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갑을 낀 시인이 고구마밭에 난 풀을 뽑고 있다. 한 손으로 풀을 쥐고 호미로 뿌리까지 캐내야 하건만 목장갑에 “초록의 피비린내”가 밴 것으로 보아 힘으로 잡아뽑은 모양이다. 잡풀 중에 가장 무성하게 자라고, 뿌리가 깊은 것이 ‘바랭이’다. 볏과의 한해살이풀인 바랭이는 과수원이나 밭에 잘 자란다. 밟혀도 잘 죽지 않는 질기고도 무성한 풀이다. 시인은 “잡풀이 생존하는 방법”에 주목한다. “줄기는 뿌리”를, “뿌리는/ 흙을 움켜”쥐고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시인은 잘 뽑히지 않는 풀에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살아보겠다고 항상 무언가를 꽉 움켜잡는데도 쉽게 뽑혔던 아버지. 다 뿌리가 약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비빌 언덕이나 뿌리내릴 곳이 있어야 하건만, 가진 거라곤 큰 손뿐이다. 없이 살아도 남에게 베풀며 살았다는 뜻이다.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으면 고구마는 잡풀을 이길 수 없다. 아버지도, 아들도 그런 고구마를 닮았다. 고구마밭에 핀 “붉은 꽃”은 아버지 생각에 붉어진 눈시울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