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꾸러미(외 2편)
이창수
서랍을 정리하다가 버려둔 열쇠 꾸러미를 보았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하나둘 모아둔 것들이
한 꾸러미나 되었다
녹이 슨 열쇠를 만지작거리다보니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빈방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옛 시절이 그리운 것도 아니어서
열쇠 꾸러미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철렁!
열쇠들이 소리를 질렀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열쇠들이
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순한 짐승들이
나를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것만 같았다
철렁!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저려왔다
화석
돌 속에서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가시만 남은 몸으로 헤엄치고 있다
눈꺼풀도 없이 앞만 보고 있다
물고기에게는 전생도 후생도 없다
오직 현생만 있을 뿐이다
석경(石經)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물고기가 돌의 강물에서 헤엄치고 있다
백 리 또 백 리
추강에 낚시 드리우니
식당 벽에 걸린 달력 속에 낚시를 하는 노인이 있다
도롱이를 걸친 흰 수염 옆모습이 낯이 익다
숙취를 콩나물 해장국으로 달래며
식당 주인에게 고춧가루를 더 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낚시하던 노인이 나를 보고 있다
저곳은 어디일까
노인이 다시 낚싯대로 눈을 고정시킨다
낙엽이 쌓인 강바닥에 잉어가 지나간다
사람들이 고개 숙여 밥 먹는다
물고기보다 조용히 국물을 마신다
노인이 천천히 밑밥을 갈고 있다
멀리 물레방아가 보이고
허술한 나무다리를 건너오는
지게 진 사내와 그의 아들
두 자나 되는 잉어를 놓친 기억은 사물사물해지고
웅크린 채 밥 먹는 나를
저 노인은 왜 바라보는 것일까
—시집 『귓속에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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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 1970년 전남 보성 출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2000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물오리 사냥』『귓속에서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