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더바인호텔에서 바라본 칸쿤 해변.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울리는 백사장이 23㎞나 뻗어 있다. 전희성 기자
이른 아침 떠오르는 카리브해의 태양이 에메랄드빛 바다에 조명을 켠다. 최고의 허니문 관광지로 각광받는 멕시코 칸쿤의 아침은 그래서 따뜻하고 눈부시다.
칸쿤은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으나 스페인 자본과 멕시코 정부의 협력이 더해져 세계 최대 관광지로 변신했다. 지난 42년간 투자한 금액이 40조원을 넘는다. 그 결과 지난해 칸쿤을 찾은 관광객은 1600만여명. 같은 기간 한국의 전체 외래관광객(980만명)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칸쿤을 다녀갔다.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최고급 숙박시설과 스카렛·셀하 등 에코파크에서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체험거리, 세계 7대 불가사의인 고대 마야문명이 칸쿤의 자랑거리다. 칸쿤으로 떠났다.
◆에코파크에서 즐기는 액티비티
에코파크 '스카렛'에 있는 과달루페 성당.
칸쿤에는 산과 강이 없다. 비가 오면 석회석으로 구성된 지반으로 물이 흘러들어 지하에서 강을 이룬다. 그 강은 동굴을 만들기도 하고 세노테라는 우물을 만들기도 한다. 칸쿤의 호텔존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스카렛(Xcaret)’은 이런 자연환경을 이용해 각종 체험활동을 즐기도록 만든 에코파크다. 여의도의 3배나 되는 면적에 물놀이시설, 동물원, 식물원 등 수많은 볼거리를 갖췄다.
열대 숲이 우거진 스카렛은 언뜻 보면 단순한 동물원 같지만 그 안에는 마야문명의 흔적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까지 갖췄다. 입장권에 해당하는 팔찌를 차고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종의 앵무새와 거북이, 원숭이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개나리색의 예쁜 성당건물도 있다. 성당 내부는 지하 공간인데 독특한 모양으로 조각된 목조 성모마리아상이 인상적이다. 성당과 연결된 멕시코 역사박물관, 대형 공연장을 지나면 스카렛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동식 타워전망대에 이른다.
점심을 먹기 전 스카렛의 대표적 관광 코스인 지하강(언더그라운드 리버)을 체험하기로 했다. 중요한 짐은 대여한 캐비닛에 넣고 슬리퍼나 선글라스 등은 도착 지점으로 보내는 가방에 넣은 다음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한다. 투명한 우물 속에 몸을 담그고 어두컴컴한 지하의 석회동굴 사이로 이동한다. 바다 쪽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즐기는 스노클링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내림을 물속에서 바라보는 기분은 신비롭고도 가슴 뛰는 경험이다. 총 이동시간은 30분가량이지만 느긋하게 즐긴다고 재촉하는 사람은 없으니 여유롭게 이동하는 것도 좋겠다.
스카렛에는 다양한 요금체계가 있는데 ‘스카렛 플러스 패키지’를 이용하면 체험활동 할인과 식사까지 즐길 수 있다. 지하강의 도착 지점에서 멀지 않은 뷔페식당 ‘도스 파야스’에서 카리브해를 감상하며 식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코스. 도스 파야스 외에도 4개의 식당이 있다.
스노클링 이외의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많다. 칸쿤해변은 거북이가 알을 낳는 지역으로 유명했지만 편의시설과 호텔 등을 지으면서 거북이의 산란장이 파괴되자 거북이 알을 수거해 부화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스카렛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관광 상품화해 시기를 잘 맞춘 관람객들에게는 거북이가 부화하는 명장면을 선사하기도 한다. 가오리나 돌고래, 상어와 함께 수영을 하거나 물속을 걸으며 수중생물들을 관찰하는 ‘시트랙’ 등을 유료로 체험할 수 있다. 대공연장에서는 오후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마야문명과 멕시코의 역사를 생생하게 묘사한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칸쿤에는 스카렛 외에도 셀하(Xel-ha)와 스플로어(Xplor) 등의 유명한 에코파크가 있어 가히 액티비티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최고의 만족도 ‘정글투어’
모터보트를 타고 즐기는 정글투어.
정글투어라기에 정글 속을 헤치며 여러 가지 동물과 자연경관을 관람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칸쿤의 호텔존은 ㄱ자 형태의 섬으로 이뤄져 바다 반대 쪽으로 커다란 호수인 ‘라군’을 형성하고 있다. 정글투어는 라군 쪽 해안터미널에서 2인용 모터보트를 타고 출발한다. 정글투어의 최대 매력은 라이선스가 없어도 시속 80㎞의 모터보트를 직접 운전해 볼 수 있다는 것! 모터보트 조작법이 간단하다고는 해도 관광객에게 직접 운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모터보트 운전은 어렵지 않아 여성들도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올라탄 모터보트는 2명이 겨우 앉을 만한 작은 크기.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엄청난 가속으로 최고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호텔존이 감싸고 있는 라군의 물살을 가로지르다 보면 바닷물에서만 자라는 나무인 맹그로브로 우거진 수상 밀림이 나타난다. 이 밀림 덕분에 정글투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 같다. 맹그로브 숲 사이로 요리조리 운전하다 보면 에메랄드 빛 카리브해가 눈앞에 펼쳐진다.
모터보트의 핸들이 손에 익을 즈음 선두를 달리던 현지 가이드 수신호로 카리브해 한가운데 배를 멈추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스노클링을 즐긴다. 물속에서 만나는 카리브해 역시 아름답다. 다양한 모양의 산호초와 물고기들을 실컷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 모터보트의 신나는 속도감으로 아쉬움을 날려버렸다.
마야문명의 유적지로 알려진 치첸이트사의 '쿠쿨칸 피라미드'.
◆마야인의 지혜 보여주는 치첸이트사
칸쿤에서 200㎞가량 떨어진 치첸이트사는 마야문명 유적지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유명하다. 정글 한가운데로 뚫린 고속도로를 3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치첸이트사 입구에는 ‘애니깽’이라는 선인장이 보인다. 100여년 전 한국 이민자들은 섬유로 사용했던 선인장과 식물인 애니깽을 채취하기 위해 멕시코에 처음 발을 들였다고 한다.
치첸이트사에서 가장 큰 건축물인 ‘쿠쿨칸 피라미드’가 웅장한 자태로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이 피라미드는 마야인들의 천문학과 수학의 깊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달력이다. 피라미드의 면당 91개의 계단이 만들어져 4면의 계단 수는 총 364개가 된다. 거기에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계단을 더하면 총 365개로 1년이라는 태양의 공전주기를 나타낸다. 이는 마야인이 믿었던 태양신을 의미한다. 마야인은 금성의 주기까지 파악해 ‘금성력’까지 만들었을 정도로 천문학의 깊이가 대단했다.
쿠쿨칸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신전을 보니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멜 깁슨 감독의 ‘아포칼립토’에서 사람의 피와 심장을 제물로 바치던 곳과 흡사했다. 고대 마야인에게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 문화가 없었지만 호방한 톨텍문명과 섞이면서 생겨난 풍습이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 지첸잇사 외곽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우물인 세노테가 있는데 이곳에서도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있었다고 하니 마야인이 신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신봉했는지 짐작케 한다.
마야인은 소리를 이용할 줄 알았다. 쿠쿨칸 피라미드 주변에서는 박수를 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박수 소리가 피라미드 내부를 통해 다시 밖으로 나와 신비로운 소리로 돌아오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마야인들은 이것을 그들이 섬기는 뱀의 신 ‘쿠쿨칸’이 대답해 주는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치첸이트사에는 마야인들이 ‘벨로타’라는 시합을 즐겼던 거대 경기장이 있다. 경기의 룰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무게 3~4㎏의 고무공으로 골을 넣는 형식으로 손과 발이 아닌 골반만을 이용했다고 한다. 두 팀이 치열하게 시합한 후 승리한 팀 주장의 머리를 신에게 바쳤고, 이를 영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경기장 내부 벽의 부조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000개의 기둥을 가진 신전’이라고 불리는 ‘전사의 신전’도 눈길을 끈다. 제물로 바쳐진 전사들을 기리는 탑 1000여개가 가지런히 도열하고 있다. 기둥마다 전사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겨우 남아 있다.
치첸이트사 곳곳에는 마야인의 후손들이 수공예품을 늘어놓고 관광객을 유혹한다. 칸쿤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트킬’이라는 초대형 세노테에서 수영을 즐기는 것으로 치첸이트사 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맑은 물속에서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뻥 뚫리는 듯하다.
■ 여행 팁
멕시코로 가는 직항이 없어 미국을 경유해야 한다. 애틀랜타를 경유해 칸쿤으로 갈 경우 비행시간은 총 20시간 정도 걸린다. 댈러스를 경유하는 루트는 일본 나리타에서 한 번 더 갈아타야 하지만 대기시간을 포함한 총 소요시간은 애틀랜타 경유 루트보다 적게 걸린다.
칸쿤에는 호텔과 쇼핑센터 등이 즐비하다. 특히 약 23㎞의 해변을 끼고 있는 호텔존(hotel zone)과 길이가 100㎞를 넘는 리베라마야는 호텔이 밀집한 지역인데 다양한 쇼핑몰과 클럽 등의 밤문화를 즐기려면 호텔존, 호텔시설을 활용하고 주요 관광지를 둘러볼 계획이라면 리베라마야가 적합하다. 르블랑, 하드록, 리츠칼튼 등 150여개 최고급 호텔이 들어선 호텔존의 객실만 2만8000개가 넘는다. 호텔존 북쪽에는 대규모 면세점과 매일 밤 환상적인 쇼가 펼쳐지는 클럽들이 즐비하다.
이곳 호텔의 특징은 호텔 안의 모든 음식과 음료, 서비스를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는 ‘올 인크루시브(All-Inclusive) 시스템’. 지난 8월 문을 연 ‘시크릿 더 바인(Secrit The Vine)’호텔에는 총 7개의 식당과 5개의 바가 있는데 이 모든 곳에서 마음껏 배를 채우고, 얼큰하게 취해도 그저 손만 툭툭 털고 나오면 끝이다. 룸서비스와 객실 내 미니바, 호텔로비에 있는 와인셀러의 와인테스팅도 올 인크루시브 시스템에 포함돼 있지만 스파는 요금을 내야 한다. 한국인 허니문 커플에게 2500달러 상당의 비치웨딩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호텔마다 요일별로 칵테일 파티, 마야문명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와 이벤트를 펼치므로 심심할 틈이 없다.
호텔존 북쪽 다운타운에는 대규모 면세점과 환상적인 쇼를 펼치는 클럽들이 즐비하다. 호텔존과 이곳을 왕복하는 버스 요금은 1달러, 5분 간격으로 24시간 운행한다. 택시를 타도 15달러를 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