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비우다 읊은 시구
시월 둘째 화요일이다. 가을이 깊어지니 낮은 점점 짧아지고 밤은 더 길어지고 있다. 일교차가 크고 산그늘이 일찍 내려온다. 퇴근 후 산책을 나가보고 싶어도 기온이 서늘하고 빨리 어둑해져 길을 나서기 머뭇거린다. 일과가 끝나면 퇴근을 미루고 학교에 남아 더 할 일도 없다. 퇴근 시각이 다가오면 곧장 교정을 나서 와실로 들면 저녁밥을 지어 먹고 다른 일거리가 없어 무료하다.
초저녁에 잠들어 한밤중 깨기 예사다. 새벽이 오기까지 기다리기 지겨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재방송하는 ‘나는 자연인이다’가 나와 몇 편 보기도 했다. 어쩌다 손흥민이 뛰는 축구 시합 있는 밤이면 시간을 잘 보낸다. 날이 더디 새어 새벽 두세 시 아침밥을 지어 먹기도 했다. 그 얘기를 창원에 건너가 친구에 나누었더니 ‘그건 아침밥이 아니고 제삿밥 수준일세.’라고 했다.
해가 짧아져 퇴근 후 산책은 줄여도 출근길 연사 들녘을 둘러 학교로 가는 걸음은 여전하다. 전에는 다섯 시 반에 와실을 나서면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으나 시월에 드니 어둠이 가시지 않은 때였다. 요새는 십 분 늦추어 다섯 시 사십 분에 와실 현관을 나서도 캄캄했다. 연사 들판에서 연초천 산책로로 올라 둑길을 걸으면 그즈음 날이 밝아왔다. 교정에 들면 여섯 시가 조금 지난다.
주중 연사 와실에 머물면서 고현으로 나갈 일은 없어도 면소재지 삼거리에는 더러 나간다. 세탁물을 맡기거나 농협 마트에 들려 시장을 봐 온다. 작년에는 이웃 학교 지기와 돼지국밥집에 앉아 맑은 술잔을 같이 비웠다. 둘은 정년까지 남은 기간이 나와 같고 사고나 생활양식에서 공통점 있어 서로는 말벗이 되었다. 그런데 지기는 작년 가을 술을 끊어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추석 앞에 이웃 학교 지기와 맑은 술잔을 기울이던 연초삼거리 그 국밥집을 혼자 찾았더니 주인 아낙이 반갑게 맞으면서 왜 걸음이 뜸했는지 물어왔다. 나는 작년에 함께 들렸던 친구가 술을 끊어 혼자 오려니 걸음이 떼이질 않더라고 했다. 바깥양반은 내가 예전 생활권으로 직장을 옮겨 되돌아간 줄 알고 있었다. 주인장은 내 연고를 부산인 줄 잘못 알고 있었더구나.
오전에 든 세 시간이 하루 수업은 모두였다. 점심 식후 글을 몇 줄 남기면서 퇴근 시각을 맞았다. 교정에서 멀지 않은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었다. 새벽에 걸었던 연사 들녘으로 나가 둑길을 걸었다. 가을을 장식한 코스모스는 꽃잎이 생기를 잃고 있었다. 한동안 비가 내리질 않아 가뭄을 타는 듯했다.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이들도 물 부족이 심해 비가 오길 기다리지 싶다.
연초삼거리 농협 마트 걸음은 시장 보기는 빤하다. 찌개를 끓이는 재료들을 마련한다. 두부와 애호박과 풋고추 정도다. 멸치봉지나 계란을 집기도 했다. 저녁에 반주로 드는 곡차는 빠지지 않는다. 거제 지역 양조장보다 맛이 더 끌리는 곡차가 있더이다. 충북 청주 장수막걸리에서 나오는 옥수수동동주와 알밤막걸리였다. 그 곡차를 채워 담으려고 와실에서 배낭을 둘러메고 갔더랬다.
시장 본 물건들을 배낭에 채워 담아 마트를 나섰다. 지름길로 보도를 따라 연사 와실로 가면 시간이 단축되나 아까 왔던 연초 천변 산책로를 걸었다. 둑길은 차량들의 매연이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들길을 지나니 해가 설핏 기우는 즈음이었다. 와실로 들어 짐을 풀어 냉장고에 넣었다. 씻어둔 쌀로 밥을 지어 아침에 남긴 찌개를 데워 저녁을 들면서 곡차로 반주를 곁들였다.
면벽 와실에서 혼자 술을 마시기도 이제 익숙해졌다. 저녁 반주는 한 병으로 족해야하는데 언제나 두 병이어야 양이 찼다. 그러다 박시교의 ‘독작’을 주절주절 외웠다. “상처 없는 영혼이 세상 어디 있으랴 / 사람이 그리운 날 아, 미치게 그리운 날 / 네 생각 더 짙어지라고 혼자서 술 마신다” 서안을 겸한 밥상을 물려서 설거지를 끝내고 방바닥에 몸을 누이면 쉬 잠에 들었다. 20.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