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9>
첫댓글 ‘삼륜대좌 석조여래좌상’은 아래에서부터 하대석 - 중대석 - 상대석으로 이어지는 3층 높이의 돌대좌(대좌)를 갖추고 있다.
밑부분의 복련(아래로 향한 연꽃잎)과 팔각형 기둥 모양의 중대석, 그리고 맨 위 앙련(위로 향한 연꽃잎) 상대석이 조화를 이루어 불상을 높게 떠받치는 특유의 거장적이고 당당한 느낌을 준다.
불상 뒤편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배모양 광배(주형광배)에 당초문(덩굴무늬)과 불꽃무늬(화염문)가 정교하고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부처의 머리 뒤쪽(두광)과 몸 뒤쪽(신광)을 나누는 원형 연꽃무늬 라인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신라 석조 조각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어 땅을 짚는 항마촉지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왼손은 복부 앞에 놓아 약합(약단지)을 들고 있는 형상으로 해석되어 약사여래의 특징을 보인다. 일각에서는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로 보기도 한다.
양 어깨를 감싼 법의(우견편단 또는 통견)의 주름이 정돈되어 있고, 신체 비례가 안정적이며 자비롭고 엄숙한 인상을 띠고 있다.
신라 8세기 후반~9세기 불상 특유의 당당한 체구, 자비로운 인상,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균형미가 뛰어나다.
1920년대 발견 당시 광배가 쪼개져 있고 머리가 잘려 있었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잘려 나간 머리 부분은 포석정 근처 민가에서 곡식을 까불거나 타작하는 돌로 쓰이고 있었다.
불신(몸체)은 1929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불두(머리)는 1967년 뒤늦게 박물관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두 부위가 같은 불상인지 몰라 따로 보관하다가, 1975년 박물관 신축 이전 과정에서 목 단면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여 접합·복원했다.
첫댓글 ‘삼륜대좌 석조여래좌상’은 아래에서부터 하대석 - 중대석 - 상대석으로 이어지는 3층 높이의 돌대좌(대좌)를 갖추고 있다.
밑부분의 복련(아래로 향한 연꽃잎)과 팔각형 기둥 모양의 중대석, 그리고 맨 위 앙련(위로 향한 연꽃잎) 상대석이 조화를 이루어 불상을 높게 떠받치는 특유의 거장적이고 당당한 느낌을 준다.
불상 뒤편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배모양 광배(주형광배)에 당초문(덩굴무늬)과 불꽃무늬(화염문)가 정교하고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부처의 머리 뒤쪽(두광)과 몸 뒤쪽(신광)을 나누는 원형 연꽃무늬 라인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신라 석조 조각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어 땅을 짚는 항마촉지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왼손은 복부 앞에 놓아 약합(약단지)을 들고 있는 형상으로 해석되어 약사여래의 특징을 보인다. 일각에서는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로 보기도 한다.
양 어깨를 감싼 법의(우견편단 또는 통견)의 주름이 정돈되어 있고, 신체 비례가 안정적이며 자비롭고 엄숙한 인상을 띠고 있다.
신라 8세기 후반~9세기 불상 특유의 당당한 체구, 자비로운 인상,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균형미가 뛰어나다.
1920년대 발견 당시 광배가 쪼개져 있고 머리가 잘려 있었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잘려 나간 머리 부분은 포석정 근처 민가에서 곡식을 까불거나 타작하는 돌로 쓰이고 있었다.
불신(몸체)은 1929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불두(머리)는 1967년 뒤늦게 박물관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두 부위가 같은 불상인지 몰라 따로 보관하다가, 1975년 박물관 신축 이전 과정에서 목 단면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여 접합·복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