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야 밥 먹어!” |
밥이 적으면 물에 말아 잡수시고 겨울엔 해가 짧다며 점심 거르며
우리만 먹이셨던 어머니 기도는 세월이 지나고 변했어도 여전해…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신 어머니의 열 가지 은혜 가운데 다섯째는 이러하다. “아기를 마른자리에 뉘고 자신은 진자리에 눕는 은혜이니 찬탄하노라.”
어머니는 진자리에 당신 몸을 누이시고 어린 아기 고이고이 마른자리 눕히시네. 두 젖으로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워 주고 옷소매를 드리워서 찬 바람을 가려 주네. 잠조차 잊으시고 한결같이 사랑하며 사랑스런 아기 재롱 기쁨으로 삼는 도다. 오직 하나 어린 아기 편할 것만 생각하며 자비로운 어머니는 불편한 것 마다 않네….
나는 어느 날 〈부모은중경〉을 읽다가 목이 메고 눈물이 나서 책을 덮은 적이 있다. 바로 건넌방에 누워 계신 어머님의 모습 때문이었다. 칠흑 같던 머리는 백발이 다 되셨고 광채 나던 두 눈엔 빛이 겨우 느껴지시는 광적 농사에 살림하던 아름다운 두 손은 앙상하게 비쩍 마르시니 영락없는 갈고리가 되었다.
어머니는 어느 날의 실수로 엉치 뼈가 부러지셔서 이제는 갓난아기처럼 기거나 누워 계셔야 한다. 그러면서도.“얘비야 밥 먹어…!” 밥 때만 되면 이 아들이 있는 곳을 향해 힘차게 부르신다. 어머니에겐 밥이 신앙이시고 밥이 부처님이시다.
밥 먹어라. 밥 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 이런 말이 배부른 요즘 세상에도 아랑곳없이 가장 소중한 말씀이라고 여기시기 때문이다. 무서운 전쟁 통에 아롱이다롱이 칠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던 절박한 상황이 뼈에 사무쳐서 아직도 눈에 선한데 어찌 밥이 신앙처럼 부처님처럼 소중하지 않을 것인가.
내 기억 속에 어머니는 우리들이 먹을 때 몰래몰래 배를 곯으셨다. 쌀밥은 골라 나를 주시고 보리밥 쪽으로 퍼서 잡수시고, 어머니 밥그릇에는 항상 적게 퍼 담으시고, 밥이 적으면 물에 말아서 후룩후룩 잡수시고 깊은 겨울에는 해가 짧다며 점심을 거르시며 우리에게만 먹이셨던 어머니시니까.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는 지금도 우리를 배불리 먹이시는 것이다. 그래서 밥 때가 되면 아주 큰 소리로 “애비야 밥먹어…”를 아들이 밥상에 앉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신다. 그 소리는 쩌렁쩌렁 울린다.
가끔 현관 밖에서 일을 하다가 (우리 집은 경기도 어느 산골에 있다) 유리창 밖까지 들리는 그 어머니의 부르심을 들을 때는 행복한 마음이 든다. 난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밥 먹으란 부름을 듣는데 머지않아 그 소리를 더 못들을 날이 있을 것인데, 그때 어머니의 그 ‘애비야 밥먹어…’ 소리가 얼마나 그리울까도 생각해 봤다.
어머니 마음에는 아들이, 초로의 이 아들이 아직도 6ㆍ25 직후의 어렵던 시절에 뛰어 놀던 아이로만 여겨지실 것이다. 슬하에 있던 자식들이 모두 성장하여 제 살길 찾아 떠났지만 눈앞에 보이는 맏아들만은 아직도 당신 곁에 있으니 세월이 지나고 변하였어도 어머니의 간절한 모정 또한 변함이 없는 것이다.
어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은 아내가 올해도 겨울 김장을 푸지게 해 묻었다. 따뜻한 쌀밥을 소복하게 퍼 놓고 잘 익은 김치를 소담하게 썰어 담아내고 청국장 보글보글 끓여 아침상을 차려 놓으면 어머니는 때맞추어 아들을 부르실 것이다. “애비야 밥 먹어…”
이 계 진 국회의원
[불교신문 2288호/ 12월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