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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浮石寺)의 가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 2018년 6월 30일
나더러 이 가을에 어디를 제일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선운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선운사 다음으로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바로 부석사라고 대답할 것이다
도솔천의 흐드러진 단풍터널이 선운사의 매력이라면
일주문 올라가는 입구의 은행나무길에서부터 시작해서
은은한 가을의 정취가 우러나는 곳이 바로 부석사다
딱 집어서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만큼 가을의 부석사는 은은한 정취가 있다.
영주 풍기읍에서 소백산맥 자락을 따라 북동쪽 끝으로 가다 보면
영주를 대표하는 사찰이자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부석사가 나온다.
고 혜곡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라는 명저로 전국에서 유명한 데다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7개 사찰 중 하나로 201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으니,
이젠 국가대표급 사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석사에서 가장 핵심을 꼽는다면,
봉황산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국보 제18호 무량수전과 그 앞에 서있는 국보 제17호 석등이다.
통일신라의 석공 예술과 고려시대의 목조건축기술과 조화를 이룬다고 해야 할까나.
무량수전 안에는 국보 제45호 소조여래좌상이 근엄한 자세로 앉아 있어서,
불자들에게 경외심을 자아낸다
부석사는 소백산맥에 있는 봉황산(822m) 자락 아래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일주문을 보면 소백산이 아니라 태백산부석사(太白山浮石寺)라고 적혀 있다.
삼국유사 <의상 전교> 편에 이런 기록이 있다.
儀鳳元年湘歸太伯山, 奉朝旨創浮石寺敷敞大乗霊感頗著
의봉 원년(676년)에 의상이 태백산에 돌아와 조정을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하고
대승(大乘: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을 널리 펴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
뒤 현판에는 해동화엄종찰(海東華嚴宗刹)이라고 적혀 있는데,
당나라 화엄종 제2대 조사인 지엄에게서 배운 화엄종을 사사하고 귀국한 후에
처음으로 창건한 절이기 때문이다.
Ernesto Cortazar - Waiting for you
부석사를 대표하는 것은 무량수전과 은행나무길
그리고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풍광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 됐으며 조형미가 빼어난 무량수전
일주문 앞뒤로 펼쳐지는 은행나무길
천년 고찰의 신비가 묻어나는 안양루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영주 부석사의 가을 풍경,
영주 봉황산 부석사. 일주문으로부터 무량수전까지 가려면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 수많은 계단에는 천왕문, 범종루, 극락으로 들어가는 안양문이 있는데,
극락세계에 있는 소조불상을 만나라면 사천왕의 시험을 거친 다음,
범종루와 안양문 아래 누각으로 몸을 숙여서 들어가야 하는데,
마치 극락세계를 가기 위해 수행하는 보살들을 위해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닐까?
문을 넘어가면 말 그대로 누각이 되어서 다른 높이에서 본 여러 사바세계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조선 후기 건축물의 범종루부터 고려시대 무량수전으로 가는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무량수전 안으로 들어가면 근엄하고 거대한 소조여래좌상을 마주할 수 있는데,
보살들에게 경외심을 자아낸다.
부석사의 묘미는 수많은 인생의 굴곡을 넘어 극락으로 가서
소조여래 아래서 평안을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왼쪽 뒷쪽의 지붕이 큰 건물이 무량수전이다. 아래쪽 건물들과 방향이 약간 틀어져 배치돼 있다.
뒷쪽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왼쪽 아래 무량수전의 틀어진 배치가 확연히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큰 은행나무길이 많이 있지만,
부석사 은행나무길 처럼 운치있는 길은 찾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길의 폭이 은행나무와 잘 어울리는 넓이고,
적당히 경사진 흙길 그리고 뒤에 무량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 등이 어우러져,
가을이면 이 길이 마치 극락의 진입로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부석사 매표소에서부터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에 이르는 길 양쪽의 가을단풍이 아름답다
짧기만한 가을, 경북 북부에 위치한
영주, 봉화, 안동의 고찰과 서원의 가을 풍경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곳,
바로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도량인 영주 부석사다.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幢竿支株, 보물 제 255호),
통일신라시대 9세기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 보물 제255호인 당간지주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의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소박한 느낌을 주고 또한 가늘고 길면서도
아래위에 다소 두께 차이가 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부석사 경내에는 무량수전·조사당·소조여래좌상·
조사당 벽화·무량수전 앞 석등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취현암·범종루·안양문·응향각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영주 부석사 천왕문(天王門), 사천왕이 두 눈을 부라리고 부석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천왕문을 지나면 부석사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당간지주를 지나 천왕문으로 들어갔다.
사천왕의 비호를 받으며 정면을 보니 거대한 누각을 중심으로 양쪽에 건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영주 부석사(榮州 浮石寺)』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동 화엄종 사찰>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054) 633-3464
부석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으로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건축 전문가들에게 가장 뛰어난 우리나라 건축물을 꼽으라면
언제나 1위를 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절 부석사다.
어떤 이는 부석사를 둘러싼 자연환경의 웅장함 때문이라고,
또 누구는 지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구성이 뛰어남이기도 했으며,
무량수전과 안양루가 중첩된 빼어난 장면이기도 했고,
무량수전의 정제된 구조적 아름다움이기도 했다.
그만큼 부석사는 다양한 건축적 측면에서 평가되는 대상이었다.
부석사는 수만평에 이르는 광대한 대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건물로는 천왕문과 범종루, 안양루와 무량수전,
그리고 뒷산 숲 속의 조사당과 응진전이 숨겨져 있을 뿐이다.
부석사를 누가 건설했는지는 모른다.
(의상스님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님)
그러나 이 건물을 역사할 때 보면 고귀한 사람이나 미천한 사람이나
이 부석사의 대웅전인 무량수전에까지 오르려면 한 길만을 따라가야 하게 만들었다.
오로지 이 길 밖에 없게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그것도 건물 주위가 아닌 밑으로 가게 만들었다는 것은
아마도 만인은 평등하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범종각
천왕문을 지나서 보이는 누각은
1748년에 재건되어 부석사 경내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범종루다.
오늘날에는 범종이 사라지고 법고와 목어만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범종각. 3층석탑이 양쪽으로 배치돼 있다
삼층석탑과 2층 범종각이 잘 어울린다
범종각 앞에 있는 삼층석탑(三層石塔)에서 바라본 부석사 전경,
영주 부석사 범종각(梵鐘閣),
천왕문을 들어서자마자 부석사의 가을이 반깁니다.
정면에 보이는 2층 누각인 범종각에는 "鳳凰山浮石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밑에서 올려다 본 범종루 : 봉황산 부석사란 현판이 걸려있다
밑에서 올려다 본 범종루 : 봉황산 부석사란 현판이 걸려있다
현재는 범종은 없고, 목어와 법고만 남아있다
무량수전 쪽에서 바라본 범종루
올라가는 쪽에서 보면 팔작지붕의 측면이 보이도록 건물을 배치했다
범종루의 지붕이 상당히 특이한데, 정면으로 보면 팔작지붕의 측면이 보인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간 후 범종루 아래로 몸을 낮춰 들어가
다시 올라가 건물 뒤쪽을 보면 맞배지붕의 측면이 보인다.
왜 지붕을 특이하게 지었는지에 대한 옛 기록은 없지만,
정면 팔작지붕은 범종루 뒤에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을 자아내고,
뒤쪽 맞배지붕은 절 아래 소백산맥 자락을 멋지게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인 것 같다.
부석사에는 범종각이 둘인데 위의 2층 범종각 말고 다른 하나입니다.
부석사에는 누각이 둘인데 안양루와 범종각이다.
"문의 성격을 겸한 안양루가 석축 위에 작고 날아갈듯하게 지은 누각이라면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지반에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안정감 있는 건물이다.
특히 이 범종각은 그 건물의 방향이 여느 건물과는 달리 측면으로 앉아있다.
건물의 지붕은 한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팔작지붕을 한 쪽이 정면을 향하고 있고 맞배지붕이 뒤쪽을 향하고 있는데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보면
왜 목수가 지붕을 그리했는지를 알수 있으며 그 지혜에 절로 감탄이 난다.
부석사가 소백산맥을 향하여 날아갈 듯이 앉아있는데
범종각이 정면을 향하고 있으면 건물이 전반적으로 무거워보인다.
따라서 범종각을 옆으로 앉혀놓고 뒷쪽을 맞배로 처리하여
건물이 전반적으로 비상하는 느낌을 주고 답답해 보이지 않아 좋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安養樓)
정면에서 바라보면 안양루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왼쪽으로 휘어지며 올라간다
무량수전 맞은편에 있는 누각으로, 2단으로 쌓은 높은 석축 위에 세워진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누 밑을 통과하여 무량수전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어 일종의 누문(樓門) 역할도 하는데
전면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무량수전 쪽에서 보면 단층 전각처럼 보인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이중의 기능이 부여되어 있어
건물 전면에는 '안양루', 뒷면에는 '안양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양(安養)'이란 극락을 뜻하는 말로,
안양문은 극락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고,
안양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한다.
조선 중기 건물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안양루는 다포식 건물로
기둥은 층단주 형식으로 되어 있고,
2층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 천정은 우물천정이다.
2층 누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부석사 경내의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소백산맥의 연봉들이 펼쳐져 있어 경관이 뛰어나다.
예로부터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인 김삿갓 김병연(1807~1863)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노래하는 시문을 남겼는데
누각 내부에는 많은 시문 현판들이 걸려 있다.
▲ 안양루 기둥과 누각 내부 모습
범종루 아래에서 정면을 보면 극락세계로 가는 안양문이 보인다.
특이하게도 범종루에서 북서쪽으로 확 틀어져 있는데,
질서 정연하게 지은 경주 불국사와 비교하면 자유분방한 분위기다.
극락세계로 가기 위해 안양문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
다시 한 번 누각 아래로 몸을 낮춰서 들어가야 한다.
누각 아래를 지나면 뒤편 현판이 안양루로 바뀌는데,
극락세계에서 아래 사바세계를 보는 느낌이다.
▲ 부석사 안양루 전경
▲ 안양루 밑에서 올려다 본 모습
안양루 전면에는 부석사란 현판이, 그 아래에는 안양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안양문을 통과해 올라가면 비로서 안양루란 현판이 보인다. 올라갈 땐 안양문, 올라가면 안양루다.
그리고 무량수전 앞에는 석등이 하나 서 있다. 국보 17호
▲ 안양루 옆에서 내려다 본 부석사 경내 전경
무량수전
안양문을 지나면 곧바로 만나게 되는 석등과 무량수전,
많은 사람들이 특별하게 부석사를 찾는 이유가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무량수전의 현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石燈, 국보 제 17호),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4각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지붕돌도 역시 8각인데,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안양문을 지나면 부석사의 상징인 무량수전이 눈앞에 들어온다.
하지만 바로 앞에 보이는 석등도 주목해보자.
사각으로 이뤄진 무늬 바닥돌과 팔각기둥 위에는
가운데 기둥을 받치는 큼직한 연꽃 조각이 있다.
그 위로 석등을 점등하는 부분인 팔각의 화사석(火舍石)이 있는데,
네 면은 불꽃을 밝히기 위해 뚫려 있고, 네 면은 각기 다른 모습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화사석 위 지붕돌도 역시 팔각이라 석등 전체로 보면 비례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
통일신라 최고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1962년 국보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석등 뒤로는 워낙 교과서와 교양 프로그램에서 많이 언급되는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이 있다.
공민왕 7년(1358)년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타 피해를 입어서
8년 후 진각국사 원응이 고쳐지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얼마 안 남은 고려시대 건물 중 하나다.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정면 5칸과 측면 3칸의 주심포 양식인데,
거대한 팔작지붕을 24개의 기둥이 650년 이상 지탱하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 국보 제 18호),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무량수전은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정자살로 이뤄진 창호문들로 가득한 무량수전.
종이를 창문에 붙이는 건 고려시대에 시작했다고 하는데,
고쳐지었을 당시 가장 최신의 건축양식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다.
창호의 구조도 특이한데, 맨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두 개의 창호와
중앙 세 칸 양쪽 끝에 있는 창호는 들어 올리는 구조,
중앙 세 칸 중앙의 두 창호는 여닫이 문으로 되어 있다.
들어 올리는 창호 앞에는 걸쇠가 달려 있는데,
여름에 여닫이문을 제외하고 모두 들어 올리면
밖에서 무량수전의 장엄함을 볼 수 있다.
남동쪽 아래에서 바라 본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잘 어울린다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
무량수전 안에 들어가면 거대한 불상인 국보 제45호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이 보인다.
2.78m 높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근엄한 얼굴의 소조상은 불자들에게 경외감을 자아낸다.
대다수 학자들은 무량수전이라는 이름과 사찰 경내 원융국사비에
'아미타불 한 분만 모셨다'라는 기록이 있어 아미타불로 추정하지만,
불상이 파손을 입어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실제 누구인지는 아직 논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불상의 이름이 확실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보통 불상은 정남향으로 되어 있는데, 소조상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만약 소조상이 아미타불이라면, 불상을 서방극락세계에 모신 것이 된다.
소조불상은 통일신라 양식을 이어받아 고려 초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주 봉황산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셔진 아미타불입니다.
국보 제45호로 소조로 만들어진 부처님이시죠.
다른 당우들의 불상과 달리 서쪽을 등지고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무량수전 불당은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동쪽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소조여래좌상 : 국보 제45호
무량수전 주변
무량수전 동쪽에 서서 바라본 부석사 풍경,
무량수전과 안양루가 있는 풍경,
조사당으로 오르면서 삼층석탑 뒤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三層石塔, 보물 제 249호),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탑으로 무량수전 동쪽에 세워져 있습니다.
무량수전만 보고 부석사를 나서는 실수를 하지 말자.
무량수전 북동쪽에 통일신라 때 건립된 삼층석탑이 있는데,
삼층석탑에서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동시에 보면
산자락을 따라 자연스레 내려가는 부석사 건물들의 경관을 볼 수 있다.
동북쪽에서 바라다 보이는 무량수전과 안양루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석사 사진
부석
조사당 영역을 둘러보고 나서 다시 무량수전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무량수전 서편 언덕에 있는 부석(浮石),
부석사 창건 설화와 연관있습니다.
무량수전 왼쪽 뒤편에는 한자로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진 돌이 있다.
당나라 유학시절 의상을 흠모했던 선묘라는 여인이 용이 되어서
의상을 방해했던 태백산의 권종이부들을 물리치고 부석사를 창건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다.
재미있게도 이 전설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그 어느 곳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 측 기록인 송고승전에 내용이 나온다.
기타
영주 부석사 조사당(祖師堂, 국보 제 19호),
무량수전에서 동북쪽으로 100 M쯤 오르면 있습니다.
또한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도 있다."
삼층석탑에서 좀 더 올라가면 고려시대에 지어진 국보 제19호 조사당이 있다.
조사당 오른편 철창 뒤로는 선비화라는 나무가 있는데,
의상의 지팡이에 가지가 돋고 잎이 피었다는 전설이 있다.
뭔가 뜬금없는 것 같지만 퇴계 이황이 이 선비화를 보고
지팡이를 언급한 한시를 지어서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원래 조사당 안에는 제석천, 범천, 사천왕들이 그려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가 있었는데,
최근에 벽화 손상이 심해서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26년까지 보존처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당
의상대사가 꼿은 지팡이가 자라고 있는 나무는
선비화(禪扉花)라고 부르며 골담초(骨擔草) 나무입니다.
추녀 밑에 있어서 비와 이슬을 맞지 않지만 잘 자란다고 합니다.
지금은 탐방객들로부터 선비화를 보호하기 위해서 철책을 둘러 놓았습니다.
조사당 주변에 있는 전각들,
(시계 방향으로) 자인당(慈忍堂), 응진전(應眞殿), 단하각(丹霞閣), 선묘각(善妙閣)
선묘각은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의상 조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인물인 선묘를 모신 건물이다.
규모도 작고 기단도 없이 초라하여 마치 작은 사찰의 산신각 같은 느낌을 준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 규모의 맞배집인데
가구 방식이나 부재를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최근세의 건물인 듯하다.
내부에는 1975년에 그린 선묘의 영정이 걸려있다"
자인당에 봉안되어 있는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石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 1636호 | 가운데 사진),
"부석사 자인당에는 거의 같은 규모의 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2구는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상이며,
1구는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의 도상특징을 보여준다.
이 삼불상은 원래 부석사 동쪽 1.5km 지점에 위치하는
東方寺址에서 1957년에 옮겨 온 것이다.
이들 삼존 중 비로자나불 2구는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 220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으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 삼성각, 관음각, 장경각 등의 전각이 있다
부석사 박물관,
박물관을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경북 북부 가을나드리의 첫번째 코스인 부석사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부석사를 다시 간다면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 같다.
부석사, 무량수전,안양루, 범종루.....
참 아름다웠다.
첫댓글 2012년 5월 17일 문화원 답사 중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려는데
비가 많이 오고 천둥-번개가 심해 무량수전 처마 밑에서 대기 중이었고 불교 신자 몇몇이 부처님께 인사하러 들어 갔는데
갑자기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연등이 문 밖으로 튀어 나오고 하얀 연기가 보였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밖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허둥댔지만 다행히 두어 사람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소화기(消火器)가 터진 거라는데 왜 그게 터졌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네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만하기가 천만다행입니다
부처님의 보살핌이 있었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가을 사찰로는 첫째.
손색이 없는 곳.
잘읽었습니다.
네 동감입니다
감사합니다
당간지주에 대해서 확실히
공부했어요
살짝 정면이 아닌 무량수전
은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요 부석사의 가을정취는 눈부시게 아름답네요
당간지주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 많드라구요
지금도 법주사에 가면 당간이 있습니다
해인사에도 있구요
당간지주 크기를 보면 사세를알 수 있지요
안양루부터 살짝 비틀어진 구조
무슨 뜻이 있을겁니다
직선으로 맞출수도 있었을텐데요
선운사는 그저 단풍이지만
부석사는 뭔가 다른게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법주사 당간을 첨부합니다
가을의 정경을 마음껏 펼쳐 주셨습니다
역시 가을 풍경은 사찰에서 느껴지는 것이
젤 아름다워 보입니다
잘 감상 했습니다
다음엔 직접 방문 해 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절집의 가을이 대단하지요
그 중에서도 부석사가 유명합니다
직접 가보시면 좋아하실 것입니다
멋진 곳입니다
가을이 제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