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리(Goju-ri, 古州里)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에 있는 리(里).
정의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고주리(古州里)는 팔탄면의 남쪽에 위치한다. 북쪽에는 지월리와 덕천리, 동쪽에는 향남읍 제암리와 발안리, 남쪽에는 월문리와 매곡리, 서쪽은 덕우리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고줏골, 아래고줏골 등이 있다.
고주리는 동남쪽에 접해있는 제암리와 함께 1919년 3월 운동 당시 일본군에 의한 학살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1919년 4월 5일 발안 장터에서 고주리의 주민들이 모여 독립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이때 팔탄면 고주리의 천도교 지도자 김흥열 등도 합류하였다. 4월 15일에 일본군 아리타 중위가 고주리에 와서 주민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였다.
자연환경
고주리의 서쪽에 천덕산[133.5m]이 있고 북쪽 끝에 오두산[140.6m]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지역도 얕은 구릉지대로 약간의 농지가 있다.
발안평야가 보이는 농촌산간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고주리의 본래 명칭인 고주동(古州洞)은 『화성지』에 화성유수부의 공향면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수원군읍지』에서는 수원군 공향면에 소속된 지역으로 등장한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서도 고주동(古周洞)으로 기재되어 있다.
-고주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원군 공향면 고주리에서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로 개편되었다.
-1949.8.14 수원군의 수원읍이 수원으로 승격되고 나머지 수원군 지역이 화성군으로 분리하면서 고주리는 화성군에 편입되었다.
-2001년 화성군이 화성시로 승격되면서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고주리는 논보다 밭이 많은 산간 마을로서 예부터 고추농사가 성행하여 처음에는 고추골로 불리다가 고줏골, 고주동이 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 중 아래고줏골은 고줏골의 아래쪽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예부터 밭이 논보다 많아 고추 재배를 주요 작물로 경작하여 고추골이라 불린데서 고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고줏골, 아래고줏골 등이 있다. 아래고줏골은 고줏골의 아래쪽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현황
고주리의 면적은 약 2.19㎢이다. 인구는 2021년 5월 기준으로 197가구에 319명이며, 남자는 200명, 여자는 119명이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고주리의 북에서 남쪽으로 지난가고 매곡리와 경계를 이루는 남쪽에 발안IC와 톨게이트가 있다. 고주리의 북쪽에는 팔탄면 체육공원이 있으며, 동쪽에는 한국폴리텍대학 화성캠퍼스가 입지해 있다.
고주리(古州里)
평안북도 염주군 서림리 두루봉 아래에 있는 마을.
고려시대 철주고을의 소재지였다 하여 고주리라 하였다. 병장기를 만들던 대장간이 있었다 하여 풍구몰이라고도 한다. 1751년에 철산부사 겸 서림방어사영을 차련관으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