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노꼬메오름
부산일보 기사 입력 : 2016-07-06 19:09:19 수정 : 2016-07-12 11:13:18
제주 사람들이 피서 가는 곳, 고된 일상 내려놓는다
노꼬메오름 정상에 서면 한라산과 주변의 크고 작은 오름 등 제주도 중산간의 아름다운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맘때 피는 산딸나무와 산수국도 산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제주 여행을 많이 다녀봤단 사람도, 노꼬메오름(833.8m)이라면 고개를 갸웃한다. 제주에 산 지 2년이 넘은 지인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했다. 해발 800 고지가 넘고, 한라산과 제주 시내가 한눈에 보이며, 여름에는 냉장고를 방불케 하는 서늘한 고원지대. 구름이 한라산을 숨겼다가도 '한 번만~' 하고 읍소를 하면 순식간에 보여주는 설문할망의 현신 같은 장소, 노꼬메오름을 제주산악회의 추천을 받아 '산&길' 취재팀이 다녀왔다.
■참 높고 높구나 '놉고메'
한라산은 제주도에서 가장 큰 오름이다. 제주도의 산은 모두 오름이라고 보면 되는데 360개가 넘는 오름이 제주 곳곳에 있다. 노꼬메오름은 그중 한라산을 제외하고 제주 산악인이나 제주 시민이 즐겨 찾는 오름 가운데 손에 꼽는다고 제주산악회 전양호 부회장이 추천했다.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는 오름도 아니고, 원시림이 울창해 접근조차 불가능한 곳과 달리 노꼬메오름은 편안한 접근성은 물론 등산로도 잘 정비돼 있었다.
여름에도 냉장고같이 서늘한 곳
소길농장서 8.2㎞ 쾌적한 산길
계곡에 흐르는 물은 천연 '삼다수'
삼나무·편백 빼곡한 원시림 장관
안개인 듯 구름인 듯 몽환적 정상
설문할망 허락 땐 한라산 볼 수도
노꼬메오름은 소길농장 쪽에 있는 큰노꼬메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농장 입구~자연보호 안내판~쉼터~갈림길~큰노꼬메 정상~다시 갈림길~삼거리~야생오소리 서식지~작은노꼬메~765봉~사거리 갈림길~궷물오름~테우리 막사~백중제~사거리 갈림길~상잣길~오랑캐죽을홈~큰노꼬메주차장까지 이어지는 8.2㎞의 쾌적한 산길이다. 쉬엄쉬엄 걸어도 4시간 3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제주경마공원 윗길인 1117번 도로를 가보면 노꼬메주차장으로 가는 농로가 숨어 있다. 차량 내비게이션으로는 노꼬메주차장을 검색하면 안내를 잘해 준다. 제주도 현지인들이 고사리를 뜯으러 오는 곳이다. 노꼬메는 높은 뫼라는 뜻인데 한자로는 고고산(高古山)이라고 했고, 노꼬메를 음차하여 녹고산(鹿高山)이라고도 불렀다지만, 지금은 순우리말 정겨운 이름인 노꼬메로 부르고 있다. 바로 옆에 작은노꼬메가 있어, 큰노꼬메로 구분하기도 한다.
소길목장 상잣길 얕은 돌담 제주공항에서는 후텁지근한 여름 기운이 묻어났는데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이 물씬 풍긴다. 제주산악회 전 부회장 말로는 "제주 사람이 피서를 가는 곳이 노꼬메"라고 했다. 그만큼 고지대에다가 숲이 짙어 시원한 것이다. 노꼬메오름은 특이하게 말발굽 모양의 분화구인데 그 흘러내린 용암이 애월 곶자왈(제주의 원시 숲)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은 빠져나가지만, 마소는 나가지 못하게 해 놓은 미로형 출입구를 지나 곧장 큰노꼬메가 보이는 길로 간다. 한라산에서 구름이 몰려오더니 금세 노꼬메를 가려버린다.
■설문할망의 고운 꽃밭
제주마의 말똥도 정겹다. 노꼬메오름으로 가는 길 위에는 거대한 말똥 무더기가 곳곳에 있다. 사실 말들의 세상으로 사람이 들어선 것이다. 이곳은 소길리 공동 목장지다. 노꼬메에 바싹 접근하자 무덤 몇 기가 나온다. 제주 특유의 무덤으로 돌담을 쌓아 봉분을 보호하고 있다. 산수국이 길섶에 만발했다. 산수국은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꽃잎이 촘촘하게 박혀 그윽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군데군데 나무 평상 쉼터가 있지만 높은 습기로 인해 앉아서 쉴 수는 없었다. 제주 산죽밭을 지나 원시림으로 들어선다. 제법 된비알을 오르는데 여성 한 분이 인기척에 놀랐는지 가지 않고 경계를 한다. 평일인데도 노꼬메오름은 등산하는 사람이 많아 한적하지는 않다.
주변이 확 트이는 능선에 올라섰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몽환적인 풍경이다. 작은노꼬메 갈림길을 지나니 정상까지는 일사천리다. 구름 속을 걸어 넓은 전망대에 도착했다. 한라산과 중산간, 주변 오름들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인데 너무 아쉬웠다. 저 멀리 구름 속에서 한 사람이 온다. 올라오면서 만난 그 여성이었다. 하필 부산이 고향인 진효연 씨였다. 부천에 살고 있다는 중년의 이 여성은 힐링 여행 차 1박 2일 일정으로 제주에 왔다가 친구 소개로 혼자 노꼬메를 올랐다.
융단처럼 깔린 제주조릿대 그때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더니 갑자기 사위가 환해졌다. 한라산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노꼬메로 이어지는 산록엔 산딸나무가 군데군데 피었다. 제주도를 만든 전설의 그 설문할망이 숨겨둔 화원이던가. 모두 넋을 잃고 운명처럼 다가온 풍경을 감상한다. 큰노꼬메와 작은노꼬메 사이 골짜기로 궷물오름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 이 길을 버리고 작은노꼬메로 오른다. 고비와 관중, 삼나무와 편백이 빼곡한 원시림이 펼쳐진다.
■테우리와 말이 어울리던 곳
작은노꼬메 중턱에 야생오소리 서식지가 있다. 원시림이 울창하니 야생동물이 살지 못할 이유가 없겠다. 작은노꼬메는 가까웠다. 역시 말발굽처럼 생긴 오름 정상을 휘돌아 하산한다. 임도와 등산로, 산책로가 혼재돼 있으나 이정표만 잘 보고 간다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산딸기가 지천이어서 걸음을 자주 멈춘다.
내친김에 궷물오름도 오르기로 했다. 597m로 육지 웬만한 산 높이의 궷물오름이지만 고도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평지 지형이 거의 500~600m이니 그랬다. 궷물오름 정상의 초원에서는 한라산 조망이 좋다. 방금 내려온 작은노꼬메와 큰 노꼬메도 우뚝 솟은 배경이 되었다. 농장지대답게 테우리(목동의 제주 사투리)가 마소를 돌보다 악천후를 피해 머물던 막사가 복원돼 있다. 돌로 만든 집이라 웬만한 눈보라나 비바람에도 문제없겠다.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연못이 있다고 해서 가보니 백중제다. 이곳 연못에서는 백중날이면 제를 올린다고 했다. 연못의 물은 바로 먹을 수는 없었고, 대신 그 옆 계곡에 흐르는 물은 천연 '삼다수'여서 빈 물통을 가득 채웠다. 길가에 지천인 산딸기도 틈나는 대로 따 먹었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산록에 희게 수놓은 듯한 산딸나무 다시 사거리 갈림길에 섰다. 여기서부터 상잣길을 따라 걷는다. 잣성은 조선 시대 중산간 목장 경계용 돌담이다. 상잣길은 마소가 한라산으로 잘못 들어가 얼어 죽는 것을 막기 위한 돌담이고, 하잣길은 마소가 농지로 들어가 농작물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는 돌담이다. 최근 복원된 상잣길 돌담을 따라 노꼬메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오른쪽은 드넓은 초지이고, 왼쪽은 원시림이다. 그 경계를 따라 노꼬메오름 입구로 돌아 나온다. 중간에 이죽을홈이라는 특이한 지명이 있어 안내문을 보니 왜구가 노략질한 후 숨어 있다가 몰살당한 곳이라고 한다. 산행을 마치고 나니 기어코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문의: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취재 협조=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
[제주 서부지역 오름 중 관광객과 도민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인 큰노꼬메오름(833.8m) 정상에 서면, 제주도 서부 지역 전체를 일망무제로 조망할 수 있다.
제주도 북부지역을 조망하려면 어승생악이 최고이고, 제주도 동부지역 최고의 조망대는 다랑쉬 오름이고, 제주도 남부지역을 감상하려면
굴메 오름(군산오름이라고도 부름)과 고근산이 제 격이다.]
[노꼬메 오름 정상에서 북쪽으로는 제주시 애월읍의 하귀포구가, 북동쪽으로는 족은노꼬메오름(774.7m)과 그 뒤로 제주시가, 동쪽으로는 어승생악(1,172m)이, 동남쪽으로는 한라산 정상(1,947m)과 한라산 1100고지가, 남쪽으로는 서귀포시 안덕면의 군산오름(334.5m)이, 남서쪽으로는 서귀포시 안덕면의 산방산(395m)과 제주시 애월읍의 바리메 오름(763.4m)이, 서쪽으로는 제주시 한림읍의 비양도가, 서북쪽으로는 제주시 애월읍의 렛츠런파크제주와 그 뒤로 멀리 곽지해수욕장과 과오름(156.7m)이 조망된다.]
[큰노꼬메오름은 제주 북서쪽 중산간에 위치해 있으며 바로 옆에 노꼬메족은오름이 나란히 서 있다. 높고 뾰족한 오름이 노꼬메큰오름이고 그 옆의 낮은 오름이 노꼬메족은오름이다. 큰노꼬메오름은 해발 833.8m의 높이와 가파른 사면을 이루고 두 개의 봉우리를 품고 있는 큰 화산체다. 북쪽의 봉우리가 주봉으로 정상이고 화구 방향인 북서쪽에 소구릉들이 산재되어 있으며 원형 화구였던 것이 침식되어 북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루었다. ‘노꼬’의 어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한자표기가 鹿古岳(녹고악), 鹿高岳(녹고악)등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에 근거하여 옛날 사슴이 내려와 이 오름에 살았었다는 것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설이 있다. 오름 탐방로 초반에는 완만한 숲길이 이어지다가 가팔라지지만, 중간에 두 개의 쉼터가 있어 숨을 고를 수 있다. 큰노꼬메오름의 정상 전망에 서면 족은노꼬메오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오름들이 펼쳐지고 한라산과 한림 앞바다가 선명하게 보인다. 가을에는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노꼬메오름
노꼬메오름(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표고 834m)은 주변의 족은노꼬메오름(표고 774m), 궷(궤)물오름(표고 597m)과 같이 오름군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모두 외견상 말굽형 분석구로서, 노꼬메오름와 노꼬메족은오름은 북서쪽으로 트인 반면, 궷(궤)물오름은 동쪽으로 열린 방향을 가진다.
노꼬메오름은 애월 곶자왈 지대를 구성하는 조면현무암 조성을 지닌 아아 용암의 분출 근원지이다. 용암 시료에 대한 Ar-Ar 연대 측정 결과, 26.4±13.2Ka를 나타내어 약 2만 6천 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아아 용암이 분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분화구의 굼부리 높이가 비대칭을 이루고 있는 노꼬메오름은 분화구 서쪽 내부(표고 625~670m), 약 1m 두께에서 시작하여 최대 약 10m 가량의 용암 절벽이 노출되어 있다. 약 1m 두께인 4~5매의 아아 용암이 상하 50cm~1m의 클링커층과 함께 노출되어 있어, 최대 5회 가량 화구로부터 용암이 분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형태를 달리하는 분석구
화산 분화구로부터 폭발에 의해 터져 나온 스코리아가 집적되어 만들어진 원추형의 화산체를 분석구라 한다. 분석구는 마그마에 들어있는 가스가 폭발하여 만들어지는데, 마그마에 휘발성분이 적어지면 용암이 분출하게 된다. 이 용암은 분화구 내에 모여 용암호(lava lake)를 만들게 되는데, 용암은 스코리아보다 무겁기 때문에 분화구에 모여 있던 용암은 분석구 바닥이나 사면의 약한 틈을 따라 스코리아층을 붕괴시키면서 분화구 바깥으로 흘러 내려가게 된다. 스코리아는 용암에 비하여 매우 낮은 비중을 갖기 때문에 분석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붕괴된 분석구의 일부분을 싣고 마치 땟목과 같이 멀리까지 흘러가게 된다.
이 현상은 우유 컵에 후레이크를 넣고 컵을 기울여 우유를 쏟으면 우유 위에 후레이크가 떠서 흘러가는 양상과 유사하다. 이 결과 원추형의 분석구는 원래 제 모양을 잃게 되어 말발굽 혹은 초승달형 등의 모양을 갖게 된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분석구는 외형적 특징에 따라 말굽형, 원추형(예, 다랑쉬오름), 원형(예, 아끈다랑쉬오름) 그리고 화구가 두 개 이상인 복합형 오름(예, 용눈이오름, 도너리오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말굽형 오름은 약 50%에 달한다.
[궷물오름&큰노꼬메오름&족은노꼬메오름]
산행개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