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한편으로는 막연하고 난해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나 다른 무엇보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제대로 통찰하게 된다면 아주 정확하고 확실하며 명료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영적이라는 것 등은 본질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의미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그에 있어 우선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조금이라도 더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참으로 그러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자체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인 것입니다..
특히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게다가 그와 같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이든지 특별 은총이든지 간에 어쨌든 모든 은혜와 역사들,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을 위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따지고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모두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이며 실상 그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게 됨에 있어 직접적, 실질적인 힘이셨던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그러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누리고 증거하는 등에 있어 현실적, 경험적인 힘이신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다는 것도 조금만 통찰해 봐도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고..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도 결코 다르지 않은 것이듯이 그렇게 아무리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할지라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을 우선 시하면서 수시로 약해지고 지치며 시험에 들고 유혹에 빠지며 넘어지곤 한다는 것이고, 그러면서 크고 작은 온갖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염려와 미움과 두려움과 원망과 자기 소견과 우상과 불신앙들 등으로 미지근해 지고 잠자며 병들고 마치 죽은듯한 신앙이 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며, 그와 함께 여러 모양의 징계와 광야들에 허덕이고 헤매고 있는 실상이라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그렇게 죄악들과 벗하고 반복하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욱 사랑해서 라도 아비의 심정으로 그 백성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되도록 그의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승리와 응답과 이적과 복과 열매들 등은 막으시곤 한다는 것이고,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한다는 것이며,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헤매게도 하신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원치 않게 잘못된 길과 현실에 서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것은 당연히 다시 말씀이신 하나님께로 자복하면서 겸비하게 나아가고 그에 합당하게 된다는 것으로 단순하게 표현하면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의 회복과 변화와 역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사실 그것부터도, 진정 그러한 것이야 말로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인 것으로 곧,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힘과 세상적인 방법들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 염려와 두려움들, 제한과 한계들, 시련과 위기들 등과 온전히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또한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며 참회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정말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가능한 것이며, 더 나아가 무엇보다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가능한 것이고 그와 함께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응답과 승리와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더욱 차고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서 더욱 더 죄악들과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것임은 물론 더더욱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뜨겁게 될 수 있게도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사야55:6~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1월 14일(목)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