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태구시라하고 당골래의 어원
진도에서 들일 하다가 밥먹을라등가 엇서 먹으꺼시 둘오믄 맨 몬차 한 수꾸락 뗘가꼬
쩔로 띵김시로 “태구시라!”나 “태고시라!” 라고 안 하요?
요 말언 표준말 <고수레>라넌 말이나 행동이 같은 것이로
어원얼 따져 보자믄 두 가지설이 있는데 요 것덜도 확실하다 할 수는 읎제만
첫째, 고수레(고시레)는 곡식의 신인 고시씨(高矢氏)에서 비롯댰다는 야그로
**<규원사화>라는 책의 <태시기>에 보믄 환웅이 환인의 명을 받아 치우씨(蚩尤氏), 고시씨(高矢氏),
신지씨(神誌氏) 등으로 대표되는 3천의 무리와 함께 인간 세상을 다스렜다넌 말이 나오는데라.
그 시(3) 분 중에서 고시씨(高矢氏)가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준 신인데라
고 고시씨 한테다 은혜를 갚기 위해 생긴 풍속이라는 설이 잔 설득력이 있다 하겄습디다.
그랑께 곡석 길르능것얼 갤챠준 고시씨한테 몬차 예(禮)를 차린다는 데서 '고씨례'(高氏禮)라 했고,
요것이 곧 고수레라는 설명인데 진도서넌 걱다가 더 자세하게 시대적 배경인 태시기까장
들멕임시로 "태고시라!" "태구시라!" 라고 하능거겄지라? 앙그라요? 아니믄 말고라!
혹 사램언 진도서 당골래가 물림굿 할 쩍에 퇴(물리다)라고 함시로 말 하능것이
퇴굿(물림굿) 곧 "퇴굿이라!"가 아닝가 물읍디다만, 제 생각이로넌 고것언 아닝거 같으고
물림굿 할때 내전 쪼빡 붓어놓고 부샄칼 던짐시로 하넌 말은 “헙씨 닦어라!” 여라.
그란데 진도 당골래 만나믄 꼭 고 말뜻 잔 물어 볼라능것이 그랄 기회가 읎구만이라.
둘째, 고씨네 야근데라.
이전에 먹으꺼시 읎어가꼬 굶어 죽은 고씨네라는 아짐씨가 한나 있었는데라,
술참을 먹을라고 봉께 그 불쌍한 아짐씨가 생각나가꼬 첫 수꾸락 떠가꼬
쩌그 까끔밑에 삔닥지에 건너다 뵈넌 고씨네 뫼뚱을 봄시로 "고씨네도 먹으라."고
"고씨네!" 함시로 음석얼 뗘 줬등만 그 사램이 그해 풍년이 들었다고 소문이 낭께
너도 나도 따라 해가꼬 고케 댰다넌 야그가 있제만 요 말언 걍 재밌으라고
누산네가 짓어낸 말 같읍디다.
그라고 진도 당골래의 어원 역시 단군-단굴-단골-당골-당골래 등이로 잇어진
단군신화에서 찾아 볼 수 있겄는데라.
여그서 중요한 것언 단군신화는 어디까지나 입에서 입이로 전해 내레온 신화다 봉께
모도가 진실이라 믿기는 에럽제만 그래도 그 뿌렁구넌 분명히 있는 야긍께
고 야그를 찰로 모도 믿기 보담은 거그서 진실의 뿌렁구럴 유추해 낼 수 있능 거 겄지라.
흔히 단군 한 분이 1500년을 살고 죽었다고 알고 있제만
혼차서 고케 오래 상것이 아니고라 여러 사램이 47대 대를 잇어가꼬
1205년간 지속되었다고 기록이 있어라.(위서 논란이 더 큰 환단고기에넌 47대 2096년)
그랑께 1대 단군 부텀 47대 단군까장 단군이란 명칭은 하늘에 제사를 모시는 제사장으로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에는 제정일치 시대가 있어가꼬 제사장이 곧 인간덜얼 다스렜싱께
그 단군이 곧 임금이요, 하늘에 제사를 모시넌 제사장이요 신하고 직접 통하넌 신의 아들이고
신의 딸이었겄지라.
고케 보믄 제사장이고 임금이었던 그 단군시대가 망함시로
고구려 백제 삼한 가야등의 국가 체계가 세워 짐시로 제사장하고 통치자가 달러지긴 했제만
그래도 음마전에 연속극 선덕여왕때 미실 가칠로 제사장의 위치가 일정부분 존재했다가,
불교가 둘오고 그람시로 급격히 쇠태하다가 말년에 조선시대 와가꼬넌 백정이나 갖바치하고 같은
질로 아래의 젤 천한 팔천(八賤)등급이로 떨어져가꼬 당골래덜 하고넌 혼인도 안 항께
즈그네 나깐 당골덜끼리만 여우살고 그랬어라.
그랑께 진도 당골래넌 집안 대대로 세습얼 하넌 세습무로,
서울등 다른데의 강신무(신이 내리는 내림굿을 통해 신아들 신딸로 대를 이음)하고넌
왼통 달른 무속인 집안이로 이전 단군시대부텀 제정일치 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모시든 단군이
오늘날 진도 당골래의 어원이라넌 말이 맞잉거 같으구만이라. 그라지라? 잉그라요?
다시 야그하제만
신화넌 어디까지나 신화로 인정하고 고 속에 당개(담겨)진 지푼 뜻얼 헤아릴 줄 알어사제.
허무맹랑한 야그라고만 치부하꺼시 절대 아니여라.
강대국 중국의 크나큰 땅덩어리 젙에서 오천년 진진 역사럴 지탱해 온 뿌렁구가 거가 있고
삶에 모든 지혜도 거가 녹아들어 있넌 우덜 삶에 진액이랑께라. 찰로!
**규원사화(揆園史話)는 조선 숙종 원년(즉위년 이듬해)인 1675년 3월 상순에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저술한 역사서 형식의 사화(史話)이다.
상고시대 고조선을 세운 왕검(王儉)부터 고열가(古列加)까지 47대 단군(檀君)의 재위기간과 치적 등을 적었다.
규원사화서(揆園史話序) 조판기(肇判記) 태시기(太始紀) 단군기(檀君紀) 만설(漫說) 등으로 되어 있으며,
광복 직후 국립중앙도서관 직원이 서울의 한 책방에서 사들여 1946년 5월 25일 귀중본 629번,
고서 2105-1번으로 등록하였다. 책 크기는 가로 16.5㎝, 세로 24.7㎝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규원사화 귀중본 〈규원사화서〉에 저술시기가 기록되어 있다.
첫댓글 몇자 적어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는 변천하였다.
유교나 불교나 기독교나 우리의 종교는 아니고 .
오직 우리의 종교는 토속신앙..보름달을 보고 우리가정에 우안없고 군대간 우리자식 건강하니 군생활하고 무사히 제대하라고 빌며 풍년 농사도 빌고 큰 바위 또는 마을앞 정자 나무에도 빌고 ..
이세상에 하늘문이 열릴때 어디 박씨 김씨 조씨가 따로 있었겠는가?
이세상에 거지종자가 어디 따로 있었겠는가.
그러나 어쩌것는가 이것이 우리이 문화요 역사인것을...............
금메 말입니다. 안방에 삼신, 대들보에 성주신, 부샄에 조왕신, 장꽝에 철륭신, 칠성님, 꼬방에 업신, 대문깐에넌 수문신, 치깐에 측신, 집터에넌 터주신, 샘에넌 용왕님, 마굿간에 우마신, 까끔에넌 산신...가는데 마디 신이 기싱께 울엄매덜언 걱다가 정화수 떠놓고 치성얼 디리고 타관객지 대처에 나간 자석 있으믄 박그럭에다 쌀 담어가꼬 선반우게다 올레 놓고 그랬지람짜. 새곡석 나믄 성주단지에다 갈아 옇고 여그저그 떡해 올리고 쪼깐한 음석도 태구시라 함시로 개미같은 미물덜하고도 한테 노나멕이 하든 자연과 인간과 더불어 사넌 지혜가 신앙이고 종교였겄지람짜.
세세한 사료 잘보았습니다.
여러면에서 공감하네요!
미신이니 우상숭배니 하는것도 외래문물 도입에 의한 시각이요 변천이라 봅니다.
너룬세상 곳곳마다 믿고 의지하여 숭상하는 바가 있을터 그것을 폄훼하거나 미개시하는 독선은
금물이 아닐는지요!
우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더욱 절실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서영완 씨 옮으신 말씀입니다.
순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지요.
최첨단의 곽학자들도 모험을 할때는 하늘에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우주왕북선를 발사하기전에 성공하여 달라고 보이지 않은 신에게 기도하며 빌고..
유교나 불교나 기독교나 토속신앙이나 보이지 않는 신에게 각자의 나름대로 ..........
아따 진짜 역사공부 많이 했소..ㅎ ㅎ 읽어본께 일리가있소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