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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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란 blueskybang@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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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묘에서>
김경란
스물일곱 제대로 피지도 못한 난초 한 송이 아주 오래 전 세상 어둠에 길들여지지 못한 채 살면서 그리던 저 시의 세상 속으로 떠났네 가슴에 그득하던 시심 맘껏 뱉어내지 못한 것이 안으로 곪아 단단하게 몇 세기가 지나도 터지지 못 하고 잠깐 스쳐도 붉게 성을 내는 한으로 남아 묘지 옆 붉은 꽃 한 송이로 피었네 자식 셋, 뼈에 박고 사랑 마저 가슴에 묻었는데 어디에 기댈 곳 있어 삶에 미련을 두었겠느냐
인적 드문 초월면 언덕배기 죽어서도 여전히 제도 아래 눌려 먼저 간 아들 딸 봉긋한 작은 봉분 지키겠다 나란히 아래 땅에 묻혀 바람으로 우네 다행이 앞이 막히지 않아 산도 보이고 흐르는 내도 보이고 멀리 하늘도 청청하니 차가운 땅에 누웠어도 몇 세기의 무거운 세월 속에 갇혔어도 알알이 시를 영글어내겠지 아직 이 땅에 그대의 아픔은 남아 있고 아직 많은 우리가 그 외로움 겪고 있으니 어찌 세상이 달라지고 세월이 흘렀다하여 맘 놓고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까
저기 작은 새 한 마리 난다 빙빙 묘지를 돌며 떠나질 않는 걸 보면 사람 발길 뜸한 이 곳 찾아줘서 고맙다고 행여 내게 인사라도 하는 것인지 떠나려는 발걸음 너무 아파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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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란 / 쌍령동 거주, 광주문인협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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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02일 10:3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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