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 단상
북반구 중위도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극동에 치우친 우리나라는 철 따라 기압 차에 의한 계절풍이 불어온다. 겨울이면 대륙으로부터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오고 여름이면 해양으로부터 따뜻한 남동풍이 불어온다. 겨울과 여름 사이 봄에는 시든 초목이 움이 트고 잎이 돋아 화사한 꽃을 피운다. 여름과 겨울 사이 가을에는 무성해진 초목에서 맺은 열매는 거두고 식물은 성장을 멈춘다.
중국에서 유래된 24절기는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파종과 수확을 알려주는 지표다. 태양력에 따라 매달 두 개씩 절기가 들어 일 년이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 아들 학유가 남긴 ‘농가월령가’는 달마다 든 두 차례 절기마다, 춘하추동 철이 바뀔 때마다 농가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드러내 놓았다. 당시 농촌 풍경과 세시 풍속을 훤히 알 수 있는 가사다.
한글날을 앞둔 시월 둘째 목요일은 한로다. 찬 이슬이 맺히고 기온이 내려가 추수가 한창인 때다. 단풍이 물들어가며 제비는 남쪽으로 가고 북녘에서 기러기가 날아오는 때다. 추분을 전후해 백로와 한로가 든다. 한로에 뒤이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따라 온다. 가을에 든 절기는 이슬이나 서리를 달고 있다. 반면 봄에는 춘분을 기준으로 경칩 앞에 우수와, 청명 뒤에 곡우가 든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아무래도 비가 흡족해야 한다. 우수는 대동강 얼음이 녹아 움이 트고 싹을 틔우는 때다. 곡우에는 농작물 성장에 도움을 줄 비가 때맞추어 내려야 한다. 여름 장마와 뙤약볕을 건너온 가을에는 기온이 서늘하고 삽상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냥 비가 잦고 햇살이 뜨거워서는 안 된다. 결실과 함께 수확의 계절이다. 영롱한 이슬은 찬이슬로 내려 조락을 맞이한다.
추석과 개천절로 이어진 연휴를 보내고 거제로 건너와 맞은 시월 초순이다. 기온이 뚝 떨어져 그간 입고 다닌 얇은 양복은 춘추복을 갈아입었다. 반팔 셔츠는 긴팔 셔츠로 바꾸어 입고 다닌다. 새벽녘 와실 방바닥이 차가워 보일러 난방을 가동시키도 했다. 샤워는 찬물로 할 수 없어 온수로 하고 있다. 아침을 들고 한글날로 이어지는 사흘 연휴를 앞두고 창원으로 가져갈 짐을 꾸렸다.
주중을 보내면서 비운 반찬 통을 먼저 챙겼다. 그 밖에 더 챙길 보따리가 있었다. 옷장에 둔 반팔 셔츠는 모두 집으로 옮겨야겠다. 그동안 덮은 얇은 이불은 두꺼운 이불로 바꾸어야할 형편이다. 이불을 가져올 때 감싼 커버에다 얇은 이불을 돌돌 감아 넣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여름양복도 옮겨야겠는데 방법을 달리 하련다. 퇴근해 춘추복을 여름옷으로 바꾸어 입고 갈 생각이다.
한글날이 금요일이라 목요일로 한 주 근무를 마치게 되었다. 주말을 앞둔 퇴근 시간이면 카풀로 다니는 이웃 학교 지기가 내가 머무는 마을로 차를 몰아온다. 그 양반 차에 실을 봇짐 두 개를 꾸려 놓고 와실을 나섰다. 여섯 시 이전이라 어둠이 가시는 중이었다. 날이 밝아올 동녘하늘엔 구름이 뭉쳐 있었다. 일본으로 향하는 태풍 간접영향으로 남녘 해안에서는 바람이 제법 불었다.
와실 골목에서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들녘으로 나갔다. 추수가 끝나지 않은 들녘을 걸어 연초천 둑으로 올랐다. 산책로 길섶에는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요즈음 아침마다 꽃길을 걷고 있다, 퇴근 이후도 오갈 데 없어 연초 천변으로 나가니 아침과 저녁 두 번이나 코스모스 열병을 받고 있다. 내년 가을에도 연초천 산책로에 코스모스가 핀다면 한 해 더 걸을 꽃길이었다.
교정으로 드니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제 일착이었다. 밤을 지킨 당직 노인은 운동장에서 맨발걷기로 자신의 건강도 지켰다. 앞뜰에서 본관을 돌아 뒤뜰로 가니 한동안 알록달록했던 봉숭아꽃은 모두 사그라졌다. 내년 여름이면 봉숭아 역시 그 자리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내가 올해 그랬듯이 내년에도 봉숭아를 가꾸어 볼 셈이다. 주말에 창원으로 복귀하면 어느 산자락을 누비려나. 20.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