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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이 (갈2-4)
찬양 : 주가 일하시네
본문 : 갈2:1-10절
이제 휴가를 지내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휴가기간 몸이 아파서 힘들었지만, 다행히 내 몸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임에 감사할 뿐이다. 주님 인도하소서.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기운을 회복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날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실까?
본문에는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때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하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세 번의 예루살렘 방문중 세 번째 방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절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여기 바울과 함께한 바나바와 디도 중 오늘 본문의 핵심은 디도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바울이 ‘나의 참 아들’이라고 편지에 소개한 사람일 만큼 바울에게 소중했던 사람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린도 교회에 소개한다. 고후8:23절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그리고 이렇게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 계시를 따라 행한 일임을 밝히고 있다. 2절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인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 부분에 대해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으로 그곳을 찾은 나는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복음의 내용에 관해 예루살렘의 형제들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내가 가르쳐 온 복음의 올바른 해석과 또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개인적인 토론을 벌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오늘 묵상의 재료가 된다. ‘계시’ 즉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이란 단어와 ‘사사로이’ 즉 ‘개인적인 토론’이란 단어이다.
쉬운성경의 번역도 참조해 보자.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따로 만나서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전에 한 일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성경 번역도 보자.
‘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기쁜 소식을 공식 석상에서 전하였고 지도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거에 한 일과 현재 하는 일이 헛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사역을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따라 일했음을 말한다. 자신이 전하는 사역이 계시를 따라 행하는 공식적 사역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사도들에게 개인적으로, 따로, 사사로이 전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역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자신의 사역이 정당함을 주장함에 온 힘을 다 쏟았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런 그가 디도를 억지로 할례받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3-5절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지금 바울은 이방인 선교 사역이 사도들의 유대인 사역과 동일한 사역임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7-8절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이런 가운데 일반적인 경우라면 디도를 할례받게 함으로 장애물을 제거해야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5절에 보면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라고 외친 말에서 그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당시 분위기상 할례를 주장하는 강한 압력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는 바울의 굳건한 의지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특히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이것을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하는 이유는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회유(懷柔)에 말려들어 할례를 중요하게 생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계시와 사사로이’가 오늘은 무엇인가 내게 울림을 주고 있다. 목사로서 사역을 감당하며 계시를 통해 일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주님이 명하신 일에는 ‘사사로이’ 즉 열정이 필요한 것임을 본다.
오늘 본문을 해석하면서 사도 바울이 ‘사사로이’ 사도들을 만나서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 즉 율법적 전통을 넘어 복음의 자유를 전하는 것을 사도바울의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들려진다.
분명 사도바울은 계시를 따라 일했다. 그럼 끝. 그러나 사도바울은 계시를 따라 일하고서도 자신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사로이 사도들에게 다시 설명하고 있으며, 심지어 장애물처럼 여겨지는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행하게 하지 않았다.
오늘 휴가를 마치고 다시 달려가야 하는 날 기운이 없는 나에게 주님은 열정을 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일꾼이 세 가지 종류가 있음을 묵상한다. 주어진 계시를 따르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는 종이 있다. 이들은 삯꾼이다. 두 번째는 주어진 계시에 순종하는 자이다. 그러나 세 번째가 있다. 주어진 계시에 순종할 뿐 아니라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열정을 다하는 사람이다.
오늘 바울을 통해 주님은 내게 이런 열정을 다하는 종이 되라고 하신다. 기운이 없는데 .... 주님, 이 종을 붙잡아 주소서. 말씀하신 대로 열정을 다해 주님을 따르는 종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