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8.19 05:13 / 수정 : 2009.08.19 08:19
"법당 대신 인재 키워야" "선원(禪院) 풍토 나태해져"
실상사서 4박5일간 개최 갈 길 놓고 직격탄 오가
"불교에는 <법화경> <화엄경> 등 훌륭한 경전이 많은데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
(所依經典·기본으로 삼는 경전)을 〈금강경〉으로만 한정하는 것이 옳은가?"(
무비 스님)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하는 참선 수행법)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향봉 스님)
"참선이 선원(禪院)이라는 안정적이고 정적(靜的)인 환경에서
죽비 소리에만 따라야 하는가. '움직이는 선원'은 어떤가?"(도법 스님)
한여름 무더위 속에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사(實相寺)에서 14~18일
스님과 재가자 200여명이 어우러진 '야단법석(野壇法席)'이 벌어졌다.
"정법(正法)불교를 모색한다"는 주제의 야단법석에는 조계종의 '스타 스님'들이 출동했다.
선교(禪敎)를 두루 공부한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혜국 스님(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그리고 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으로서 지난 5년간 전국을 발로 누빈 도법 스님 등이었다.
이들은 4박5일간 기본경전, 수행방식, 안거제도까지
조계종의 근본을 들었다 놓았다. 치부(恥部)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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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상사에서 열린〈정법불교 모색을 위한 지리산 야단법석〉에서 전국선원수좌회 대 표 혜국 스님의 법문이 끝난 후 한 스님이 질문하고 있다./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특히 17일 법석은 공개된 자리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솔직한 대화가 오가며 불꽃이 튀었다.
오전 발표를 맡은 향봉 스님(전북
익산 사자암)은 조계종의 중심 수행법인 간화선에 대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그는 "좌선(坐禪) 일변도의 정진방법과 죽비소리에 맞춰 길들여지고 있는 '시간 지키기'의 수행방법은 문제"라며
"안거(安居) 해제(解制) 때 참가자들에게 주는 해제비(解制費)까지 사찰 간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마디로 "간화선의 화두(話頭) 정진에는 허물이 있을 수 없지만 수행 방법에는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방장(方丈), 주지(住持) 등의 선출 때 폐쇄적인 구조 ▲회갑 등 승려들의
생일잔치 풍토 ▲안거수(數)에 따른 기계적인 경력 인정 ▲수행 정도를 따지는 법거량의 실종 ▲법어(法語)
대필(代筆)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청규(淸規)의 실종 등을 지적하며
"한국 불교는 '앉는 불교'에서 벗어나 '일어서는 불교'로 변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주장했다. 오후 발표에 나선
혜국 스님은 "개인주의화되고 나태하게 된 선원 풍토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제가 49년 전 출가할 때만 해도 전국에 수좌(首座·참선하는 스님)가 200명도 안 됐는데 지금은
조계종 1만2000명 스님 중 수좌가 2000명에 이른다"며 "조선조 500년 동안 끊어졌던 불교의 명맥을 이은 것은
간화선을 수행한 스님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백산에서 홀로 수행하던 체험 실패담까지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조계종이라는 '귀하고 오래된 법당'을 깨고 새로 짓자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우리가 조계종에 대해 간화선
외에 무엇으로 정체성을 이야기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혜국 스님은 "재목(材木) 없는 새 법당은 공염불"이라며 "인재양성이 먼저"라고 했다.
결국 논의는 승가(僧伽)의 교육 문제로 모아졌다. 도법 스님은 "조계종 스님들은 도량(道場) 주변의 이웃보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누리지 않겠다는 정신, 정체성을 가져야 할 것"이라며 "불교 사상사적 측면에서
어떤 승려가 될 것인지를 가르치는 승가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에 선원 수좌들도 나서야 한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도법 스님은 또 "정법불교를 모색하기 위한 이 같은 야단법석을 자주 열어
부처님 당시처럼 사부대중의 의견이 잘 소통되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