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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 7. 28. 토요일.
오전에는 흐리더니만 오후 6시부터는 세찬 비가 쏟아졌다가 30분이 지난 뒤에는 비가 가늘어졌고 19 :00에는 완전히 그쳤다.
지나가는 비, 소낙비.
잠깐만의 빗줄기인데도 연일 지속되던 더위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100년 만의 폭염이라는 뉴스로 마음까지도 더운 요즘이다.
오늘 인터넷 뉴스이다.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에서는 농민들이 애호박을 딴 뒤 산지(산지)에서 농기계로 깔아뭉개는 사진이 떴다.
올해 날씨가 더워서 호박농사가 아주 잘 되어서 과잉생산되었다. 화천군 애호박 농사는 전국생산 70%. 올해에는 350 농가가 210ha(1ha 3,000평)에 6천 톤 생산.
올 7월23 ~25일 경매낙찰가가 8kg 1상자당 1,000 ~4,000원평균 2,833원.
최저생산비와 이윤을 감안하면 5,000원 이상이어야 한다며, 농자재값, 인건비도 안 나온다면서 농민들이 집단항로 애써 기른 애호박을 폐기처분하는 사진들이 올랐다. 보여주기의 사진이다.
서해안 시골에 주소지를 두었고, 농업경영인으로 등록한 나는 건달농사꾼이라서 그럴까? 이런 기사를 보면 답답해 한다.
올해 날씨가 무더워서 애호박이 훨씬 잘 되어서 대풍작한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일까?
이와는 반대로 여름채소인 강원도 고냉지 배추는 무더워서 잎사귀부터 마르는 무름병이 돌아서 작황이 부진했기에 채소값이 급등했다고 뉴스에 나왔다.
엄청나게 넓은 채소밭에서 배추가 누렇게 타 죽은 사진도 곁들였다.
배추밭에 누렇게 말라죽은 배추가 엄청나게 많은 사실에 왜 네티즌이 비난하는 투로 댓글 달았지? 배추농사를 폐농했다는데도?
사진 속의 배추는 배추밭에 있는 배추가 아니고, 밭에서 뽑아낸 배추 사진이었기에.
농사꾼은 무름병로 망쳐버린 배추를 뽑아내서 두둑 아래로 내버릴 터. 이것을 사진 보도했는데 이게 사실을 오도했다. 사실과 다른 증거이었기에...
폭염으로 채소값이 급등했다면서 '한국농산식품공사에서 자료를 제시했다.
배추 1포기 4,000원에서 6,000원으로
무 1개 1,800원에서 3,000원으로
시금치 1kg 7,700원에서 12,4480원으로
상추 100g 1,100원에서 1,700원으로 대폭 올랐다고.
폭염으로 채소값이 폭등해서 정부는 고랭지 무, 토마토, 배추 등 비축물량을 방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뉴스는 서민가계에 주름살이 짙어지는 채소값은 9월 초까지 비쌀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런데도 애호박은 대풍이라서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다면서 현지 농민들이 집단으로 애호박을 농기계중장비로 깔아뭉개고 있었다.
무, 배추 등은 흉작으로 도시 소비자들이 죽을 지경이고, 애호박은 풍작으로 농민들이 죽을 지경이다.
날씨가 무덥다는 사실은 하나인데 이를 받아들이는 도시소비자와 농사꾼의 입장은 완전히 반대이다.
나는 농사꾼이지만 요즘 서울에 와서 머물고, 아내는 재래시장에서 채소, 여름과일 등을 사서 먹는 도시 소비자이다. 도시소비자는 식자재가 비싸도 걱정, 지나치게 싸도 걱정이다.
어제의 일이다.
아내는 복날이라면서 닭탕을 사 왔다. 곁들어서 딸려온 깍두기.
'요즘 무 값이 무척이나 비싸대요. 그런데도 삼계탕집에서는 깍두기를 넉넉히 주대요. 고마웠지요.'
병아리 수준을 겨우 면한 애숭이 닭으로 끓인 닭탕을 싫어하는 나는 닭은 안 먹고는 깍뚜기만을 집어서 먹었다.
'배추, 무 값이 비싸도 다 한 때여. 다른 것으로 먹으면 되겠지. 조금만 더 지나면 가을이 오기에 그때에는 배추 무 농사가 잘 되어서 시장에 많이 나오겠지. 무, 배추가 없으면 다른 채소로 바꿔 먹으면 되지 뭐.'
하고 말했다.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의 애호박를 재배하는 농사꾼이 애써 지은 애호박을 따다가 한 곳에 트럭으로 붓고는 중장비로 깔아뭉개면서 시위한 사진들이 눈에 자꾸만 거슬린다. 그 싸다는 애호박도 아껴서 먹어야 하는 빈민층도 많은데도 풍년 든 애포박이 가격이 폭락했다고 이를 깔아뭉개고, 흉년이 든 무, 배추는 가격이 급등했다고 물량 걱정이나 하는 세상인심이 무척이나 그렇다.
2018년 현재 전국의 농사꾼은 몇 명쯤일까? 해마다 줄어든다고 해도 260만 명 이쪽 저쪽일 게다. 남한인구 5,100만 명 가운데 농사꾼이 260만 명쯤이라면 아직도 무척이나 많다는 뜻이다.
농사꾼은 많고, 생산물량은 많고, 소비하는 양은 한계가 있기에 자연현상에 따라서, 농작물 종류에 따라서 수급예상이 반대로 춤을 춘다.
풍년이면 가격 폭락으로 농사꾼이 싫어하고, 흉작이면 가격상승으로 농사꾼이 좋아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나타난다.
농사꾼이자 소비자인 내가 보는 시각은 현지 농사꾼과는 다소 다르다.
돈 되는 농작물 한 두 종류에 매달리지 말고, 서너 종류의 작물을 적정비율로 재배했으면 한다.
어떤 작물 재배가 실패하면 다른 작물는 성공할 터. 실패와 성공하는 작물을 합산하면 크게 손해 볼 것도 없고, 크게 이득이 날 것도 없이 늘 안정적으로 균형을 맞췄으면 한다.
즉 투기성 농작만을 집중재배하지 말고, 분산재배하여 위험을 분산시키자는 논리이다.
농사 잘 지어서 떼돈 벌 수도 없고, 농사 못 지어서 굶을 일이 없다는 균형논리를 펴고 싶다.
오늘도 아내는 작은딸이 입원한 산후조리원에 갔다.
아파트에서 국 없는 밥을 혼자 먹는 나.
냉장고와 냉동고 안에서 반찬을 꺼내다가 냉동고 안 깊숙히 쳐박힌 식재료를 보았다.
작년 이른 봄에 캐서 비닐봉지에 담아 둔 봄철쑥이 있었다. 지난해 여름철에 따 삶아서 냉동시킨 방울토마토도 보였다.
제철식재료가 아니더라도 조금씩 저장해 두면 농작물의 가격폭등에도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없다. 값이 비싸면 덜 먹고, 대신 값이 싼 식품을 먹으면 된다.
먹을거리를 파는 업체도 그랬으면 싶다. 무가 비싸면 깍두기를 조금 내놓고 대신 다른 반찬을 내놓으면 될 게다.
음식 찾는 손님도 없는 식품만을 고집해서 꼭 먹을 필요는 적다고 본다.
특히 가정에서 먹는다면 비싼 식재료를 덜 구입하고는 싼 식재료를 더 사서 먹으면 된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농작물의 수급사정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게다.
하나의 글감이다.
글감으로 남기고 이쯤에서...
2.
요즘 어떤 분이 카페 '삶의 이야기'방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잠적했다.
닉네임조차도 기억하기 이전에 바람차럼 사라졌다.
'삶의 이야기'방에 글 잘 올리는 분들이 요즘 보이지 않고는 대신 잡스러운 글들이나 판을 친다는 우려였다.
잡글 올리면서 카페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카페에 유익한 분들 대신에 잡스러운 회원만 남아서 글 올리는가 싶었다. 그 가운데 나도 끼었을 터.
뭐라고 반박 댓글 달아야 하는데도 차마 달지 못하고는 주눅이 든 채 눈치를 살폈다.
그 회원이 지금껏 올린 글이 몇 개일까, 어떤 내용으로 글 올렸을까 하고 검색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글 올린 게 고작 서너 개인데도 어떻게 다른 회원의 글에 댓차게 쓴소리를 했는지 그 진의가 의문스러웠다.
어쩌다보니 그 글이 사라졌다.
카페를 걱정한다라기보다는 카페 분위기를 흐리는 내용이었기에 나도 걱정을 덜었다.
글쓰기 교육이 부족한 나로서는 잡글(생활글)이나 다다닥하기에.
또 회원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삶의 이야기가 훨씬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기에.
이제는 주눅이 덜 들어도 될 것 같다.
그 분은 뭐 그리 잘난 게 많을까, 뭐 그리 남을 가르치려고 할까?
하나의 사실을 지적하면 보다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를 예시해야 맞다.
네가 잘못이다라고 일방적으로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야 하는데도 그냥 무조건 '너 잘못했다'는 식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 요 며칠 전의 글은 그랬다.
구체성이 없이 무조건 글 정중하게 잘 쓰는 사람이 다 떠났고, 지금은 질이 낮은 글만 나돈다는 식이었다.
나는 일흔한 살이다. 배우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지만 때로는 내 의지와는 달리 비난투의 가르침에는 고개가 흔흔들어진다. 아직은 인격수양이 덜 된 탓으로 마음이 찝찝한 그 글이 사라졌기에 다행이다.
내 경험이다.
사이버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처음 체험한 때가 있었다.
직장생활은 1970년대 말에 시작했다.
당시 각 사무실에는 타자수(기능직 여직원)이 2명 정도 배치되었고, 국행정실에는 공타수 1명(타자기로 칠 수 없는 한자를 하나 하나씩 찍어서 조립하여 문서 작성)와 남자 챠트사가 여럿 있었다.
타자나 공타(활자 하나씩, 하나씩을 핀세트로 골라서 문장을 조립)로 작성한 공문서를 복사하거나 크게 확대하려면 엄청나게 큰 문서 기계에서 작업했다. 사무실 5평 쯤이나 차지할 엄청나게 큰 기계이다. 챠트사 두 사람이 서로 반대편에서 잡고는 모래채를 흔드는 것처럼 시꺼먼 가루가 쏟아지게끔 흔들어 묻혀서 문서를 크게 확대했다. 한 장씩, 한 장씩이다.
또 상급 직위자한테 보일 문서, 깔끔한 문서를 크게 확대해서 발송하려면 챠트사가 철필로, 때로는 붓글씨로 크게, 정성을 들여서 썼다.
컴퓨터를 처음 손 대기 시작한 때에는 아마도 1980년대 초일 것 같다.
사무실에 컴퓨터가 1대, 2대씩 보급되면서 타자기는 폐기처분하고, 공타수(여직원), 챠트사(남자직원)도 도태되었고, 그 육장한 기계(대형트럭으로 운반)도 철거되었다.
훗날 직원 각자한테도 컴퓨터가 한 대씩 보급되었다. 직원 간에 인터넷으로 문서를 전송하고, 개인 글도 슬쩍 써서 직장 내에서 통용되는 카페에 올리면 이게 전국으로 전송확산되기 시작했다.
어느날 민간 카페가 등장했다.
지금의 카페이다. 우리나라에 민간카페 숫자가 아마도 5,000만 개도 훨씬 더 넘을 터.
카페창설 초기에 비하여 대부분의 민간카페는 활동이 많이 중지되었고, 더러는 더욱 활성화되어서 회원 수가 몇 만 명을 헤아리는 카페도 있다. 그만큼 어떤 카페는 활동력이 강하다. 활동력이 강한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게다.
'사실과 증거'
이런 제목으로 글 다다닥하는데도 무척이나 꺼려진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기에.
'삶의 이야기' 방에는 정치, 종교, 성, 반론이 예상되는 내용은 자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100%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껏을 서로 자제하고 있다. 더러는 이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을 법한데도 카페운영진에서 조화롭게 조율해서 질서를 잡는다.
나는 이런 것이 좋다. 지나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살짝 언급하는 정도이기에...
하나의 예이다.
어떤 문학카페에 적을 두었는데 이 카페에는 사회현상을 언급하지 않고는 뜬구름이나 잡는 문학 만 올린다.
70, 80살이나 먹은 문인들이 '햇님, 별님, 달님'이나 찾는다.
딱딱한 공부만 했고, 딱딱한 생활을 했던 나한테는 6하원칙이 없는 글, 동화나 동요 수준의 문학글에는 고개를 흔든다. 구름 위 신선들이나 사는 세계이기에.
다행히도 우리 카페(아름다운 5060)에서는 이런 글은 거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사실과 증거'가 있는 글이 좋다. 삶이 있기에.
무엇이라고 주장했으면 그 주장이 맞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 증거 또한 옳다라는 또다른 증거/근거가 또 있어야 한다.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면 논리를 제시하고, 그 논리가 부족하면 궤변이라도 해야 할 터.
아무런 사실과 증거의 제시도 없고, 자기 말만 하는 꼬라지가 그렇다.
외국인의 경우, 지난 2017년 봄철 미 트럼프 대통령은 8월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질 것처럼 계속 말하며 겁을 주었다. 허위로 여겨지는 그의 주장을 국내외 언론사는 긴급뉴스로 과장하게, 꾸며서까지 보도했다. 결과는? 웃긴다. 모두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말장난의 장삿속이기에.
요즘 국방 어떤 조직체에 대한 정치인, 정치군인들의 변명을 보면 근거도 없는 말을 그냥 내뱉는 수준이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잡아떼는 꼬라지를 보면...
또, 어떤 국회의원은 자기가 한 말(어떤 사실을 부정) 때문에 스스로 생을 접었다.
과거에 한 말이 옭가미가 되어서...
무척이나 꺼끄러운 성정을 가진 나는 미움받는 짓이나 한다.
칭찬보다는 꼬집는 듯한 말투가 그렇다. 진실하게 말하는 게 미움을 받는 세상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차마 빙빙 돌려서 말하려니 주언부언하자니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겠다.
답답하고...
첫댓글 선배님. 항상이율배반적일때가 있잖아요
대풍이면 망하고 흉작이면 돈되고요
작물선택이 중요해요
근데 도시에서 뼈빠지게. 일하는 사람보다. 시골생활이 훨났습니다. 도시사람 불쌍합니다
예.
사실은 저도 무엇을 써야 하는지... 빙빙 돌리네요.
아율배반적이다 라는 문구가 딱 어울리네요.
저는 서울에서 1960년대 말부터 살았어도 달동네 생활은 모릅니다. 그냥 피상적으로 짐작할 뿐...
시골에서는 무엇인가를 꼼작거리면서 일할 수 있지요. 도시는요?
일전 어떤 (82살) 세 시간 주워서 폐지값 6,000원 번다고 하대요. 그게 크 돈이라고.
지존님은 예전 한강 마포근처의 난지도(섬마을)에서 자랐다고 하니 당시의 서민생활을 이해하겠군요.
지존님은 정말로 살아있는 이야기 많을 것 같아요. 국내, 해외에서의 경험담이...
댓글 고맙습니다.
@곰내 선배님 언제 만나서 차라도 마시면서 댜화를 해야겠어요
선배님은 어떤 자료든 관심이 많으시니 제가 그동안 살면서 경헝했던것들도. 알려드리고 싶어요
@지존. 위 글에서는아직 글 안 썼지만 지존님을 칭찬하려고 하지요.
사실(경험)이 엄청나게 많고, 그 사실이 맞다는 또다른 증거(체험, 국내외의 시각에서 비교)를 잔뜩 제시할 것이기에.
삶에서 건질 생생한 경험들.
넓은 시야에서 느끼는 또다른 감정들이 보다 설득력이 많을 겁니다.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의 말이 생각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지존님은 '세상은 넓고 할 말은 무진장하다'라고요.
예컨대 우리가 아는 피상적인 '난지도'보다도 더 구체적인 사실과 근거에 바탕을 둔 글을 쓰시대요. 댓글도 그렇고...
@곰내 선배님 그건 제가 그안에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그소설가나 리포트들은 제3자를 통해서 전해들으니 아무래도 직접옆애서 격는사람만큼이나 할까요
곰내님 연세가 71살이라고 하셨네요.
선배님이세요.
다양한 분야를 터치해서 덧글을 달기가
어렵지만 해박한 세상 물정 배우고 갑니다.
선배님께서는 직장을 비교적 늦게 다니신
느낌입니다. 1970년대말이라고 하시니.
저는 선배님보다 어리지만 직장은 1980년
부터(육군소위는 1978년이나 직업군인이
아니니 직장이라고 할 수는 없음)했답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혹시 댓글에 실수가 있었다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요.
예.
젊은날 학창시절에는 취직 생각하지 않았지요.
대학 강사쪽이나...
마음 접고는 다른 분야로 취직시험에 매달렸으니 사회생활 늦었지요.
요즘 철이 안 든 정치인들을 보면
제가 빙그레 웃는 그 밑바탕에는 아마 이런 저력이 담겨져 있겠지요.
댓글?
저도 이따금 본의 아니게 댓글 달기도 하지요.
본의는 그게 아닌데도 억지로 고집 피우듯이...
모두가 다 근본은 착할 겁니다. 생각차이, 견해차이, 살아온 배경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민주주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융합하는 것이지요.
거대한 배가 좌우로 기우뚱 기우뚱 하면서 앞으로(미래) 안전하게 나아가는 것이지요.
회원님들의 댓글로도 저는 많을 것을 배웁니다.
@곰내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냥 저 같이 콕 쏘세요 뭘
내가 글을 쓰는것은 내 속에 있는 내 생각 내얘기인데요
누가 뭐라하 면 어때요
뭐라고 하는 그인간 수준이지요
단지 하나 도의와 예만 벗어나지않음 돼지않나요
곰내님 글처럼 글이나 말이나 함부로는 절대로 안돼지요
즐건 주일 보내시고요 ㅎㅎ
아무런 내용도 없이 빙빙 에둘러 쓴 잡글인데도 댓글 달아주셨군요.
제목 하나만 쓸모 있지, 내용은 하나도 없어요.
도의와 예의를 벗어나지 말자는 가시장미님의 뜻.
잘 기억하겠습니다.
선비같은 꼿꼿함으로
교과서 같은 카페 활동을 하시니
댓글 달기도 신중해집니다.
댓글수에 연연하는 글쓰기는 쉽게
잊혀져 버리고 말지요
사실과 증거 -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주가
되는 삺방의글을 즐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