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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잠만자고출근
나는 스무 해 전 이 섬에서 태어났다.
어미는 동생을 사산하고 죽었고, 아비는 젊은 나이부터 *매병이 와서 사람 구실을 못 한다.
(*매병: 치매)
올해도 아비 앞으로 역(役)이 내려왔다.
역은 나라에서 시키는 잡다한 일들이었는데 별다른 대가 없이 주어진 일을 해야만 하는 성가신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비 대신 역을 가야 했다.
이 작은 섬에 사또라는 놈들도 다 한심하기 그지없어서 내가 계집의 몸으로 역을 지든 말든 그런 사소한 것들은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나의 일은 한 남자를 감시하는 것이다.
남자는 추수가 다 끝난 가을에 우리 섬에 도착했다.
나는 치수가 큰 군졸 옷을 입고 무거운 창을 든 채, 남자가 유폐될 초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여름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나라님이었다고 한다.
소문에 따르면, 한성에서 무슨 시끄러운 일이 난 뒤로 새 임금이 자리에 오르고, 이 사내는 폐위가 되었단다.
남자는 이 섬에 유배당했다.
그의 공간은 초가삼간과 그 앞의 작은 마당이 전부다.
나는 그가 이곳에서 나가지 못 하도록 단단히 감시해야 했다.
만약 그가 도망간다면 나는 관아에 끌려가서 맞아 죽을 것이다.
첫날 남자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았다.
이튿날 남자가 담장 앞으로 와 내게 말을 걸었다.
“아가. 너 왜 여기 있니?”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제 할 일을 하는 건데요.”
“계집아이가 왜 여기서 군역을 서냐는 말이야.”
“제 아비가 병신이라 대신 서는 겁니다. 안 서면 맞아 죽으니까요.”
“술이라도 사다 주지 않으련? 어차피 보는 이도 없지 않니. 내가 너무 괴롭구나.”
남자는 간절하게 말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내가 술 한 병에 애처롭게 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했다.
술을 사다주면 남자는 꼭 담장 너머로 말을 걸었다.
대화라고는 해도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가 전부였다.
한때 나라님이었어도 참 별 거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이름은 환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나도 다른 이름을 썼지. 자신을 과인이라 부르며 말이다. 우습지 않니? 지금은 이 이름 한 글자라도 남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구나.”
“아가, 그런데 너 이름은 뭐니?”
“삼월에 태어나서 삼월이라 부릅니다.”
“얘, 아가. 그러면 우리 서로 이름 지어 주지 않으련?”
“네 이름은 인화라고 하자. 호랑이 인(寅)을 쓰고, 화는…. 꽃 화(花)? 아니다, 아니야. 꽃은 싫구나. 꽃은 져 버려서 싫어. 그래, 네 이름에는 아름다울 화(華)를 쓰자. 꽃은 열흘이면 져 버리지만 아름다움은 영영 지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아름다움은 꽃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야. 네게 제법 어울리는 이름 같구나, 인화야.”
나는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쓸쓸한 기분이 치밀었다.
나는 그의 외로움과 서러움의 내용을 모른다.
요사이 보름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의 그림자를 계속해서 보았을 뿐이다.
그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라는 것은 귀하나 천하나 결국은 제 몫의 불행을 지고 스러진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럼 나리는 산이라고 하십시오.”
“산?”
“예. 산은 바다 위 홀로 떠 있어도 외로움을 모르지 않습니까.”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아가. 너는 시인이구나.”
“아가. 너는 내가 싫지 않니?”
“나는 폐주다. 아마 죽을 때까지 여기 갇혀 있겠지.”
“그래서 너마저 오지 않으면 나는 너무 외로울 것 같구나. 그런데 그것은 내 사정이고. 인화 너는 내가 싫지 않느냐? 모두가 나를 피하고 꺼리는데 말이다.”
“나리. 나리 같은 높은 분들에 대해서 저 같은 천한 것이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게로구나.”
“그렇지. 내 처지에 무얼 바라겠느냐?”
“이곳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이렇게 나랑 어울려 주련.”
“오늘은 자고 가련.”
그가 작게 속삭였다.
“너무 외로워.”
한숨 섞인 메마른 목소리가 속을 아프게 긁었다.
“나리, 집에서 아비가 기다려서 가 봐야 합니다.”
“아, 그렇지. 그랬지. 미안해, 미안하다.”
술에 취해 고집을 피울까 걱정이었는데, 의외로 그는 순순히 팔을 풀었다.
나는 조금 더 그의 곁에 누워 있다 몸을 일으켰다.
잠든 그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이 아이 같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했다.
태어나 제대로 무언가를 손에 쥐어본 적 없는 나는 상실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술에 취해 이 천한 것에게서 위안을 찾는 그의 모습이 가여웠다.
그는 늘 나를 품에 안고, 아가, 오늘은 자고 가련, 하고 속삭였다.
하지만 기다리는 아비의 이야기를 하면 늘 순순히 나를 보내 주었다.
그가 팔을 풀어 준 후에도 나는 잠시 더 그의 품에서 꼼지락대다 몸을 일으키곤 했다.
나도 천치는 아니었다.
우리 두 사람이 이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망각과 고독에 기대어 몇 번이고 따뜻한 품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 작고 안락한 방은 우리 둘만의 세계이자, 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세계였다.
환은 겨울은 밤이 너무 길다며 투덜댔고, 홀로 보내는 겨울밤이 얼마나 외로운지 토로했다.
“어서 날이 길어져서 너와 좀 더 있으면 좋겠구나, 인화야.”
그가 자상한 미소로 말했다.
“네게는 나쁜 말이다만 나는 이대로 그들이 너와 나를 잊었으면 좋겠구나.”
환이 말했다.
나도 내심 그랬으면 하고 바랐다.
환과 나는 이대로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것이다.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 이상 환은 이곳에 있을 것이고, 나도 이 섬에서 죽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함께 먼 바다를 바라보며, 달과 해가 한 하늘에서 멀찍이 떨어져 순행하듯이 서로에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로 떨어져 앉아, 각자의 목숨을 조금씩 풍화시키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나날들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책소개>
절벽 위에 외로이 있는 초가집 하나.
그곳에는 왕의 자리에서 폐위된 사내가 유폐되어 있다.
나는 병든 아비를 대신하여 그를 감시한다.
어떤 이들은 그가 친모와 간음을 했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그가 수백의 처녀를 겁탈했다고 했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내 눈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그저 외롭고 자상한 한 남자일 뿐이었다.
"얘, 아가. 우리 서로 이름 지어 주지 않으련?"
이 양반이 미쳤나. 너무 외로워서 미쳐버렸나 보다.
“네 이름은 호랑이 인에, 아름다울 화를 써서 인화라고 하자. 나도 하나 지어주렴.”
“그럼 나리는 산이라고 하십시오. 산은 바다 위 홀로 떠 있어도 외로움을 모르지 않습니까.”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아가. 너는 시인이구나.”
서로 이름을 짓자던 남자. 시를 읊어주고 혼자 농담을 하며 웃던 남자.
이상하게도 점점 그의 목소리가 좋아졌다.
점점 그가 좋아졌다.
"오늘은 자고 가련. 너무 외로워."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었지만.
“저희는 정말 안 될 말입니까?”
그는 조금 웃더니 내 뺨에 입을 맞췄다.
“그래. 안 될 말이란다. 네가 내 곁에 머물면 내내 괴로운 일들만 겪게 될 거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그는 내 정적 속에 열기를 피우는 유일한 존재였다.
우리는 달과 해가 한 하늘에서 멀찍이 떨어져 순행하듯이
서로에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로 떨어져 앉아,
각자의 목숨을 조금씩 풍화시켜갔다.
어떤 운명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삼월에 태어난 나와 오월에 태어난 환.
우리 사이에는 사월이 있다.
봄이 있다.
절벽에 뜬 달 - 현민예
(전 플랫폼 구입가능 아마도.....🙄
19금 소설이니까 19금 플랫폼에서 보자..!!)
절벽에 뜬 달 (웹툰) - 재율랑
(갸는... 리디북스에서만 볼 수 있다고 했슈
일반판, 완전판 두개 있으니 무조간 완전판 구매하기!!!🔞)
#동양풍 #가상배경 #다정남 #절절물 #신분차이
(본문의 내용은 작품에서 발췌했습니다. 문제 시 알려주세요.)
너무 재밌게 읽었던 작품인데 원래는 윤진아 작가님의 ‘사마귀가 친구에게’ 이 작품을 먼저 소개하려다가 이번에 절벽달 웹툰이 나왔더라고..? 이 갓작을 웹툰으로..?(원래 벼르고 있었음)
그래서 절벽달을 먼저 소개하게 됐어😂
작가님 필력+감정선+문장력도 너무 좋고 눈물 펑펑 흘리면서 본 작품이야ㅠ
현민예 작가님 진짜 사랑해요 ㅠ
절절한 로맨스가 보고 싶다면 추천할게!
웹툰도 너무 잘나왔어😭
희란국 연가
요한은 티테를 사랑한다
잠자는 바다
페르세포네를 위하여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
누가 도로시를 죽였을까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사마귀가 친구에게
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
메리 사이코
문제 시, 울면서 수정... 또는 삭제....
첫댓글 연재 달리면 됩니까?
소설은 단행본으로 완결이야. 외전도 있어
소설 개존잼ㅠㅠ
웹툰도 재밌더라..
헐.. 로맨스소설 처음 영업당해 봐
오늘은 이거다..! 추천 고마워영!!
영업왕...지르러간다
현민예 존잼 ㅠㅠ 필력 개쩔어
와 미쳤네 지른다
너무 보고싶어 ㅠㅠㅠ근데 슬플거같아서 고민된다 ㅜㅜㅜㅜ 하 근데 저런 이야기 너무 좋음 ㅠㅠ
와 제목부터 미친거 아니냐..
하 보러간다..
올해의 영업왕!!
너무 재밌겠다 ㅠㅠㅠㅠㅠ
내 심장을 울렸어 당신
하 이거 어제 읽고 진짜 엄청울었네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11.14 02:26
혹시 이거 웹툰 소설로는 몇화까지인지 아는 여시ㅜㅜㅜ
넘 여운이 남아서 소설로라도 봐야겠어...ㅠㅠ
뭐예요 또 결제했어요..ㅠ
별안간 우는 여성됨.. 내 로판인생 얘만한 다정남없다...하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거 소설도 좋아
아 새드일까봐 못읽겠어
이거보고 단행본까지 사버렷는걸
여시 덕에 좋은 작품 입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