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상징, 에펠탑(La tour Eiffel)
1889년 빠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위해 완성된 철제탑
이것을 설계하고 건축한 교량기술자 A.G. 에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에피소드 1. 모파상과 에펠탑
건설초기에는 빠리의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프랑스 지식인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는 320m 높이의 철제탑
그 때 에펠탑의 건립을 반대한 지식인들 가운데
유명한 단편소설 "목걸이"의 작가 모파상도 있었다.
에펠탑과 모파상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에펠탑이 완성된 후, 에펠탑의 레스토랑에 와서
날마다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시던 모파상을 보고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흉물이라고 에펠탑 건립을 반대했는데, 지금은 왜 여기 계시지요?
'빠리 어딜 가나 그 괴물이 보이지 않는 않는 곳이 없는데
이 안에서 유일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생전에 에펠탑을 죽어라 싫어한 모파상,
빠리의 몽소공원에는 예술가들의 동상이 곳곳에 있는데
모파상의 동상은 에펠탑에 등을 돌리고 서있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비지에는 이 에펠탑을 두고
'직감과 과학과 신념의 결실이자 용기와 인태의 딸'
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에피소드 2. 에펠탑 효과
암튼 건립초기에는 건립반대운동이 거세더니 20년이 지나서는
에펠탑 해체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러나 탑꼭대기에 설치된 전파송출장치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아
120년의 세월을 견디며 프랑스 빠리의 상징물로서
전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고풍스런 빠리의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인식되었던 철근구조물의 에펠탑...
300미터가 넘는 크기 탓에 빠리시민들은 어디에 있든
항상 에펠탑을 보고 살아야했다.
좋든 싫든 날마다 에펠탑과 함께 한 빠리 시민들...
점차 그 괴물이 어느덧 친근해져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의 상징으로,
관광명소 1순위로 우뚝 자리를 잡아버렸다.
이렇듯 단순히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점차 정이 들고 친근감이 드는 걸
단순 노출효과 또는 에펠탑효과라고 부른다고 한다.
에펠은 1700여장의 설계도면을 그리고 3700여장에 이르는 부분 도면도 그렸다.
덕분에 한치의 오차도 없는 단단한 철제 구조물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첫댓글 아이러니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겠죠? 흉물 덩어리가 보물 덩어리가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