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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김민호 목사)
(사 40장) “1.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작은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희망의 말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성경의 예언서는 이사야부터 말라기 까지 총 17권이나 됩니다. 성경에는 수 많은 예언자들이 등장 하지만 성경책을 기록한 사람의 숫자로만 계산 했을 경우에는 총 16명입니다.(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는 동일저자) 이들 16명 중에 남과 북의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 9명의 예언자들이 활동을 하였고,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참고로 포로시대는 예레미야를 포함 4명의 선지자, 귀환 시대는 학개를 포함한 3명의 선지자). 유대인들은 성경의 중요도에서 제일먼저 모세 오경을, 그 다음에 예언서를 말합니다. 예언서 중에 제일 앞에 이사야가 배열 된 것으로 보아도 이샤야가 중요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는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에서 구약을 인용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절들이 예언서인데, 그 중에서 최소한 50회 이상의 이사야의 구절들을 인용하였습니다. 이사야를 포함한 예언서들이 구약과 신약의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예언서들을 잘 읽어야 신약성경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예언서 읽으실 때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이해가 잘 되십니까? 예언서들이 분량도 많고 내용이 어렵습니다. 자주 인용하는 성구들은 몇 가지씩은 아실 테지만 예언서 전체를 정독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예언서의 내용이 어려워서 접근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예언서의 내용 자체가 멸망, 심판, 회개, 명령, 경고, 권면 등등해서 ~하라, ~하지마라, 왜 안하느냐, 큰일 난다, 돌아오라, 이런 여러 가지 듣기 거북한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은 누가 뭐하라고 잔소리하고 지시하면 즉각 반발하는 심리들이 있습니다. 통제하고 조종당하는 것을 극히 싫어합니다. 듣기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내 생각)이 옳고, 자기 방법(내 방법)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바로잡으면 훨씬 빠르고 좋은 길을 찾을 텐데 인정을 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눈에 들어있는 티는 크게 보면서, 자기 문에 들어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수많은 선지자들을 계속해서 보내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이르고, 심각한 말로 주의를 주어도 들은 척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7장 13절에,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말씀 합니다. 또 예레미야 25-26절,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말씀 합니다. 계속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듣고 곧바로 순종하는 효과는 전혀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불신하고 불평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더 심하게 해 나갑니다. 부모가 자식한테 잘하라고 가르쳐 주었는데도 듣기는커녕, “내가 알아서 할게요, 제발 좀 그만하세요, 어휴 지겨워”이렇게 반응하면 진짜로 정이 뚝 떨어지게 됩니다. 다시는 말하기도 싫어질 것입니다. 진짜로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 자녀이지만 그래도 꾹 참고 또 타이르고 또 웃어주며 가르쳐 주려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무한정으로 참고 기다리시지 많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하나님 말씀 듣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레미야 7장 16절 우리말 성경) “너는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거나 그들을 위해 부르짖어 구하지 마라. 내게 간구하지 마라. 내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못들은 체하고 거부하고 불순종하며 살다가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관계를 단절 하실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매일 우리가 성경 읽고, 예배 시간에 나와 말씀 듣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의무감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만큼 우리가 연약하고, 앞날을 예측 할 수 없는데도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나를 계속 교정해 나가고 내가 더 이상 흔들리며 살지 않도록 견고하게 고정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성경책은 없습니다. 특히 예언서는 희망을 주는 책으로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앞으로 되어 질 일에 대해서 소망을 주는 책입니다. 구약의 예언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다 성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아직 할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개인적인 소망도 있고, 가정의 소망도, 교회의 소망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시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선포되는 말씀을 잘 받으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어 주실 미래의 좋은 일들에 대한 큰 기대와 소망을 품으시고,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희망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 희망의 메시지는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는 선포입니다
과거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놓고 말하려는 것을 꺼려합니다. 하지만 과거 이야기라도 감추는 것만은 아니고 예외인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남자들이 즐겨하는 과거 이야기는 축구 이야기, 그리고 군대이야기라고 합니다. 남자들이 이것보다 더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입니다. 여자들이 즐겨하는 과거이야기 거리는 자랑하기(남편, 집 평수, 명품), 아는(동창, 이웃사람, 연예인 포함)사람 이야기 - 뒷담화로 이어질 확률 높음 - 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다이어트 실패기라고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기억들이 쌓여 가는 것이 아니라, 지우고 싶고 가리고 싶은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 인생이 고달프고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들이 무겁기만 합니다. 상대적으로 봤을 때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아픔과 상처도 당사자에게는 절대적인 쓰라린 기억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다 다 아프고, 힘들고, 복잡한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는 과거가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은 파괴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간 사건입니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그렇게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던 백성들이었지만,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은 자신들의 불순종과 죄악들을 참회하며 목이 쉬도록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부르짖는 모습과 기도 소리들을 다 들으셨지만, 때가 차기를 묵묵하게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말씀 이사야 40장은 오랜 기간 동안 단절되고 불통 되었던 과거는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 되었음을 선포 하고 있습니다. 1절에,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은, 과거에서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나와 너,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의 사이처럼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합니다. “내 백성”이라고 불러주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시작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위로 하라는 것입니까? 징계를 받아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고, 궁핍함으로 빈궁하게 살아가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소망도 하나씩 하나씩 끊겨가는 절망적인 시간들을 잘 참아냈다는 위로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말씀에 불순종 한 것에 대해서는 심한 징계를 내렸지만, 때리는 매를 참고 견디며 용서를 구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켜 돌아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충분히 반성하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돌이키는 자에게는 이전보다 더 큰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십니다. 그 전에 지은 죄과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하나도 묻지 않으시고 깨끗하게 다 용서해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북 이스라엘의 열 네 번째 왕이었던 므낫세 왕은 모든 왕들 중에 가장 많은 55년 간이나 통치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우상숭배와 악행들을 저질렀습니다. 오죽했으면 므낫세 왕 한사람이 저지른 죄악의 정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해서 멸망했던 여러 나라들의 모든 죄악보다 더 심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런 므낫세 왕이었지만 그가 참으로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지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역대하 33장 13절에서, “그때서야 므낫세 왕은 여호와가 하나님인줄 알았더라”고 합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자기주장대로 집을 나갔다가 전 재산을 잃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둘째 아들을 이전보다 더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오겠다면, 돌이키겠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의 자세를 취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즉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내 백성을 위로 하되 마음에 닿도록 말하고 그들에게 외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위로입니다. 아픔과 슬픔과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지는 위로입니다. 근심과 걱정과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는 위로입니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게 하는 위로입니다. 위로를 통해서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수 많은 문제들 보다 훨씬 크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게 됩니다. 위로를 통해서 하나님만이 내 편이셨고, 하나님만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유일한 분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덩이와 숯덩이처럼 되어버린 마음들이 다 녹아내리는 충분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보십시오. 꼭 그렇게 해 보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쓸어내리시는 하나님의 큰 위로의 손길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노역의 시기가 끝났다”, 둘째,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는 선포입니다. 노역의 시기는 하나님의 징계의 시간이 종료되었다는 선언이며, 죄악이 사함을 받았음은 진실한 회개를 하나님이 받아 들이셨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로 인해 완전하게 “새로운 시작이 출발되었다”는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일종의 사면복권인 셈입니다. 선언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3절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는 세례 요한 선지자를 말합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말하는 것으로 신약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다시 시작하고, 새 출발하는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노역의 힘든 시기, 곧 사탄이 우리를 묶어 두고 종 노릇 하게 만든 그 험난한 시기가 지났고, 지난날의 모든 죄악이 사하여지고 깨끗함을 얻은 그 시점에 서 계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다시 새 출발하는 우리들이 더 이상 노역의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게 하시려고, 그리고 죄로 인해 사망의 구렁텅이에 끌려가게 하지 않으시려고 가장 확실한 지킴이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붙여 주시겠다고 약속 하십니다. 이건 단 한 번의 마음의 위로를 받는 수준이 아니라 영원한 해방, 영원한 자유, 영원 나라를 안겨 주시는 하나님의 깜짝 선물입니다.
5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예수님을 의미 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오셔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고, 이 땅의 모든 육체를 입은 사람들은 다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더욱더 확실하게 보증해 주는 말씀이 8절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진리입니다. 선포 되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결코 식언하시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말씀대로 오셨고, 우리가 새 출발을 해 나가도록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예언의 말씀이 하나라도 틀리거나 바뀌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10, 11절은 새 출발을 하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로 약속 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인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10, 11절 말씀을 풀어서 설명 드립니다. “하나님은 강하시고, 권능(팔)로 다스리시고 우리에게 주실 상급과 보상을 지니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목자처럼 양떼를 먹이시고, 어린 양을 팔로 모아서 품에 품으시고, 젖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끌어 가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서는 새 출발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모든 적들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며, 먹고 마시는 모든 문제를 풍성하게 채워 주실 뿐만 아니라 가슴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를 품 안에 품고 다니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많은 기간 동안 눈물과 고통가운데 지내면서 소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지냈었는데,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고 선포 하신 후에는, 노역도 풀어 주시고, 죄악도 사하여 주시고, 동행자 예수님도 보내 주시고, 적도 물리쳐 주시고, 의식주도 해결해 주시고, 따뜻한 품에도 안아 주십니다. 이렇게 다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내용인지 실감이 나십니까? 듣고 있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천지개벽, 경천동지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모든 선포와 약속이 저와 여러분, 우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믿음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출발이 시작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큰 위로를 받으십시오. 힘든 시기가 지났습니다. 마음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다 내려놓으십시오. 모든 죄악이 사함을 받았습니다. 감사로 영광을 돌리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의 동행자이시고 보호자 이십니다. 손을 내밀어 잡으시고 함께 걸어가십시오.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모든 문제들을 낱낱이 다 맡겨 보십시오. 하나님이 풍성하게 다 채워 주십니다. 있는 것에 만족하고 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품어 주십니다. 더 가까이 더 가까이 하나님의 품 안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을 시작 하실 때 하나님이 선포 하신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으셔서 참 소망과 희망의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희망의 메시지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라”는 선포입니다
평소 신앙이 담긴 격언으로 SNS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탤런트 신애라씨가 지난 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입니다. “하나님을 작은 분으로 보면 백 가지 ‘작은 악(惡)’이 생기고, 하나님을 큰 분으로 보면 만 가지 ‘현재의 문제(問題)들’이 해결 된다” 는 격언과 함께 “내 문제가 하나님보다 큰가? 하나님이 내 문제보다 크신가?”이런 글이었습니다. 이 글은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 였던 에이든 윌슨 토저(A.W. Tozer) 목사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신애라 씨는 현재 미국에서 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그녀는 말하기를, “배우로 유명해진 데는 그것을 통해 좋은 일을 하라는 하늘의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온 목적을 알고 소명을 받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교회나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입양과 위탁 공동체를 만들고, 위탁가정 부모들을 위한 양육법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애라씨의 자녀가 고등학생이라 미국에서 교육 문제 등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그 문제들을 믿음으로 이겨 나가고, 소명과 사명을 가지고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대처하느냐의 차이가 문제를 돌파해 나가느냐, 문제 앞에 주저앉고 포기하느냐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문제보다 하나님을 너무 작은 분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능력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흔히 인간의 뇌 사용량은 10%도 안 된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100%를 사용해도 수치상으로 제한선이 그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능력을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도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이고,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를 닫아 놓느냐, 개방해 놓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통로가 무엇이겠습니까?
미국의 워싱턴 D.C. 소재, ‘내셔널 커뮤니티 교회(NCC)’의 수석목사로 섬기고 있는 마크 배터슨 (Mark Batterson)목사의 『써클 메이커 Circle Maker』 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도로 원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부제를 달아 출판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작은 기도의 작은 원만 그리다 말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굳게 믿는 다면 크신 하나님의 꿈이 어울리는 점점 더 큰 원을 그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되는 통로가 바로 기도입니다. “나는 작지만, 하나님은 크신 분이다. 나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이 있으시다. 나는 문제가 많지만, 하나님은 모든 문제보다 크시다.” 기도를 통해 이러한 사실들을 믿고, 선포하고, 받아드린다면 크신 능력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 분이라고 믿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 12-26절 까지는 무한한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에 대해 선포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만들었느냐?, 누가 가르쳤느냐?, 누가 지혜를 주었느냐?, 누가 세워 주었느냐?,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아무도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능력의 한계를 의심하거나 제한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문제들을 무한하신 능력의 하나님 앞에 갖다 놓아 보십시오.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헤아려 보시고, 산 들을 어깨 저울로 달아 보실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려져 있다면, 우리가 내려놓은 그 문제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똑똑히 보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신다면 예배드리는 이 순간에도 온 우주 만물을 수 천 수 만 번 없앴다, 창조하기를 능히 반복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시기를, “능력과 힘이 있다고 자부하는 이 세상의 통치자들조차도 한 낱 풀포기와 같아서 하나님이 강풍을 내시면 검불과 같이 날라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 하는 사람들에게는 곧바로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28-29절을 우리말 성경으로 읽어 드립니다. “~그분은 지치거나 피곤해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통찰력은 아무도 탐구할 수 없다. 그분은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고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보답으로 지치고 약한 우리들에게 새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30절에서, “비록 젊은이들이라도 피곤하여 지칠 것이고, 장정들이라도 맥없이 비틀거린다”고 합니다. 청년과 장정은 자신의 힘만 믿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람들,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고집 부리고 자신이 다 짊어지고 가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청년과 장정들은 힘을 복 돋워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경험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31절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라”는 희망의 선포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성공 하고 싶고, 잘 되고 싶고, 건강 하고 싶고, 돈 많이 벌고 싶고, 평안하게 살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가진 공통적인 희망사항들입니다. 이것들을 거짓말처럼 다 이루어주신다고 합니다. 땅만 바라보고 사는 답답하고 꽉 막힌 현실을 벗어나서 가슴이 뻥 뚫리고 시원해지는 높은 하늘위로 날아오를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십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앙망 한다는 말은 여호와를 소망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고 원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믿음으로 사모하는 자에게는 모든 이 땅의 문제들이 사라지고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눈높이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데로 높이 날아오르셔서, 먼 곳을 바라보시고 무한한 능력의 크신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풍성하게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 희망의 선포를 하셨습니다. 첫 번째가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는 선포였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허락하신 영광의 하나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는 동행자 예수님과 늘 함께 하셔서 산뜻한 새 출발을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마침 한 해의 중간이 되는 주간이고, 다음 주가 맥추감사절입니다. 지나간 일들은 다 잊고, 지워버리시고 앞으로 되어 질 좋은 것들만 꿈꾸시며 나아가시면 됩니다.
두 번째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라”는 선포였습니다. 많은 문제들 제발 좀 짊어지고 계시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으십시오. 저도 내려놓을 테니, 여러분들도 다 내려놓는데 힘쓰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말씀으로 보여 주셨으니, 믿음을 회복하시고, 기도로 하나님과 접촉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만을 일생의 소망으로 삼으셔서 날마다 채워 주시는 새 힘으로 높은 곳까지 날아올라 보십시오. 높은 곳에 이르러 바라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이제 마음속으로 다짐 하며 외쳐 보겠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예수님과 동행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겠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하나님만을 소망하며 크신 능력의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하늘 높이 날아오르겠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주신 희망의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평안과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00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새 출발을 열어 주시고, 하늘 높이 오르도록 새 힘을 공급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은혜로 내려 주신 약속의 말씀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만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크신 능력되시며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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