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선 캠프 ‘脫여의도 구상’…그는 MB가 될 수 있을까 [주간조선] 곽승한 기자. 조윤정 기자 (2021.06.27.)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6월 9일 서울 남산예장공원에 문을 연 우당 이회영 기념관 개장식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21일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 취재진 십여 명이 모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곳에 대선 캠프 사무실을 차린다는 이야기가 돌자 기자들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빌딩 관리인은 “윤석열 캠프가 이 빌딩에 입주한다는 건 명백한 오보”라고 했다. 이날 선거 캠프 사무실 위치와 관련한 문의가 이어지자 윤석열 캠프 이상록 대변인은 “사무실 마련과 관련해 최종 계약 여부는 알지 못한다”라면서 “이마빌딩을 포함해 서너 곳을 놓고 조율 중”이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윤석열 대선 캠프가 어느 빌딩에 들어설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위치는 여의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마빌딩을 포함해 광화문 인근에 사무실을 차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석열 캠프 최지현 부대변인은 지난 6월 24일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종로, 광화문 일대로 몇 군데 좁혀나가고 있는데 최종 확정은 아직”이라며 “(다만) 이마빌딩이 제일 유력한 옵션”이라고 말했다.
◇ “이마빌딩이 제일 유력”
윤 전 총장이 광화문이나 종로 일대에 캠프를 마련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전언이다. 일단 윤 전 총장은 사주·역술·풍수 등에 관심이 많다. 오랜 기간 그에게 조언해 온 고령의 역술인도 존재한다. 이마빌딩 등은 풍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표적 명당으로 꼽힌다. 유명 회계법인이나 기업들이 이곳에 사무실을 마련했다가 이후 사세를 확장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다른 이유는 대선에서 캠프 위치가 함축하고 있는 상징성이다. 국회를 거쳐 대통령에 오른 정치인들은 대부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대선 캠프를 차렸다. 현재 출마를 준비 중인 여야 정치인들도 대부분 여의도에 캠프를 꾸리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거나, 탈(脫)여의도 정치를 주장했던 인사들이 주로 시내에 캠프를 마련했다.
이마빌딩은 이회창 전 총재가 1997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며 사무실을 차린 곳이기도 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2년 대선에 출마하며 ‘진심캠프’ 사무실을 서울 종로 공평빌딩에 마련했고, 그보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출마를 준비하던 2006년 ‘안국포럼’이라 불린 대선 캠프를 견지동 서흥빌딩(현 S&S빌딩)에 차렸다. 이회창, 안철수, 이명박. 세 사람의 공통점은 여의도 정치와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대선에 뛰어들기 전까지 아예 정치인이 아니었거나, 또는 기존 정치인과는 다르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회창 전 총재는 국회의원이 되기 앞서 대법관, 감사원장을 거치며 ‘대쪽 판사’ 이미지가 강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현대건설 사장 출신 이력을 강조해 ‘CEO 정치인’으로 불리곤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과거의 ‘여의도식(式) 정치’를 바꾸겠다고 공언해왔다. 안철수 대표는 2012년 대선 출마 전까지 현실 정치 경험이 전무했다. 그는 201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새정치’란 슬로건을 들고나왔다. 공약으로 국회의원 정수 축소까지 내걸었다.
◇ 탈여의도 캠프의 효과
‘탈여의도’ 대선 캠프는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실질적인 행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의도에 선거 캠프를 차리면 자연스럽게 정치권 인사들 위주로 접촉하기 쉽다. 이는 자칫 ‘정치 신인’ 윤석열의 신선도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며 사무실을 따로 차리지 않았는데 당대표 후보 시절 기자에게 “여의도 사무실이라는 게 얼마나 혼란스럽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이랬다. “방도 여러 개일 뿐더러 어떤 사람이 와서 어디다 뭘 놓고 갔는지 알 수도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와서 명함 파달라고 한다. ‘후보는 어디 갔냐, 내가 왔는데 코빼기도 안 비치냐’ 소리지르는 모습들이 전부 구태에 가깝다.”
반면 종로, 광화문 등지에 선거 캠프를 차리면 접촉하게 되는 인사들의 풀이 좀 더 넓어질 여지가 생긴다. 이를 활용했던 것이 MB캠프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여의도에 캠프를 차리면 가장 편한 것은 결국 정치인을 만나기 좋다는 점”이라며 “반면 광화문 인근은 자연스럽게 각 분야 전문가와 시민단체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 전 수석은 ‘이명박 후보’ 시절에 대해 “당시 당의 주류는 친박계였고, 박근혜가 당대표였던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는 비주류에 가까웠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외부에서 외연 확대를 통해 여론의 지지를 얻어내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희망을 국민에게 주면서 중도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략을 짰다. 그 결과 후보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율은 뒤졌지만 일반 국민 여론조사 승리로 뒤집을 수 있었다”고 했다.
2012년 안철수의 ‘진심캠프’ 역시 ‘탈여의도 정치’를 표방하며 종로에 대선 캠프를 꾸렸다. ‘새정치’를 표방했던 안철수는 순수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청년층 위주의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새정치’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안철수 주변에 모였다. 하지만 그는 2014년 민주당과의 합당을 결정했고, 이로 인해 측근 여럿이 그를 떠났다.
2007년 12월 6일 이명박 대선후보가 자신의 선거본부인 안국포럼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photo 이명원 조선일보 기자
◇ 이명박과 안철수 사이
6월 29일 출마선언을 앞두고 있는 윤 전 총장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행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걸었던 길 어디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려 한다는 측면에서 두 사람과 닮아 있다.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놓고 혼선이 계속되는 것도 결국은 이런 윤 전 총장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윤 전 총장은 그동안 국민의힘에서 꾸준히 입당을 권유했지만 불확실한 입장만 되풀이해 왔다. 캠프 첫 영입인사로 알려졌던 이동훈 전 대변인이 사퇴하게 된 과정에서도 입당 여부를 놓고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6월 29일 출마선언에서도 입당의사를 표명할 확률은 희박하다.
개별적으로 보면 과거 BBK 사건과 같은 네거티브 의혹(X파일)을 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슷한 처지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의 이름이 달린 X파일에 대해 괴문서, 정치공작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 정치권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현재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서 연결되고 있는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MB계라는 사실이다. 최근까지 윤 전 총장과 접촉했던 권성동·장제원·정진석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친이계 정치인으로 꼽히는 나경원 전 의원 역시 윤 전 총장과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냈던 인사로 꼽힌다.
정치 입문을 앞두고 윤 전 총장이 보이는 행보나 화법 면에서는 안철수 대표와 닮아 있다. 안 대표는 정치 입문 즈음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나 김종인 전 의원 등을 두루 만나 조언을 들었다. 최근 전문가그룹이란 사람들을 주로 만나온 윤 전 총장의 모습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안 대표의 정치 입문 당시 ‘시골의사’로 잘 알려졌던 지인 박경철씨가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내부에서부터 불거진 바 있었다. 윤 전 총장 역시 공개적 행보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익명의 측근 또는 ‘죽마고우’로 알려진 이철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나서서 ‘입’ 역할을 하고 있다.
◇ ‘새정치’가 아닌 ‘정권교체’ 민심
다만 국민들이 이명박, 안철수에게 요구했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이 과거처럼 강하지 않다는 것은 윤 전 총장이 되새겨야 할 부분이란 분석도 있다. 현재 그에게 ‘새정치’를 요구하는 민심은 많지 않다. 그에게 투영된 민심은 ‘정권교체’다. 지난 6월 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여론은 50%로 나타났다. ‘현 정권 유지를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36%)보다 훨씬 높았다. 윤 전 총장이 정권교체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판단을 한 유권자들이 그에게 지지를 보내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입당을 주저하는 것은 경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상처, 유력후보들과의 경쟁 등이 부담스럽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중도층까지 지지층으로 흡수해 압도적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목표를 내비쳤다. 하지만 여야, 보수와 진보가 극단으로 나뉜 현실정치에서 이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견해도 많다. 즉 ‘지상과제’라 할 수 있는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여론은 외면한 채, 계속해서 ‘자기만의 정치’를 고집한다면 그 피로감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윤 전 총장의 상황에 대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배려론’과 ‘회의론’이 엇갈린다. 과거 ‘안철수계’였던 장진영 국민의힘 동작갑 당협위원장은 배려론을 주장했다. “과거 안철수는 제3지대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은 상황에서 독자 세력을 추진하다 갑자기 유턴해 민주당에 들어가 비난을 샀다. 윤석열은 그런 건(제3지대 정치) 아닌 것 같은데, 다만 현재 국민의힘이 안심하고 뛰어들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민주당이야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으니 윤석열에게 ‘간 본다’고 몰아댈 수 있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바라는 쪽에서는 윤석열을 향해 ‘안철수 같다’ ‘김이 다 빠진다’고 다그치기보다 야권 후보로 어떻게 잘 안착할 수 있을 것인지 배려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 당은 이준석 대표를 필두로 윤석열을 재촉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더 최악의 상황은 윤석열이 안철수를 만나 뭔가 해보겠다고 손잡는 것이다. 그러면 어쩌려고?”
반면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회의론’를 얘기하면서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수와 중도 표심을 잡으면서 ‘탈문(脫文) 진보’까지 한꺼번에 잡겠다? 정치는 그렇게 안 된다. 하나씩 잡아가야 한다. 먼저 지지세가 확고한 보수부터 잡고 차차 외연을 넓혀 중도층을 얻으면 된다. 검찰 특수부 수사는 미리 기획하고 계획에 따라 진행한다. ‘특수통’이라는 윤석열이 아마 자기 나름대로 정치 계획도 세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미리 기획하고 틀을 짜놓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글쎄, 평생 검사만 한 사람이 이 습성을 바꿀 수 있을까.”
2012년 10월 서울 종로구 공평빌딩에 마련된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 민원실. photo 뉴시스
◇ “결국은 여의도에서 승부를 봐야”
최근 불거진 ‘윤석열 X파일 논란’ 역시 혼자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윤 전 총장을 향한 각종 네거티브 공세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쏟아질 전망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도 BBK 주가조작 의혹 등 만만치 않은 공세를 받았지만, 당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인 끝에 이 공세를 방어해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BBK 논란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TF 팀을 구성해 김경준, 에리카 김 등이 있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캠프 인사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런 전례를 보면 결국 윤 전 총장이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썼던 전략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시기가 문제일 뿐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과 손을 잡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대선 출마 초기에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여의도 바깥을 주로 다닐 수 있지만, 본격적인 ‘무대’가 펼쳐지면 여의도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지호 전 국회의원은 “윤석열이 여의도에 가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그가 관련된 의혹들이 유죄냐 무죄냐, 혐의가 있냐 없냐는 서초동 논리다. 여의도 논리는 정무적인 관점에서 돌파해야 한다. 그가 이런 것들에 얼마나 준비됐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가 좀 더 공개적인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요즘 윤석열의 행보를 보면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면서 “일단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했다. 신 교수는 “선별적으로 몇 개 언론사에 인터뷰를 해서 입장을 내고 있다. 요즘 정치인들은 전부 소셜미디어(SNS)에 직접 글을 쓰고 유튜브까지 하면서 소통하고 있는데, 윤 전 총장의 현재 방식은 폐쇄적이고 구시대적이다. 본인이 갖고 있던 신선한 이미지를 다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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