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의원 [나] 선거구 기호 2번 장옥자(자유한국당) 후보 개소식
기호 2번 괴산군의원 나 선거구 장옥자 자유한국당 후보가 26일 선거사무실 개소식을 마치고 6.13전국동시지방선거전에 나섰다.
이날 장 후보 개소식에는 박덕흠(동남부4군)의원 자유한국당 도당 위원장, 송인헌 괴산군수 후보, 괴산 각 지역 출마자, 전 군의장 오용식, 감물, 불정, 연풍, 장연 지역 지지자들과 가족 친지 지인들이 함께 개소식을 축하했다.
장옥자 후보는 인사말에서 어려웠던 학창생활 이야기를 하였으며, 시어머니를 소개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은 장옥자 후보의 이야기다
강원도 정선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충북 제천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넷째였던 저는 어린 시절 꽤 영특했지만 집안사정으로 상급학교 진학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늘 아프셨던 어머니곁에서 몇 년의 세월을 보내고 그 후 서울로 상경해 전자제품 조립공장에 취직을 하여 다니던 중 청주에 있었던 대농이라는 방직공장에 산업체
부설학교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스물한 살 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교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고단했지만 행복하고 보람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는 제 홍보 명함에도 나와 있지만 양백여상입니다.
8시간 3교대 근무를 하면서 6시간의 학교 수업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 바쁘게 뛰어다닐 때 저의 평균 수면시간은 3~4시간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이어린 동생들은 고된 작업과. 학교수업이 꽉 짜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려는 급우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그들의 맏언니가 되어서 기숙사로, 자취방으로 찾아다니며 용기를 복돋아주며 함께 노력해서 꼭 같이 졸업장을 받자고 위로하며 이끌어주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학교 한 학급수가 68명에서 70명으로 저의 학년이 21개 학급이었습니다. 한 학년을 마칠 때마다 대부분의 학급에서 중도 탁락자가 7~8명씩은 나오곤 했지만 저희 반은 탈락자가 없었습니다.
고3이 되면서 총학생회장이 되었고, 여러 가지 업무로 쉴 틈이 없었지만 천직처럼 일과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 결과 전 학년을 학업우수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3학년 때 저의 나이가 26살이었는데 제 담임 선생님과 저는 동갑내기였습니다. 지금은 청주 일신여고에 근무하고 계시는데 친구처럼 많은 도움을 주셨고 지금은 제자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합니다. 제가 장황하게 저의 학창시절을 말씀드린 것은 저는 오래전부터 주변의 어려운 일들을 보았을 때 외면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함께 동행 하려고 했습니다. 지난 4년의 의정활동도 소소한 말씀도 귀담아 듣고 주민들의 대표로 편리함을 추구하고 불편함을 해결하는 생활정치를 제 신념으로 삼고 활동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과 군민들께 당부 드립니다. 저 장옥자와 함께 다시 한 번 따듯한 동행을 해 주십사 간청합니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주민을 섬기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한결같은 군의원 장옥자 믿고 만들어 주십시오.
오늘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행복 가득한 일만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괴산군의원 나 선거구 기호2번 장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