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바하는 우리나라 음악 애호가들에게
<쟈클린의 눈물>,
<하늘 아래 두
영혼>
등의 아름다운
첼로 소품들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실은
희가극 전문 작곡가로서 무려 90여 곡의 오페레타를 남겼는데,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관현악이라면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의 서곡과 가극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의 관현악 버전일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에 바탕을 둔 풍자적인 작품으로
<지옥의 오르페우스>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데,
이 오페레타의 서곡
종결부에 든 ‘프렌치 캉캉 갤럽’은 누구나 다 아는 너무나 친근하고 통속적인
선율이다.
그가 남긴 극히 내면적이고 그윽한 첼로
소품들을 통해서만 오펜바하라는 이름을 접하던 사람들은 경주마의 정신없는 질주를 연상시키는
‘프렌치 캉캉’
선율이 오펜바하의
작곡임을 처음 알고 나면 거의 배신감을 느낄 정도의 충격을 받는
듯하다.
흔히 <호프만의 뱃노래>라고 불리는 ‘뱃노래’는 <호프만의 이야기>에 흐르는 2중창 아리아 ‘아름다운 밤,
오 사랑의
밤이여’를 가리키는데 이 아리아의 관현악 버전 역시
노래 못지않게 자주 들을 수 있으며,
매혹적인 밤의 정취에
젖는 듯한 아름다운 곡이다.
내가 월2회 진행하는 동네주부 학생들과의 음악감상
수업에서는 듣기 좋으면서도 예술성 높은 곡들 위주로 선곡하는데 더러는 그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곡들도 섞게 되며 누구나 다 아는 이런 곡들을
턴테이블에 올릴 때마다 나는 주부학생들에게 늘 “이 곡을 다 듣고 나서도 난생 처음 듣는
음악이다 싶은 분은 수업 마치는 대로 바로 수성못으로 가면 된다!”라고 말한다.
이 곡 모르면
수성못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듣는
주부학생들은 재미있어 하면서도 자신이 아는
곡인지 약간 긴장하면서 듣게 된다.
더러는 수성못으로 가라는 말
대신,
“이 곡 모르면
그동안 세상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언젠가,
베토벤
<영웅>
교향곡의
제2악장을 심각하게 들은 직후에 기분전환용으로
오펜바하의 <천국과 지옥>
서곡을 틀면서는
“이 곡의 종결부를 듣고도 처음 접했다 싶으면
바로 수성못 행인데 오늘은 아무리 수성못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고 첨언했다.
이렇게 말해도 학생들은 혹 모르는 곡 아닌가
싶어 긴장하며 듣더니 피날레에 가서야 “오늘은 수성못에 안 가도
되겠네!
휴,
살았다!”
하며 밝은
표정들이었다.
학생들 중 의협심
강한 J여사는 <쟈클린의 눈물>과 <하늘 아래 두 영혼>으로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던 오펜바하가 프렌치 캉캉 같은 경망스런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며 심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참고로,
수성못은 대구
수성구에 있는 인공 못으로 원래는 일제시대에 농업용으로 조성되었지만 지금은 유원지로서의 기능만 남아 있으며
인근에 각종 술집,
퇴폐
노래방,
러브호텔들이 늘어선 악마의 땅이 되었다(퇴폐 노래방이 어떤 곳인지 궁금한 분들은
따로 연락 주시기 바람).
대구사람 치고 수성못 가에서 연애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지금은
정비한답시고 못 가의 음습한 수풀들을 다
제거해서 철수가 영자와 숨어서 쪽쪽 거리던 추억의 장소들이 다 사라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
올 때마다 묵던 수성관광호텔도 이곳에 있으며 최근 대구 최고의 호텔로
리모델링되었다(이름도 호텔 수성으로 바뀌었다).
수성못의 물로 농사를 짓던 못 아래 들판이
바로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그 들이며,
아니나 다를까 이
거대한 못을 조성한 이 역시 린타로라는 일본인으로 그의 묘가 못이 내려다보이는 인근 언덕에
있다.
오펜바하 :
첼로 소품 <하늘 아래 두 영혼>
오펜바하 : 첼로 소품 <쟈클린의
눈물>
오펜바하 :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
오펜바하/오페레타 "천국과
지옥" 서곡. 프렌치 캉캉만 들을 분들은 7:11로 바로 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