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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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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
데낄라와 타코의 나라 멕시코. 멕시코시티는 그 두 가지를 가장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도시다. 거리에 즐비한 갖가지 종류의 타코는 매콤한 살사소스로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대표적 현지 음식. 고대, 근대, 현대의 다양한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들과 분주한 거리가 빚어내는 도시의 배경은 데낄라의 복잡한 맛만큼이나 매혹적이다. 소깔로광장, 과달루페성당, 국립인류학박물관 등이 관광 명소다.
*멕시코 시티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테오티우아칸이 붕괴된 뒤 세워진 아스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해 왔습니다. 아스텍 제국을 상징하는 두 도시 테노치티틀란과 틀라텔롤코가 건설되었던 곳이 오늘날 멕시코시티 중심부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멕시코를 점령한 에스파냐 사람들은 아스텍 제국의 흔적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자신들의 종교 건축물과 궁전을 세웠습니다.
멕시코시티에 가도 아스텍 제국의 도시였던 테노치티틀란과 틀라텔롤코의 흔적을 많이 볼 수는 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세워진 세련된 에스파냐의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멕시코시티에 남아 있는 아스텍 제국의 흔적과 에스파냐의 건축물들은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잘 보여 주는 살아 있는 교육의 현장입니다.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이 폐허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멕시코시티 지역에 새로운 나라, 아스텍 제국이 세워졌어요. 그리고 테노치티틀란과 틀라텔롤코 등의 도시가 들어섰지요.
아스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은 부족의 지도자 테노치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어요. 테노치티틀란이 도시로서 틀을 갖춘 시기는 1324년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사실은 아스텍 사람들이 남긴 그림을 통해서 밝혀졌지요. 테노치티틀란이 세워질 당시의 자연환경은 지금하고는 완전히 달랐어요. 오늘날 멕시코시티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지만 당시에는 드넓은 호수였어요. 따라서 사람들은 호수의 크고 작은 섬에 도시를 건설했어요. 테노치티틀란과 버금가는 도시 틀라텔롤코 역시 섬이었지요.
아스텍 제국이 수도를 섬에 건설한 이유는 적의 침입을 쉽게 방어하기 위해서였어요. 도시를 건설한 아스텍 사람들은 주요 섬과 육지 사이에 둑길을 만든 다음 출입구를 단 세 곳만 만들었어요. 이 역시 적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었지요.
테노치티틀란을 중심으로 발전한 아스텍 제국은 에스파냐의 침략으로 멸망하기 전까지 약 200년 동안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어요. 수도인 테노치티틀란과 틀라텔롤코에 살았던 사람만도 20만 명이 넘었다고 해요. 인구가 늘어나면서 보다 많은 식량이 필요하게 되자 사람들은 호숫가에 갈대와 나무를 엮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흙을 채워 작은 농토들을 만들었어요.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호수는 차츰 육지로 바뀌었답니다. 현재 우리들이 볼 수 있는 멕시코시티는 호수에 흙을 채워서 건설한 일종의 매립지입니다.
에스파냐 출신의 젊은 탐험가 코르테스는 늘 황금에 대한 열망에 빠져 있었어요. 에스파냐의 식민지 쿠바에 머물던 코르테스는 사람들로부터 서쪽에 많은 황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코르테스는 34세가 되던 1519년에 수백 명의 부하를 11척의 배에 나눠 태우고 황금을 찾아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배 11척을 동시에 본 원주민들은 배를 보고 움직이는 산이라고 표현했다고 해요. 그리고 난생 처음 말을 본 원주민들은 말을 타고 달리는 에스파냐 병사들을 괴물이라고 불렀어요. 또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를 악령의 소리로 믿었지요. 거대한 배와 말, 화포를 처음 본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 케찰코아틀이 부활했다고 믿었습니다.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던 신화 덕분에 코르테스는 어렵지 않게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자그마치 수천 명의 원주민들은 아예 코르테스의 부하가 되었고 아스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으로 이동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습니다.
험준한 중앙 고원에 도착한 코르테스와 부하들은 산 아래 거대한 호수 안에 모습을 드러낸 도시를 발견하고는 놀라움에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답니다. 코르테스 원정대에 참가했던 카스티요라는 사람이 탐험의 내용을 담은 책을 썼는데, 테노치티틀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어요. “우리는 물 위에 떠 있는 거대한 궁전, 신전, 탑, 그리고 도시를 보면서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아마디스의 전설에 나오는 마법 같았다. 게다가 모든 건물은 석조였다. 병사들은 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환상이 아니냐고 물었다.”라고 말이에요.
카스티요의 놀라운 기록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도시로 들어가자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가마를 탄 아스텍 제국의 황제 몬테수마가 우리들을 맞아 주었다. 저항이나 전투도 없이 환영을 받으며 테노치티틀란에 들어간 우리는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을 목격하였다. 하늘을 향하여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신전과 광장 등이었는데, 이 모든 건물들은 다 돌로 만든 것들이었다.”
에스파냐 사람들이 테노치티틀란에서 본 것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만은 아니었어요. 카스티요는 높은 피라미드 위에서 태양의 신과 전쟁의 신에게 살아 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에 대해서도 묘사했어요. 신전에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의 수많은 해골을 장대에 꽂아 전시해 놓고 있었다고 해요.
아스텍 사람들이 사람의 심장을 태양의 신과 전쟁의 신에게 바친 것은 태양의 신이 사람의 피를 영양분으로 섭취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아스텍 사람들이 오랜 세월 철저하게 믿었던 관습이었습니다. 태양신의 제물이 된 사람들은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한 해 평균 2만 명이나 되었고, 주로 전쟁에서 잡아 온 포로나 다른 종족이었다고 합니다.
코르테스가 이끄는 에스파냐 군대는 막강한 아스텍 제국의 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습니다.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한 에스파냐 군대는 아스텍 군대를 상대로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요. 하지만 코르테스는 몬테수마 황제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자신들의 거처에 머물게 했어요. 황제를 보호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감금한 상태였지요. 결국 황제는 목숨을 잃었고 아스텍 사람들은 에스파냐 군대를 테노치티틀란에서 몰아냈어요. 에스파냐 병사들은 테노치티틀란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에스파냐 병사들이 이렇게 많이 죽게 된 것은 싸움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황금을 갖고 탈출하려다 호수에 빠져 죽은 것이었어요.
테노치티틀란을 탈출한 코르테스와 부하들은 쿠바로 돌아가지 않고 아스텍 제국에 반대하는 원주민들과 손을 잡고 테노치티틀란을 공격했어요. 전쟁은 3개월 동안 계속되다가 유럽에서 들어온 천연두가 퍼지면서 끝을 맺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아스텍 사람들이 처음 접한 천연두 때문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지요. 에스파냐는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여러 나라를 정복할 때도 원주민에게 치명적인 천연두를 이용했습니다. 결국 천연두 때문에 거대한 아스텍 제국은 멸망하게 된 셈입니다.
에스파냐 사람들이 환상적인 도시로 기록하고 있는 테노치티틀란과 틀라텔롤코는 정복자 코르테스에게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황금과 보석만이 필요했습니다. 정복자들은 궁전과 신전을 가리지 않고 파괴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황금으로 만든 귀중한 유물들을 쉽게 운반하기 위해 모두 녹여 금괴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에스파냐 사람들은 테노치티틀란과 틀라텔롤코를 하나둘씩 파괴했습니다. 거대한 아스텍 제국의 흔적들은 폐허가 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답니다. 에스파냐 침략자들은 아스텍 제국의 신전과 궁전을 파괴하고 그 위에 식민지를 다스릴 행정 기관과 사법 기관 등을 세웠습니다.
가장 먼저 건설한 것은 헌법 광장이었습니다. 헌법 광장은 아메리카 대륙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드넓은 광장입니다. 에스파냐 사람들이 세운 주요 건축물은 헌법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자리하고 있지요.
코르테스는 아스텍 제국의 궁전을 부수고 그 위에 자신이 머물 궁전을 세웠어요. 이것이 바로 헌법 광장 동쪽에 세워진 웅장한 국립 궁전이에요. 코르테스가 에스파냐로 돌아간 후에는 에스파냐 국왕을 대신한 부왕 멘토사가 집무실로 사용했어요. 이후 국립 궁전은 170년 동안 에스파냐의 권력자들이 머물렀던 잔혹한 식민 통치의 중심지가 되었지요. 오늘날 볼 수 있는 국립 궁전은 1692년에 화재로 사라진 것을 새롭게 지은 것입니다.
국립 궁전 북쪽에는 에스파냐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최초로 세운 종교 건축물인 대성당이 있어요. 총 14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대성당은 공사를 시작한 지 약 250년이 지난 19세기 초반에 완공되었지요. 건축 기간이 길어서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등 여러 양식이 섞여 있지만 전체적인 균형이 매우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어요. 대성당 옆에는 1768년에 완공된 사그라리오 예배당이 있어요.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사그라리오 예배당은 멕시코에서만 볼 수 있는 멕시코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입니다.
헌법 광장 북쪽에는 틀라텔롤코 유적지가 남아 있어요. 아스텍 유적,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의 유적, 현대의 건축물이 함께 있다고 해서 삼문화 광장으로 불리는 곳이지요.
아스텍 제국 최대의 상업 도시였던 틀라텔롤코는 아스텍 병사들이 에스파냐 군대에 대항하여 최후의 전쟁을 벌였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스텍 전사들은 이곳에서 에스파냐 군대를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틀라텔롤코를 점령한 에스파냐 군대는 테노치티틀란에서처럼 신전과 시장을 모두 파괴하고 그 자리에 자신들의 신앙심을 상징하는 종교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에스파냐 사람들이 이곳에 건설한 종교 건축물이 바로 산티아고 성당으로, 파란만장한 멕시코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멕시코시티에는 광산과 보석광산의 주인이었던 에스파냐 부자들이 살거나 사용했던 건축물들도 많이 남아 있어요. 16세기에 지어진 타일의 집을 비롯하여 에스파냐와의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우구스틴 황제가 살았던 저택, 국립 극장 등 흥미로운 유적지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멕시코시티는 역사가 오래된 도시입니다. 기원전부터 사람들이 살았고 아메리카에서 발생한 여러 문명의 중심지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인간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잔혹한 일이 벌어진 현장이기도 하지요. 태양신을 위해 사람의 가슴을 돌칼로 가르고 심장을 꺼내어 바쳤던 끔찍한 곳이자 침략자에 의해 오랜 역사가 파괴된 장소입니다. 멕시코시티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은 다른 문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은 멕시코에서 가장 큰 박물관입니다. 각기 다른 문명에 관한 유물이 전시된 12개의 전시실과 멕시코 각 지방의 민속과 풍물을 엿볼 수 있는 민속관으로 구성되어, 멕시코에서 탄생하고 발전한 문명과 문화의 흔적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는 테오티우아칸 유물이 전시된 제5 전시실과 아스텍 문명의 흔적이 가득한 제7 전시실, 그리고 마야 유물이 전시된 제10 전시실을 꼽을 수 있습니다. 테오티우아칸 전시실에서 돋보이는 것은 케찰코아틀 신전 일부를 복원한 유물입니다. 원래 6층으로 이루어진 케찰코아틀 신전 가운데 3층 부분을 복원해 놓았는데, 신전에 새겨진 깃털 달린 뱀 형상이 인상적입니다. 박물관 중앙에 있는 아스텍 전시실에는 유명한 태양의 돌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가득합니다. 이곳에는 에스파냐 군대가 파괴하기 전 아스텍 제국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을 축소한 모형도가 있어, 당시 테노치티틀란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 곳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야 전시실은 기원전 600년 전부터 싹트기 시작한 여러 지역의 마야 문명에 관한 유물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박물관 바깥에는 테오티우아칸의 정원을 축소한 공간과 신전과 벽화 등 다양한 문명의 흔적을 복원한 유물이 가득합니다.
멕시코시티 삼문화 광장 북쪽에는 아주 특별한 성당이 한 곳 있습니다. 멕시코 사람들에게는 기적의 장소로 알려진 과달루페 성당입니다.
1531년 12월, 후안 디에고라는 인디언 앞에 성모 마리아가 2번 나타나면서 이곳에 성당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후안 디에고가 본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보는 마리아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를 가진 인디언의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과달루페 성당의 성모 마리아도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당이 완성되자 멕시코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인디언과 멕시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과달루페 성당은 곧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입구에서부터 걷기를 포기하고 무릎만 써서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성모 마리아의 축일인 12월 12일이 되면 멕시코 전역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를 생각하며 무릎으로 기어서 성당으로 들어갑니다.
처음 세워진 성당은 땅이 약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지금은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를 대신하여 1976년, 바로 건너편에 보다 큰 건물을 세웠습니다. 과달루페 성당은 가난한 멕시코인들과 인디언들에게 현실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해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주는 성스러운 곳입니다.
멕시코시티의 문화유산을 감상하려면 헌법 광장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멕시코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광장인 헌법 광장은 과거 아스텍 제국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의 심장부로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헌법 광장에서는 국립 궁전, 에스파냐가 아메리카에 세운 최초의 종교 건축물인 대성당, 아름다운 조각으로 유명한 사그라리오 예배당을 모두 감상할 수 있습니
에스파냐 사람들이 완전히 파괴하여 옛 아스텍 제국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헌법 광장은 그 자체가 아스텍 제국의 중심지였습니다. 물론 옛 왕국 터에는 식민지를 다스렸던 에스파냐 부왕이 살던 국립 궁전이 세워져 있고, 옛 신전 위에는 대성당이 세워져 있지만 말입니다.
헌법 광장은 긴 세월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원주민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매일 아스텍 문화에 관한 흥미로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공연의 내용은 자주 바뀌지만 과거 이곳을 지배했던 용맹스러운 아스텍 군인과 인디오 복장을 하고 의식을 올리는 광경 등 각종 공연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매일 아침이면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헌법 광장은 오늘을 살아가는 멕시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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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은 뜨거운 오후에 가벼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길거리 타코를 찾게 마련이지만 유념해둘 사실이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타코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 이후의 식사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오후의 식사를 가장 거나하게 먹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시간을 제외한다면 곳곳의 타코 가게에서 갈아구운 고기, 석류 알맹이, 허브와 채소, 각종의 살사 소스가 뒤섞인 맛의 향연에 동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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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멕시코의 인종>
1.메스티조
스페인어로 혼혈인이라는 뜻을 지닌 '메스티조'는 백인과 원주민인 인디오간의 혼혈인을 말하며 멕시코인의 약 55%를 점하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신대륙에 도착해서 한 재산 모아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인디언 처녀들은 그들과 새로운 삶을 꾸리기 위한 대상이 아니었고 당연히 그들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메스티조)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그 아이는 어머니 손에 전통적인 인디언 방법으로 양육되어 질 수밖에 없었고 이들 메스티조의 수는 점차 늘어갔다.
2.백인
멕시코의 백인은 주로 스페인계이며 메스티조 국가인 멕시코에서도 이들은 대부분의 고위관직을 독점하고 있다. 300여년간의 스페인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이들 백인들 사이에는 '뻬닌슐라레스'와 '끄리올요'라는 신분 구분이 생겨났다.
'뻬닌슐라레스'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백인으로 정부,군대,교회의 요직을 독차지하는 지배층이었다. 따라서 지배층의 부인들은 단지 자식을 분만하기 위해 수개월의 고통을 참으며 스페인으로 가기도 했다.
'끄리올요'는 아메리카 태생의 백인으로 경제적 부와 지식이 풍부하더라도 고위 공직에 오를 수 없었다. 부모가 스페인의 고위 귀족이라도 그 자신이 아메리카에서 태어나면 '끄리올요'로 간주되었다. 이들의 불만은 후에 스페인으로 부터의 독립전쟁을 주도하게 되고 독립을 달성한 후에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어떠한 개혁에도 반대하는 집단이 되었다.
따라서 중남미의 독립은 새로운 근본적인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지배층이 '뻬닌슐라레스'에서 '끄리올요'로 바뀌는 변화만 있었을 뿐이다.
3.인디오
유럽인들이 도래했을 때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종족을 말하며 멕시코에는 아즈텍 제국이 있었고 고도로 발달한 정치체재와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아즈텍 제국의 이 구는 2천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주로 농장과 광산에서 각종 노역에 동원되었으며, 일부인디오는 적은 규모의 농지를 소유하기도 했으나 대다수는 토지가 없는 노동자로 머슴과 같은 생활을 하였다. 그렇게 수백년이 지나면서 백인지주와 인디오 노동자는 충성과 보호를 주고받는 주종관계로 정착되었다.
나라에 따라서는 인디오라는 개념도 모호하다. 원주민이라는 존재가 미개지역 낙후지역이라는 상징으로 간주되는 것을 우려해서 숫자를 줄여 발표하고 있다. 스페인어를 어느정도 이해하면 메스티조로 간주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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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
▷ 멕시코시티 개요
중남미 제1의 도시인 멕시코시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 1천만명, 해발 2,240m에 위치해 있다. 1811년 이달고의 독립선언으로 몇 번의 전투 끝에 1821년 독립 되었고 1860년에 멕시코시가 수도가 되었다. 멕시코 시티는 멕시코 연방구라는 의미인데 워싱턴 D.C와 마찬가리로 중앙정부의 직할구로 되어있다. 요즘은 조상이 물려준 많은 문화 유적을 보건하는 데 정성을 다하고 있으나 현재 1백만 대가 넘는 차량으로 오염과 교통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멕시코의 지하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많으므로 도시전체가 미발굴의 대 유적지라 할 수 있다.
▷ 멕시코시티 볼거리
소깔로 광장(Zocalo)
소깔로는 '기반석'이라는 의미로 원명은 헌법광장이었으나 1843년 Santa Anna대통령이 독립기념탑의 기반석을 놓으면서 이름을 소깔로로 바꾸었다. 1520년에 꼬르떼스가 만들었으며 주변의 파괴된 아스떼까 건물에서 가져온 돌로 포장을 한 사방 240m의 넓은 광장이다. 이 광장은 아스테카, 스페인 식민지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멕시코의 심장부로서 다양한 인간들의 애환을 보아왔다.
콰우테모크 상
아스테카 제국 최후의 황제로서 현대 멕시코의 국민적 영웅이기도 한 콰우테모크의 상이다. 오른손에 든 창을 당장 던질듯한 기백에 찬 형상은 스페인 국내에 최후의 결전을 감행하던 때의 모습같다.
레포르마 대로
멕시코시티의 메인 스트리트로 서부에서 북동부로 뻗어있다. 막시밀리안이 19세기 중반 파리의 샹제리제 거리를 모델로 해서 건설하게 한 것이라고 한다. 가로수가 늘어선 대로를 따라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갖가지 기념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과달루페 사원
멕시코의 수호신인 과달루페 성모를 기리는 성당으로 수세기 동안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을 하였다. 일 과달루페 성모의 날인 12월 12일에는 더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다. 현재는 붕괴의 위험이 있어 1976년 새로 건설한 성당을 지어 미사를 드리고 있다.
테오티와칸
멕시코시 북동쪽 50km에 위치한 가장 큰 고대도시이다. 70m 높이에 248계단인 해의 피라밋과 많은 피라미드들은 야간 개장을 하는 때에는 조명 장치를 하여 더욱 볼만하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비중있는 박물관중에 하나로 1960년대 초에 세워진 곳이다.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갈 때에는 따로 요금을 지불하여야 하며 플래쉬는 사용하지 못한다.
국립 궁전
현재는 대통령 관저와 국립 문서고, 재무부가 있는 건물로 원래 목떼수마 2세의 궁전이었다. 안뜰 벽면에는 디에고리베라의 멕시코 역사에 관한 무랄이 있다.
한국정
'님 계신 데 바라보니'라는 시조가 기둥에 적혀 있어 고향을 그리는 멕시코 교민의 마음을 달래 주고 있는 한국정은 멕시코와 한국 양 국민의 우호 증진을 위해 세워진 누각이다.
<기타 상세>
I. 지리
위치 면적
멕시코는 미국과 카나다와 함께 북미 대륙에 위치해 있다. 그리니취를 기준으로서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태평양 연안에 바하 캘리포니아 해변으로 118 27' 24'' 서쪽 메리디안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86 42' 36" 카리브해안의 무 헤레스 섬까지 북쪽으로는 32 43' 06 & QUOT;선 미국과 경계하며 남쪽은 14 32' 27 & QUOT; 선 과테말라 경계선에서 수시아떼 강 아귀까지 이른다.
국가 면적은 1.964.381.7 km2로 그중 1,959.248.3 km2는 대륙이며 5,133.4km2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에서 열네번째로 면 적이 큰 나라이다.
북으로는 3,152.2km를 미국과 접하고 있고, 과테말라와 1,149.2km (남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카나다 다음으로 총 11,122. 5km의 가장긴 해변을 자랑한다.
.정치.행정 구조
멕시코는 32개의 행정 구역이 있다: 31 개의 주와 1개의 연방 구역인 수도 멕시코 시가 있다.
1. 아구아스 깔리엔떼스
2. 바하 캘리포니아
3. 남 바하 캘리포니아
4. 깜뻬체
5. 꼬아우일라
6. 꼴리마
7. 치아파스
8. 치우아우아
9. 연방구역
10. 두랑고
11. 멕시코
12. 구아나후아또
13. 게르레로
14. 이달고
15. 할리스코
16. 미초아깐
17. 모렐로스
18. 나야릿트
19. 누에보 레온
20. 구아하까
21. 뿌에블라
22. 께레따로
23. 낀따나 로
24. 산 루이스 포토시
25. 시날로아
26. 소노라
27. 타바스코
28. 따마울리빠스
29. 뜰락스칼라
30. 베라끄루스
31. 유카탄
32. 사까떼까스
멕시코 국기
멕시코 국기의 뜻은 다음과 같다:
녹색: 희망, 땅의 비옥함
흰색 : 청결함 (순결)
빨강: 독립전쟁때 흘린 피
전설에 의하면 희망의 땅을 찾고 있었던 아즈텍
인들은 그들의 신, 우실로뽀츠틀이 독수리 한 마리가 선인장 위에서 뱀을 삼키는 것을 보면 그곳에 정착하라고 지시하여 오늘의 멕시코 시인, 떼노치띠뜰란을 세웠다고 한다.
토양
멕시코 토양은 불규칙하며 산과 평지 계곡 고원들이 주류를 이룬다.
주요 화산들이 가장 높은 산들을 이루고 있으며 삐꼬 데 오리사바가 해발 5,610 미터로서 가장 높은 산이다.
천연 자원
멕시코는 지리적 위치, 지형, 기후, 하천, 산악지, 지질학적 특성으로 인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다양한 생태학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토지와 다양한 식물군 자원은 전 세계 모든 종자들이 거의 다 찾아볼 수 있다.
지역에 따라서 거의 수목이 분포 하지 않는 사막도 있고, 만년설이 덮인 지역도 있다.
우림 지역에서는 40m의 수목으로 덮여 있으며 연평균 강우량 4,000 mm 까지 이른다.
이런 극적인 지역사이엔 넓은 초원과 산마다 소나무, 상록수, 야자수, 정글 여러 각도의 송 , 잎과 양해변 남부지역엔 매우 발달된맹그로브가 있다. 그리고 선구식물은 해변 모래 사장근처에서 서식한다.
재생 불능의 자원으로서는 석유와 은을 언급할 수 있다. 1997년말 석유 보유량은 609억 배럴로 추정한다. 또한 멕시코는 세계 제 1위의 은 생산 국가로 1996년엔 생산량이 2.536.465kg에 달하였다.
기후
Warm : 연평균 26°C 섭씨 (78-80°F 화씨)
Cold : 연평균 10° (50F)
전국 93% 지역에서 연평균 50-78°F (10°- 26° C)
그 중 23% 는 Warm Sub Humid 기후
28%는 건조 기후
21%는 매우 건조한 기후
21% Temperate Sub Humid
정부
멕시코는 헌법이 규정하는 바에 따라 대의 민주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로 구성 되어있다.
국가는 32개의 행정. 정치. 구역 그 중 31개는 독립 주권을 가진 주이며 행정부의 소재지인 연방 구역 국가의 수도가 위치한 곳 이다.
멕시코 대통령은 6년 단임제이며 에르네스토 세디요전임 대통령에 이어 2000년 12월에 취임한 폭스가 현 대통령이다.
II. 인프라 구조
.통신
1996 년에 멕시코 는 247 440 km 의 포장 도로와 26 623 km 의 철로, 53개의 국제 공항 30 국내 공항 149 항구 8.826.000 전화선이 서비스 되고 있다.
III.인구
총인구 증가률
1995 년 말 인구 가구 조사 결과에 의하면 1995년 말 멕시코 인구는 9120만명으로 세계 11위를 기록하였다. 이런 결과를 고려할 때 1995년 연간 인구 증가 률은 약 1,8%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통계청이 발표에 의하면 2002년 8월말 현재 1억이 훨씬 넘는 것으로 집계 되었다.
이런 추세로는 멕시코 인구가 39년후엔 두배로 증가할 것이다.
성별 연령 별 인구
최근 유소년층의 상대적 비중의 감소 추세에도 불구 하고, 멕시코 인구는 여전히 청소년측이 두텁다.
2001년 말에는 15세 미만 인구가 35%였지만 1970년엔 46.2%였다. 1970년에 평균 연령은 16세 였지만 2001년말에는 46.2%였다.
65세 이상의 인구비는 2001년말 기준으로 4,5%로서 아직은 소수이지만 1970년에 3,7%였던 것을 고려하면 증가된 수치다.
성별로 보면 남녀 비율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남성은 49.3%이며 여성은 50.7%이다.
그러나 연령별 성 차이 격차의 육곽은 뚜렷이 드러난다.
남성 출생률과 사망률은 높고 이민 경우에도 남성 이민자가 더 많다. 청장년 층에선 남성이 더 많고 노년층인 경우엔 여성이 훨씬 많다.
인구 밀도
2001년 인구 밀도는 1 km2 당 46명이다. 그러나 지역별 인구 밀도 상황의 격차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남 바하 캘리포니아, 치우아우아, 소노라, 깜뻬체, 두랑고, 꼬아우일라는 1km2 당 15 명 이하이며 수도 멕시코 시는 1km2 EKD 5 660 명 이며 멕시코 주 의 인구 밀도는 545 명이다. 이러한 다양한 분포는 인구와 주 면적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인구는 대 도시에 집중되어 있고 멕시코 시, 구아달라하라 몬테레이 시 같은 경우엔 전국 면적의 2%를 차지하지만 인구의 25%가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인구의 1/4은 농촌지역에서 거주하며 2500명이 넘지 않는 마을에서 살고 있다. 1990년엔 전체 마을들의 95%는 주민수가 2500명을 넘지 않았다.
기본 시설
2001년 인구 가구 조사에 의하면 멕시코에선 2100만 가구가 있었고 그 중 74.7% 하수도 시설을 갖춘 가구이었다.
85.6% 상수도 시설 그리고 93.2%는 전기 서비스를 공급 받는다.
교육
2001 년에 15세 이상 인구의 9.6% 문맹이었다. 6-14 세 상이 인구의 92%가 학교 교육을 받고 있다.
2000-2001 학년도엔 350만명의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전 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1470만명이 초등교육을 받고 있으며 480만명이 중학교 교육, 260 만명이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육은 160만명이 받고 있다.
보건 건강
2001년 멕시코는 인구 10만명마다 122.5명의 의사가 있었고 10만명당 171.6명의 간호사 그리고 인구 10만명마다 73.0개의 병상이 있다.
IV. 경제
경제 활동
1997년 멕시코 국내 총생산(GDP)은 4025억 411만 달러로 세계경제 11위를 기록 하였다. GDP구성은 다음과 같다: 6.1% 농축산, 2 8.3% 공업, 65.6% (76.5%는 제조업), 서비스업 (그 중 32%가 상업, 요식업, 숙박업에 해당한다) 원유 생산은 일일 3백 2만 2천 배럴에 달한다.
.경제 활동 인구
1995년 인구 조사에 의하면 경제 활동인구는 35,877.338 명이다. 이는 노동인구 65,302,763명의 54.9% 이다.
멕시코는 천혜의 관광자원 보국으로 전국에 걸쳐 관광지가 산재해 있다. 멕시코 관광시 다양한 볼거리를 최단시간과 코스로 보려면 관광지식을 갖춘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 등 정확하고 세심한 스케줄을 작성해야 한다.
멕시코 시티
수도인 멕시코 시티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명소는 역시 소깔로 광장과 차뿔떼빽 공원이다. 유흥을 위한 소나로사 지역도 돌아볼 만 한 곳이다.
1)소깔로 광장
소깔로 광장에는 250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건축하여 카톨릭 성지가 된 대성당(Catedral)과 현재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국립궁전(Palacio Nacional) 및 아스떼까 문명의 유적지인 Templo Mayor 등이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또 Templo Mayor옆의 작은 광장에서 벌어지는 토속민들의 민속놀이 공연도 이국적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볼거리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한국인들의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2)차뿔떼빽 공원
옛날 왕이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크기가 워낙 넓어서 걸어서는 도저히 볼 수 없다. 호수, 동물원, 식물원을 비롯해서 대규모 국립극장이 자리하고 있고 넓은 호수를 가득 메운 잉어 떼는 그 규모에 탄성을 지르게 한다. 이 공원에 자리한 국립 인류박물관은 세계적인 규모로 누구나 한번 꼭 가 볼만한 곳이다. 특이한 것은 평일에는 유료이며 휴일에는 무료이다. 서민들이 휴일을 즐기도록 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3)소나 로사 지역
이곳은 한국의 이태원처럼 관광객을 위한 특구처럼 되어 있다. 토산품 가게가 있고 호텔과 많은 유흥 음식점등이 있다. 한국인들의 교민상권의 밀집지역이기도 하며 이 주변에만도 식당, 술집은 물론 미용실, PC방, 여행사, 교회, 선원, 비디오가게, 서점, 노래방 등 많은 가게들이 한국인 주인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으며 이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에 거주하거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많아 길거리에서 언제나 한국인을 마주칠 수 있다. 수도 및 지방에 사는 2만여 명의 한국인들의 상권의 중심지역이다.
이 이외에도 수도 멕시코시티 주변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있다. 건강에 좋아서 자주찾는 유황온천이 있고 수도에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똘란똥고는 산허리를 끼고 전체가 하나의 폭포처럼 온천수를 뿜어내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이 주말 휴식처로 가장 많이 찾는 똘루까등은 모두가 한번쯤 가 볼만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