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루트 안내소서 아픈 역사 더듬어
▲ 4. 장항마을 사람들이 인월장을 보러 가던 숲길 중앙쯤에 도랑 같은 조그만 계곡이 나온다. 5. 장항마을 당산 소나무. 매년 신성하게 행사를 치른다. 6. 빽빽하게 들어선 리기다 소나무 숲.
이곳에서 잠시 방향을 틀어 50m 올라가면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씨의 지리산 사진전시관이 나온다. 그의 수십 년 지리산 내력을 감상하고 다시 출발이다. 잔영이 진하게 남았다. 어느 덧 중황마을이다. 다랑이논에 농사 짓는 상황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상황마을은 함양군 마천면과 경계를 이루고, 해발 400m 고지대의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아 일조량이 많고 토질도 좋다. 면 내에서 가장 질 좋은 쌀이 생산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원 산내와 함양 마천,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유일한 옛 고개 등구재는 옛 길의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땅과 삶과 길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는 듯했다. 다랑이가 어떤 논인가?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인 흔적이 아니던가. 다랑이논은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자리 잡은 좁고 긴 논이란 뜻이다. 다랑논, 다랭이논, 논다랑이, 다락배미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비탈진 층층의 논을 개간하기 위해 얼마나 공과 시간을 들였으며,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겠나. 어떤 다랑논은 삿갓만큼이나 작아서 ‘삿갓배미’라 부르기도 한다.
다랑논이 많았던 시절 전해오는 이야기 한 토막. 농부가 논을 갈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무리 세어 봐도 논이 하나 부족했다. 결국은 포기하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있더란다. 그렇게 작은 땅에도 농사를 지을 만큼 옛 사람들의 삶은 부지런했지만 궁핍하기도 했다. 다랑논은 애환의 대명사이다. 기본적으로 다랑논은 면적이 좁고 반듯하지 못해 잦은 손길이 필요하다. 경작 면적이 좁으니 수확도 많지 않다. 상황마을에 부농이 있을 수 없는 구조다. 지금 다랑이논에는 비닐하우스가 덮여 있는 것이 많다.
비닐하우스가 점점 더 많아진다고 윤정준 팀장이 전했다. 상추를 재배한다고 한다. 수입 면에서 벼농사보다 정확히 3배 많다고 한다. 상황마을 할머니들은 처녀시절 등구재를 넘어 이곳으로 시집올 때 양지 바른 지역에 부농이 많다고 해서 왔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층층이 논에 웬 손이 그렇게 많이 가는지 아직까지 일이 끝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평생 일만 시키는 그런 애환이 서린 다랑이논이다.
등구재를 넘기 전 등구령 쉼터라고 적힌 나무 팻말에 숙박 가능이라며 전화번호가 쓰여 있다. 지리산길이 생기면서 지역 주민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다. 그나마 수입에 조금 보탬이 된다고 한다. 완전 개통되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등구재를 넘었다. 고개가 거북등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을과 초저녁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갯길이라고도 한다. 전남에서 경남으로 넘는 길이다. 도 경계령이다. 이 길로도 옛 사람들이 인월장을 보러 오갔다. 새색시 꽃가마 타고 가던 길이기도 했다.
다랑논을 지나 숲길로 접어들었다. 국유림으로 낙엽송 조림숲이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잠시 휴식이다. 경남과 전남의 경계선상에 있으니 숲속 분위기만큼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길은 행정 경계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있었지만 인간이 관리를 위해 선을 그어 구분 짓기 시작하면서 나뉘었다. 인간은 나눠졌지만 길은 한 길인 것이다. 아늑한 낙엽송 숲길을 조금 지나니 조그만 연못이 있었다. 윤정준 팀장은 “길을 다지며 이 연못을 어떻게 활용할지 많은 토의가 있었지만 동물과 새들의 오아시스로 활용되고 있으니 그대로 두자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정말 옛 모습 그대로다. 마치 거대한 원시 밀림을 아기자기하게 축소한 것 같았다. 윤 팀장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저수지라고 덧붙였다. 지금은 생명의 옹달샘이 됐다.
주인도 없는 매점이 나왔다. 나무 푯말에 가격표가 붙어 있고 돈 넣는 통도 있었다. 맥주니, 오가피니, 더덕이니 전부 전시된 채였다. 먹고 싶은 사람은 먹고 돈만 넣고 가라는 말이다. 시골 아니면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다시 다랑이논들이 펼쳐졌다. 창원마을 다랑이논이다. 등구재 넘어 상황마을과는 달리 넉넉한 곳간마을이다. 조선시대 마천면 내에 각종 명목으로 거둔 물품들을 보관한 창고가 있다고 해서 ‘창말(창고마을)’이었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져 창원이 되었다 한다. 다랑이논과 장작, 호두나무와 감나무, 닥종이 뜨는 집 등으로 경제적 자립도가 높은 마을이라 그런지 분위기부터 조금 여유로웠다.
마을 뒤쪽 당산나무에서 잠시 쉬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어렴풋이 천왕봉과 반야봉이 보였다. 맑은 날씨였다면 바로 눈앞에 잡힐 것만 같았다. 등구재 인근 마을에서 지리산 주능선이 가장 잘 보인다고 했다. 마을을 관통해 천천히 내려왔다. 마을 입구에 6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가지를 직경 20m 가량 뻗어 시원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의 놀이터이자 모임장소다. 이곳에 벌써 지리산 사진작가로 등록한 강병규씨가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벌써 저녁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벽송사는 한때 빨치산 야전병원
다음날 의중마을까지 차로 이동했다. 마을 입구 빈 터에 주차하고 다시 지리산길로 들어섰다. ‘길은 인생이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똑같은 길만 연속으로 펼쳐지는 게 아니고 전혀 예기치 못한 뜻밖의 길도 나온다. 등구재 주변 길들이 다랑이논 길로 삶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면, 의중마을부터 송전마을까지의 길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흐르는 빨치산 루트다. 의중마을 앞 느티나무를 뒤로 하고 서암정사와 벽송사 가는 숲길로 발길을 옮겼다. 숲길을 따라 가는 길이었지만 바로 옆으로 벽송사로 가는 포장길이 놓여 있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아스팔트 냄새가 아직까지 물씬 풍겼다.
가는 길에서 조금 옆으로 나와 서암정사에 갔다. 거대한 바위에 수많은 불상을 새긴 불당이 있었다. 갖가지 형상을 띠고 있었다.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다. ‘이런 절도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금 더 올라 벽송사까지 갔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해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라고 했다. 원래 절터는 뒤쪽 삼층석탑(보물 474호)이 있는 곳이라고 했으나 중건하면서 앞쪽으로 옮겨졌단다. 벽송사는 빨치산들이 야전병원으로 사용해 공비 토벌 때 아군에 의해 완전히 전소됐다고 한다.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안내판에 그 아픈 역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다.
벽송사를 지나면 본격적인 빨치산 루트다. 그들이 지나간 길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밟고 있다. 길을 통해 과거의 역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역사를 따라 지리산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얼마나 빨리 갔을까? 그들은 왜 빨치산이 되었을까? 상념들이 빨치산 루트를 지나치며 머리를 스쳐갔다.
송대마을 빨치산 루트 안내소에 도착했다. 약 10평 크기에 빨치산들이 사용했던 따발총, AK소총, 수류탄, 인민군복과 빨치산 은거지인 비트 등 빨치산에 대한 여러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송대마을엔 일곱 가구가 주민등록을 두고 있지만 상주하는 주민은 박영남(72) 할머니가 유일했다. 박 할머니를 통해 혹시 빨치산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물어봤다.
“마지막 빨치산으로 악명 높던 이현상, 정순덕과 함께 이은조가 이곳에서 아군한테 사살될 때까지 우린 마을에 올라올 수조차 없었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열 일곱에 시집왔지만 빨치산이 활동 중이라 1950년대 중반까지 마을에 사람이 살 수 없었어. 1950년대 후반 들어 마을에 들어와 살았지만 경찰과 군인들이 항상 지키고 있었지. 다랑이논이라 경작 면적도 작고 먹고 살 것도 없어 사람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지. 20년 전에는 3년 동안 마을에 나 혼자 살았어. 마을길이 시멘트로 포장된 지도 10년이 채 안됐어. 다 객지에 살지, 뿌리 박고 사는 사람은 없어. 요즘은 외지 사람들이 가끔 살러 오기도 하지.”
아픈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본 뒤 세동마을로 향했다. 여기도 빨치산 루트다. 빨치산 루트는 노출이 되지 않도록 은폐돼야 하고 숲이 많아야 한다. 가파른 숲길과 바윗길의 연속이다. 의중마을을 출발한 지 3시간20분 만에 세동마을에 도착했다. 약 10㎞ 거리다. 세동마을은 전형적인 산촌마을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닥종이 생산지였다. 마을에 내려가자 촌로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이소, 세동마을입니더. 뭐 물어볼 거 없습니꺼?”
대낮부터 얼큰하게 한잔 하신 듯했다. 이것도 정감 어린 시골 풍경이다. 약 30가구가 살고 있다며 숙식이 가능한 집이 여러 곳이라고 소개했다. 문하마을까지 걸어와서 택시를 불러 타고 오늘 순례를 시작한 곳인 의중마을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과연 길이란 뭘까?’하는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길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다. 길은 현재라는 말이다. 지리산길을 걸으며 한번 느껴 보라.
▲ 마을 유래 모음.
지리산길 걷기 정보 안내
현재 개통된 구간이 30㎞에 불과해 숙박시설과 중간 휴식시설이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휴식시설은 자생적으로 막걸리집이 한두 군데 생기고 있는 중이다. 떠날 때 미리 간식이나 식수는 필수로 챙겨야 한다.
(사)숲길에서 마을과 연락해서 민박시설을 현재 확충하고 있으며, 인근 휴양림과도 연계하고 있다. 지리산 안내센터(063-635-0850)가 소개하는 안내센터~장항교의 숙박시설은 달오름마을(011-675-2231), 흥부골 자연휴양림(063-636-4032) 등이다. 장항교~금계마을에 있는 숙박시설은 매동마을(011-524-5326), 실상사(063-636-3031), 창원마을(011-9536-5386, 011-9629-9677). 의중마을~세동마을은 의중마을(010-8514-5310), 송전리 산촌마을(055-963-7949, 019-463-5989), 지리산 자연휴양림(055-963-8133) 등이다.
마천버스(055-962-5017)와 마천택시(055-962-5110)도 알아두면 중간에 빠져나올 때 편하다. 동서울에서 인월이나 마천, 함양까지 버스가 있다. 인월터미널(063-636-2000), 마천버스(055-962-5017), 함양터미널(055-963-3281~2)에 문의하면 서울 가는 차편을 정확히 가르쳐준다.
▲ 지리산길 안내도, 전체구간 개략도.
지리산길 어떻게 추진됐나 (사)숲길서 산림청 지원 받아 5개년 계획 사업 추진 사업주체 숲길서 지자체로 넘어가 길 조성 연속성 훼손될까 우려
지리산길은 지난 2007년 산림청에서 사단법인 ‘숲길’을 사업 주체로 해 5개년 계획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지리산권 5개 시군(남원시, 구례군,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을 연결하는 300㎞를 조성키로 하고, 전체 예산 100억 원을 녹색자금관리단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민간 차원에서도 지리산 숲길 조성 논의가 활발했다. 수경·도법 스님과 함께 생명탁발순례단에 참여했던 이원규 시인은 “사람이 다니는 지리산길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그 제의를 발단으로 점점 더 논의가 확대됐다.
생명연대에 참여하고 있던 윤정준 팀장도 “지리산 트레일을 만들면 지리산이라는 지리적·문화적 개념이 일반인들에게 먹혀들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공식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이 의견으로 국토관리청과 건교부 공무원을 잇따라 만나 사업 타당성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도 가졌다. 국토관리청에서는 “도로가 아니다”라며 일찌감치 빠졌고 나중에 산림청으로 사업이 주어졌다고 했다. 그는 지리산길 조성 초대 사업단장을 맡았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이 너무 많아 겨우 결혼한 집사람과 두 번이나 이혼할 뻔했다”고 말했다.
2007년 (사)숲길에서 사업을 전담해 계획 노선과 전체 구간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영국, 독일, 스위스, 스페인 등 외국 트레일 답사도 하고, 자료도 모았다. 분야별 전문가 자문과 지역협력을 위해 마을대상 사업설명회도 25차례 이상 개최했다. 드디어 그해 8월엔 첫 시범구간을 착공했다. 2008년 3월엔 안내센터를 준공하고 4월엔 지리산길 시범구간을 개통했다. 장항교~금계마을의 11㎞와 의중마을~세동마을의 10㎞가 첫선을 보인 것이다.
개통 이후 사람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마침 새로운 여가문화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걷기와 맞물려 많은 사람이 지리산길을 이용했다. 숲길은 지난해 10월 구인월마을~장항마을의 약 9㎞ 구간을 추가 개통한 것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이용객이 약 3만5000~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 5월 중엔 남원시 인월면 지리산 안내센터~주천면의 24㎞, 함양 송전마을~산청 금서면의 16㎞를 추가 개방한다. 총 연장거리가 70㎞로 늘어나는 것이다.
사업주체인 숲길에서는 예상 소요시간을 정리했다. 인월면~금계마을 19㎞ 7시간, 금계마을~동강마을 15㎞ 6시간, 동강마을~수철마을 12㎞ 5시간, 인월면~운봉읍 9㎞ 3시간, 운봉읍~주천면 15㎞ 6시간 등으로 나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객은 자기 걸음 수준에 맞춰 민박이나 차량을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올해부터 사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사업 주체를 사단법인 숲길에서 지자체로 이관한 것이다. 예산도 2007년 20억 원에서 2008년 15억 원, 2009년 10억 원으로 대폭 줄었다. (사)숲길은 설계만 관여하고 이후 길 조성과 사업은 각 지자체에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숲길 윤정준 조사팀장은 “지자체에서 지리산길 사업의 연속성을 이어받아 그대로 추진하면 상관없지만 전혀 새로운 지리산길이 생길까봐 두렵다”면서 “나무 데크를 마구잡이로 설치하는 지리산길이 아니라 옛 길을 살리는 지리산길로 거듭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