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순전히 이 양반 때문에 이루어 진 여행이다.
안형은 라이브카페 주인이며 가수이다. 내가 티브나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없는 이름이니 말하자면 유명가수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그림 전시 준비할려고 카페에 250만원이나 주고 지배인을 두고 왔단다.
자기가 와서 한달 매상이 반으로 떨어 졌다니 그 그림 그리는 일에 엄청 거금을 투자하는 셈이다.
우리가 그림그릴 때야 재료비 정도가 원가지만 이 친구는 원가가 엄청 드는 그림을 그리는 폭이니 아무래도 그림 값도 훨씬 비싸야 할만한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벌써 그려진 그림을 달라는 이가 있을 정도고 그전에 그린 그림도 여기저기 줘버려서 가진 것이 적다니 도통 그런 원가 계산은 안 하는 모양이다.
그는 그 정자에서 나는 '퍼질러' 자는 밤12시에서 새벽 5시정도에 주로 작업을 하였다.
낮에는 이리 저리 손님도 많고 잡일도 많고 해서 주로 야밤에 작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정작 작업꾼인 나는 한 두어 시간 하면 허리 팔다리가 다 쑤시는데 이 친구는 거의 다서 여섯시간을 붓이나 연필 놓음이 없이 캔버스를 부둥켜안고 작업을 하는 것을 보면 그 그림에 대한 정렬이 정말이지 존경심을 자아나게 하고 정작 '쟁이입네' 하는 나는 창피 그 자체다.
앉아서 하다 안되겠다 싶으면 쪼그리고 한참 작업을 하다 그도 안되겠다 싶으면 반쯤 기대서 하거나 하고 그도 불편하다고 몸이 느끼면 배를 깔고 하거나 하면서 어쩌던지 캔버스만은 놓치지 않고 매달리며 한 새벽이 돼서 만족할 만하면 붓을 놓고 잔다.
원래는 초등학교 적에 그림을 무척 좋아하여 열심히 잘 그렸는데 중학교 때 신경써서 그려간 그림이 너무 눈에 튀어서 미술선생한테 혼나고는 그림을 한동안 잊어버리다 나이들어서 노래 부르며 간간히 그리기를 시작했단다.
나는 그 미술선생한테 고맙다고 하라고 했다.
미술의 길에 들어서 보니 이상한 미술교육에 물들어서 개성만 축났을 것이고 삶은 대부분의 환쟁이처럼 엉망이었을 테니 그 눈어두운 미술선생이 오히려 안형한테는 다행이다 싶었다.
그의 그림이 그랬다.
그런 그림의 원조도 없고 유파도 없고 누가 흉내 낼 수도 없고 또 따라 하기도 힘들다.
옛날 여인들이 베틀에 앉아서 옷감 짜는 정성으로 한올 한올을 그려내는데 그 정성과 애정이 남달라서 보는 이마다 우선 탄성부터 지른다.
그림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일단 그 정성에 감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림들은 돋보기로 봐야만 보일 정도고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이 우리들의 일상화된 사용법이 아닌 그저 나름의 방법이다 보니 그림이전에 도구 사용법 자체도 독특하고
그 완성된 그림도 신묘할 뿐이고 그림마다 다 다른 이야기와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으니 보는 맛이 무궁 무진하고 현대미술의 단선적이 외침과는 그 맛과 향기가 전혀 다르다.
색깔과 연필과 캔버스의 엉뚱한 만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작품들 하나 하나가 전혀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이어서 그 맛의 신선함이 너무도 맛깔스럽다.
그이한테는 실례지만 사실 음악보다는 그림을 그렸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마는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그리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2.무용가 이모모씨
내가 가까이 만난 무용가중 셋에 둘이 혼자 사는 여자들이었으니 무용과 결혼이 무슨 물과 기름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녀도 혼자였다.
밝고 야무지고 소탈하고 '쪼부장하지' 않았고 여유롭고 차도 막 후다닥 모는 그런 여자였다.
작년 아시안게임 폐막식 안무도 맡았다니 실력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움직임 자체가 춤이고 어디고 여건이 '코딱지'의 반에 반만큼만 주어져도 그냥 '자동빵'으로 춤이었다.
그녀는 생활이나 삶 자체가 춤이었다.
무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녀가 있는 곳이 바로 무대였다.
거기가 산이건, 방안이건, 부엌이건, 운전하다건, 상 위이건, 배깔고 누웠건, 섰건 다 그녀의 무대였고 관객은 별로 안중에 없는 듯했다.
박수 쳐주면 고맙고 안쳐주어도 박수 받을 무대가 따로 있는 것이기에 신경 안 쓰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야기하다가도 구석에 가서 노트를 펼치고는 춤동작을 스켓치했다.
살짝 훔쳐보니 인물의 동작을 간단한 선으로 표현하고 움직임을 나타내는데 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학이었고 간단한 선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열식 인물화였고 인체 예술이었다.
그것만 잘 나열해도 충분히 하나의 그림이 될 수 있을 만했다.
만화와도 달랐고 우리들이 그리는 인물화와도 달랐으면 오히려 원시 미술에 가까웠다.
아마 우주인한테 어떤 언어대용으로 쓰일 그림을 찾는다면 그런 그림이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만나서 손가락이 춤의 시작이고 끝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그녀의 손은 인간의 손이 아니었다. 특히 손가락이 그랬다.
나는 여자들 손보는 눈이 워낙이 각별하였다.
어릴 적을 상상해보면 감히 어찌 여학생들이나 여자들 얼굴이나 다른 어떤 곳인들 마음대로 쳐다 볼 수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손과 손가락을 마음대로 실컷 감상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특히 버스나 지하철에서 그랬다.
손들이 손잡이에 줄지어 모여 있으니 어렵게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그저 찬찬히 보면서 마음으로 그 손 임자의 얼굴이며 성격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어느 덧 내릴 곳이곤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 많은 손과 손가락들 중에서도 그녀의 것은 유별났다.
특히 손가락이란 것이 너무 길어도 맥없고 짧아도 몽땅 연필 같고 손톱이 길어도 언뜻 보면 미인의 손톱같지만 헐렁해 보이고 너무 짧아도 재주는 있어 보이지만 잡아 보고 싶지 까지는 않은 법이다. 더군다나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는 쉽지 않은 모습들이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주 절묘한 중간 지점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나 메시지를 다 가지고 있는 그런 모습이다.
손가락은 웅크리고 있을 때보다 폈을 때 봐야 그 맛을 알 수가 있다.
너무 반듯해도 멋없고 너무 손등 쪽으로 넘어가도 되바라져서 보기가 민망하다.
그저 우리나라 한옥 추녀 끝선 마냥 잘 나가다 살짝 위로 들어 올려 졌을 때 그 묘미가 갖가지고 그런 손가락을 '오물락 펼락' 할 적에 이야기는 더 많은 퍼즐을 양산한다.
그녀의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그런 이야기 덩어리였다.
춤이야 사실은 몸으로 많은 부분이 표현되는 것이겠지만 그녀는 그런 타고난 손과 손가락 덕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손과 손가락은 내가 로마에서 봤던 어떤 로마시대나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에서나 아니면 반가사유상에 나오는 그런 손가락이지 인간의 손가락은 거듭 아니다란 생각이다.
그녀의 손가락을 다시 보려면 천상 이번 달에 울산에서 발표회를 한다니 먼 길이지만 달려가 볼 참이다.
신의 손인데 멀다고 대수겠는가?
그녀의 인생이 그 신의 손에 힘 받아서 더욱 빛나길!
3.땡초
어느 날 갑자기 우당땅땅 정자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무턱대고 들어오더니 안방까지 들어 와서는 넙죽 절을 한다.
보니 머리카락이 없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사진작가 박 모모형을 찾아 왔단다.
없다했더니 곡차타령을 하더니 나올 폼도 아니고 나도 작업에 열중하는 척하니 그냥 간다.
하지만 그것은 서곡이었다.
그 뒤로도 우당당땅하면 그 친구다.
이 친구는 개울을 건너 올 때 늘 한쪽 다리는 빠지고 오는데 어느 날은 안형이 양말도 주었다.
워낙이 키도 훤출해서 징검다리 건너기가 아무래도 불편할텐데도 늘 술이니 안 빠지는 때가 신기하다.
자기는 열 일곱살에 아버지가 절을 지어 출가했단다.
하지만 염불보다 잿밥에 맘이 있어 오는 절 손님도 쫓아내고 해서 그 집안 밥벌이인 절간을 거덜 낸 모양이다.
그래도 월하스님 상좌스님도 했지만 작년 한 해는 폭행죄로 형무소도 갔다 왔단다.
그 친구의 박박깍은 울퉁불퉁한 뒤통수에 난 상처자국들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인 듯하다.
어지간하면 남들이 뒤통수를 쳤겠는가? 그것은 상식 이전의 행동에 대한 답이었을 것이다.
그 전인지 그 후인지 절간에서 파계 당해 지금은 이리 절 언저리를 맴돌며 암자에서 돈 뜯어 여관에서 살다 얼마 전에 전세방을 마련했고 자기는 간경화에 걸려서 곧 죽을 것이란다.
기침도 간간히 하면서 "애구 디러버서 이제 폐병도 걸린 모양이네!" 하며 남 일처럼 이야기 하면서도 우리의 맘 좋은 박형님한테 약간의 동정심을 구하는 투이지만
"자기 혼자만 죽나!"가 우리 박 형님의 답이다.
그러니까 중도 인간도 아닌 얼치기였다.
나이도 나와 비슷한데 중이 실패하면 이리 되는 구나하는 모델을 보여 주고 있었다.
군부대 근처에 군복 비슷한 것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주요소 근처에는 기름냄새 풍기는 사람이 있고
국회 근처에는 사이비 기자가 있고
나이트클럽 근처에는 조폭 나부랭이가 얼쩡거리듯이
절간 근처에는 이런 땡초가 얼쩡거리나보다.
간은 썩어가도 몸은 건강한지 이 친구는 잠도 없고 시간개념이 없다.
아무 때나 들리는데 새벽에 와도 저녁에 와도 늘 술기운이고 말도 반은 욕이고 늘 찾는 것이 오로지 술이다.
아니 자기가 무슨 세상에 한이 그렇게 많다고 술에 절어 산단 말인가?
우리 친구 중에 늘 술에 절어서 개인전 마련해 놓고 친구들이 축하여행 시켜준다고 갔다가 결국 길에서 쓰러져 저 승 객이 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나름의 한도 많았고 또 예술이라도 하고 그랬으니 그럴 자격이라도 있다손 치지만 이 친구야 무슨 세상 탓할 자격이 있겠는가?
하긴 아마 자기 못난 탓하면서 마시는 술일지도 모르겠다.
통도사 위에 암자가 스무 몇 개라는데 맘씨 좋은 승이 지키는 암자가 있으면 억지부려 돈을 뜯어내서 사는 모양이다.
파계승도 중이요 어차피 불전은 대부분 중들이 쓰는 것이니 나도 나누어 주라 하면 주는 것인 모양이다.
그래도 고급이라 걸어가지는 않고 꼭 콜택시 불러서 올라가는데 택시비가 없다고 우리 방에도 와서 시퉁터진 소릴 하면 맘씨 좋은 안형이나 박형이 택시비도 주고 그러는데 그래도 위에서 뜯어와서는 가지고 간 돈도 갚고 어느 날엔 토종꿀이며 무슨 나무즙이란 것도 가지고 와서는 맘씨 좋은 안형 몸보신하란다.
다 맘씨 좋은 스님한테 뺏다 시피해서 가지고 와서 주는 것이지만 땡초가 아주 마음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그 귀찮게 밤, 낮, 새벽의 우당땅거림당함도 자위들을 하곤 하는 모습이 인간도 조금만 끄덕하면 쉽게 부처가 되겠구나 싶다.
그 친구 말이 개나 소나 다 부처인데 뭐하러 절에 다니냔다.
다 자기 맘에 있는 것이라고 아주 부처같은 말씀도 욕중에 간간히 한다.
자등면 법등명이라나 해서 '법'보다 '자'자가 앞에 있는 그 교리가 맘에 들어 자기도 중이 되었단다.
하긴 그 친구도 그 자체가 하나의 실패작의 모델이니 그것도 어찌 보면 부처인지도 모르겠다.
부처란 것이 어떤 표본일진데 꼭 좋은 표본만 가르침인가?
나쁜 표본도 가르침이라고 보면 그도 부처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내가 그 영모정을 나오면서도 그 땡초가 얼마나 우리의 '준부처'같은 친구들을 괴롭힐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무거웠지만 그래도 말로나 힘으로나 그 허우대만 멀쩡한 땡초 하나 못 당할까 하면서 고개를 홀로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