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땐 뭐하지 일본 골프장 완전정복
日골프장 150곳 견적 뽑았다, 한 달간 열도 8500㎞ 종주기
카드 발행 일시2024.10.30
에디터
성호준
일본 골프장 완전정복
관심
✔️ 핀란드인 브루노 타자마는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의 모든 코스(약 600개)를 다 돌았다.
✔️ 미국 골프 작가 톰 코인은 아일랜드 전국을 걸어다니며 모든 바닷가 홀에서 클럽을 휘둘렀다.
✔️ 전 재산을 팔아치우고 소설 ‘80일 간의 세계일주’처럼 6대주 22개국을 80라운드로 여행한 작가도 있다.
✔️ 일본의 직장인 기무라 곤이치는 2100개가 넘는 일본 골프장 전부 라운드를 목표로 여행하고 있다.
골프에는 이런 모험담이 있다.
나는 한 달 가까이 스코틀랜드 전역의 유명 골프 코스를 취재한 경험이 있다. 아일랜드·뉴질랜드를 여행했고, 미국의 LPGA 투어와 PGA 투어를 다니며 대회 코스도 다녔다.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스코틀랜드 600개 코스를 다 돌아보는 것 같은 완전정복, 무모한 도전, 최초 성공 같은 쓸데없는 모험담에 끌렸다.
세계 100대 코스 완주 같은 것도 있지만 이미 여러 사람이 해 봤고, 우리끼리 조용히 골프 치고 놀겠다는 프라이빗 클럽에 굳이 굽실거리면서 한 번만 쳐보게 해 달라고 하기도 싫었다. 국내 코스 완전정복도 생각해 봤지만 그린피도 비싸고 시간도 내기 어렵고 함께 다닐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국내 일부 골프장에서 야간 라운드 손님에게 카트 청소비를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내 골프장은 경차 가격의 카트를 고급 스포츠카 렌트 가격에 빌려준다. 그러면서 청소비까지 받는다니 해도 너무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일본에 가야겠다고, ‘나와바리’를 깨야겠다고. 나의 고교 후배는 페이스북에 “사심을 공적으로 채우는 방법”이라고 했다. 확 찔렸다. 사심이 맞다. 그나마 공적으로 채우는 거니까…
후쿠야마 성을 배경으로 서 있는 성호준 기자.
골프장 숫자 대비 골프 인구는 일본 대비 한국이 최소 5배다. 비유하면 한국은 버스 한 대에 일본에 비해 승객이 5배 이상 많이 탄다는 뜻이다. 만원버스에 시달리던 한국 골퍼들이 빈 의자가 많은 일본 버스로 가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가깝고도 먼 일본 골프장을 다루기가 애매했는데 황당한 청소비 부과에 생각을 바꿨다. 게다가 ‘완전 정복’이라면 일본 열도만한 곳은 없다. 현재 일본은 엔저 등으로 세계에서 그린피가 가장 싸다.
일본 골프장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일본 가는 골퍼가 가장 많이 참고하는 일본 예약 사이트의 평점은 신뢰하기 어렵다. 골프장 보는 눈이 한국인과는 완전히 다르다든지, 뭔가 이상하다. 직접 보고 소개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나는 (오키나와를 제외하고) 일본 4개의 섬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가능한 모든 현을 다니면서 한국인이 가볼 만한 괜찮은 골프장 150개 정도를 가보기로 했다. 여행 기간은 32일로 잡았다.
쉬운 건 아니다. 타자마가 스코틀랜드 코스 600개를 정복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일본 곤이치의 도전은 10년이 됐는데 아직 절반밖에 못 했다.
차준홍 기자
홋카이도 북쪽 끝에서 규슈 남쪽 끝까지 골프장을 여행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봤다. 검색에 걸리는 사람이 있긴 했다. 일본의 골프 기자인 다노베 가오루(1930~2013)다. 그는 『아름다운 일본 코스는 일본의 새로운 전통문화다』 등의 책을 썼고, 1000개를 봤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북쪽 끝부터 남쪽 끝까지 섭렵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가봤다 해도 열도 끝에서 끝까지 한달음에 여행하지는 않았을 테고, 그 부분에선 내가 ‘이치방’인지도 모른다.
일본 홋카이도 최북단 도시 와카나이에 있는 와카나이 골프클럽. 성호준 기자
일본 최북단의 홋카이도 와카나이에서 남쪽 끝인 가고시마 이부스키까지 구글맵상으로 약 2900㎞였다. 미국 동부 뉴욕에서 서해안 도시 샌프란시스코까지의 5000㎞ 대비 60% 정도다. 그러나 구글맵의 일본 종단 자동차 여행 시간은 43시간이고 미국 횡단은 50시간으로 7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일본은 산악 국가다. 터널과 다리가 많다 해도 길은 고저차가 심하고 굽었다. 일본의 도로는 잘 포장됐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공사가 많다. 하루에도 서너 번은 공사 구간을 만났고, 정체됐다.
삿포로에서 차를 빌려 규슈 남쪽 가고시마에서 반납하려고 했다. 그러나 차를 빌릴 수가 없었다. 알아봤더니 홋카이도에서 빌린 차는 홋카이도에서,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빌린 차는 또 그곳에서 반납해야 한다. 결국 차를 두 번 갈아타고 돌아야 했다.
일본은 남북으로 긴 나라인데 동쪽·서쪽 골프장을 가야 하니 산을 넘어 지그재그로 다녀야 했다. 여행거리는 8500㎞에 육박했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 고속도로 톨비가 하루 10만원 넘는 날도 여럿 있었다. 골프장이 대부분 산 위에 있어 기름값도 만만치 않았다.
이동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지도상으로 딱 붙어 있는 골프장도 꼬불꼬불 산길을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했다. 출발지인 홋카이도의 가을 해는 짧았다. 일본 골프장은 한국처럼 새벽에 문을 열지도 않는다. 하루가 금방 갔다. 야간 운전은 자제했다. 반대쪽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 밤길에 발정기 수사슴과 잠시 대치한 일이 있어서다.
32일 동안 일본 전역의 골프장을 돌아보면서 골프를 치는 건 사치, 아니 불가능이었다. 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타이거 우즈라도 말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골프를 치지 않았다.
일본 규슈섬 최남단에 있는 이부스키 골프장. 성호준 기자
혼자 다니는데 일본은 1인 플레이가 없다. 융통성 없는 일본 골프장 분위기로 봐선 타이거 우즈라도 안 될 거 같았다. 1인 플레이는 안 되지만 조인플레이인 1인 예약은 드문드문 있다. 기회가 있을 때 1인 예약을 해 일본인들과 라운드했다. 또한 일본에서 지인과 접선했고 운 좋게 제이홀리데이와 테라투어 여행사의 팸투어에 끼어 라운드할 기회도 있었다. 여덟 번 골프를 쳤다.
그래도 겨우 그 정도 골프치려고 거기까지 갔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골프를 치려고가 아니라 취재를 위해 간 거다. 또한 일본 골프의 ‘북극’에서 ‘남극’까지 깃발을 꽂는 여정이니 골프 치는 건 충분히 희생할 수 있었다.
그래도 쳐봐야 코스를 소개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20년간 골프 기자를 했다. 오거스타 내셔널 같은 하이앤드부터 유럽의 유서 깊은 링크스, 호주, 뉴질랜드, 중동 사막, 아프리카, 미국 동네 시립 퍼블릭 골프장까지 다 봤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클럽하우스와 연습그린, 첫 홀 티잉그라운드, 18번 홀 그린만 보고도 대충 견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정을 얼추 잡아놨지만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일본어를 못해 일본 골프장에 전화로 연락할 수 없었다. 놀랍게도 일본 골프장은 메일 주소가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골프장 SNS 계정에 DM을 보내도 답이 안 왔다. 일본 골프장들은 아직도 주로 팩스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인터넷 팩스 사이트에 가입해 팩스를 보내봤지만 역시 답이 안 왔다.
내가 아는 일본 전문가들은 골프장들이 보수적이라 방문하려면 정식 절차를 꼭 밟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필요하면 연락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연락할 곳이 너무나 많은 데다 날씨, 일정 등 변수도 너무 복잡했다. 일본에선 약속하면 꼭 지켜야 하지 않는가. 그냥 ‘무대포’ 정신으로 부딪쳐 보기로 했다.
에디터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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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7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