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송가(戰頌歌-Battle Hymn) 최 건 차
딘 헤스(Dean Hass)를 아는가. 북한이 불법 남침한 76년 전을 상기하면서 딘 헤스가 한국전에서 펼친 전쟁영화 ‘전송가’를 떠올려 본다. 나는 6·25를 치열하게 겪고 부산에서 중학생이던 1956년 그 영화를 절실하게 봤다. 전황이 치열했던 1951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信念의 鳥人’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그는 제2차 대전시 유럽전선에 참전한 미군 전투기 조종사였다. 종전을 맞아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귀국한 딘 헤스는 군복을 벗고 목사가 되어 고향 오하이오주 웨스트헴튼 지방 침례교회를 맡아 시무하고 있을 때였다. 스탈린이 북한의 지배자로 내세운 김일성이 소련제 전투기와 탱크로 불법 남침을 감행해오므로 한국이 위태롭게 되었다.
미군이 참전하게 되자 딘 헤스는 목사직을 사임하고 공군 중령으로 재입대했다. 미군은 한국공군에 제공할 무수탕 전투기 조종사를 육성할 책임관이 필요했다. 이에 딘 헤스가 적임자로 발탁되어 미공군 제6146기지 지휘관으로 1950년 7월 초 한국에 부임해 왔다. 그는 전투기가 제대로 이 착륙 할 수 있는 활주로를 만들고 격납고를 새로 지으면서 한국공군에서 선발되어 온 조종사 후보생들을 맞았다. F51-무스탕전투기 조종술을 가르치는 중에도 악천후를 틈타 남진을 계속하려는 적을 타격하기 위해 부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목숨 건 출격을 나서곤 했다.
딘 헤스는 목사직을 그만두려고 하는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있었다. 그가 제2차 대전시 독일 군수공장을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격하였을 때였다. 폭격 지점에 이르러 목표물을 확인하고 폭탄투하 버튼을 눌렀는데 작동이 되지 않았다. 다시 눌렸는데 목표물을 한참 벗어나 교회 옆 고아원에 폭탄이 떨어져 37명의 고아가 무참하게 폭사했다. 나치 당국은 미군 폭격기가 고아원을 폭격하여 어린아이들을 무차별 살해했다고 비난했다. ‘이런 범죄는 지옥에 가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의 손은 영원히 아이들의 피로 얼룩져 있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 방송을 연일 해댔다. 딘 헤스는 종전이 된 후에 자신의 오폭으로 고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현장을 찾아가 가보았다.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죄책감에 사로잡혀 고민하다가 조종사복을 벗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딘 헤스는 친할머니가 자신의 오폭으로 고아들이 죽은 카이져버그 교회에서 침례를 받고 이민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그 아내가 유산했다. 처참하게 죽은 고아들과 할머니 생각으로 설교하기가 힘들어져 교회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위로와 교회 중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목회를 사임하고 자신 때문에 죽은 독일 고아들에게 사죄할 길을 찾으려고 군복을 다시 입었다.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위해 혼신을 다 쏟아 내는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더불어 한국공군이 제자리를 잡아가도록 돕고 지도하며 조종사를 길러내는 대부代父의 역할로 인민군과도 맞서 싸웠다. 그에게 주어진 ‘신념의 조인’이란 칭호는 지금도 한국공군의 교훈이며, 한국공군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딘 헤스는 1951년 5월 말까지 250여 회나 출격했다. 한국공군 조종사들이 무스탕전투기를 겨우 조종할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서울을 다시 내어주게 되어 고아들이 큰 문제였다. 그는 제2차대전 시부터 절친한 관계의 상관이었던 미제5공군 사령관 캐임브릿지 장군의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로 수송기 5대를 지원받아 4백여 명의 고아들을 제주도로 옮길 수가 있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받게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딘 헤스를 직접 찾아가 공로를 치하하며 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그리고 그의 무스탕전투기 18호 동체에 ‘信念의 鳥人’이라는 칭호를 친필로 써 주었다.
딘 헤스의 한국전을 그려낸 BATTLE HYMN(베틀 힘-戰頌歌)이라는 영화를 다시 조명해 본다. 주마등처럼 흐르는 화면에 편곡된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낡은 절간에 수용된 전쟁고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리랑을 부르며 율동을 하는 모습이 천연스러웠다. 고아들을 돌보는 순이 역의 인도계 미국 배우 안나 캬슈피(Anna Kashfi)가 낡은 한복을 수수하게 입고 ‘피였네-피였네 우리나라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꽃…’을 부르는 모습에는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큰아들인 필립 안(Philip Ahn)이 한국인 할아버지로 출연하여 딘 헤스를 돕는 모습이 돋보였다.
‘전송가’는 당시 할리우드에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였다. 반세기가 훨씬 지났어도 그 스토리와 장면들이 옛 추억으로 떠올려진다. 나 역시 일본에서 유치원에 다닐 때 태평양전쟁 발발로 미군 폭격기들이 매일같이 날아와 퍼붓는 폭탄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고국에 돌아와서는 6‧25 전쟁 때 미군의 도움을 받았고, 베트남전에서는 미군들과 함께 정글전을 수행했다. 영화 전송가로 딘 헤스의 면면과 한국 사랑의 진면을 알게 되어 그를 그리며 추모하고 있다. 202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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