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지하철 충무로 역사 내에 위치한 ‘오재미동’ 시사실에서는 ‘한국영화조수연대회의’(조수연대회의)의 ‘영화인신문고 사례고발 및 영화노동자 생존권 쟁취’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영화조감독협회, 한국영화조명부협회, 한국영화제작부협회, 한국영화촬영부협회, (준)한국영화기술부협회로 구성된 조수연대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장기간 임금체불을 방치하고 있는 영화제작사들을 폭로하는 한편, 대안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수연대회의는 작년 7월 개설해 8개월간 운영한 영화인신고센터(영화인신문고, http://filmunion.ivyro.net)를 통해 약 40건의 부당노동사례가 신고되었다고 밝혔다. 조수연대회의는 그동안 접수된 부당노동사례 중 아직 해결되지 않은 3건의 사례와 함께 2건의 해결 사례를 발표했다.
“‘여고생 시집가기’ 제작자, 임금 1억 2천만 원 체불”
조수연대회의에 따르면 지난 해 말 개봉한 ‘여고생 시집가기’를 제작한 ‘더 존 필름’, ‘남남북녀’를 제작한 ‘아시아라인’, ‘별’을 만든 ‘스타후룻’ 등 3곳의 제작사들이 영화제작에 참여했던 영화노동자(스텝)들의 임금을 장기 체불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수연대회의가 발표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여고생 시집가기’를 제작한 ‘더 존 필름’이 체불하고 있는 임금 총금액은 1억 2천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수연대회의는 “2003년 설립된 ‘더 존 필름’의 경우 2년여 동안 ‘여고생 시집가기’를 제작 진행하면서 생겨난 재정리스크를 스텝 임금에 전가한 상황”이라며 “피해당사자가 전체 잔금 지불에 대한 공증을 받기도 하였으나, 체불임금지급에 대한 제작자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조수연대회의는 제작사로 회수되는 극장부금을 가압류한 상태지만, 제작사에 걸려있는 채무가 워낙 많아 잔금해결이 불투명한 상태다.
“영화 스텝들의 임금을 후반작업 자금으로 전용”
또 영화 ‘몽정기’로 잘 알려진 정초신 감독이 연출을 맡은 ‘남남북녀’의 경우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남남북녀’는 2003년 설립된 ‘아시아라인’에서 제작해 같은 해 8월 개봉했다. ‘남남북녀’의 경우 촬영 종료 후 투자여건이 어려워지자 피해당사자들의 잔금을 후반 작업 자금으로 전용했다고 조수연대회의는 밝혔다.
조수연대회의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정초신 감독은 일부 참여스텝들에게 ‘체불임금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는 위임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하위스텝 대부분은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 영화가 개봉 후 흥행에 실패하자, 제작사는 위임장을 근거로 체불임금 지불 책임을 회피했다. 이후 법원에서는 당시 작성된 위임장의 법적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으나, 아직까지 잔금문제는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 조수연대회의의 설명이다.
또 이외에도 ‘별’을 제작한 ‘스타후룻’은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자 법인 파산을 했고, 당시 ‘스타후룻’ 대표는 임금(총 2천 7백 9십만 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당시 ‘스타후룻’의 대표를 맡았던 박 모 씨는 현재 모 영화제작사의 부사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흥행성공 영화노동자들과 나눈 적 있나"
이날 공개된 3건의 사례이외에도 영화노동자들에 대한 상습적인 임금체불과 부당노동행위는 한국 영화제작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2004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화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월 평균 소득은 61만 원에 불과했다. 또 월 평균 소득이 50만 원에도 못 미치는 비율이 전체 47%에 달했으며, 하루 평균 노동시간 역시 14시간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 법정 최저임금이 월 64만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영화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고병철 조수연대회의 스탭처우개선팀장은 “영화 제작사들은 영화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화 흥행에 따른 리스크를 분담하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 제작사들이 벌어들인 만큼 영화노동자들과 함께 나누는가”라고 반문하며 제작사들의 횡포를 비판했다.
이어 고병철 팀장은 체불임금을 아직까지 받지 못한 여러 사례에도 불구하고 3건의 사례만 발표한 것에 대해 “오늘 언급한 3개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사과 역시 하지 않았다”며 “이번 실명공개에 포함된 업체들은 가장 악질적인 사례들로 영화산업에서 이들의 영원한 퇴출을 의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별· 회차· 기간별 계약 및 4대 보험 도입해야”
조수연대회의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 제작자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악덕제작자들의 부당노동행위 뒤에는 그러한 행위를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 한국영화계의 풍토가 있다”며 “영화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한 채 회사 문을 닫아도 또다시 새로운 회사를 차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현실, 영화노동자의 임금을 주지 않은 제작자, 감독 등이 버젓이 다른 제작사에서 일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작금의 상황이야말로 부당노동행위를 만들어내는 주범”이라며 한국영화계의 전반적인 풍토를 비판했다.
조수연대회의는 열악한 영화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현재의 구두· 도급· 작품별 계약 관행 철폐를 촉구하는 한편, 제작사와 영화노동자 간 개별계약, 회차· 기간별 계약 및 4대 보험 등의 도입을 주장했다. 또 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관광부 등 정부의 영화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요구했다.
한편, 조수연대회의는 향후 현장실사를 통해 영화현장 노동자들에 대해 가해지는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실명공개 및 법적 대응을 넘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