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앞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ㄱ케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어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기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시인의 시 이야기]
나는 문정희 시인의 시를 즐겨 읽습니다. 그 까닭은 그녀의 시는 솔직하고, 거침이 없으며, 내숭 떨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녀의 시를 읽고 나면 마음이 담백해지고 가지런히 정돈된 느낌을 받곤 합니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에는 문정희 시인다운 거침없고, 내숭 떨지 않는 솔직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폭설을 만나 아름다운 한계령에서 사랑의 밤을 보내고 싶은 시적 화자의 마음이 다소 도발적으로 드러나지만, 그것은 행복해지고 싶은 너무도 간절한 열망에서 나온 지극한 사랑의 마음에서이지요. 이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 눈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람들을 구조하려 헬리콥터가 나나났을 때도 손을 흔들지 않고, 자신의 옷자락도 보이지 않겠다고 하는 다짐입니다.
이 아찔하도록 상큼한 시적 발상이 정염에 물든 시적 화자의 마음을 속물적이고 저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수긍하게하는 것은 바로 거침없는 솔직함때문이지요. 또한 잊지 못할 연인과 운명적으로 묶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는 문정ㅇ희 시인이니가, 할 수 있는 표현이지요. 즉, 문정희식 시적 표현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처럼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온통 하얗게 채색된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한계령에서 격정에 차 ㄴ사랑의 밤을 보내고 싶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라면 나 또한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출처 : 《위로와 평안의 시》
엮은이 : 김옥림, 펴낸이 : 임종관
김옥림 :
-시, 소설, 동화, 교양, 자기개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교육 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침이 행복해지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안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365일 마음산책》, 《법정의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멋지게 나이 들기로 마음먹었다면》,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마음에 새기는 명품 명언》, 《힘들 땐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 《법정 시로 태어나다》, 《이건희 담대한 명언》 외 다수가 있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