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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진번, 진국 그리고 삼한 - 삼한의 기원
귀거래사 추천 0 조회 1,000 11.05.25 15:48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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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5.26 09:52

    첫댓글 辰國의 출자와 언제 건국되어 멸망했는지는 기록이 참으로 부족하다.
    사서에는 우거(위만조선)가 깨지기 전에 역계경이 동쪽 辰國으로 도망쳤다고 하였으니, 위만조선의 대까지는 辰國이 존속했다고 볼 수 있다. 辰國은 남방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마한은 기자조선의 마지막왕인 기준이 남으로 도망쳐서 목지국에 도읍하여 세웠다고 하였다.
    문제는 다스린 곳이 辰國의 영토와 겹친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을 서로 다른 나라가 모두 다스렸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치더라도 양자간에는 복속의 관계는 있었을 것이다.

  • 11.05.26 09:51

    아마도 기준이 辰國을 깨뜨려 복속시키고 韓의 맹주를 자처하였을 것이다.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부여가 일어섰는데 부여가 辰國의 후손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즉 辰國의 후손들이 위만조선의 땅을 회복하고 부여를 세웠으나 다시 나라가 다시 분열되어 흩어지고 이를 다시 회복한 이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는 제왕연대력의 설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있다.
    제왕연대력에는 辰國의 적통이 신라라고 주장하며, 그 논리가 정연하지 못하다.
    아마도 고대에도 이러한 적통의 시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 11.05.26 10:13

    다시 생각해보면 辰國은 옛날 단군조선의 후예인 듯 하다.
    요임금시절 檀조선을 건국하고 후에 남방을 평정하여 震조선(辰國)으로 나라 이름을 고쳤는데, 후에 기자가 온 이후로 나라가 오그라들어 남방만을 다스렸을 것이다. 혹은 기자조선에 내속하여 있었을 것이다.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기준이 남쪽으로 도망하여 마한을 세우니 바꾸어 마한을 섬기게 되었다.
    위만조선이 멸망하자 옛 조선의 땅을 회복하고자 부여가 일어났다.
    논리가 정연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참고하는 사서마다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도무지 어디가 맞고 어디가 그른지 알 수 없는 한계가 있다.

  • 11.05.26 23:24

    진자는 여진도 있고 발해인 진국도 있습니다. 숙신의 신자와 연결될 수도 있어 조선 숙신의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신채호도 지적했듯이 조선과 숙신을 같이 보는 견해가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 11.05.28 06:58

    다음글은 요사지리지 기록입니다.최초의 진국과 진한은 개주에 있었습니다.후에 한에 밀려 요동반도의 남쪽으로 이동합니다.<진주(辰州) 봉국군(奉國軍)이 설치되었으며 절도를 두었다. 본래 고구려의 개모성(蓋牟城)이었다. 당나라 태종이 이세적(李世勣)과 만나 개모성을 공파한 곳이 바로 여기이다. 발해는 개주(蓋州)로 고쳤다가 다시 진주로 고쳤으니, 진한(辰韓)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정읍(井邑 ; 아홉집이 나누어 경작하는 토지)이 나란 줄지어 모여있다. 요나라가 조주(祖州)에서 백성을 옮겨왔다. 처음에는 장평군(長平軍)이라 하였는데, 호구수는 2,000이다. 동경유사사에 예속되었으며 관할하는 현은 건안현(建安縣) 하나이다.>

  • 작성자 11.05.28 09:42

    불사조님이 말씀하시는 진자(신자)는 처음 듣는 말이라... 요서지리지의 내용은 사기나 한서와 비슷하군요. 하여튼 원래의 조선의 영역, 위만조선의 강역 등이 불확실한 상태이므로 진번.진국의 위치도 不明이라고 하는 편이 옳은 것 같습니다. 낙랑군이 위만조선의 故地에 설치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지만 과연 그것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고요. 진번. 진국이 요동이나 만주방면에 있었을 가능성도 많다고 봅니다만 그럴 경우 한사군의 위치가 지금의 통설과 상당히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라고 봅니다.

  • 11.05.28 14:33

    숙신(肅愼), 여진(女眞), 발해의 옛이름인 진국(震國) , 또 辰은 신으로도 발음된다는 점에서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11.05.28 10:13

    진국을 辰國으로 쓰고 '辰'을 동쪽으로 해석한다면 상대적으로 진국의 서쪽에 고조선에 속한 나라가 있어야 할것입니다.그런데 개주지역의 서쪽은 요동만이라는 발해의 북쪽바다만이 있습니다.그 바다 서쪽으로는 요서군만이 보입니다.그렇다면 요동군은 어디로 간것입니까? 연나라가 치고 들어와 멈춘곳은 진번조선입니다.이것을 진번,조선으로 번역하는건 잘못된것입니다.당시 조선은 예맥.진번.낙랑조선으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따라서 진번조선은 요하의 동서에 분포되어 있었다고 보는것입니다.그런데 이 진번조선의 광령평원이 요동만으로 윤몰되었다고 주장하는것이지요. 따라서 제후국이었던 진국이 개주에 있었다는 설은 타당합니다.

  • 작성자 11.05.28 11:18

    그렇군요. 짧은 지식에 구산님의 말씀을 100%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실 진번조선이라는 번역이 옳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통설에서는 진번조선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것 같아서요. 구산님의 설명대로라면 한사군의 위치도 상당히 바뀌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준이 될 수 있는 單單大嶺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불확실하고요. 특히 진번군이 실제로 어디에 위치해있었는지가 저의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후한서> 郡國志에 거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만....여러가지 애매한 점도 있고.....

  • 작성자 11.05.28 21:59

    아하~ 진자, 신자의 자는 字로군요.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조선=쥬신인가요? 진번조선 또는 기자조선의 위치와 강역은 잘 모르겠지만 위만조선은 수천리의 땅이라고 했으니 숙신, 여진, 진국(발해국)이 포함되어있었을 수 있지요. 쥬신론도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환단고기는 위서라고는 하지만 만주지방에 남아있던 고기록이나 전승을 많이 참조했다고 봅니다. 또 요서 등의 기록에 대해서도 많은 검토가 이루어져 진번조선, 진국, 초기 한사군의 위치 등이 좀 더 분명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11.05.31 07:44

    정사에 위만이 준왕을 밀어내고 건국한 조선에 대한 <,사기>> 조선열전의 첫번째 기록에 대한 정의의 주석입니다.

    王之都王險城 滿得兵威財物 侵降其旁小邑 眞番,臨屯,皆來服屬 方數千里.
    왕지도왕험성 만득병위재물 침항기방소읍 진번,임둔,개래복속 방수천리

    [正義 括地志云 朝鮮高麗貊東沃沮五國之地 國東西千三百里 南北二千里
    정의 괄지지운 조선고려맥동옥저오국지지 국동서천삼백리 남북이천리

    在京師東 東至大海四百里 北至營州界九百二十里 南至新羅國六百里
    재경사동 동지대해사백리 북지영주계구백이십리 남지신라국육백리
    北至靺鞨國千四百里]
    북지말갈국천사백리

  • 11.05.31 08:11

    정의 괄지지에 따르면 조선.고려맥.동옥저등의 땅은 나라의 동서가 1300리이고 남북이 2000리라고 하였습니다.그런데 그 위치는 경사(낙양)동쪽으로 큰 바다에 이르러(산동반도 북부)400리라는 말입니다.이 뜻은 발해해협에 해당되는 지역을 말하는것입니다.북쪽으로는 영주계(營州界)까지 920리이고 남쪽으로는 600리 거리에 신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그리고 북쪽으로 1400리 거리에 말갈에 이른다고 합니다.여기서 같은 북쪽이지만 영주계는 서북쪽이고, 말갈은 동북을 의미합니다.이 글을 쓸 때가 당나라때 인 만큼 남쪽으로 600리 거리에 신라가 있다는 말은 서기 732년 이후 영해군사寧海軍使의 산동반도 동부지역 통치를 말하는듯 합니다.

  • 작성자 11.06.01 16:59

    구산님의 글, 늦게 보았네요. 그렇군요. 그런데 東至大海四百里란 조선고려맥동옥저의 동쪽 동해바다를 말하는 것 아닐까요? 東至는 낙양에서 사백리 동쪽이 아니라 조선고려맥동옥저의 중심에서 사백리 동쪽이란 뜻 아닐까요? 조선고려맥동옥저가 요동의 동쪽, 남만주한반도북부에 있고 그 서북쪽에 영주, 동북쪽에 말갈, 남쪽에 신라, 이렇게 보면 대충 앞뒤가 맞을 것 같은데요. 하여튼 저도 나름대로 재검토해보겠습니다.

  • 11.06.01 18:42

    경사에서 바다에 이르기 까지는 거리가 나와있지 않습니다.즉 동쪽으로 바다에이르러 4백리라는 뜻입니다.4백리의 바다안에 흩어져 있는 묘도군도를 말한것이지요.지금은 잘 이해하시기가 어려우시겠지만 앞으로 많은 사서를 통해서 왜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를 이해하시게 될것입니다.우거가 지키던 고조선이 한 무제에게 무너질 무렵 그 위치를두고 위에 설명드린 영역은 발해해협에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설명이 따르게 됩니다.위만조선시대 생겨난 한이나 삼한역시 한나라 세력에 쫓겨 요동반도의 동남쪽으로 분산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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