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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1)
마 24:1-14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14 /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막13:1-2,눅21:5-6]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실 때 제자들이 곁에 와서 성전의 여러 건물을 구경하자고 말하였다. 2)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이 모든 건물이 다 무너져 돌 하나도 제대로 얹혀 있지 못할 것이다.' 3) [재난의 시작;막13:3-13,눅21:7-19] 예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물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주님이 다시 오시는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4)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 5) 많은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하고 나서며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끌어들일 것이다. 6)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겠으나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이 온 것은 아니다. 7) 민족과 나라들이 들고 일어나 서로 칠 것이며, 여러 곳에서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8)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다만 닥쳐 올 재난의 시작일 뿐이다. 9) 그때 너희는 내 사람이라는 이유로 고통과 죽임을 당할 것이며 온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10) 그리고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죄 가운데 다시 빠져 들어가 서로 배반하고 미워할 것이다. 11) 또한 거짓 예언자가 곳곳에서 나타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12)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며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13)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14)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이 그것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끝이 올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 안에서 함께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성전 밖으로 나와 성전에 대해 말씀합니다. 감람산에 올라가서는 이 세상의 끝과 재림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다 무너뜨려지리라(1-2)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7가지 화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야단칩니다. 그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전에서 나옵니다. 그 성전은 헤롯대왕이 주전 19년에 착공하여 주후 64년에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완공된 성전입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입니다. 성전 건물을 보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로마의 병사들은 “성전 돌 사이에 금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금을 찾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의 돌을 모두 깨뜨렸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40여년이 흐른 뒤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된 후 6년 뒤에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은 오래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끝이 오리라(3-14)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내려다보이는 감람 산 위에 앉았습니다. 이 때 제자들이 조용히 다가와 묻습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이 주의 임하심에 대해 물었다고 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다시 오심을 믿은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단순히 예수님이 정치적 왕권을 가지고 올 것으로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앙적 왕권을 가지고 오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입니다. 거짓 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환난에 넘겨집니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난리와 난리가 일어날 겁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게 됩니다. 불법이 성행할 것이며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그제야 끝이 옵니다. 엄청난 환난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하는 일이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때까지 말씀을 붙잡고 견디며 복음 전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용: 건물의 성전은 무너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 된 성전은 무너지면 안 됩니다. 우리의 몸 된 성전이 거룩하게 세워져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보이는 것이 다인 것처럼 살고는 있지 않은지요? 결코 안전하지 않은 이 세상, 언젠가는 끝나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삶을 끝까지 경주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담긴 세상이 주는 모든 정욕을 내어버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를 허락하신 은혜를 기뻐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찬양합니다.
< 설 교 >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
마 24:14 / 정필도 목사
목회를 하다보면, 헌신된 일꾼 한 사람이 헌신되지 않은 천명보다 더 큰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교인의 숫자가 천 명이 되어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절절매는 교회가 있는 반면에, 교인의 숫자는 작아도 헌신된 사람이 하나 있음으로 해서 그보다 더 큰일을 넉넉히 감당해내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만큼 헌신된 일꾼은 귀한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임직하신 분들은 모두 다 헌신된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봉사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은 여러 성도들에게, “교사 좀 해주세요. 성가대 좀 해주세요. 구역장 좀 해주세요.”하고 여러가지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대체적으로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헌금하는 것과 전도와 선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의 물질을 드리고 생명을 바치는 것은 가장 값진 일인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백 배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은 처음에는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확신이 없어서 그런지 헌금이나 전도, 선교를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게 되면 달라집니다. 헌금하는 일이나 전도하는 일이나 선교하는 일들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먹을 것도 없었고 가난했는데, 어떻게 이 많은 헌금을 하게 되었는지 헌금을 하면서 헌금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전도하는 것도 매우 힘들어했는데, 전도 받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구원받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큰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주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일컬어 소위 “효자신자”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성도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효자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1. 세계 복음화는 반드시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 이사야 11:1-10절을 보면,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과 앞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謀略)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 말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할 것이며, 열방이 예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바냐 3:9절에서 [그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게하여 그들로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라고 했고, 스가랴 2:10-11절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그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1:15절을 보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며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2.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뿐만 아니라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가 된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합니다.
3.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며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예언된 말씀 그대로 세계복음화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사야 14:24절과 55:11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5:18절에서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했으며, 이사야 48:3절에서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 입에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과연 이 말씀 그대로 지금까지 다 이루어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1:3-4절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받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은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해 주신 복과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신 복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게 되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싶다고 구원받고, 구원받고 싶지 않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주시고,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도록 하여 주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이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16). 이처럼 구원은 인간적인 생각이나 지식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온지 10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인 약 1200만 명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여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많이 늘어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이 많기 때문이며,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도록 역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누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인지 다 아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도록 만드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아무리 도망다녀도 성령이 한번 역사하시면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9-1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에 주께서 밤에 환상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도 바울은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일년 육 개월을 고린도에 유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가르쳤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사는 부산에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얼마나 있는지 다 아십니다. 요한복음 6:44절을 보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서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고, 열방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며, 앞으로 이 세상 모든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결과를 이미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은 누구나 하나님을 믿게 되어 있습니다(행 13:48).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특별히 말씀하신 이유는?
① 우리의 신앙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을 하다보면 믿음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 일을 하다가 은혜를 받습니다. 솔로몬이 만약 자신에게 찾아오는 각국의 사절들에게 전도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면 일 천명의 여자들과 즐기며 술에 취하여 방탕할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은혜 받는 일에 열심을 내다보면 자연히 죄 지을 시간이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지막 때에는 신앙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우리의 신앙을 꾸준히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② 축복과 상급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복을 받고,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칭찬 듣고 면류관 상급 받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6-8절을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심은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이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를 목회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전도한다고 해서 다 믿는 것도 아니며, 또 목회를 잘한다고 해서 모두 다 신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진실로 예수님을 믿고 믿음이 자라나고 열매맺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심은 대로, 수고한 대로, 일한 대로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일의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모두 다 예수 믿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되지도 않을 일을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될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의 필요를 따라 지혜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능력도 주십니다. 문둥이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찾아와 문둥병을 고침받고자 할 때 나아만이 할 일은 순종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순종함으로 병든 몸이 깨끗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부어라”, “떠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옆에 있던 마리아는 일꾼들에게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일렀습니다. 일꾼들의 할 일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인들이 순종함으로 해서 잔칫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손님들에게 맛있는 포도주를 대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 28:19-20).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못할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주실 것이고, 물질이 없으면 물질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도 주시고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선교는 막연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되지도 않을 일에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결과를 알고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부족해도 선교는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세계 복음화는 반드시 이룩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령의 능력으로 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선교지로 직접 복음을 들고 나가든지, 선교사를 보내는 일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면 됩니다. 그리할 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게 자랄 것이며,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큰상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끝까지 견뎌라
마 24:1-14 / 노경모 목사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레슬링 종목 8년만의 금메달이자 런던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12번째 금메달을 따서 침체기를 겪고 있던 한국 레슬링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금메달을 딴 선수가 있었습니다. 누구인지 아시지요? 그 이름은 김현우입니다. 결승전에서 헝가리 선수가 머리로 김현우 선수의 눈을 들이 받았습니다. 이 버팅으로 말미암아 평소보다 오른쪽 눈덩이가 두 배 가까이 부어올라 오른쪽 눈이 완전히 가려졌고 왼쪽 눈으로만 싸워야 했습니다.
이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타까워했고, 마음으로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만 더, 조그만 더 견뎌라.’ 감독도 코치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견디라’고 외쳤습니다. 드디어는 그는 상대방 헝가리 선수를 세트 스코어 2-0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력으로 싸웠다고.
어려움을 참고 조금 더 조금 더 견딘 것이 승리를 가져 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즈음이 말세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말세 중의 말세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차마 입으로 말하기 조차 힘든 성폭력 사건들, 자식이 부모를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부모가 어린 자식들을 죽이고..
이단들이 여기저기서 날뛰고, 이단에 빠져서 그 이단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자기의 자녀들까지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지를 않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각 분야의 지도자들의 불법과 타락, 도덕성이 붕괴되고..
말세 즉 세상 끝 날이 아주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세의 징조들을 묻는 제자들에게 오늘 본문 5-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이단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고,
2. 전쟁과 다툼이 일어나고
3. 기근일 일어나고
4. 지진이 일어나고
5. 사람들이 우리를 환란에 넘겨 주고
6. 심지어는 우리를 죽이려고 까지 하고
7.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되고
8.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고
9. 서로 잡아 주고
10. 서로 미워하고
11. 불법이 성행해지고
12. 사랑이 식어지고.
이런 어려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 인 것 같습니다. 이런 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믿음의 생활을 하기가 참 힘들다는 것입니다.
1. 이단에 빠져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2. 예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불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고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불의와 불법을 좇아 사는 불신앙으로 되돌아가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4. 어렵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5.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생활보다 세상의 쾌락과 정욕을 더 좋아하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주님도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즉 하나님을 잘 믿는 자를 찾아보기가 어려워 질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8을 볼까요?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어려움들을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과 이적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어려움이 생기면 또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심지어는 모세를 돌로 치려고 하고..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때가 좋았으니 종살이 하던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고..
조금만 견디면 되는데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참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시기까지 견뎌야 하는데 견디지 못하고 부인인 사라의 종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라엘 낳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지금까지 전 세계적인 전쟁의 불씨로 계속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13절에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런 어려움들이 많이 생기지만 너희들은 견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끝까지 견딜 수가 있습니까?
첫째,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견디기가 힘들 때가 참 많습니다. 사업의 실패, 갑작스러운 난치병의 발병, 뜻밖의 사고, 경제적인 극심한 어려움, 가정의 파산.. 이러한 어려움들이 몰려 올 때가 있습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유서를 씁니다. .이제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한계가 다다랐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견딜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곁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돕기를 원하십니다.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신다고 로마서 8:26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성령님은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우리를 견디게 하시고 이기게 하십니다.
둘째, 견디지 못하게 하는 암적 요소를 뽑아내 버려야 합니다.
한 번은 발가락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에 가시가 박혔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걸으면 발가락이 아파요. 그래서 할 수없이 아파 보이는 부분, 가시가 박혀 있는 듯 하는 부위의 살을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픕니다. 피가 나옵니다. 이런 작업을 한 후에 가시로 인한 통증은 가시게 되었고 편안하게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를 견디지 못하도록 조금하게 만들고 신경질 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화가 나게 만들고 중간에 포기하게 만드는 그러한 암적 요소를 빨리 찾아 과감하게 뽑아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뽑아내야 할 암적 요소는 무엇입니까?
1. 불신앙 / 하나님에 대한 불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
2. 불순종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영적 지도자에 대한 불순종
3. 불성실 / 책임감이 없고, 충성심이 없고, 용두사미, 약속을 안 지킴
4. 교만 / 자기가 최고라고 하는 것. 계속 실패하면서도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음
5. 불평과 원망 /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림. 불평과 원망은 마약과 같이 중독이 강하고 전염성이 강함
6. 정죄와 판단과 비난 /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에 눈에 있는 티를 봄. 남에게 책임을 전가함. 잘되면 자기 탓, 못되면 남의 탓.
이와 같은 암적인 요소들을 우리에게 뽑아낸다면 우리는 견딜 수 있고 최후 승리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셋째,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소망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목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에배소서 1:18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의 눈을 밝히사 너희를 부르신 부름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부르신 그 부름의 소망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견딜 수가 있습니다.
사막 길에 오른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무더위로 이내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실 물과 음식까지 떨어졌지만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조금씩 두려워졌습니다. 그때 두 사람 앞에 무덤 하나가 보였습니다. 아들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버지! 우리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요?” “아들아, 소망을 가져라. 무덤이 있다는 것은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증거란다. 남은 힘을 다해 찾아보자” 아버지는 소망의 말로 아들을 다독거렸습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정말로 마을을 찾아냈고 피곤한 몸을 쉴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무덤을 보며 아들은 죽음을 생각했고, 아버지는 소망을 생각했습니다. 소망이 없었다면 두 사람이 마을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항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그 소망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그 소망을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이루실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세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만을 주신 것이 아리나 끝까지 견디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승리할 수 있다고..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성령을 의지합시다. 우리를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암적 요소들을 뽑아 냅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확실 붙듭시다. 그리하여 최후 승리를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세의 징조
마태복음 24:1~14 / 박덕기 목사
마태복음 24장을 강해 설교 하려고 하면서, 먼저 그 동안 제가 생각해왔던 몇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초의 성만찬 식을 제정하면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에 성만찬 식을 제정하시면서 성찬의 떡과 잔을 통하여, 자신의 죽음과 구속의 진리를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깨우쳐주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동안 마태복음 24장을 강해 설교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려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말세인데,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을 통하여 그 말세에 나타날 현상과 징조를 분명하게 예언해주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상고하는 중에 저 자신과 성도들이 말세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하기를 바라서였습니다. 따라서 제가 일구월심 꿈에도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교회의 부흥인데, 그러나 과연 지금이 수적인 성장에만 매달릴 때인가? 자기 성찰을 해 보았을 때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지금이 말세지말이고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면, 내가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언제 세상의 종말이 오고,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실지라도, 그 종말을 맞이할 준비를 잘 시키는 것이, 목사인 제가 내게 맡겨주신 양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말세라는 말은 세상의 종말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역사관을 가리켜 직선사관이라고 합니다. 곧 역사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관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불교의 순환사관입니다. 순환사관이란 역사를 시계와 같이 계속해서 순환하고 반복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공자도 역사를 돌고 도는 순환사관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바벨론 사람들은 역사를 3600년 만에 한 번씩 돌고 도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 역시 순환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관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색깔의 안경을 끼고 보는가에 따라서 사물의 색상이 바뀌는 것 같이,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유신론적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적 역사관을 갖고 사는 사람, 그리고 우주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연으로 보는 우연사관을 갖고 사는 사람의 생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직선사관이라고 했고, 이 직선사관이란 곧 역사는 시작이 있었는가 하면 반드시 끝이 있고 종말이 있다는 것을 믿는 역사관을 말합니다. 전 3:1-2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을 때가 있고, 곡식은 심을 때가 있으면, 또한 뽑고 거두어들일 때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직선사관을 다른 말로 종말사관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보는 종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지 2천년이 넘었고, 그래서 지금은 말세지말이라고도 하는데, 곧 말세 중에서도 끝자락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말세라는 것은 기독교에서만이 아니라, 불신 세상 사람들까지도 이 시대를 가리켜 ‘말세다 말세야!’ ‘말세야 말세!”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요? 국어사전에 보면 말세란 “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말세야 말세!’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택시 중에 가짜가 택시가 있습니다. 물론 외관은 비슷한데 택시를 타면 묘한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오징어 냄새 같기도 하고, 비린내와도 같은 냄새가 나는데, 문고리 열면 움푹 팬 곳에 젖은 휴지 아니면 면 같은 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져보며 무슨 냄새인가 코를 갖다 대면 바로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클로로폼 같은 마취제를 적셔서 승객이 냄새 맡는 것을 기다렸다가, 정신을 잃으면 장기를 적출해 팔아버리는 악독한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요? 이 시대가 얼마나 무섭게 타락한 시대인지 이 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예언하신 말세의 현상과 징조들은 어떠한 것들일까요?
먼저 본문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세 번에 걸쳐서 지어졌습니다. 맨 처음은 BC 959년에 다윗이 준비했다가 솔로몬에 의해 건축된 솔로몬 성전이며, 두 번째는 BC 520년 바사왕 고레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중건하라는 칙령을 내려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된 스룹바벨 성전이고, 세 번째는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BC 20년부터 개축을 시작하여 AD 64년에 준공한 것입니다. 이 성전은 거대하고 웅장한 대리석으로 건축되었고, 성전 주위에는 솔로몬 행각과 왕의 행각들이 있었으며, 기둥의 높이는 약 11미터, 둘레는 세 사람 정도가 팔을 벌려야 안길 만큼의 큰 것으로, 웅대하고 아름다움과 위용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여기에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밖으로 나가시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가 두 개나 나옵니다. 하나는 ‘나와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실 때’입니다. 이 중 하나만 있어도 의미전달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태가 이처럼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를 두 번이나 쓴 것은, 그만큼 성전을 떠나시는 예수님을 모습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 때 성전에서 나오신 후, 두 번 다시 성전을 방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나오신 직후에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구체적으로 예언하심으로써, 그 곳이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장소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암시하셨습니다. 실제 동물 제사가 드려지던 성전은, 희생 제물이 예표하는 그 실체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대속의 제물로 드려짐으로,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 예수님께서 떠나가 버리신 성전은, 아무리 크고 웅장해도 소용이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전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임재하시지 않고 떠나가 버리신다면,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는데,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몸이 아무리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위용을 자랑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예언은 헤롯 성전이 준공된 지 6년만인 A. D 70년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크고 웅장했던 성전이 과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는 완전한 훼파가 가능할까? 건물 뼈대만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아심을 우리는 갖게 됩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가 되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성전을 지을 때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성전 벽의 돌과 돌 사이에 황금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것을 안 예루살렘 점령군들은 이 금을 빼가기 위해, 단 하나의 돌도 그대로 두지 않고 모두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아름다움이나 위대함은 그것이 내적인 아름다움을 갖추지 못했을 때, 이처럼 참담한 화를 부르는 근거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형식이 아니라 진실한 내용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예언과 그 성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척하는 자는 개인이든 국가든, 어느 때이든지 반드시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죄는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얼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의 철저한 파멸 예고를 들은 제자들은 주님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께서는 맨 먼저 “너희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예고하신 말세의 징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출현할 것이다.
5절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고 하였고, 11절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2천년 기독교 역사가운데 이단이 없었던 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독교 역사가 아주 짧음에도 불구하고, 가히 이단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한국에만도 지칭 가짜 재림 예수가 수십 명이나 됩니다. 여기 그 자칭 재림 예수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황국주:삼각산 기도원-자칭 메시아. 재림 예수 2)박태선:전도관-천부교. 하나님 3)조희성:영생교-하나님. 재림주 4)이현석:광주 삼성재단-재림주 5)이영수:한국 기독교 에덴수도원-재림주 6)유재열:대한 기독교 장막성전-어린양. 재림주. 신천지 이만희가 몸담았던 장막성전의 창설자 7)홍종표:증거장막 성전-보혜사 8)최충일:하나님의 장막-재림주 9)구인회:천국복음전도관-재림주 10)김풍일:실로 등대중앙교회-재림주. 보혜사. 11)이만희:신천지 증거장막-보혜사 12)김순란:한국 중앙교회-재림주 13)천옥친:대한 기독교 전도관-재림주 14)제정령열:신성 기도원-재림주 15)장영실:백마십자군-천사장 16)최규원:천사 마귀교-주의 종.천사 17)엄명숙:명인 교회-재림주. 아버지 18)문선명:통일교-참 하나님.메시아. 참 아버지 19)정명석:애천교회-메시아(감옥) 20)진성회:생령회-참 메시아 21)김정순:대한 예수교 복음교회-직통계시자 22)원경수:천국 중앙교회-직통 계시자 23)김바울:강북제일교회-직통계시자 24)이천성:한국 중앙교회-직통계시자 25)임순옥:중앙 예루살렘교회-직통계시자 26)윈인종:예루살렘교회-직통계시자 27)김성복:일월산 기도원-직통계시자 28)김은혜:영복기도원-직통계시자 29)최조영:기독교 대한 수도원-직통계시자 30)김기업:혜성교회-직통계시자 31)김민석:에덴 기도원-심판주. 하나님. 민석대왕 32)박명호:엘리야 복음선교회-엘리야 33)안상홍:안상홍 하나님의 교회-하나님. 보혜사 34)이유성:여호와 새일 교회-재림주 35)양도천:세계일가공회-직통계시자. 정도령적 사명자 36)한정애:시해선교회-직통계시자 37)전병도:팔영산기도원-자칭 다윗왕 38)김용화:나이야가라 기도원-하나님의 친아들 39)천수남:메시아. 구원자 40)우종만:한마음교회-선지자. 직통계시자. 41)김동열:그리스도님의 교회-자칭 하나님의 보내신 자 42)김제현:광야교회-세례요한 43)김정자:드보라. 예스더. 44)박동기:시온산 성일대국-재림주. 45)구원파 계열:(1)권신찬:기독교 복음 침례회 (2)이요한:대한 예수교 침례회 (3)박옥수:대한 예수교 침례회 등등.....이렇게 한국에는 가짜 예수가 많습니다. 이단들은 우리 영혼뿐만 아니라, 가정을 파괴하고 재산과 몸을 빼앗고 심지어 살인까지 주저치 않는 무서운 반사회적인 집단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교회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선포되는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축복중의 축복임을 알아아야 합니다.
2. 민족간의 전쟁입니다.
6절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라고 하였고, 7절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라고 했습니다. 1968년 두 명의 역사학자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3421년의 인류 문명사 중에 전쟁이 없었던 때는 286년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류는 92%의 시간을 전쟁을 하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가 가까워 오면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많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근세에 일어난 내전들을 보면, 중국 내전(국공), 그리스 내전, 스페인 내전, 그루지야 내전, 러시아 내전, 유고슬라비아 내전, 수단 내전, 소말리아 내전, 차드 내전, 아프리카 내전, 콩고 내전, 콜롬비아 내전, 아프카니스탄 내전, 남북한 내전, 인도 내전, 파키스탄 내전, 스리랑카 내전, 코스보 내전, 보스니아 내전, 리비야 내전, 시리아 내전 등등 끝도 없습니다. 캄보디아만 하더라도 같은 민족끼리 권력투쟁으로 인하여 전인구의 3/1인 3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 100일 동안에 80만 명의 투투족과 온건파 후투족들이 살해되었습니다. 전쟁의 원인은 단순히 정치적인 주도권이었습니다. 르완다의 한 대학 교실들을 방문한 기자의 말에 의하면, 18개 교실이 해골로 가득 찼는데 그들의 숫자는 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들은 군인들에 의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이 서로 이웃끼리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 간의 전쟁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왔다는 징조이며 싸인인 것입니다.
3. 기근과 지진입니다.
7절에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국제기아대책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에서는 1분에 20명이(이중 18명이 어린이입니다)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1시간에 1,400명, 하루에 3만 5천 명, 1년에 1천 300만 명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에 굶어죽은 사람만 해도 무려 지난 150년에 걸쳐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전쟁과 유혈투쟁, 유혈혁명으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지진은 어떠합니까? 2001년 인도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2만여 명이 죽었고, 2003년에는 이란 남부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3만 여명이 죽었으며, 2004년에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30만여 명이 죽었고, 2005년에는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86.000여 명이 죽었으며, 2008년에는 중국 쓰촨 성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87.000여 명이 죽었고, 2010년에는 아이티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20만여 명이 죽었으며, 2011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25.000여 명이 죽었습니다. 2011년 미국 지질 조사 소에서 발표한 규모 5.0이상의 세계 지진은 총 2,376회로, 연평균 1,601회 보다 훨씬 더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2012년 9월까지 규모 2.0 이상의 국내지진 발생 횟수는 총 52회, 규모 3.0 이상의 지진 8회가 발생하였다고 하며, 이는 지진발생 연평균 횟수인 43.6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 사람들이 미움에 빠지고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10절에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고”라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미움 때문에 사랑이 식어집니다. 친척 사이에도 미움 때문에 사랑이 식어집니다. 친구 사이에도 미움 때문에 사랑 식어집니다. 12절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랑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불법이 얼마나 성한가는 말할 필요도 없는 줄 압니다. 불법이 성하다는 것은 한 마디로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과거에는 울타리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안장치를 해두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갈수록 무정하고 무자비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불법한 행실은 베드로후서에 의하면, 음란한 행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대는 한 마디로 음란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복음의 세계적 전파입니다.
14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세계적 전파야말로 가장 확실한 말세의 징조인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 역사의 종말은 복음의 온 세상 전파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 복음화가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우리는 이 시대가 마지막 시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2만 4천여 개의 종족 중, 1989년에는 복음을 받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 11.000이었는데, 2001년에는 8000여 종족, 2004년에는 6000여 종족, 2006년에는 3600여 종족, 그리고 2008년에는 3300여 종족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세의 징조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인간의 심리를 불안하게 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깨닫고, 우리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복음 전도자요 찬송가 작시자로 살았던 호나티우스 보나르는, 아침에 해가 뜨면 창문을 열면서 “주여, 이 아침에 오시겠습니까?” 밤에는 창문을 닫으며 “주여, 이 밤에 오시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사모하며 경건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언제 세상의 종말이 오고,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실지라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지금 인생을 최고로 잘 살고 있는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잘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다시 오실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세의 징조
마태복음 24:1~14
마태복음 24장을 강해 설교 하려고 하면서, 먼저 그 동안 제가 생각해왔던 몇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초의 성만찬 식을 제정하면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에 성만찬 식을 제정하시면서 성찬의 떡과 잔을 통하여, 자신의 죽음과 구속의 진리를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깨우쳐주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동안 마태복음 24장을 강해 설교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려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말세인데,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을 통하여 그 말세에 나타날 현상과 징조를 분명하게 예언해주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상고하는 중에 저 자신과 성도들이 말세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하기를 바라서였습니다. 따라서 제가 일구월심 꿈에도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교회의 부흥인데, 그러나 과연 지금이 수적인 성장에만 매달릴 때인가? 자기 성찰을 해 보았을 때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지금이 말세지말이고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면, 내가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언제 세상의 종말이 오고,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실지라도, 그 종말을 맞이할 준비를 잘 시키는 것이, 목사인 제가 내게 맡겨주신 양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말세라는 말은 세상의 종말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역사관을 가리켜 직선사관이라고 합니다. 곧 역사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관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불교의 순환사관입니다. 순환사관이란 역사를 시계와 같이 계속해서 순환하고 반복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공자도 역사를 돌고 도는 순환사관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바벨론 사람들은 역사를 3600년 만에 한 번씩 돌고 도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 역시 순환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관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색깔의 안경을 끼고 보는가에 따라서 사물의 색상이 바뀌는 것 같이,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유신론적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적 역사관을 갖고 사는 사람, 그리고 우주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연으로 보는 우연사관을 갖고 사는 사람의 생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직선사관이라고 했고, 이 직선사관이란 곧 역사는 시작이 있었는가 하면 반드시 끝이 있고 종말이 있다는 것을 믿는 역사관을 말합니다. 전 3:1-2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을 때가 있고, 곡식은 심을 때가 있으면, 또한 뽑고 거두어들일 때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직선사관을 다른 말로 종말사관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보는 종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지 2천년이 넘었고, 그래서 지금은 말세지말이라고도 하는데, 곧 말세 중에서도 끝자락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말세라는 것은 기독교에서만이 아니라, 불신 세상 사람들까지도 이 시대를 가리켜 ‘말세다 말세야!’ ‘말세야 말세!”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요? 국어사전에 보면 말세란 “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말세야 말세!’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택시 중에 가짜가 택시가 있습니다. 물론 외관은 비슷한데 택시를 타면 묘한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오징어 냄새 같기도 하고, 비린내와도 같은 냄새가 나는데, 문고리 열면 움푹 팬 곳에 젖은 휴지 아니면 면 같은 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져보며 무슨 냄새인가 코를 갖다 대면 바로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클로로폼 같은 마취제를 적셔서 승객이 냄새 맡는 것을 기다렸다가, 정신을 잃으면 장기를 적출해 팔아버리는 악독한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요? 이 시대가 얼마나 무섭게 타락한 시대인지 이 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예언하신 말세의 현상과 징조들은 어떠한 것들일까요?
먼저 본문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세 번에 걸쳐서 지어졌습니다. 맨 처음은 BC 959년에 다윗이 준비했다가 솔로몬에 의해 건축된 솔로몬 성전이며, 두 번째는 BC 520년 바사왕 고레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중건하라는 칙령을 내려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된 스룹바벨 성전이고, 세 번째는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BC 20년부터 개축을 시작하여 AD 64년에 준공한 것입니다. 이 성전은 거대하고 웅장한 대리석으로 건축되었고, 성전 주위에는 솔로몬 행각과 왕의 행각들이 있었으며, 기둥의 높이는 약 11미터, 둘레는 세 사람 정도가 팔을 벌려야 안길 만큼의 큰 것으로, 웅대하고 아름다움과 위용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여기에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밖으로 나가시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가 두 개나 나옵니다. 하나는 ‘나와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실 때’입니다. 이 중 하나만 있어도 의미전달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태가 이처럼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를 두 번이나 쓴 것은, 그만큼 성전을 떠나시는 예수님을 모습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 때 성전에서 나오신 후, 두 번 다시 성전을 방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나오신 직후에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구체적으로 예언하심으로써, 그 곳이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장소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암시하셨습니다. 실제 동물 제사가 드려지던 성전은, 희생 제물이 예표하는 그 실체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대속의 제물로 드려짐으로,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 예수님께서 떠나가 버리신 성전은, 아무리 크고 웅장해도 소용이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전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임재하시지 않고 떠나가 버리신다면,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는데,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몸이 아무리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위용을 자랑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예언은 헤롯 성전이 준공된 지 6년만인 A. D 70년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크고 웅장했던 성전이 과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는 완전한 훼파가 가능할까? 건물 뼈대만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아심을 우리는 갖게 됩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가 되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성전을 지을 때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성전 벽의 돌과 돌 사이에 황금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것을 안 예루살렘 점령군들은 이 금을 빼가기 위해, 단 하나의 돌도 그대로 두지 않고 모두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아름다움이나 위대함은 그것이 내적인 아름다움을 갖추지 못했을 때, 이처럼 참담한 화를 부르는 근거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형식이 아니라 진실한 내용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예언과 그 성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척하는 자는 개인이든 국가든, 어느 때이든지 반드시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죄는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얼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의 철저한 파멸 예고를 들은 제자들은 주님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께서는 맨 먼저 “너희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예고하신 말세의 징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출현할 것이다.
5절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고 하였고, 11절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2천년 기독교 역사가운데 이단이 없었던 때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독교 역사가 아주 짧음에도 불구하고, 가히 이단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한국에만도 지칭 가짜 재림 예수가 수십 명이나 됩니다. 여기 그 자칭 재림 예수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황국주:삼각산 기도원-자칭 메시아. 재림 예수 2)박태선:전도관-천부교. 하나님 3)조희성:영생교-하나님. 재림주 4)이현석:광주 삼성재단-재림주 5)이영수:한국 기독교 에덴수도원-재림주 6)유재열:대한 기독교 장막성전-어린양. 재림주. 신천지 이만희가 몸담았던 장막성전의 창설자 7)홍종표:증거장막 성전-보혜사 8)최충일:하나님의 장막-재림주 9)구인회:천국복음전도관-재림주 10)김풍일:실로 등대중앙교회-재림주. 보혜사. 11)이만희:신천지 증거장막-보혜사 12)김순란:한국 중앙교회-재림주 13)천옥친:대한 기독교 전도관-재림주 14)제정령열:신성 기도원-재림주 15)장영실:백마십자군-천사장 16)최규원:천사 마귀교-주의 종.천사 17)엄명숙:명인 교회-재림주. 아버지 18)문선명:통일교-참 하나님.메시아. 참 아버지 19)정명석:애천교회-메시아(감옥) 20)진성회:생령회-참 메시아 21)김정순:대한 예수교 복음교회-직통계시자 22)원경수:천국 중앙교회-직통 계시자 23)김바울:강북제일교회-직통계시자 24)이천성:한국 중앙교회-직통계시자 25)임순옥:중앙 예루살렘교회-직통계시자 26)윈인종:예루살렘교회-직통계시자 27)김성복:일월산 기도원-직통계시자 28)김은혜:영복기도원-직통계시자 29)최조영:기독교 대한 수도원-직통계시자 30)김기업:혜성교회-직통계시자 31)김민석:에덴 기도원-심판주. 하나님. 민석대왕 32)박명호:엘리야 복음선교회-엘리야 33)안상홍:안상홍 하나님의 교회-하나님. 보혜사 34)이유성:여호와 새일 교회-재림주 35)양도천:세계일가공회-직통계시자. 정도령적 사명자 36)한정애:시해선교회-직통계시자 37)전병도:팔영산기도원-자칭 다윗왕 38)김용화:나이야가라 기도원-하나님의 친아들 39)천수남:메시아. 구원자 40)우종만:한마음교회-선지자. 직통계시자. 41)김동열:그리스도님의 교회-자칭 하나님의 보내신 자 42)김제현:광야교회-세례요한 43)김정자:드보라. 예스더. 44)박동기:시온산 성일대국-재림주. 45)구원파 계열:(1)권신찬:기독교 복음 침례회 (2)이요한:대한 예수교 침례회 (3)박옥수:대한 예수교 침례회 등등.....이렇게 한국에는 가짜 예수가 많습니다. 이단들은 우리 영혼뿐만 아니라, 가정을 파괴하고 재산과 몸을 빼앗고 심지어 살인까지 주저치 않는 무서운 반사회적인 집단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교회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선포되는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축복중의 축복임을 알아아야 합니다.
2. 민족간의 전쟁입니다.
6절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라고 하였고, 7절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라고 했습니다. 1968년 두 명의 역사학자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3421년의 인류 문명사 중에 전쟁이 없었던 때는 286년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류는 92%의 시간을 전쟁을 하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가 가까워 오면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많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근세에 일어난 내전들을 보면, 중국 내전(국공), 그리스 내전, 스페인 내전, 그루지야 내전, 러시아 내전, 유고슬라비아 내전, 수단 내전, 소말리아 내전, 차드 내전, 아프리카 내전, 콩고 내전, 콜롬비아 내전, 아프카니스탄 내전, 남북한 내전, 인도 내전, 파키스탄 내전, 스리랑카 내전, 코스보 내전, 보스니아 내전, 리비야 내전, 시리아 내전 등등 끝도 없습니다. 캄보디아만 하더라도 같은 민족끼리 권력투쟁으로 인하여 전인구의 3/1인 3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 100일 동안에 80만 명의 투투족과 온건파 후투족들이 살해되었습니다. 전쟁의 원인은 단순히 정치적인 주도권이었습니다. 르완다의 한 대학 교실들을 방문한 기자의 말에 의하면, 18개 교실이 해골로 가득 찼는데 그들의 숫자는 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들은 군인들에 의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이 서로 이웃끼리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 간의 전쟁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왔다는 징조이며 싸인인 것입니다.
3. 기근과 지진입니다.
7절에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국제기아대책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에서는 1분에 20명이(이중 18명이 어린이입니다)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1시간에 1,400명, 하루에 3만 5천 명, 1년에 1천 300만 명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에 굶어죽은 사람만 해도 무려 지난 150년에 걸쳐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전쟁과 유혈투쟁, 유혈혁명으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지진은 어떠합니까? 2001년 인도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2만여 명이 죽었고, 2003년에는 이란 남부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3만 여명이 죽었으며, 2004년에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30만여 명이 죽었고, 2005년에는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86.000여 명이 죽었으며, 2008년에는 중국 쓰촨 성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87.000여 명이 죽었고, 2010년에는 아이티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20만여 명이 죽었으며, 2011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25.000여 명이 죽었습니다. 2011년 미국 지질 조사 소에서 발표한 규모 5.0이상의 세계 지진은 총 2,376회로, 연평균 1,601회 보다 훨씬 더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2012년 9월까지 규모 2.0 이상의 국내지진 발생 횟수는 총 52회, 규모 3.0 이상의 지진 8회가 발생하였다고 하며, 이는 지진발생 연평균 횟수인 43.6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 사람들이 미움에 빠지고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10절에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고”라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미움 때문에 사랑이 식어집니다. 친척 사이에도 미움 때문에 사랑이 식어집니다. 친구 사이에도 미움 때문에 사랑 식어집니다. 12절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랑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불법이 얼마나 성한가는 말할 필요도 없는 줄 압니다. 불법이 성하다는 것은 한 마디로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과거에는 울타리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안장치를 해두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갈수록 무정하고 무자비해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불법한 행실은 베드로후서에 의하면, 음란한 행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대는 한 마디로 음란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복음의 세계적 전파입니다.
14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세계적 전파야말로 가장 확실한 말세의 징조인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 역사의 종말은 복음의 온 세상 전파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 복음화가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우리는 이 시대가 마지막 시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2만 4천여 개의 종족 중, 1989년에는 복음을 받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 11.000이었는데, 2001년에는 8000여 종족, 2004년에는 6000여 종족, 2006년에는 3600여 종족, 그리고 2008년에는 3300여 종족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세의 징조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인간의 심리를 불안하게 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깨닫고, 우리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복음 전도자요 찬송가 작시자로 살았던 호나티우스 보나르는, 아침에 해가 뜨면 창문을 열면서 “주여, 이 아침에 오시겠습니까?” 밤에는 창문을 닫으며 “주여, 이 밤에 오시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사모하며 경건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언제 세상의 종말이 오고,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실지라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지금 인생을 최고로 잘 살고 있는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잘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다시 오실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마 24:14 / 이정선 목사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 중의 하나는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입니다. 세례요한도 그랬고, 예수님도 맨 처음에 선포하신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였습니다. 마태는 천국(Kingdom of Heav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복음서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대치할 수 있는 하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은 너무나 거룩해서 함부로 입에 올리기를 꺼려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천국(Kingdom of Heaven)이라는 단어가 37회 사용되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을 위하여 복음서를 기록한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라는 단어를 37회 사용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도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가 몇 차례 나오기는 합니다만, 누가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기록한 것들이 마태복음에서는 모두 천국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그 하나님이 계시는 곳, 즉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의 상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의 Kingdom of Heaven과 누가의 Kingdom of God은 동일한 개념입니다. 마태나 누가나 그냥 kingdom이라고만 표현한 적도 몇 차례씩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모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에 오신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눅 4:43).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구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눅 12:29, 31).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우선적으로 기도해야 할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나라가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Your kingdom come)...’(마 6:9-10).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먼저 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천국이라는 개념에 익숙합니다. 우리에게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곳 정도로 쉽게 정의가 됩니다. 그러나 이 정의는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도 천국의 개념을 온전하게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라가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죽은 다음에 들어가는 천국이 여기에 임하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국가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영토와 국민과 주권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할 때는 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 한 가지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로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여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시 103:19).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만물이 그에게 속하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한 귀퉁이에서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반란국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그들로부터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는커녕 하나님을 대적하는 다른 나라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 반란국이 바로 사탄의 왕국입니다. 바울은 사탄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하셨고, 제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곳에 임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예배할 줄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릴 수 있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거짓된 신을 섬기던 사람들이 참 신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분께 영광 돌리며 예배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사탄의 왕국이 물러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땅 따먹기 놀이를 많이 했었습니다. 마당에 금을 그어놓고 서로 땅을 넓혀가는 놀이인데, 내 땅이 늘어나는 만큼 상대방의 땅은 줄어듭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에 사탄의 나라는 물러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정복하고 다스리던 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십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귀신이 쫓겨나가고 사탄의 왕국이 물러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큰 능력으로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에는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탄의 지배와 권세를 깨뜨리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회복하시는 때가 언제일까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 제자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 유대인의 세계관에서는 Kingdom of Israel과 Kingdom of God이 거의 동의어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오셨으니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구약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에게 심판을 내리시면서 하나님의 평강과 권능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크고 위대한 여호와의 날, 즉 메시야가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오시는 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눅 8:10)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비밀(mystery)이라는 것은 감추어져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감추어진 것을 하나님이 열어서 보여주시는 것을 계시(revelation)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계시는 점층적입니다. 한꺼번에 다 열어서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점점 더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비밀이 더 많이 감추어져 있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계시가 더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셨지만, 구약시대에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평강과 권능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의 계시가 아직 분명하지 못해서 오해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분명해진 계시는 메시야가 두 번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과 함께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습니다. 메시야께서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열방의 백성들을 악한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통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긴장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지막 때가 이르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메시야의 재림 때 하나님의 나라는 공개적으로 온 세상이 보는 가운데 임하여 이 땅의 모든 죄와 악을 깨끗하게 씻어낼 것입니다. 구약의 관점에서 기대했던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는 오늘날 이미 시작된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아직 사탄의 왕국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싸움입니다. 비록 그 싸움에서 우리는 부상을 입고 괴로움을 당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승리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이 싸움은 우리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동안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천국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을 설치하셨는데, 바로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전파의 완수와 예수님의 재림을 연결시켜 말씀하십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면 그때가 바로 세상의 끝이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시기는 어떤 면에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의 복음화를 완수하는 날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뒤로 하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2천 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당시의 신자들은 금방 오실 줄 알았던 예수님이 빨리 오시지 않자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혼란에 빠졌던 것은 이 말씀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모든 민족에게 증언될 만큼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상태는 복음 전파의 사명이 완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주님이 오시지 않았으니까요. 복음화의 개념에 대하여 완전히 통일된 의견이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선교학자들이 동의하는 수준은 한 민족 집단 안에서 자기들이 스스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복음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아직 복음화되지 못한 민족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가 속한 사회를 배반하는 것이 되고 그래서 거기서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도 많습니다. 아예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금지된 곳도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복음화의 완수라는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복음의 문이 닫힌 곳 때문에 절망하기보다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는 곳에 가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문이 열려 있는데도 아직 복음화되지 못한 곳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곳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열어 주실 것입니다. 문화혁명으로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던 중국이 저렇게 열리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성경책을 몰래 가지고 들어가다가 들키면 밀수꾼으로 체포되어야 했던 동구권의 나라들이 지금은 아무런 제약 없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의 지혜와 능력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북한의 문도 열어주시고 이슬람권도 문이 열리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문을 열어 주시면 어디든지 들어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그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교회가 이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할 때,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현대에 들어와 이 선교사역이 대단히 활기를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에 이룬 선교사역의 성과는 그 이전 1900년 동안 이룬 것보다 훨씬 큰 것이었습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선교지를 훨씬 가깝게 만들었고, 각종 기술의 발달도 선교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문자가 없는 종족을 위하여 문자를 만들고 성경을 번역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더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성경번역의 속도도 훨씬 빨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주님이 오시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어찌 선교하는 일에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우리 한국을 들어 쓰셔서 선교에 앞장서게 하신 것을 봅니다. 현재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복되고 영광스러운 선교사역을 위하여 우리 교회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더욱 헌신하고 충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종말에 되어질 일들
마 24:12-14 / 김남수 목사
이 세상은 악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죄가 더욱 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 복음이 불붙듯이 전해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젠킨스’라는 사람이 쓴 책에 보면 기독교의 중심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기독교는 중동에서 시작된 종교입니다. 그 후에 유럽 북쪽으로 건너갔고, 그리고 아메리카와 또한 다른 많은 나라에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기독교의 중심이 라틴 아메리카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아프리카 남쪽과 아시아 남쪽으로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역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를 건너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마지막까지 견디는 자들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원문의 뜻을 보면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는 자만이 복음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말세에는 두 가지 현상을 볼 것인데 하나는 많은 열정과 믿음을 가졌던 자들의 믿음이 식어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타협 또는 비겁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볼 때에 융통성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늘 아래 오직 구원을 주실만한 이름이 ‘예수의 이름’ 하나뿐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볼 때 우리가 가장 융통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에 대해 단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소유한 자에게는 생명이 있으려니와 하나님의 아들을 받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생명이 없다고 말입니다. 나는 전 세계에 다니면서 이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오직 한 길이 있고 한 진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는 이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깨어지기 쉬운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 보면 적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예수를 대적하는 수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다가 식어서 예수를 떠난 사람들은 자기가 식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적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예수 믿는 사람을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식지 마십시다, 믿음이 식지 마십시다’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다.
‘제발 믿음이 식지 마십시오’ 정말로 저에게 관심을 가져다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이 믿음이 식는다면 그가 믿음이 식으므로 말미암아 적그리스도의 자리에 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서서 굳건하고, 강건하게 온전히 살기 원하는 자는, 남자가 되던지 여자가 되던지 하나님의 강한 군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식지 마십시다’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다. 그러나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하게 살기 원하는 자는, 남자가 되던지 여자가 되던지 하나님의 강한 군대가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는지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면 오늘날이 마치 노아의 세대와 같습니다. 많은 징조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앞에 닥쳐올 일에 대하여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과 달리 깨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과 같이 이 패역한 세상 속에서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앞장서고 계십니다.(사28:21)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일들을 계획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들어서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저기서 자신의 일군들을 찾고 계십니다.
많은 무슬림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때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꿈 속에 그들의 비전 속에 그들의 삶 속에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하셔서 그들의 삶을 만져주심으로 예수를 믿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의 교회에서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분명히 아십시오. 전 세계는 결코 단 한 나라도 문이 닫혀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패스포드나 비자가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결코 입국 절차를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은 전 세계의 모든 민족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가 우리들에게 땅을 준비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씨앗을 뿌리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세에는 곧 추수할 때가 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이 마지막 때에 추수하는데 앞장설 수 있는 일군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 멘.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 홍문수 목사
최근에 미얀마에서 사이클론이 발생해서 전 세계가 놀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연이어 중국 쓰촨성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또다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생겼습니다. 수만으로 시작된 신문 보도가 시간이 갈수록 수십만, 수백만 이런 식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몇 년 전 동남이 일대를 휩쓸었던 쓰나미로 전 세계가 경악했는데, 이런 대재앙이 갈수록 빈번하게 심하게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뿐 아니라 최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들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국제 곡물 가격 급상승, 국제 유가 급상승, AI 조류 독감, 광우병, ...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가 닥칠 것이고, 그로 인해서 전쟁도 일어날 수 있다, ... 이런 등등의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튀어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말세야, 말세!” 그렇습니다! 정말 말세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불안에 떨며 살아야 될까요? 아니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려니 하고 체념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도 저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때일수록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과연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성경은 개인 인생의 매뉴얼일 뿐 아니라, 세계 인류 역사의 지침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말세를 사는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가다듬고 이 어려운 시대에 가장 복되고 존귀한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종말이 임박한 시대 : 말세지말
먼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들을 정리해 보면 좋겠습니다. 말세, 종말, 말세지말, ... 이런 말들을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조금씩 의미가 다릅니다. 이 용어들 중에서 ‘말세지말’이란 말이 오늘 이 시대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말세라는 말을 살펴보면, 말세(末世)는 예수님의 탄생(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Period)을 가리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세 하면 세상이 곧 끝나는 때를 가리키는 말로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1세기에도 말세, 지금도 말세라고 계속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세계 인류 역사가 마지막을 고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 시점(Point)을 종말(終末)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종말을 가리켜 헬라어 알파벳 마지막 글자(ω)를 사용해서 ‘오메가 포인트’(ω Poin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말세지말(末世之末)이란 말은 무엇입니까? 말세 기간 중에서 종말이 아주 임박한 시기(Terminal Age)를 가리킵니다. 오늘 이 시대가 바로 말세지말인 것입니다.
[2] 말세지말의 징조 : 각종 징조의 가속화, 세계복음화
말세지말의 시기에는 말세의 징조가 점점 심각하게, 가속화되어 나타납니다. 이런 내용이 바로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보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말세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래서 흔히 마태복음 24장을 가리켜 말세훈(末世訓) 혹은 소계시록(小啓示錄)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을 때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세에 관해 예언하셨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세는 종말까지의 ‘긴 기간’입니다. 그 사이에 일어날 일들을 언급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내용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예언의 복합성’이라 부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이 기간 중에 일어날 여러 사건들에 대한 예언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의 훼파(주후 70년 성취)가 있을 것임을 먼저 언급하십니다. 정말 주후 70년에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로마 군인들에 의해 짓밟히고, 내부의 혼란도 발생하면서 기근과 학살로 무려 100만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예언은 이것만 포함한 게 아닙니다. 그 후 종말 이전까지 유사한 사건들이 계속 발생할 것을 언급합니다. 실제로 과거 2천년 역사를 보면 무수한 재앙들이 일어났습니다. 난리와 전쟁, 기근과 지진 등 ... 이게 바로 말세의 징조들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을 언급합니다.
그래서 말세의 징조들이 발생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곧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종말이 닥치겠구나 ... ”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재림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아, 재림이 없나? 종말이 없나?” 그렇지 않죠. 그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해 보면 예루살렘 멸망은 그 시초에 불과합니다. 갈수록 말세의 징조들이 가속화됩니다.
① 각종 징조의 가속화 :
말세의 각종들이 마태복음 24장에 열거되어 있는데, 어떤 것들입니까? 전쟁과 난리, 기근과 지진, 인간성 파괴, 종교의 혼돈, 천체의 변동과 기상 이변 등입니다.
마24:7~8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전쟁과 난리입니다. 각종 재앙들입니다.
마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인간성의 파괴입니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마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마24:23~24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종교의 혼돈 즉 영적인 혼란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특히 말세지말에는 성경적인 바른 교회를 만나 신앙생활 하는 게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이단의 세력에 미혹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우주천체가 흔들립니다. 시간 이변이 생깁니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가 여실히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현상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후 1세기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징조의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그 빈도가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최근에 그 강도가 극도로 심화되고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현상을 음악 용어로 설명한다면 ‘크레센도’(crescendo)를 생각하면 됩니다. 점점 세게 나타나다가 언젠가 불현듯 예수님의 재림이 이뤄지고 인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② 종말과 세계복음화 :
그런데 종말이 임박했다는 가장 결정적인 징조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세계 복음화입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가 복음 전파는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선교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상에 2만 4천 종족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 복음이 미치지 못한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은 선교학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이제 7천~6천 종족 이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도시화 현상과 정보화 현상으로 문자 그대로 지구촌(Global Village)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세계 복음화는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이 시대는 말세지말이요, 종말이 임박한 때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면에서 종말이 임박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위에 언급한 인류역사적인 종말도 중요하지만, 개인적 종말도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죽음으로 닥쳐옵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는 정말 임박한 종말인 것입니다. 젊다고 건강하다고 설마 하고 방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종말이든, 개인적 종말이든 그 임박성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말세지말을 사는 성도의 자세 : 종말론적 신앙
이런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마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예수 그리스도)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말세의 징조들이 하나하나 이뤄지고 점점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종말이 임박한 줄을 감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종말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가리켜 흔히 ‘종말론적 신앙’ 부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들갑떨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단들이 대개 그렇죠. 어떤 이단들은 재림의 연월일시(年月日時)까지 정해놓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자기들이 계시를 받았다며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마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런데도 재림의 연월일시를 주장하는 자들을 가리켜 시한부 종말론(時限附終末論)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재림의 정확한 연월일시는 모르고 다만 임박함을 예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재림을 예측하는 시계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시침(時針)과 분침(分針)입니다. 시침은 세계복음화 진천 상황입니다.(마24:14) 그리고 분침은 마지막 이스라엘의 회심입니다.(롬11:25~27)
만일 재림의 정확한 일시를 알려주면 인간의 본성 상 아마 당일치기로 신앙생활을 할 겁니다. 그 전날까지 진탕 놀다가 마지막에 잘 하는 척 할 겁니다. 그런 본성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지 않는 겁니다. 말하자면 항상 잘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종말을 의식하는 가장 지혜로운 모습은 항상 깨어 있는 ‘건강한 긴장감’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재림할지 모르니까, 개인의 종말이 언제일지 모르니까 항상 깨어 있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언제 주님을 만나도 당당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겁니다.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게 바로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구체적으로 영적으로 깨어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세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 성결의 생활, 복음의 전파 등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언제 예수님이 오셔도, 부르심을 받아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확신하십니까? 그러면 아무 염려 없습니다. 언제 주님이 부르셔도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정결한 신부로 자신을 살피며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약혼한 신부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잘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전도(동일문화권 복음전파)요 선교(타문화권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마24:45~46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이 말씀대로 부지런히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다 주님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자세로 복음 전파와 세계 선교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성도를 가리켜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 그러 교회를 가리켜 ‘세계를 품은 교회’(World Chuch)라고 부릅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성도가 선교지로 나가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각각 부르시는 대로 가든지 보내든지(Go or Send) 하면 됩니다. ‘가는 선교사’(Going Missionary) 혹은 ‘보내는 선교사’(Sending Missionary)가 되면 됩니다. 물론 보내는 선교사를 정식 선교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선교의 사명에 동일한 책임을 갖고 동참한다는 점에서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이제 오늘부터 4일간 <제17회 신반포 선교축제>가 있습니다. 매년 주제가 다릅니다. 선교에 관해 공부하고 재인식하는 좋은 기회입니다. 여러분, 이번 주제가 무엇이죠? ‘제2의 벤처 인생, 전문인 선교’입니다.
요즘 시니어 세대들은 은퇴한 후에도 젊고 유능합니다. 그래서 최근 시니어 선교(Senior Mission)가 자주 강조되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있어요. SM5, SM6, SM7 ... 자동차 모델명은 아니고, 어느 선교신학자가 명명한 것으로 연령대별 시니어 선교사를 가리킵니다. 50대에 시니어 선교사로 헌신하는 분을 SM5, 60대에 헌신하는 분을 SM6, 그리고 70대에 헌신하는 분을 SM7이라 부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 청년들이 1년, 2년, 혹은 장기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시니어들도 이미 그랬습니다. 의료 사역, 교수 사역으로 몇 년씩 다녀오신 분이 계시고, 한 달씩 선교지에 가서 자작 교회당을 건축하고 오신 분도 계십니다. 선교지에서 사업을 하면서 선교 사역에 크게 기여하는 분도 계십니다. 앞으로 우리 가운데서도 주님이 부르시면 응답함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동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군대 안 가도 세금을 내고 기타 국민의 의무를 감당해야 되는 것처럼, 보내는 선교의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면 됩니다. 선교에는 면제는 없습니다! 다만 자기 스스로 기피할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내는 선교 사명은 어떤 것들일까요? 편.물.기.(편지, 물질, 기도)입니다.
이런 것들이 직접 선교지에 나가 사역하는 분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선교사들이 현지에 있다 보면 외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그때 보내주는 편지 한통, 이메일 한 통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물질을 드리면 그것들이 모아져 선교지에 보내질 때 성경책이 되고 전도지가 되도 자동차가 되고 기름이 되고 교회당이 되고 병원이 됩니다. 그동안 많은 성도들이 선교를 위한 헌금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의 귀한 헌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90세가 넘은 최고령 권사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분은 이따금 거액의 선교헌금을 하십니다. 한번은 제가 여쭈었습니다. “권사님, 어르신이 무슨 돈이 있다고 계속 헌금을 하세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이랬습니다. “언제 천국 갈지 모르는데 하나님 나라 확장 위해 부지런히 해야죠. 세계 역사를 보면 선교 많이 한 나라들이 모두 강대국이 됐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죠!”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또 이런 식으로도 선교에 동참할 수 있을 겁니다. ‘영파선교회’(靈波宣敎會) 이야기입니다. 故 박용묵 목사님(대길교회) 후손들이 선교에 동참하다 주변의 지인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선교회로 발전한 것입니다. 국내외 선교 활동을 하는데, 특별히 오늘 파송식을 하는 로수길, 변상이 선교사님 사역하시는 인도 캘커타에 매년 설날 연휴에 의료 선교를 갑니다. 이런 가문이 정말 크리스천 명문가입니다.
이런 경우가 힘들다고 생각하면 교회를 통해서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 선교사 한 분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선교 후원하는 전통이 이어지면 얼마나 멋집니까?
우리가 선교에 헌신하면 결코 손해 보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을 하는데 어찌 잘못 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보증하십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장충교회 장근조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산돌하우스’라는 선교사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초등부 부장 시절 선교사님을 영접하러 김포공항(인천공항 생기기 전) 근처에 갔습니다. 선교사님이 전날 귀국해서 싸구려 여인숙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모기에 물려서 눈이 붓고, 밤새 잠을 못자서 피곤이 꽉 찼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지하 셋방 사는 처지여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날 밤 식구들끼리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에 건물을 그렸습니다. 강남에 7층 단독건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쓴 겁니다. 그로부터 3년간 매일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이뤄졌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교하는 성도와 개인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영광입니다. 한번 왔다 가는 인생, 짧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장차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천국의 스타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단12:3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성도 여러분! 종말이 가깝습니다. 우리 인생도 얼마 남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종말이 가까운 말세지말에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요?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고, 정결한 신부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그래서 주님 만나는 그날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기쁨과 자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말에 되어질 일들
마 24:12-14 / 김남수 목사
이 세상은 악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죄가 더욱 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 복음이 불붙듯이 전해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젠킨스’라는 사람이 쓴 책에 보면 기독교의 중심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기독교는 중동에서 시작된 종교입니다. 그 후에 유럽 북쪽으로 건너갔고, 그리고 아메리카와 또한 다른 많은 나라에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기독교의 중심이 라틴 아메리카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아프리카 남쪽과 아시아 남쪽으로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역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를 건너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마지막까지 견디는 자들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원문의 뜻을 보면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는 자만이 복음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말세에는 두 가지 현상을 볼 것인데 하나는 많은 열정과 믿음을 가졌던 자들의 믿음이 식어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타협 또는 비겁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볼 때에 융통성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늘 아래 오직 구원을 주실만한 이름이 ‘예수의 이름’ 하나뿐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볼 때 우리가 가장 융통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에 대해 단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소유한 자에게는 생명이 있으려니와 하나님의 아들을 받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생명이 없다고 말입니다. 나는 전 세계에 다니면서 이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오직 한 길이 있고 한 진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는 이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깨어지기 쉬운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 보면 적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예수를 대적하는 수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다가 식어서 예수를 떠난 사람들은 자기가 식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적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예수 믿는 사람을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식지 마십시다, 믿음이 식지 마십시다’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다.
‘제발 믿음이 식지 마십시오’ 정말로 저에게 관심을 가져다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이 믿음이 식는다면 그가 믿음이 식으므로 말미암아 적그리스도의 자리에 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서서 굳건하고, 강건하게 온전히 살기 원하는 자는, 남자가 되던지 여자가 되던지 하나님의 강한 군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식지 마십시다’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다. 그러나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하게 살기 원하는 자는, 남자가 되던지 여자가 되던지 하나님의 강한 군대가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는지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면 오늘날이 마치 노아의 세대와 같습니다. 많은 징조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앞에 닥쳐올 일에 대하여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과 달리 깨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과 같이 이 패역한 세상 속에서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앞장서고 계십니다.(사28:21)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일들을 계획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들어서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저기서 자신의 일군들을 찾고 계십니다.
많은 무슬림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때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꿈 속에 그들의 비전 속에 그들의 삶 속에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하셔서 그들의 삶을 만져주심으로 예수를 믿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의 교회에서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분명히 아십시오. 전 세계는 결코 단 한 나라도 문이 닫혀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패스포드나 비자가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결코 입국 절차를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은 전 세계의 모든 민족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가 우리들에게 땅을 준비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씨앗을 뿌리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세에는 곧 추수할 때가 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이 마지막 때에 추수하는데 앞장설 수 있는 일군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 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
마 24:14 / 정필도 목사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목회를 하다보면, 헌신된 일꾼 한 사람이 헌신되지 않은 천명보다 더 큰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교인의 숫자가 천 명이 되어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절절매는 교회가 있는 반면에, 교인의 숫자는 작아도 헌신된 사람이 하나 있음으로 해서 그보다 더 큰일을 넉넉히 감당해내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만큼 헌신된 일꾼은 귀한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임직하신 분들은 모두 다 헌신된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봉사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은 여러 성도들에게, “교사 좀 해주세요. 성가대 좀 해주세요. 구역장 좀 해주세요.”하고 여러가지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대체적으로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헌금하는 것과 전도와 선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의 물질을 드리고 생명을 바치는 것은 가장 값진 일인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백 배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은 처음에는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확신이 없어서 그런지 헌금이나 전도, 선교를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게 되면 달라집니다. 헌금하는 일이나 전도하는 일이나 선교하는 일들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먹을 것도 없었고 가난했는데, 어떻게 이 많은 헌금을 하게 되었는지 헌금을 하면서 헌금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전도하는 것도 매우 힘들어했는데, 전도 받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구원받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큰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주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일컬어 소위 “효자신자”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성도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효자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1. 세계 복음화는 반드시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 이사야 11:1-10절을 보면,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과 앞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謀略)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 말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할 것이며, 열방이 예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바냐 3:9절에서 [그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게하여 그들로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라고 했고, 스가랴 2:10-11절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그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1:15절을 보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며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2.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뿐만 아니라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가 된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합니다.
3.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며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예언된 말씀 그대로 세계복음화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사야 14:24절과 55:11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5:18절에서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했으며, 이사야 48:3절에서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 입에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과연 이 말씀 그대로 지금까지 다 이루어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1:3-4절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받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은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해 주신 복과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신 복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게 되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싶다고 구원받고, 구원받고 싶지 않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주시고,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도록 하여 주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이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16). 이처럼 구원은 인간적인 생각이나 지식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온지 10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인 약 1200만 명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여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많이 늘어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이 많기 때문이며,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도록 역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누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인지 다 아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도록 만드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아무리 도망다녀도 성령이 한번 역사하시면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9-1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에 주께서 밤에 환상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도 바울은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일년 육 개월을 고린도에 유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가르쳤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사는 부산에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얼마나 있는지 다 아십니다. 요한복음 6:44절을 보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서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고, 열방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며, 앞으로 이 세상 모든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결과를 이미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은 누구나 하나님을 믿게 되어 있습니다(행 13:48).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특별히 말씀하신 이유는?
① 우리의 신앙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을 하다보면 믿음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 일을 하다가 은혜를 받습니다. 솔로몬이 만약 자신에게 찾아오는 각국의 사절들에게 전도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면 일 천명의 여자들과 즐기며 술에 취하여 방탕할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은혜 받는 일에 열심을 내다보면 자연히 죄 지을 시간이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지막 때에는 신앙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우리의 신앙을 꾸준히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② 축복과 상급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복을 받고,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칭찬 듣고 면류관 상급 받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6-8절을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심은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이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를 목회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전도한다고 해서 다 믿는 것도 아니며, 또 목회를 잘한다고 해서 모두 다 신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진실로 예수님을 믿고 믿음이 자라나고 열매맺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심은 대로, 수고한 대로, 일한 대로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일의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모두 다 예수 믿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되지도 않을 일을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될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의 필요를 따라 지혜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능력도 주십니다. 문둥이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찾아와 문둥병을 고침받고자 할 때 나아만이 할 일은 순종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순종함으로 병든 몸이 깨끗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부어라”, “떠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옆에 있던 마리아는 일꾼들에게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일렀습니다. 일꾼들의 할 일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인들이 순종함으로 해서 잔칫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손님들에게 맛있는 포도주를 대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 28:19-20).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못할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주실 것이고, 물질이 없으면 물질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도 주시고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선교는 막연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되지도 않을 일에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결과를 알고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부족해도 선교는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세계 복음화는 반드시 이룩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령의 능력으로 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선교지로 직접 복음을 들고 나가든지, 선교사를 보내는 일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면 됩니다. 그리할 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게 자랄 것이며,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큰상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마 24:14 / 홍문수 목사
어느 선교사가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에 들어갔습니다. 마을 어귀에 마침 원주민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전하려고 말을 걸었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혹시 ‘예수’라는 이름 들어 보셨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예수? 우리 동네에는 그런 사람 없는데. 저쪽 동네에 가서 알아 보슈!” 이 이야기가 우스꽝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곳에는 교회가 많고 불신자도 예수님에 대해 들을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는 아직 예수 이름조차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이 무수히 많습니다. 몇 년 전 통계로 11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안 됐지만 나와 무슨 상관인데 ... ? 내가 특별히 뭘 할 수도 없잖아... ?”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상관이 있습니다. 또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무언가 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오늘 선교축제를 갖는 것입니다. 금년으로 9회를 맞이하는데 그동안 많은 성도들이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가든지 보내든지 선교에 헌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무관심한 사람도 많습니다. 혹 관심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교축제를 하면서 이런 소원이 있습니다. “아직 무관심한 분들의 심령이 열려서 신반포 교인이라면 누구나 선교에 동참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를!” 정말 이번에는 “우리는 모두다 선교사!”라는 표어가 우리 가슴이 와 닿고 생활의 지침이 되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선교는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러분, 선교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흔히 전도와 선교를 구분해서 말합니다. 전도는 동일 문화권 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선교는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로 말마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롬6:23),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려도 소용없습니다. 다 헛된 것입니다. 더욱이 지옥의 고통과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과 영생을 주시고자 예수님을 대속의 주님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누구든지 구속의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받는 규칙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어도 그 복음을 전해 듣지 못하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복음 전도가 없으면, 선교가 없으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야야기가 됩니다. 롬10:13~14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자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여러분, 이따금 TV에서 이런 장면 보시죠. 아프리카 등지에 못 먹고 병들어 기진맥진한 상태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 ! 그때 어떤 느낌을 가집니까? 너무 안스러워서 어떻게 돕고 싶은 생각이 들 겁니다. 당연하죠. 그런데 여러분, 더 비참한 것은 그 영혼이 복음을 듣지 못해서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육신이 죽더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천국에 소망이 있을텐데 ... 이게 더 중요한 일이죠. 그러므로 빵이나 약을 주는 것 이상으로 시급한 것은 복음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선교죠.
사실 우리 자신도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해 주었고, 그것을 듣고 믿음으로 먼저 구원받은 자들이 내게 복음을 전해 주어서 믿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렇죠? 따라서 이제 우리에게 복음 전도의 바통이 넘어온 것입니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만 받은 사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은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한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오늘날까지 구원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바로 우리를 통해 계속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2] 선교 역사는 세계 역사의 바로미터입니다.
본문 마24:14 보면 아주 중요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24:은 예수님께서 말세 징조를 설명하신 것으로 흔히 ‘小계시록’이라 부르는 말씀입니다. 세계 역사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여러 징조들이 나타납니다. 지진, 전쟁, 이단 출현, 인간성 타락 등 ... 그런데 이런 것들은 사실 2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있어 왔습니다. 다만 그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종말의 때를 대충 예상할 뿐입니다. 그런데 가장 대표적이고 확실한 징조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것은 세계 선교의 완수에 대한 예언입니다. 반드시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예언에는 부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교 역사가 세계 역사의 바로미터라고 말하는 겁니다. 말세에 별별 일이 다 일어나지만, 그래도 선교가 완수되지 않으면 예수님은 아직 재림하시지 않고, 세계 역사는 결코 종말을 고하지 않습니다. 선교 사명의 완수는 지구 구석 구석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특히 이스라엘에게 다시 전해져 회심할 때 이루어집니다.(롬11:25~27) 이 일이 성취되지 않아 2천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예수님이 아직 재림하지 않으신 겁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라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선교 역사를 회고해 보면 지난 2천년 중에 지난 20세기 동안, 특히 후반에 엄청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30배, 남미는 740배, 아시아는 그보다 덜하지만 그대로 놀라울 정도입니다. 우리 한국은 1세기 동안 국미의 20%가 예수 믿게 되었고, 중국 같은 나라는 공산 치하에서 반세기 동안 핍박을 받았지만 지금 1억 이상의 신자가 생겼습니다. 또 전 세계에 24,000 종족이 있는데, 수년 전까지 12,000 종족이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이라고 했는데 최근에는 8,000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7천개 언어 중 성경 번역이 안된 게 수년전만 해도 3,500개였는데 최근에는 2,500개로 줄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급격한 도시화, 인터넷 등 통신망의 확대 등으로 예상하건대 곧 끝납니다. 금세기 안에 ...? 글쎄요. 어쨌든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흔히 세계 역사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비근한 예로 구 소련이나 동유럽 등 공산권이 무너진 것 보십시오. 정치인들은 예측도 못했습니다. 또 그후 가장 확실하게 이루어진 분야가 무엇입니까? 선교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를 선교 중심으로 이끄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앞으로 세계 역사 가운데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나 분명한 것은 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3]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를 통해 구원을 받았고, 또 세계 역사가 선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또 분명히 천국이 있을진대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될까? 그 대답이 자명하지 않습니까? 선교가 세계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처럼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선교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이 용어는 선교사요 선교학자인 허버트 케인이 사용하였는데, 사실은 성경에 나오는 개념을 이 용어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무슨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까? 마28:18~20 복음 전파, 선교 명령입니다. 가장 중요한 명령이어서 ‘위대한 명령’혹은 ‘지상 명령’(Great Commission)이라 부릅니다. 이 명령을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사도들에게만? 아닙니다. 모여 있던 모든 성도들에게 ... 그리고 후대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선교 사명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그 소수’에 꼭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 월드 크리스천이고, 진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단지 믿고 천국 가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남기신 사역을 함께 감당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4]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삽니다.
월드 크리스천은 이제 삶 속에서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① 온 세상의 영혼에 관심을 가짐 : 월드 크리스천은 무엇보다 영혼에 관심을 둡니다. 세상 사람을 바라볼 때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물질이나 외적인 조건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혹은 무시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형제들은 사랑하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불쌍히 여깁니다. 그래서 어찌하든 복음 전하려고 합니다. 우선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에게 전도합니다. 그런 자세가 있을 때 멀리 가서 전도하지 못해도 어떤 방법으로든 선교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종류의 땅끝 선교를 해야 됩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협조해야 됩니다. 동시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지구는 둥그니까 땅끝이죠?)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흔히 비행기 타고 가서 선교하는 것만 좋아하는데 선교의 기본은 옆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옆으로 다가온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② 선교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함 :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그 가운데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이에 저항하는 사단의 세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일을 기대해야 됩니다. 특히 좋은 것은 기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직접 선교사로 가지는 못해도 여기서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선교 사역 자체’입니다. 선교사나 선교지의 영혼들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도는 모든 장벽을 넘어 역사할 수 있습니다. 여권도 비자도 필요없습니다. 문화나 음식, 기후 등의 적응 문제도 없습니다. 시차 문제도 없이 리얼 타임으로 역사합니다.
③ 선교를 위해 시간과 물질 등을 드림 : 시간을 내서 선교사와 소식을 나눌 수 있습니다. 선교사에게 보내는 한통의 전화나 편지(요즘은 이메일)는 큰 힘
이 됩니다. 선교사들은 수퍼맨이 아닙니다. 온갖 어려움 가운데 영적으로 육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럴 때 후원 교회 성도들이 보내는 격려는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그리고 물질을 드림으로써 선교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사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많이만 하라는 게 아닙니다. 조금 절약해서 한달에 일이 만원이나 일이십 만원이라도 드리면 선교 사역의 동력이 됩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적은 것으로 위대한 일에 동참할 수 있다니!
예> 감비아 이재환 선교사님의 간증 - ‘잊을 수 없는 권사님’ 몇 년 전 소천해서 너무 아쉬운 분 ... 재미 교포인데 가난해서 손이 부르트며 깡통 등 재활용품을 수집해서 돈을 마련 ... 10불, 20불씩 편지와 함께 보내곤 했다고 ... 시간 시간 기도하고 ... 선교사 못지 않는 ‘보내는 선교사’입니다. 이런 배후의 헌신이 현지의 귀한 선교 사역의 밑거름이 되는 겁니다.
④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 : 혹 우리 중에 하나님의 구체적인 부르심이 있으면 젊을 때든 아니면 은퇴 후든, 수시로든 선교 현지로 갈 수도 있습니다.
예> WEC 김 장로님(50대 후반) - 치과 의사 - 정리하고 선교사 지원 - 평소에도 교회와 선교 단체에서 헌신, 선교사가 방문하면 제일 좋은 방에 모시고, ... 그러다 떄가 되니까 부르심을 받아 집도 게스트 하우스로 내놓고 선교사로 지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5]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에게 바치고 남에게 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은 본인에게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갑니다.
① 건강한 생활 : 선교를 생각하고 동참하는 사람은 영육 간에 건강해집니다. 기도합니다. 물질을 드리다 보면 검소해집니다. 세속적인 데 한 눈 팔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죠. 요즘 우리 사회가 풍요해지고 여유로와지니까 오히려 얼마나 세속화되어 갑니까? 정력을 쏟을 고상한 목적을 못 찾으니까 엉뚱한 데로 분출되어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 불신자만 그런 게 아닙니다. 월드 크리스천이 안되면 세속적인 그리스도인(worldly Christian)이 됩니다. 가장 고상한 선교에 목적 삼고 살아 우리 모두 건강해집시다.
② 하나님이 보장하는 보험 : 20세기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가 보험이죠. 유익합니다. 그런데 완전하지 못합니다 자동차 보험은 사고 나야 타고, 생명 보험은 죽어야 탑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과 헌신은 살아도 죽어도 보장받습니다.(빌4:19, 계14:13)
③ 천국에서 확실하게 뜸 : 세상에서 사람들이 떠 보겠다고 얼마나 야단입니까? 뜨기도 힘들지만, 떠 봤자 잠깐입니다. 별 게 아닙니다. 그러나 선교에 헌신하는 영원히 하늘에서 빛납니다.(단12:3) 여러분, 천국에서 확실히 뜨고 싶습니까? 선교에 동참하십시오. 직접 가지는 못해도 보내고 후원하는 사명을 감당하면 동일한 영광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마10:42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줘도 상을 받는데 ...)
성도 여러분! 선교는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다 하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운 이때에, 또 우리의 남은 생애가 그리 길지 않은데 우리가 과연 무엇에 우리의 인생을 걸겠습니까? 세상의 헛되고 헛된 것에 모든 것 다 바쳐 버리고 나중에 후회하지 마십시오. 오직 가든지 보내든지 위대한 사명에 동참해서 영원히 감사하며 승리하는 인생을 가꾸어 가십시오!
온 세상에 전파될 복음
이 52:7-8, 마 24:9-14 / 이성희 목사
한국인은 세계화에 으뜸가는 민족입니다. 21세기의 세계 공용어는 200개국어가 섞여 있는 미국영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국인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많이 만들어낸 언어의 귀재들이 많습니다. 와이셔츠, 핸들, 커닝(cheating), 오토바이, 핸드폰, 클락션(horn), 원룸, 오피스텔, 셀카, 셀카봉, 디카, 몰카, 개그맨(comedian), 파이팅 등이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입니다.
한국인은 세계화 시대에 가장 적합한 민족이라고 합니다. 피부는 모든 나라에 다 맞게 되어 있고, 음식은 못 먹는 게 없고, 입은 세계 모든 발음을 조금만 열심히 연습하면 다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Pax Koreana’(한국의 평화) 시대라고 합니다. 세계화는 복음의 사명입니다. 복음은 세계화 되어야 하고, 세계화에 적합한 민족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흩어놓으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세운 탑이 ‘바벨’이었는데 “온 지면에 흩으셨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족장들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은 다 고향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온 세상으로 떠나서 산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바벨론 포로는 성경시대 전환기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계화의 시동을 건 것입니다. 유대민족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신관이 바뀐 것입니다.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이 이제는 온 세계에 편만해 계시는 하나님으로 바뀝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집니다. 그들만 보던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세계어인 헬라어로 번역하여 모든 사람이 다 읽게 한 것입니다. 넷째는 고레스 칙령으로 귀환할 될 때에 귀환자와 남은 자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잘 했습니다. 유대인만의 복음이었던 성경, 메시야관, 하나님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흩어놓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만드신 온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흩어져 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세상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꽉 차기를 기대하십니다.
호켄다이크의 ‘흩어지는 교회’(The Church Inside Out)라는 책이 있습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가 있는데 흩어지는 교회가 더 중요합니다. 모여서 함께 말씀으로 힘을 얻고 교제하고 흩어져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inside’ 보다 더 중요한 것이 ‘out’입니다.
복음은 세계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물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사도행전 1:8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세계화 시대에 가장 유리한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복음전파입니다. 선교입니다. 국경이 없는 시대에 복음은 어디든지 못 들어가는 데가 없습니다. 아직도 이슬람권이나 북한 등지에는 복음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지만 복음은 들어갑니다. 특히 한국 여권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는 데가 없습니다. 그만큼 한국인은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은 바울이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예수님의 영이 막으셔서 드로아로 간 다음 지금까지 서쪽으로 진행합니다. 유럽이 먼저 복음을 받고, 아메리카로 건너가고, 다시 바다를 건너 아시아로 들어와서 한국에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한참 복음이 힘 있게 진행할 때는 금방 온 세계가 그리스도인으로 넘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여러 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막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매10년마다 교인수가 배가 되었습니다. 30년 후쯤이면 한국은 그리스도인으로 교회가 꽉 찰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회가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쇠퇴한다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개신교의 희망 지역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입니다. 이 두 지역이 세계에서 복음이 가장 활발하게 전파되고 있는 곳입니다. 이 두 지역은 복음에 대한 열정과 신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 전파될 복음은 끊임없이 우리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어야 가능합니다. 온 세상에 전파될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이 일에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첫째,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14 상반절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라고 합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천국복음이라고 합니까? 복음은 천국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그 자체가 복음입니다. 천국은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왜 모든 민족이라고 합니까? 천국에는 민족적인 예외가 없습니다. 혈통과 민족을 초월한 천국복음의 포괄적 성격을 보여 줍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목격한 자들을 보세요. 유대인 서민인 목자뿐만 아니라 이방인 상류층인 동방박사들이 탄생을 목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복음의 포괄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칭찬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왔던 헬라인 수로보니게 족속인 여인과,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왔던 이방인인 가버나움의 백부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에게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칭찬의 대상이었습니다.
율법과 복음은 상반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제한적이며 유대인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스라엘 나라만이 관심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무제한적이며, 모든 나라와 민족이 대상이며 관심입니다.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의 장면을 보면 더 확실하게 복음의 세계적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9-11에는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던 사람들이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구레네, 리비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인이라고 합니다. 당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에 소외된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또 다른 성령강림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이중 환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율법에 금지된 더러운 짐승들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먹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이 강림하고, 이방전도의 문이 열린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과 성령이 유대인의 독점물이 아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율법시대의 종말이 오고 복음시대가 시작되었음이 성령강림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4에는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합니다. 복음은 차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내립니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인종차별이 보이지 않게 심각합니다. 미국에서는 흑인과 그 외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은근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이제 많이 완화되었지만 ‘백호주의’라는 이념이 최근까지도 있었습니다. 유럽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은 공식 국가명이 ‘미합중국’입니다. 합중국이 되기 위하여 별의 별 정책을 다 써봤습니다. ‘용광로 정책’, ‘샐러드바 정책’ 그리고 최근에는 ‘무지개 정책’까지 내 놓았지만 그러나 지난 300여 년간 백인들이 있는 자 중심의 보수정치를 했습니다. 흔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미국을 다스려온 것입니다. 흑인인 오바마대통령 이후에도 근본이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은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극에 달하는 시간은 일요일 오전 11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마저 이런 인종차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이 ‘모든 민족’이라고 하지만 기독교 국가의 교회는 ‘내 민족’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약점이며 한계입니다.
시편 67:5에는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모든 민족들이 복음으로 주님을 알고 주님을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의 바램입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이 많이 있습니다. ‘미전도 종족’이란 자신의 종족 집단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토착적 교회공동체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총인구 200명 이상 중 기독교인이 3% 미만인 경우를 미전도 종족으로 분류합니다. 전 세계 16,074종족 중 미전도 종족 수는 6,758개라고 합니다. 그 중 80%는 북아프리카에서 동아시아 이르는 지역에 넓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인구의 40%가 미전도 종족이라는 말입니다. 흔히 선교학에서 ‘10-40 창’(10-40 Window)이라고 하는 북위 10도에서 40도 사이에 미전도 종족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박국 2:14에는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온 세계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영광 돌리게 하도록 복음 전파에 앞장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면 끝이 옵니다.
마태복음 24:14 하반절에는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합니다. “전파되리니”는 말은 복음이 반드시 온 세상에 전파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말입니다. 언젠가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
“온 세상”이란 문자적으로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이란 뜻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된 후에 종말이 올 것입니다. 이런 종말적인 사상은 오랜 동안 사도들이 계승한 사상 중의 하나입니다.
‘온 세상’이란 좀 더 포괄적 광의적 의미로 사용되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지역, 전 세계 모든 곳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모든 곳에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계에는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런 곳까지라도 복음이 다 닿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시편 72:8에는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를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므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복음이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 신상을 보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꾸고 자신이 꾼 꿈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꿈을 다니엘이 알려주고 해석해 줍니다. 그가 꾼 꿈은 이렇습니다. 왕이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며,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며, 종아리는 쇠이며, 발은 얼마는 쇠이며 얼마는 흙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상 위에 한 돌이 있어서 신상을 쳐서 부서뜨렸습니다. 이 꿈이 말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바벨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메데바사에게 망하게 됩니다. 메데바사도 망할 것 같지 않은 나라였지만 헬라에 망하고, 헬라도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지만 로마에 망하고, 로마는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 위에 한 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돌은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역사를 깨트리시고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에 가득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곧 주위 사람들 그 불에 몸 녹이듯이”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복음은 아주 작은 불꽃같지만 점점 크게 피어올라 큰 불이 되어 온 세상에 비취게 되고, 뜨겁게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인에게 전해진 복음은 서진을 계속하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시간의 끝이 옵니다. 복음은 돌고 돌아 온 세계 구석구석에 전해질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Jews for Christ’(그리스도를 위한 유대인)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단체입니다. 유대인으로 목사가 된 사람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저도 그런 분을 여러 사람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까지 복음을 받아 온 세상에 전해지게 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사도행전 1:8을 다시 보세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을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일러 주셨습니다.
복음의 특성은 물과 같습니다. 쉬지 않고 흐르고, 구석까지 침투하고, 낮은 곳으로 흐르고, 굽은 곳은 굽이치며 흐릅니다. 물은 못 들어가는 곳이 없습니다. 복음도 이와 같이 쉬지 않고, 구석구석에, 낮고 천한 자를 향하여 쉼 없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리빙스턴은 선교사로 뿐만 아니라 탐험가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곳곳을 누비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복음과 함께 많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가 탐험하여 발견한 것 가운데는 ‘나이아가라폭포’, ‘이과수폭포’와 더불어 세계 3대 폭포인 ‘빅토리아폭포’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무리들이 땅을 탐험하고 새로운 땅을 개척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토마스목사님이 한국 땅까지 와서 순교하였겠습니까? 어떻게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국 땅까지 와서 복음을 심었겠습니까? 어떻게 게일목사님이 어두운 땅 한국까지 와서 우리교회를 섬겼겠습니까? 당시에 그들에게 땅 끝은 한국입니다. 지금의 땅 끝은 어디이겠습니까? 한국의 반쪽, 북한입니다. 땅 끝은 지리적인 개념도 있지만 가장 가기 힘든 곳이 땅 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빛으로 볼 때에 가기 힘든 곳이지 못 가는 곳은 이 지구상에는 없습니다.
런던선교회가 파송한 로버트 모리슨에게 중국은 땅 끝입니다. 윌리엄 케리에게 인도는 땅 끝입니다. 스탠리 존스에게도 인도는 땅 끝입니다. 짐 엘리엇에게 에콰도르는 땅 끝입니다. 그 외에 수많은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는 약 40만 명의 해외 선교사들, 우리나라가 파송한 2만6천명의 선교사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사역지가 땅 끝입니다.
로마서 15:28에는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고 합니다. 당시 세계에서는 서바나(스페인)가 땅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당시에는 스페인이 끝이고 바다 끝에 가면 물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에 편지를 보내면서 바울은 문자적 땅 끝까지 꼭 가겠다고 하는 복음의 열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생장 피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를 ‘야고보의 길’이라고 하여 순례자의 길이 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많은 순례자가 찾고 있습니다. 800km에 달하는 이 여정을 한 달 혹은 40일에 걸쳐 걷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연금술사’를 쓴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걷고 ‘순례자’라는 소설을 써서 유명해졌습니다. 땅 끝까지 걸어 순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순례의 뜻이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결론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한 존 웨슬리는 온 세계를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땅이라고 보아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1739년 3월 20일 ‘웨슬리 저널’에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다른 사람들의 교구에서 전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상 이것은 내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어디에 속해 있든, 나는 내 판단으로 만나고 옳은 길을 결정합니다. 나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해야 하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나의 사역입니다.” 웨슬리는 매일 96km를 말을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일주일에 평균 15회 설교를 했고, 해마다 8,000km를 여행하며 전도했습니다. 88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만km, 4만 회가 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빈민구제, 병자 위문, 감옥 방문 전도 등 쉬지 않는 복음의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설교 도중에 폭도의 습격과 돌팔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격한 폭도들까지 웨슬리의 기도와 설교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여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성경은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 후에 끝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전파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계속되어야 하는 복음입니다. 제2, 제3의 바울, 웨슬리, 윌리엄 케리, 토마스, 게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제2, 제3의 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통하여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온 세상이 복음으로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