라는 이웃의 항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차를 세울 곳이 마땅찮아 두리번거리는데, 녀석은 바로 옆에 있는 제 마누라의 가게 앞에 세우라고 했다.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마누라 가게 앞에 차를 세우도록 허락해주었으니 고마운 줄 알아라.
이런 공식이 성립되는 나라다.
왜 그곳에 차를 세워야 했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은 이미 머리에서 사라졌다.
더 심하게 비유를 하자면, 이 자식이 간이 나빠서 죽을 지경인데 내가 간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식 수술을 마치고 타고 올 차가 없는데 이 자식이 태워다 주었다. 태워다 주었으니 고마운 줄 알아라. 이런 사고가 인정되고 성립되는 희한한 나라다. 왜 병원에 가게 되었는지,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간을 떼어 주었다는 사실은 이미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파고들어 들여다보면 이런 공식이 버젓이 존재하는 나라. 상황이 조금만 길어지면 앞의 일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하거나 헤아리기가 싫은 나라.
이 나라에서 뭘 더 기대하겠는가?
딸린에 집을 짓겠다는 건 그 노인을 생각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치면 평생 그 허물어진 집이 눈에 아른거리면 그때 지어줄 걸, 후회하게 될까 봐 시작하려는 게다. 그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소리나 에모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려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 따지면 어떤 선행이라도 마찬가지다.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은 없다. 다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 그걸 함으로서 제 마음이 편하고 더 나아가서 보람을 느끼는 건 순전히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가. 나는 거기다가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아버지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그 생각이 마음에 동해 결심이거나 다짐에 응고제 역할을 했다.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흔하게 돌아다니던 자투리 자재가 없다. 이 땅에서 집 장사를 했으니 한창 공사 중에는 현장에서 나오는 자투리 자재만으로도 그런 집은 간단하게 지을 수가 있는데, 코로나와 더불어 미얀마의 쿠데타로 삼 년 가까이 공사가 중단되었으니 자투리 자재는 없고 그렇게라도 집을 지으려면 모든 자재는 다시 구매해야만 하는 실정.
그렇더라도 짓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음먹으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는 점인데 그게 가끔은 가장 취약한 약점이기도 했다.
아, 진달래가 없는 나라.
이 진달래가 없는 나라에서 한 송이 진달래를 피워보는 거지.
이 땅에서 진달래꽃을 피운다?
그것도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일.
손가락의 피는 어지간히 멎은 모양이다. 감고 있던 휴지를 살짝 때어보니 살점이 날아간 부분이 핏기는 없고 하얗게 변했다. 이제 다시는 거리에서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볼펜은 사지 않으리.
그런 볼펜에 현혹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참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가 아니라 카톡으로 날아온 보이스톡. 여기서는 일반 전화보다 보이스톡이 통화품질이 좋고 싸게 먹힌다. 어지간한 안부는 카톡으로 하는 게 아내와의 묵언의 약속인데 보이스톡을 한 걸 보니 당장 답을 구해야 할 문제인가 보다.
카톡을 받아보니 아내의 목소리는 느긋했다.
고속도로 너머에 있는 대추밭을 살 사람이 나타났다는 전갈이었고, 얼마를 깎아 줄 수 있느냐는 질문. 이 진달래가 없는 나라에 투자하느라 무리수를 두어 약간의 빚을 냈다. 그게 지금은 이율이 부쩍 올라서 부담이 된다. 애초에는 지난번 중장비 사업을 벌였던 몽골에서 남긴 이윤만으로 한다고 아내와 약속했으나, 그 선을 넘었다. 아내는 그 점을 무척이나 못 마땅해했다. 땅값에 대해서 아내와 적절한 금액을 절충해서 그렇게 전하라 하고 안부를 전하는 과정에서 수곤이 아버지가 식도암으로 입원했다는 전갈과 보험금으로 보상이 얼마 나왔다는 얘기도 전했다.
보험금 보상?
뜬금없이 생소한 얘기처럼 귓전에서 맴돌았다.
아무래도 아내가 보험금을 얘기를 꺼낸 이유인즉,
쓸데없이 보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보험료가 빠져나갈 적마다 번번이 신경질이 가미된 잔소리를 했는데 그 점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연막작전이 분명하고, 나는 수곤이 아버지의 말기라는 식도암보다 먼저 수곤이 엄마를 대뜸 떠올렸다.
아들을 그따위로 키워서 어쩌자는 건데?
언젠가 아내의 말을 듣고 짜증이 묻은 고함을 버럭 지른 적이 있었다. 아내에게 듣기는, 수곤이 목욕을 여태 제 엄마가 시켜주고 있다는 소리에 대한 답이 그렇게 엉뚱한 말의 공격용 발사체가 되어 날아갔다.
자상한 엄마가 아들 목욕 시켜주는 게 뭐 나쁜 일일까만, 수곤이가 고등학교 이학년이라는 게 문제다.
고등학교 이 학년짜리 아들놈 목욕을 제 엄마가 시켜준다?
뭐가 문젠데?
내가 다짐 조로 물었고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 반문했다.
다 큰 아이, 성 정체성에 혼돈이 생겨 이 여자야! 당신 정신 있는 거야? 초등학교 삼 학년이 넘으면 목욕시켜주면 안 돼! 빠른 아이들은 초등학교 사 학년이면 수음을 한다니까? 이 여자야 정신 차려! 그건 잘하는 짓이 아니라니까.
남의 일로 인하여 아내에게 하는 말로는 투박하지만, 그렇게 소릴 질렀다. 그 말에 할 말이 궁했던지 혼잣소리처럼 뱉었다.
아이가 혼자 목욕하면 제대로 안 씻는다잖아요?
좀 덜 씻으면 어때? 그게 뭐가 문제야? 그건 자상한 게 아니야. 사타구니 털이 무성할 텐데, 그놈을 목욕시켜주면서 혹시 엄마도 발가벗고 같이 씻는 거 아니야?
아내는 그 말을 듣고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게 아마도 작년의 일이었을 거다. 그 후로는 아내가 수곤이 엄마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지금도 수곤이 목욕을 엄마가 시켜주는지 궁금했지만, 차마 그건 물을 수가 없었다. 식도암 말기라고 했으니 수곤이 아버지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마마보이로 키운 수곤이가 제대로 꾸려갈지, 남의 일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고 식도암이 말기가 되도록 왜 몰랐을까? 그 점도 역시 의문으로 남겨둔 채 아내와의 통화는 끝이 났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감고 있던 휴지를 다시 떼어내고 손가락에 파인 상처를 보았다.
피는 멎었고, 패인 부분에 짜릿하게 느껴지는 통증.
역시 남의 아픔은 담 너머 고통이거나 통증. 철저히 외면되고 배제되는 고통. 나도 예외는 아니다. 수곤이 아버지의 말기라는 식도암보다 내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지금은 더 불편한데, 그 아저씨의 말기라는 식도암은 그저 듣는 귀에 조금 껄끄러울 뿐, 내 결코 통증은 아니었다. 그 남의 통증을 느끼지 못했기에 가슴으로 밀려드는 수곤이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그걸 뭐라고 이름할지 모르지만, 그 감정도 점차 묽어지겠지.
창밖으로 보이는 이웃의 키 큰 야자수 사이로 하늘이 열려 있었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진달래는 없다.
진달래가 없는.
생각하니, 아내에게 올해도 진달래가 피었다 졌는지 그걸 물어보질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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