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추억
- 방귀 소동
권오채
한 달 전 오랜만에 가족들과 밀과 보리가 자라는 들녘을 지나는 일이 있었다.
지겹던 보릿고개, 나물죽, 물곳범벅, 보리개떡, 꽁보리밥, 거기에
보리방귀까지…………… 꽃피고 새가 노래하는 춘궁기(春窮期)때 우리네 조상들의
가난한 생활 모습이었다. 그 때 자주 먹었던 꽁보리밥이 요즈음은 건강식
별미다. 보리밥집을 찾아 꽁보리밥을 된장이나 고추장에 상추쌈을 싸서 맛있게
먹는다. 그 때의 보리밥은 싫었지만 먹고 살기 위한 생명 식이었다. 보리쌀에
팥이 들어가면 왜 방구는 많이 나오는지 ‘콩과 판 한 줌에는 방구가 열
자루라’는 속담과 '시아버지 방구는 호령 방구 시어머니 방구는 잔소리
방구, 내 방구 달지, 새 아가야 다나 쓰나 그만두고 어서 가자.' 며느리가
친구들에게 시아버지가 어린 며느리에게 길가기를 재촉했다는 익살스런
방귀타령을 주고받으며 사셨던 조상들은 어려운 보릿고개를 넘었고 그런
속에서도 삼촌은 꽤 여러 날 걸려 밀짚으로 손바닥만한 밀짚모자를 만들어 푹
씌워 여름날의 강한 뙤약볕을 가려주었다.
어렸을 적에 개구쟁이들이 모이다 보면 지금처럼 장난감이 없었던 시절이고
보니 방이면 방, 뜨락 산에서, 들녘에 둘러앉으면 얘기 보퉁이는 풀어진다.
과일이나 곡식채소 등을 서리한 얘기며, 곡간에서 무거운 콩섶을 옮기느라
방귀에 너무 큰 힘을 주어 묽고 큰 것이 흐르는 것에 그만 미끌어졌다는
기와집 머슴의 초강력 방구 쟁이 얘기가 있다.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일찍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가보니 동리 어른들이
모여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상 얘기를 욕과 별명을 섞어 주고받는 것을 조금
듣다가 별로 재미가 없자 개구쟁이 대장격인 수철이가 눈을 한 번 찡긋하자
알았다는 듯 비밀 장소로 이동하였다. 개구쟁이들이 모인 곳은 마을 등갱이
너머 고은네 주막집에서도 한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초가집이었다.
둘레엔 고목 밤나무 대여섯 그루가 있어 낮에도 집안엔 어두컴컴하였고 근처엔
야산이 뻗어 내린 빈집이다. 집주인격인 영식이는 농 위에서 부싯돌과
약쑥뭉치를 꺼내어 2~3회 딱 딱딱 부딪혀 불씨를 얻어 `후후 불어 들기름
등잔 심지에 붙이고는 더듬더듬 부엌으로 들어가서 큰 뚝배기에다 물을 퍼서
친구들에게 권하니 "L 좀 나 좀" 하며 점심을 건너뛰어서인지 저녁에 짠- 2
죽을 먹어선지 맑고 시원한 물을 빼앗아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러다가 뚝배기 바닥이 보이면 영식이는 불평도 없어 서너 번 들락거려야
물점대는
끝이 나곤하였다. 다음엔 무슨 얘기가 나올까
기다리는데 억만이가
슬그머니 나서며 "내가 옛날 얘기하나 해주지 그런데, 모두 잘 들어야 한다 "
당부까지 한다 그러나 얘기를 듣다보면 오줌을 누러 들락날락거리게
마련이다. 그럴 절마다 억만이의 얘기는 잠시 끊기곤 했다. 턱을 괴거나
무릎을 세워 받치거나 벽에 기대거나 친구의 다리나 허리를 베거나 하던
친구들은 어서 하던 얘기를 계속하라고 재촉한다 그러면 억만이는 못 이기는
체 하고 이어간다 얘기가 한참 진행되어 가는데 억쇠가 벌떡 일어나더니 등잔
바탕을 지나가는데 `뿌우웅 뿡" 일성이 터지더니 이어 `빠앙 뻥" 대포 소리가
귀를 찢었다 방귀를 뀐 억쇠는 데굴데굴 구르며 "아이구 아야야 아야야" 하며
울부짖는다 등잔이 엎어지고 불이 꺼지니 여기저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판에 좁은 문으로 대여섯 개구쟁이들이 한꺼번에 도망을 간다 밀고 밀리고
하다보니 어리고 약한 애들은 방바닥에 깔려 일어설 겨를도 없이 크고 힘센
녀석들이 머리, 배, 얼굴 허리 등을 가리지 않고 밟고 지난다 아파서 우는
놈에 거칠게 먼저 가겠다고 이리저리 내닫다 보니 욕지거리가 오간다 나중에
살펴보니 어쩌다 잡힌 허리끈을 당기다 보니 바지가 벗겨지고 방바닥에 기름이
쏟아지고 불이 저만치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이 언제 친구들의 다리를 덮어
있었던지 이불에 달라붙는다 친구 중 나이가 한 살 위인 성식이는 베개를
던져, 명수는 벽에 걸린 삼베수건을 끌어내 번지는 불을 끄기 위해 두드려
보지만 불은 꺼지지 않고 자꾸 번져가니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밖에
먼저 나간 누군가가 가마니에 물을 묻혀 와락 덮어 간신히 잠재우게 했다.
방안엔 검은 그을음과 기름의 매캐한 냄새가 퍼졌었는데 꽤 오래 갔다 그 후
주인 격인 영식은 친구들에게 방 빌려주고 어른들께 된 꾸중을 들었다 그런
중에도 =이 밝은 수철이가 주만 진창이었다. 신음소리를 내던 억쇠는
무명바지의 아랫부분이 타고 궁둥이 언저리가 등잔불에 뻘겋고 검게 타
2ㆍ3도의 화상을 입어 "아야야"는 계속되었다 잠시 후 친구 중 하나가 "불에
된 데는 오래 묵은 간장을 발라 준데"하니 다른 친구 하나가 "어떻게 하니?
영식아" 하니 잽싸게 따라나서 간장을 떠와 화상에 발라 주니 더 큰 소리로
"아이구 따가워 씨리다구, 아이구 아이구!" 소리를 질러대었다 화상에 짠
간장을 발랐으니 오죽이나 쓰리고 아팠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제가
들기름 등잔불에 거시기를 내쏟아 폭발이 되었으니 누구에게 하소연할 곳도
없고 다른 동무들은 놀라서 도망가기에만 열중했다 억쇠는 그 후 두 달이
넘게 화상과 경기(驚氣) 치료를 받고 쓰리고 아픈 것을 참느라 신음소리는- 3
계속 쏟아냈었다. 그때 다른 친구도 놀라고 상처 때문에 여러 날 한의원에
찾아가 침을 맞거나 첩약을 달였었다고 하였다 사고가 생긴 날 전후사정을
모르는 어른들은 모인 친구들을 이리 묻고 하였지만 친구들은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오랫동안 닦달을 당했다 아마
세상에 이런 난장판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 후에 만난 ‘방귀대장’의 주인공인 억쇠는 별명에 걸맞게 타향에서 여러
어려움을 이겨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아마, 대사업가가 된 데에는 억괴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겠지만 방귀소동의 아픈 상처를 이겨낸 일이 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어느 자리에선가 "어이 방귀대장님 아니, 사장님
요즈음도 방귀사업이 잘 되시나?"고 물을라치면 대답 대신에 손을 내저으며
"잘 알면서, 그 때만 못하이. 에이 이 사람들아."를 외쳐 모인 친구들이
일제히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옛 추억을 떠올려보곤 하였다.
2004 18집
첫댓글 지겹던 보릿고개, 나물죽, 물곳범벅, 보리개떡, 꽁보리밥, 거기에
보리방귀까지…………… 꽃피고 새가 노래하는 춘궁기(春窮期)때 우리네 조상들의
가난한 생활 모습이었다. 그 때 자주 먹었던 꽁보리밥이 요즈음은 건강식
별미다. 보리밥집을 찾아 꽁보리밥을 된장이나 고추장에 상추쌈을 싸서 맛있게
먹는다. 그 때의 보리밥은 싫었지만 먹고 살기 위한 생명 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