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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두고도 못가보는 땅을 하루에 다녀오다
2007.06.17(일) 오후 1시50분에
부산역을 출발한 KTX가 정시에 서울역에 도착하였고
먼저 서울역에서 도착하여 기다리는
선바위골님네와 함께 택시를 타고
곧바로 조계사로 갔습니다.
저녁 예불을 보기 위해서였지요.
여느 사찰과는 또 다른 무게로 느껴지는 조계사의 저녁예불시간에
무엇보다 열심히 기도하는 보살님들의 모습이
제게 큰 감동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구처럼 했다, 한다, 소리냄도 없이
그냥 주어진 시간 내내 기도하면서
절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런 정진도없이 불법을 얘기하고
불자라고 외치고 다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을 뿐이었지요..
그래도 "오늘은 저녁예불이라도 열심히 참여했으니 다행이다.."
예불이 끝나고 잠시 조계사 경내를 둘러본 뒤
근처 식당에 가서 성전 스님과 자운화님, 한산님,선바위골님네와
간단히 저녁공양을 하고
인사동에 있는 선비(sun bee:땡벌)호텔에 투숙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프론트에 05시 모닝콜을 부탁하고는
일찍 잠을 들었지만 금새 잠이오진 않았습니다.
영통사 순례 당일 아침엔 몸이 먼저 적응을 한 것일까요..
모닝콜 전에 눈이 뜨진 나는 바삐 씻고 서둘러
모임 장소인 경복궁 동문을 향했습니다.
전날 스님께서
10분거리라고 말씀 하셨던 모임장소가
지나는 서울 분에게 물어보니
한참 더 멀다하기에 택시를 이용해 도착을 했습니다.
벌써 우리 카페 식구들과 불방에서 함께 동행하시는 분들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더군요.
불교방송 홍인기 사장님과
조순용 시사저널 진행자님도
이번에 함께 순례단으로 같이 갔었습니다.
또 불교방송 이사장이신 조계종 영담 스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신도님들과 동행했습니다.
뵙기 쉽지 않은 분들과 함께 가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린 행복을 느낄 수 있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 잘알고 있는 듯이
처음 보면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인솔자에게 체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6시 30분
그리고 차는 출발하여 도라산 CIQ로 달렸습니다.
위쪽으로 올라가니 군인들이 눈에 띄고
여기저기 쭈욱 철조망이 쳐진 것이 보여
점점 전방이 가까이 왔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우리측 인솔자가
여러가지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북한 남한이란 표현보다는
북측 남측이란 표현을 써달라는 것과
이동중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북측 사람들과 얘기할 때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나 말에대해 듣고
북한방문에 따른 사전 보안교육을
단체이다 보니 비디오로 대체 한다고 ...
여기서 일단 MDL(군사분계선)을 넘어 가기전에
남쪽의CIQ에서 외국으로 나갈 때와 똑같은
출국(?)절차를 밟았습니다.
핸드폰은 절대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모조리 압수(?)당해
평소 별도의 손목 시계를 차지않기에
시간을 몰라 약간의 어려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차는 남쪽 군인들의 인도가 끝나고
북측 병사들에 의해 북쪽 CIQ에 도착했고
다시 세관검사와 입경수속을 거치는데
북측의 식량사정을 감안하여 자운화보살님께서
아침식사를 들지 못한 우리 일행들을 위해
손수 여러 음식을 많이 준비를 해왔기에
차안에서 아침 식사로 먹고도 제법 남은 것을 들고 들어가는데
북측 검사원(순하고 웃는 모습이 싱그러웠슴다)이 저를 보고서
"제일 많이 들고 가져 갑네다~~^^"
그러자 제가 멋적게 " 네.. 그렇죠..ㅎㅎ " 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차에 다시 오른 잠시 후
여기서는 두명의 북측 안내원이 우리 차에 올랐습니다.
이 중 한분은 나이가 조금 들었고
한 분은 몹시 젊고 북쪽에 산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남쪽 사람처럼 세련된 인상의 느낌을 주는 분이었지요.
특히 잘 생긴 미남앞에서는 늘 히죽히죽하는 선바위님은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더군요..ㅎㅎㅎ
그런사이 차는 잠시 북측 인도 차가 오기를 기다린 후
곧장 개성공단 지대를 거쳐서 가는데
공단지대에는 우리 남쪽의 여러 기업들이 이미 진출해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고
넓은 벌판에 개발이 막 시작되는 흔적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어쩌면 이 곳에서
앞으로 북쪽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공단지대까지 이미 우리의 원조라 할까 지원으로
모든 시설과 인프라가 이루어진 듯 보였습니다.
아마도 북쪽에서는 자본이 없어 해낼 수 없는 것을
모두 남쪽에서 도로나 공장, 기타여러 기반시설들까지
제공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쉽사리 알 수 있었습니다.
공단지대를 지나 시내로 조금 들어서면서
일반 인민들의 삶의 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낡고 오래되어 빛바랜
1960년대 초반의 옛날 사진첩을 들여다 보는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북한의 생활상은 낙후되고 보기에 정말 안쓰러웠지요.
이 남쪽 땅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고 잘 살고 있는지
누구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성 시내를 들어서면서 2~3층 정도인
허름한 주택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인민들의 모습도 자연스레 눈에 띄는데
한참 일할 시간인데도
별로 할일 없어보이는 분들도 눈에 많이 띄고
집안에서 창을통해 우리들이 지나는 것을
내려다보는 모습들도 여기저기 많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이동중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어
그림으로 담아올 순 없었고
가슴에만 선명하게 새겨왔을 뿐입니다.
우리를 실은 대형 버스 18대가 개성 시가지를 지날 때
멀리 송악산이 보였습니다. 이즈음에서 당연
송도삼절(황진이 ,박연폭포,서화담)의 이야기가 나오고,,,,
30여분을 지나 관을 쓴 듯한 다섯개의 봉우리가 이채로운
오관산 아래 자리잡은 영통사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기온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시원한 냉방 차안과는 달리 불볕이었습니다.
이 순간이 처음 북한 땅 깊숙이 발을 내 딛은 것이 되겠지요.
우리들 중간 중간에 안내원들이 많이도 눈에 띄었는데
대체로 젊고 인물도 좋은 친구들이 많았고 아마도 그 쪽에서는
그나마 아주 좋은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로 보였습니다.
천태종과 조계종 합동으로 영통사 복원 대법회가 개최되고
북쪽의 영통사주지의 환영과 선물교환이 있었는데..
북쪽에서는 참가자 전원에게 청자 도자기 1점씩을 주었습니다.
집에와서 풀어보니
아주 깜찍하고 멋진 고려청자 같았어요..ㅎㅎㅎ
그리고 북측 안내원을 따라
조별로 영통사 부근 유적을 탐승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우리 일행의 일부는
시원한 그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었었는데
그 순간 까만 차 한대가 우리들 근처에 서기에
차량번호를 보니 평양-00 이라
제가 신기해서 사진을 찰칵~...
그런데 주변에 언제 나타났는지
안내원이 저를 오라 고 해서 갔습니다.
"선생님,무얼 찍었지요?"
"차를 보고 그냥 찍었습니다"
"차 번호가 찍혔지 않습네까.."
순간 아차, 덜컥 겁이 좀 났습니다..
제가먼저 선수를 쳤지요..
"이것 지울까요"
"어서 지우라요"
그러면서 삭제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지웠다고 했습니다.
"이런거 사전에 교육 안받았슴네까.."
"그런 얘긴 못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명찰을 보더니
"우 선생님은 영통사복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네까.."
"저는 아주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민족의 보존자원인 영통사와같은
사찰을 복원하고 이렇게 방문행사를 가지는 것은
남북교류와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이런 행사가 계속 이어지면 참 좋겠지요"
그러자 북측의 안내원이 말한다
"그런데 지금도 어려운데 계속 하겠시요.."
정치적인 문제가 가로 막아서
계속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얘길 하는데
한편 슬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라도 오게된 제 자신이 무척 다행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얘기를 나누고 우리 성지순례단이
영통사에서 차가 서 있는 주차장으로 이동을 하는데
우연히 제 옆에 아주 아주 세련된 정장을 입은 여성이 지나가길래
힐끔 보면서 서울에서 온 어느 님이시기에
저렇게 세련되고 고와보일까 생각을 하고는
눈길이 왼쪽 가슴위로 멈출즈음,,, 적지않게 놀랐습니다.
거기에 김일성 뺏지가 또렷이 붙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궁금하면 못참는 제 성격이라..ㅋㅋ
" 개성에 사세요?"
"아뇨, 평양에서 왔습니다~~ "
헉~!!! 아무래도 차림새가
도저히 여기까지오면서 본 개성에서는 볼 수 없었던지라..
"역시 그랬구나.... 저랑 사진 같이 좀 찍어실래요?"
그랬더니 흔쾌히 찍자고 하더군요..
바로 그 순간 주변에 함께 가던
렌즈 큰 카메라들(남쪽의 기자분들인지도 모르겠다)이
막 달려들어서 너도나도 셔트를 눌러대고
저도 순간 스타가 돼 내일 일간지를 장식하는거 아닌지...ㅎㅎ
하여간 특별한 느낌을 순간적으로 받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아주 즐겁게 콧노래를 부르며 주차장에 오니
입구에 북측 병사들 여럿이 날 노려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자기네들이 얼씬도 못하는 고위 여성분이랑
사진을 막 찍는 저를 부러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차에 올라서 점심 식사를 하러 옮겨가는 내내
그 아가씨가 눈에 어른거렸어요..ㅋㅋㅋ
일단 카메라에 담긴 모습이 어떨까 생각하면서 기대에 찼습니다. ㅎ
시내로 진입해 온 듯 차는 개성시내 한복판에 있는
민속여관 식당으로 우리들을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영통사 성지 순례단의 수가 많다보니
식당을 세곳(통일관,민속여관,영통식당)으로 분산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 민속여관은
6.25전쟁 당시 정전협정지역이라
유일하게 미군의 폭격이 없었다 합니다.
그래서 옛날 그대로 한옥이
정말 깨끗하게 잘 보존 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무척 어렸던 60년대 초의
우리가 살던 동네를 닮아 있었습니다.
아니 그 곳을 가서 보니
제게 잊혀졌던 기억이 다시금 살아왔었다고 해야 할까요....
냇가를 따라 정원이 길가에 소담하고 이쁘게 갖춰져 있고
중간에는 작은 다리가 구름처럼 떠 있으며
집앞으로 올린그늘막엔
포도가 알알이 엄청 송이 채로 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지난날 어린 시절 집 앞에
포도나무 덩굴이 떠오르고 옛날 집이 생각 났습니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리 차에 함께탄 일행 모두가 제1연회장으로 가서
식사를 하였는데
우선 보기에는 그럴 듯한 9첩 반상이었습니다만
약간의 향료를 썼는지 입에 맞지 않아 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무래도 북한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다는 느낌을 어김없이 받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식사 중간에 함께갔던 김도연님께서
용성맥주(1병에 1$)를 세병 시켜서 여럿이 브라보를 외치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하며 기분을 돋우었습니다.
점심 식사후 자유시간이 잠시 주어진 틈에
화장실을 다녀오신 분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휴지가 없다는 겁니다.
이정도의 식당에서 휴지가 없을 정도라고 하면
북한의 소모품인 생활용품이라는 게
아주 귀한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지않겠습니까..
경제난으로 기본 생활 마저 어렵다는 것을 느꼈지요.
그리고 식당 한쪽의 기념품 상점에 가서
이것저것 골라 보았지만 제대로 마음에
크게 닿는 물건은 없었습니다.
다만 날이 워낙 더워 시원한 빙수 생각이 났지만 없기에
부채라도 하나 사고 싶어 구경하며 하나를 골라 샀었지요..
점심을 먹고 식당 밖으로 나가서 시내 구경을 하려고 하니
안내원들이 문앞에 서서 나가지 못하도록 가로 막았습니다.
여기에서 이 곳이 통제사회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어쨌거나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서는
우리 순례단을 태운 버스는 선죽교를 갔습니다.
사실 선죽교는 개성시내에 있고
자그마해서 크게 볼품은 없었습니다만
바로 옆에 정몽주의 업적을 기리는 비가 또렷이 남았고
그 곳을 꼭 한바퀴 둘러 보라는 안내원의 지시를 따라
우리는 탑돌이를 하듯 모두 한바퀴씩 돌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함께간 일행들의 사진도 찍어야 하고
함께가지 못한 미소방의 우리 미소님들을 위해
열심히 셔트를 눌러야만 했어요..
차에 올라 다음 행선지인 고려박물관으로 향하면서
우리 카페를 통해 함께간 용문사 가족들의 단체 사진을 찍노라
안내를 드렸지만 무더위와 각기 구경하느라 시간을 제대로
맞추질 못해 전체가 들어오는 사진을 잡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성균관( 고려 박물관)이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고 넓은 뜰안으로 눈에 딱 띄는
1000년이 넘는 거대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그 둘레만 봐도 엄청 났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많은 남쪽의 사람들이 개성을 찾는다면
꼭 이 곳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치있어 보였습니다.
전시 공간은 북한의 여러 사정이 좋지 않은 듯 보존환경은 좋지 않았습니다.
여기 같으면 엄청난 보호를 받고 보존될 사료나 문화재가
썩 좋다할 수 없는 환경에서 관리되고 있어
관계 전문가들 입장이라면 더욱 안타까웠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남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석탑이
아주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멋진 고려청자도 보았습니다.
설명하는 안내원에게
진품인지 모조인지 물어보니 진품이라고 하는데
일본사람들이 와서 돈을 있는대로 주겠다며
하루종일 붙어 팔라고할 정도로 아름다움에 탄복을 했다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지금껏 본
고려청자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이는 것들 중의
하나인 듯 보였습니다.
다만 공민왕릉은 모조로 옮겨 놓았더군요.,
여기서는 벽화가 정말 훌륭해서
언제 다시 가는 때엔 공민왕릉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개성방문을 마치고 시내를 지나올 때
시가지 사이로 흐르는 개울 가에서
벌거숭이 아이들이 물장구 치고 수영을 즐기는 것을 보고
차안에 있던 우리들이 모두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직도 깨끗하게 맑은 물이 흘러가는 개천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마도 오래 전의 우리네 지난 삶의 추억이
살아오기 때문이었겠지요..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게 개성을 출발한 우리 순례단이
북쪽 CIQ에 도착하여 북측 안내원들과 헤어지면서
또 한번 감정이 오고 가는 것을 보니
역시 우린 한민족 한핏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차에 탔던 시골아저씨같은 안내원과 제가
헤어지며 악수를 나누는데
그 분의 손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손바닥에서 따뜻한 열이 진하게 제게 전해졌지요..
북쪽을 벗어나 차안에서 돌아오며 생각하니
그게 통일에 대한 그 분의 열망이
제 손에 전달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여름이라 하기엔 너무 더웠던 하루가
새벽 이른 시간 부터 밤 늦게 까지 하루가 이틀이나 되듯
시간의 경계 끝까지 쉼없이 움직이고 웃으며 달려 봤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켠에 무언가 슬픈 그림자도 만났던 하루였지요..
어쨌거나 이렇게 다녀올 수 있었던게 제겐 행운이었으며
함께 성지 순례를 다녀왔던 성전스님께 감사드리고
여러 미소님들과 아주 특별한 곳을 다녀왔기에
무척이나 보람있고 의미있는 영통사 성지순례였습니다.
북녁 땅을 언제고 가고프단 생각은 들지만
앞으로 언제 또 다시 갈 수 있을는지
누구도 장담 못하는 현실 앞에 설 수 밖에 없기에
다시금 분단의 철조망이 제 가슴에 박혔습니다.
첫댓글 하루 종일 바빠서 후기가 좀 늦었습니다..^^ ㅎ
게으른 탓에 이제 감사말씀드립니다.
헤어져 아직도 뒷 통수가 땡깁니다. 다시 뵈면 그때 
단편소설입니다... 북측의 생활상을 한눈에 보는듯하네요...
은 마이 준비 하신는지요.


클날뻔 했네요
덕분에 생생한 북녁 형편을 들어니 가슴이 아프네요
해인님...책 내셔도 될듯해요~ㅎㅎ 여행후기를 너무 생동감있게 들려주시네요~ 감사감사~^^
너무나 긴 글, 가지 못하신 분들도 그 길을 따라 한 번 다녀 오실 수 있으실 듯 합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역시 운영자님은 무언가 다르네요.
좋은 추억이 되시겠어요... 앞으로도 남측의 지원이 많아져서 제2의 영통사, 제3의 영통사로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수희심
해인님이 보신것이 지금 우리에 현재 입니다 앞으로 우리후세에게는 더나은 나라를 위해서는 우리가 좀더 노력하고 남북이 하나되는 그날 까지 부처님전에 빌고 빌어야 할것 입니다 후세에게는 통일된 조국를 물려 주기위해서요 글 감사하게 정말 잘보았습니다
그 철조망 마음은 넘나듭니다 사랑 가득 담아 보냅시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동행하지 못해서 서운했던 맘 해인님의 후기로 대리 만족 합니다. 어느 작가님이 생각 나는군요 금강산 첫 여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모 그룹에서 초대를 했을때...내 고향이 도라산에서 보면 바라보이는 개성인데...금강산을 통해서 이북에 간다한들 내고행땅 밟을수 없다는...나중에 육로를 통해서 고향땅 밟으실거리는....그 작가님이 생각 납니다
생생한후기 잘 읽었습니다.우리 친정아버지의 고향이며,저의 고향이기도한 북한땅..,비록 아버지께서는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먼길 떠나셨지만,저를 대신하여 다녀오신 다른분들의 가슴벅찬 느낌이 우리 아버지께도 아주 잘 전달되었으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속히 통일의 날을 발원하면서 ....감사합니다,
피곤하실텐데 못가신 분들을 위해 긴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상상해보았습니다 .. 비록 가지는 못했지만 세밀하게 표현해주신 글을보고 갔다온거나 다름없을 정도입니다 .좋은경험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오신 해인님 ...사진속의 북녀 .^ ...너무 그리워 하지 말라우 ㅋㅋㅋ..
해인님 책 출판사 하셔도 될듯싶네요 정말 감명깊게 잘읽었 읍니다 가보질 못해도 해인님 께서 카페회원 을 위해 현상 적인 글을 올려주시니 읽고느낌점 우와 정말 환상 입니다 언제나 버팀 목이되어 주시는 직위님 우리카페의 보배십니다....( 감탄)......
꼼꼼하게 세세하게 직접 다녀온듯 느끼게 글로 옮겨 주신 후기 생생하게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한편의 작품입니다.남북 이산 가족의 아픔 없는 자유로운 세상 오길 이번 기회 새삼 더 느껴봅니다..
저도 함께 갔었나요????ㅎㅎㅎ....다녀온듯 그곳의 현실이 가슴으로 느껴 집니다...사진도 후기도 너무너무 감사 드려요!!!
평생을 두고도 못가보는 땅을 하루에 다녀오셨나요? 저는 님의 글을 따라 단 몇분만에 다녀왔네요...님의 글이 음악과 어우러져 가슴 한켠 아픔으로 남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 모두에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왔음 합니다. 아니 갔어도 마치 다녀온 듯 한 착각 속에서 한참을 머물며, 감사한 마음만 가득 내려 놓고 갑니다!!
음악과 글이 잘 어우러저 그대로의 모습이 보입니다 ~~
역시 해인님 뭔가 다르시네요...예리하시군요...덕분에 자세하게 정황을 보는듯 ...진심으로 감사합니다.특히나 커다란 글씨로 보여주셔서 보는 눈이 편안해서 좋습니다.자상하신 후기 ...바쁘신데 올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차후에 다시 읽도록 하겠습니다...
영통사 성지순례 잘 읽고 갑니다. 자상하신 설명으로 갔다온느낌입니다.배경음악도 너무잘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