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에게는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지만 현대인들은 무분별한 야구 관람과 시청을 통해 화병을 얻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정말이다. 단순히 자기 팀이 졌다고 가루가 되도록 까는 야구팬 특유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분노에는 적어도 감정을 배설하는 후련함이 있었다. 지금 야구가 화병을 유발한다면, 분노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함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응원을 한다고 경기력이 좋아지진 않는다. 굿즈를 산다고 구단이 팬의 바람을 반영하지도 않는다. 심판들은 오심을 하고도 책임지지 않고 비난 여론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지금 야구를 본다는 건 이 모든 걸 감내한다는 뜻이다. 해탈하여 부처가 되거나 보살이 되어 몸에 사리를 쌓거나. 이번 <아이즈> 스페셜에서는 오늘도 야구 때문에 뒷목을 움켜잡는 모든 이들을 위해 화병 야구에 대한 진지한 비판을 준비했다. 과연 이 정도로 그들의 화병이 풀릴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오랜만에 가을 야구를 했던 LG 트윈스는 현재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언젠가 SK 와이번스(이하 SK)의 팬으로 살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단순히 자주 이기고 자주 우승해서는 아니었다. 수비 실책이나 작전 실패에 대한 불안함 없이 야구를 본다면 마음만은 평온하려니 싶었다. 하지만 이번 2014 시즌에 SK의 야구를 본다는 건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난 2011년, SK 왕조를 연 장본인인 김성근 감독을 내보냈던 SK는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옛말과 달리 지난 2013 시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현재는 총 9개 구단 중 6위를 기록하고 있다. 잘못된 선택으로 잘못된 길에 빠져든 것을 보며 화를 삭여야 하는 건, 하지만 SK 팬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해 11년 만에 가을 야구를 경험했다가 9위를 기록 중인 LG 트윈스(이하 LG)나, 지난해 1위에서 8위까지 떨어지고 올해는 7위를 전전하는 기아 타이거즈(이하 KIA) 팬의 문제만도 아니다. 지금 문제는 야구 자체다. LG나 두산 베어스(이하 두산)는 구단이 일방적으로 코칭스태프를 교체해 팬들의 원성을 샀고, 최근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선수들이 수석코치의 독선에 반발해 결국 코치가 자진 사퇴해야 했다. 심각한 수준의 오심 논란까지 더해진 이 총체적 문제는 한국 프로야구 시스템 전체로 소급한다. 올바르지 않은 표현이지만 ‘발암 야구’라는 말이 삼성 라이온즈(이하 삼성)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팀 팬의 입에서 어느 때보다 자주 회자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시즌 프로야구의 가장 큰 특징인 ‘타고투저’ 현상을 그저 재밌는 공격 야구의 부활로 보기 어려운 건 그 때문이다. 가령 지난 5월 1일 기아는 SK를 20 대 2로 대파했지만, 기아 타선의 폭발보다 중요했던 건 SK가 그날 기록한 8개의 실책이었다. 리그 최약체인 한화 이글스가 넥센 히어로즈(이하 넥센)에 16 대 3으로 대승을 거뒀을 때도 승부의 가장 큰 분수령은 4회 초 강정호의 수비 실책이었다. 반복된 훈련으로 실수하지 않는 치밀한 야구를 하기보다는 로또 같은 홈런을 기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전광판 스코어의 크기에 비해 야구 자체는 빈약해진다. 초반 돌풍의 주역이자 여전히 4위권에 이름을 올린 넥센은 마무리 손승락과 함께 필승조를 이끌었던 불펜투수 조상우가 부상을 당한 이후 5연패에 빠졌다. 전성기의 공격력을 회복한 두산은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여전히 선발투수진의 부진을 화력으로 메우는 썩 안정적이지 못한 승리 공식을 사용하고 있다. 나름의 승리 공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아나 LG의 팬은 부러워할 일이지만, 그 공식이 망가졌을 때 속절없이 무너지는 팀을 지켜보는 팬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다. 지고 있더라도 승리를 기원하는 희망고문도 괴롭지만, 이기고 있더라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게임을 보는 건 짜증 난다.
김성근 감독처럼 성적을 낼 수 있는 인물도 구단의 뜻대로 사실상 경질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프로야구다.
야구에 있어 팬들보다 훨씬 전문가일 감독이나 프런트가 이런 문제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야구를 왜 구현하지 못하는지 혹은 안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앞서 인용한 김성근 감독이 2010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음에도 2011년 사실상 경질된 것처럼, 지난해 팬들에게 최고의 환희를 선사했던 LG 김기태 감독은 자신의 뜻대로 구성되지 않은 코치진 때문에 힘겨워하다가 시즌 초반에 자진 사퇴했다. 지난해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올려놓았던 김진욱 감독 역시 시즌을 앞둔 전지훈련 중에 해고를 통보받았다. 물론 김기태와 김진욱이 김성근만큼 검증된 명장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낸 이들을 내보내고 의문부호가 남아 있는 새 지도자를 들여오는 구단의 행동에는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2009년 기아에 우승을 안겨준 조범현이 경질되고 들어온 선동열 감독은 승리를 위해 불펜 야구를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나올 때마다 흔들리고 얻어맞고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는 박경태를 중간 계투로 중용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과연 그들은 정말 더 나은 야구를 하고 싶은 걸까. 묻고 싶지만, 그들은 침묵한다. 이기는 야구, 납득할 수 있는 승부를 갈망하고 요구할 때마다 팬들이 확인하는 건, 그토록 애증으로 돌보는 이 팀이 오로지 구단주나 코칭스태프의 입맛대로만 운영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야구를 보는 건 화나고 짜증 나는 일이다. 게임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 게임을 잘 풀어내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길 바라지만 구단은 종종, 아니 너무 자주 이해할 수 없는 선택으로 속을 뒤집어놓는다. 경기 운영도 납득할 수 없고, 구단 운영도 납득할 수 없다. 심지어 올해 들어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오심 논란을 통해 이제는 룰에 의한 승패조차 납득할 수 없게 됐다. 우리 팀과 야구를 사랑하고 티켓과 굿즈를 사고 응원을 하지만 야구장 담장보다 견고하게 둘러진 팀과 구단, 협회의 폐쇄적인 카르텔 안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그에 우리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언제나 야구는 애증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분노하지 않고서는 이 대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유지할 도리가 없다. 가능한 건 단 두 가지, 화병을 안고 야구를 보거나, 이제 더는 보지 않거나. 우린 왜 애정과 분노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가. 대체 왜 이토록 익숙하고 지랄 맞은 선택지를 야구에서까지 만나야 하는가. 다시 한 번,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