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몇 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인구비례에 따라 각 지역에 의석을 배분한 뒤, 각 지역 내에서 정당투표와 지역구투표를 모두 실시한 후, 정당투표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으나 지역구에서 그만큼의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경우 그 차이만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제도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http://news1.kr/articles/?2354511 기사 참조하세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오래 전부터 지역주의 극복, 정당정치 정상화, 예산따기식 정치에서 정책정치로의 전환 등을 위해 진보정당이 주장해 온 제도였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지역기반을 중심으로 한 양당에 이익이 못 되어 무시되어왔지요. 이것이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인구편차를 위헌으로 판결하고 선거구를 다시 획정하는 논란 속에 다시 주목받게 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제안했거든요.
중앙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제안은 국회의원의 다수가 찬성했으며, http://www.hankookilbo.com/v/71a15532dcf241e598e3c244e18688c0 정의당과 민주당이 당론으로 지지했습니다만, 새누리당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테러방지법으로 대표되는 논란 많은 법들을 강행통과시키려는 목적으로 선거구 획정 자체를 무산시켜서 이 제도는 20대 총선에서 도입되는데 실패합니다.
그런데 이번 20대 총선 결과를 볼 때, 21대 총선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기존의 정치상황에서는 정의당만이 열렬히 지지했을 뿐 지역구도에서 자신들의 기반을 흔들 수 있어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소극적이었던 정당들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으니까요. 하나 하나 따져보죠.
1. 민주당: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 의석을 석권하고, 충청, 영남 등지에서도 분전한 반면 호남 지역구는 괴멸했습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소극적으로 만든 호남에서의 절대우세가 완전히 사라진 셈이죠. 이에 반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찬성할만한 유인은 급증했습니다. 현재 민주당은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고 있으나, 특정 지역에서 과반을 압도하는 지지는 얻지 못하고 있죠. 이는 선거 상황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때는 전국적 압승을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운이 나쁘면 분명 민주당 지지자들이 상당히 남아있는데도 전국적으로 패배해 괴멸적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겁니다. 현재의 민주당 입장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손해보는 것은 미미한 반면, 안정적인 정당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게 되는겁니다.
2. 국민당: 국민당은 호남 의석을 모조리 쓸어담았습니다만, 호남 외의 지역에서는 2석 빼고 전멸당했습니다. 정당의 확장을 위해서라면 타 지역에서의 의석 획득이 절실한 구조지요. 그런데 국민당은 호남 외의 지역구에서는 심각한 경쟁력 부족을 보인 반면, 정당득표는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얻었습니다. 20대 총선의 결과만으로 놓고 보았을 때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최대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건 국민당입니다.
3. 새누리당: 새누리당은 영남에서의 우세를 바탕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가장 적대적인 태도를 고수해왔습니다. 노골적으로 부산경남에서의 야권 지지세에 비해 호남에서의 여권 지지는 미미하니 손해일 뿐인 제안이라고까지 주장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탄핵 역풍 속에서도 버텨낸 강남과 영남 지역에서 민주당에게 돌파당했으며, 수도권에서 괴멸적인 패배를 입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호남과 영남을 바꾼다면 새누리당에 손해겠지요. 하지만 영남과 수도권을 바꾼다면? 지역구도가 확고해진 이후부터는 수도권이 중립적인 지역으로 취급받았습니다만, 사실 서울은 이승만 시절부터(!) 여촌야도의 법칙에 따른 야권의 보루였습니다. 2010년 이후 서울에서의 야권 우세는 현저해지고 있으며, 이는 서울의 위성도시들에게까지 서서히 확산되고 있고, 이번 20대 총선은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었지요.
새누리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긴 합니다만... 이 지지는 소선거구제로 인해 사표가 되버립니다. 영남에서의 야권 지지와 마찬가지로요. 정작 소선거구제로 야권의 의석획득 자체를 봉쇄해 온 영남에서의 새누리 지지는 흔들리고 있는데, 수도권에서는 새누리의 의석이 서서히 소선거구제로 봉쇄당하고 있는 겁니다. 20대 총선에서 수도권의 여당 의석들 상당수가 야권분열 어부지리로 얻었다는 걸 고려하면 이번 총선이 너무 극단적인 최악의 결과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이런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이번 20대 국회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상당히 존재한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지향과 정 반대로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수도권 의석수를 대폭 늘리고, 지역대표성은 감소한 획정이었죠. 그런데 그 결과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건 재미있는 아이러니인 것 같네요. 그리고 저는 이번 기회에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예산따기 경쟁을 줄이고 정책대결로 가기 위해, 혼란한 한국의 정당구조를 정상화하고 비례대표의 책임성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22
제가 원하던 광경이 나와서 많이 놀랐어요. ㅠㅠ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희망하지도 않은 결과였죠. 민주당이 호남 없이 1당에 영남 새누리 패권 붕괴라니...
글쎄요 별로 가능성이 없어보이는데요 새누리당이나 더민주나 이번에 이런 예외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그리 쉽게 포기할진 모르겠군요
그건 그렇죠. 근데 설레는건 어쩔수 없어욤. 홓홓호..
@havoc(夏服ㅋ) 그래도 다시 한번 불을 지필 필요는 있습니다. 이러면서 공론화 되는 거죠.
선관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국회에 제안하거나 민주당이 이걸 받아들여 당론으로 확정하는 것도 있을법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만 결국 일어난 일이니까요. 이번 국회에서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도 했구요.
권역별 비례보단 시나 자치구급은 중대선거구제하는것도 괜찮을것같네요
근데 이거 도입하면 민주당에서 손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