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고기를 앞에 두고
복음 : 마태 9,14 – 15
제가 있는 본당은 시골 본당이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는 태양열집 열판과 발전기를 이용해 전기를 쓰지만, 신자들은 냉장고조차 꿈도 꾸지 못합니다.
아마도 이들한테 배어 있는 나눔의 풍습은 보관의 어려움에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멧돼지가 잡히는 날이면 동네 축제일이지요. 오랜만에 육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한테도 싱싱한 멧돼지 고기가 몇 점 떨어집니다.
그날도 분명 멧돼지를 쫓는 개들의 울음소리도 들렸고, 왁자지껄한 청년들 환호소리도 들렸습니다.
게다가 지나가던 동네 꼬마들이 돼지가 잡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잔치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슬쩍 동네를 둘러보았습니다. 고기도 한 점 얻어먹을 겸 ….
그런데 그 귀한 멧돼지 고기를 훈제만 해놓은 채 먹지 않고 바나나 잎으로 잘 싸놓고 있었습니다.
“아니, 고기를 왜 먹지 않아요 ?” 라고 묻자, “신부님, 오늘은 금요일이잖아요.” 하고 대답합니다.
세상에 ….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 훈제하면서 고기 냄새를 어떻게 참았을까 ?
잘해야 한 달에 한 번이나 먹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고기인데 ….
한국에서 금육 날이면 횟집에서 잔치를 벌였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단식의 의미 · 금육의 의미 · 사순시기에 행하는 여러 가지 희생이,
단지 말마디로 핵심을 피해 가는 요식행위나 내 몸을 위한 다이어트나 금연 정도였던 우리의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진정으로 내 신랑, 내 님을 빼앗겨 슬퍼하고 있습니까 ?
진정으로 내 생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
현대일 신부(파푸아뉴기니 교포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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