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섯 도시 한 달의 생활
김정중
아침이면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쌀국수 한 그릇과 커피로 시작하니 하루. 어디를 가야 할지 정해진 일정은 없었다. 느긋하게 하루를 열고. 그 속으로 스며들면 되는 시간. 이번 베트남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행은 늘 끝이 정해져 있다. 돌아오는 비행기 날짜가 마음을 재촉하게 한다. 그러나 베트남에서의 한 달 살기는 달랐다. 나는 이곳에서 여행객이 아니라 '잠시 살아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 낯선 나라에서의 하루는 특별할 것 없이 느리게 흘러갔지만, 느슨한 평온함이 오히려 나를 붙잡았다. 여행은 처음이 가장 강렬하다. 모든 것이 낮설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작년 겨울에 13일간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던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이 그랬다. 밤이면 오색 홍등이 물들던 거리와 투본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던 소원 배, 그리고 낯선 여행자에게도 서슴없이 건네던 사람들의 환한 웃음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2026년 2월, 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할 무렵, 따뜻한 남쪽 나라가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웠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자연스럽게 또다시 내 발길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이번 일정은 나트랑에서 시작해 꾸이년 호이안과 다낭 그리고 후에까지 한 달간의 동선을 짰다. 도시를 옮겨 다니긴 했지만, 서둘러 관광지를 찍고 이동하기보다는 각 도시에서 며칠씩 머물며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보려 했다.
떠오르는 여행지 나트랑(Nha Trana)
나트랑에서 일주일은 여전히 낯선 여행자의 시간이였다. 하지만 이 도시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최근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시라는 말이 실감 날 만큼, 거리 곳곳에서 익숙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나트랑은 과하게 붐비지 않았다. 사람들은 밝고 친절했고, 물가는 은퇴자의 얇은 지갑을 위로하듯 한결 여유로웠다. 무엇보다 숙소가 건네는 위로가 컸다 하루 3만원이 채 되지 않는 비용으로 4성급 호텔의 정갈한 객실과, 기대 이상의 풍성한 부폐식 조식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선 평범한 브런치 세트 하나 주문하기 힘든 금액이다. 단돈 3만원으로 이토록 품격 있는 아침을 맞이할 수있는 가성비 있는 곳이 또 있을까.
나트랑 해변과 우리에게 낯익은 롯데마트가 바로 코앞에 있어 생활하기에는 최상의 위치였다. 아침이면 해변을 따라 걷기도 하고, 더위가 올라오기 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도시 곳곳을 누볐다.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반미 전문점 '반미판(Banh Mi Phan)'에서 나이가 무색하게 젊은 친구들과 . 뒤섞여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바삭한 반미와 시원한 야자수 열매를 시켜놓고 청춘의 미각을 달래는 것도, 콩 카페(Cong Ca Phe)에 않아 진한 스무디 한 잔으로 망중한을 즐기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앉아 있는 시간조차 어색하지 않았다. 나트랑 해변은 '동양의 나폴리' 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다낭의 미케비치가 잘 정돈된 공원 느낌이라면, 이곳 해변은 조금 더 자유롭고 풍성했다. 해 질 무렵 바닷가를 걷다 보면, 여행객과 현지인이 뒤섞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러시아 관광객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바닷가와 어우러진 고대 참파 유적의 대표 명소, 포나가르 사원은 붉은 벽 돌 사이로 세월의 결이 느껴졌다. 이곳은 소수민족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고대 참족이 지배하던 영토였다.
화려한 현대식 빌딩 숲에 둘러싸인 채 우뚝 선 붉은 벽돌탑을 보며, 나는 내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했다. 참탑이 천 년의 바람을 견디며 자신만의 붉은빛을 지켜냈듯, 나 역시 인생의 2막을 뜻 있고 알차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무언의 위로를 받았다. 해변 끝자락에 있는 '혼총곶'의 아름다운 전망에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거대한 바위들이 제멋대로 엉겨 붙어 성난 파도를 막아주는, 거인의 손바닥 문양이 찍혀 있는 바위 사이로 시원한 해풍이 불어왔고, 그곳의 물빛은 유난히 맑았다. 나트랑은 적당한 관광지와 편안한 생활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현지인들의 여행지 꾸이년(Qui Nhon)
베트남의 습거진 보석. 꾸이년에 도착하면서 여행의 결이 많이 달라졌다. 기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곳에서는 관광지의 활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꾸이년은 잘라이성 성도이자 항구도시이다. 원래 빈던성 성도였으나 최근 행정구역이 통합되며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이 도시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맹호부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아픈 상흔이 깃든 곳이 기도 하다.
꾸이년에는 국제선 공항이 없다. 아직은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도시답게, 거리에는 현지인들의 익숙한 일상이 흐르고 있었다. 나트랑보다 더 착한 이곳의 물가는, 돈의 개념에 혼란이 올 정도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자주 들렸던 카페의 커피나 과일주스, 각종 스무디도 1.000원 남짓이면 충분했다. 가격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드넓게 펼쳐진 해변에는 사람의 흔적이 드물어 바다 전체를 전세 낸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어느 날은 바닷가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둘 다섯'의 <밤배>를 크게 틀어 놓고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낯선 이방인조차 귀한 이 고요한 바닷가에서, 나는 마침내 그 무거운 체면의 외투를 벗어버렸다. 파도 소리가 반주가 되고, 낯선 바람이 관객이 되어주던 그곳 바닷가에서 나는 비로소 여행자라는 긴장을 내려놓고 온전한 자유인이 되었다.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는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꾸이년의 일주일 중, 사흘간 머물렀던 숙소는 현지인들의 주거지 한가운 데에 있었다.
창문을 열면 현지인들의 소박한 일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침 저녁으로 가족들이 허름한 식당의 길거리 좌판에 앉아 끼니를 해결하는 광경도 이색적이었다. 길거리음식이라 허술해 보였지만, 그 소박함 속에 그 둘만의 느긋함이 배어 있었다. 여행지의 인위적인 장면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잠시 곁눈으로 바라보는 느낌이었지만, 그들은 이방인의 시선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중교통은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택시 요금이 저렴해 3만원 남짓으로 한나절 동안 택시를 전세 내어, 바다를 가로질러 섬인 듯 아닌 듯한 키코(Ky co), 에오지오(Eo Gio) 해안과 동남아 최대 좌불상이라는 린풍사를 여유 있게 다녀올 수 있었다 파도가 굽이치는 절벽 끝에서 마주한 에오지오 전경은 기대 이상으로 심금을 울렸다. 이름난 관광지처럼 정돈된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자연에 가까운 모습이 남아 있었다. 인위적인 장식이 없어서 푸른 바다가 더 오래도록 눈에 들어왔다.
꾸이년에는 내세울 만한 관광지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더 좋았다. 어디를 꼭 가야 한다는 압박이 없었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이면 동네 카페에 앉아 진한 연유 커피를 마시고, 낮에는 그늘을 찾아 못다 읽은 책을 펼쳤다. 이곳에서는 베트남의 '꾸며진 얼굴'이 아니라, 조금은 덜 다듬어진 생활의 결을 마주하게 된다. 화려하지 않지만.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 달 살기를 한다면, 이런 도시에서야 비로소 '머문다'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찾은 다낭. 호이안
한 달을 보내며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처음에는 익숙한 곳이 편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찾은 다낭과 호이 안은 반가운 선택이었다. 그래서일까,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길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막상 머물러 보니, 감정은 예전과 달랐다.
특히 호이안은 이전보다 훨씬 더 상업적인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호텔 예약은 전쟁 같았고, 여행객을 대하는 현지의 온도 또한 예전만큼 따스하지 않았다. 골목마다 이어지는 상점과 사람들 속에서 나는 다시 '여행자'로 소환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가 분명한 도시지만, 오래 머물기에는 조금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한 달 살기 하는 처지에서. 이런 활기가 때로는 피로로 다가오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여행지는 잠시 머물기에는 좋지만, 오래 머물기 에는 조금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한 달을 보내며
이번 한 달을 돌아보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화려한 풍경이나 야경보다, 나트랑의 창가에서 마시던 커피 향과, 꾸이년에서 마주했던 고요한 파도 소리가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하루가 채워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평안해지던 느슨한 순간들이었다. 미주나 유럽의 한 달 살기가 세상을 향해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라면, 베트남 중남부에서의 한 달 살기는 내면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그 곳에서 내가 어떤 속도로 살았느냐는 것을.. 한 달 살기는 결국 '어디를 보느냐' 보다 '어떻게 머무느냐 '의 문제였다.
김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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