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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慧明華
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6.10.PM2시)
십주품(十住品)
보살 십주
오늘도 아주 훌륭한 화엄경 한 단락 공부하겠다. 십주품(十住品) 산문은 지난 시간까지 끝났고, 오늘부터는 십주품 게송을 설하여 거듭 밝히다.
경전의 결집은 아주 뛰어나다. 산문으로 하고 그것을 다시 반복해서 게송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면 산문에서 미처 다 못한 것을 게송에서 보충하기도 하고, 게송에서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산문에서 충분하게 설명을 해서 내용도 보완하고 반복해서 복습하는 의미도 있다.
시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외우기도 좋도록 해놓았다. 외우기 좋게 한 이유는 다 열심히 읽어서 외우라는 의미가 있다.
법구경 같은 것은 모두가 다 시 형식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도 불교 성전의 특색이다. 성인들이 다 결집했기 때문에 그 내용이 훌륭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용을 잘 표현한 글의 형식도 그렇게 뛰어날 수가 없다.
불교는 확철히 깨달으신 분들이 결집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잘 맞춰서 했다는 것을, 공부를 해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3. 게송을 설하여 거듭 밝히다
1) 제1 발심주(發心住)
(1) 발심의 인연
이시(爾時)에 법혜보살(法慧菩薩)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관찰시방(觀察十方)과 기우법계(曁于法界)하고 이설송왈(而說頌曰)
그때에 법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과 법계를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견최승지미묘신(見最勝智微妙身)하니 상호단엄개구족(相好端嚴皆具足)하사
여시존중심난우(如是尊重甚難遇)하고 보살용맹초발심(菩薩勇猛初發心)이로다
가장 수승한 지혜와 미묘하신 몸을 보니
단정하고 엄숙한 상호 모두 갖추었도다.
이렇게 존중하심은 심히 만나기 어려워
보살이 용맹하게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견물생심(見物生心), 상견중생(相見衆生)이라, 어떤 형상을 보고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육근을 이야기하더라도 안이비설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제일 먼저 나온다.
부처님의 모습을 이렇게 봄으로해서 수승한 지혜, 미묘하신 몸, 단정하고 엄숙한 상호 이런 것이 원만하게 갖춘 것을 보면,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난다.
이렇게 존중하심은 심히 만나기 어려워
육안으로 보아도 그렇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부처님의 모습, 참 만나기 어렵다.
보살이 용맹하게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이러한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발심을 하였다는 것이다.
사리불이 처음 발심한 것은 부처님을 보고 발심한 것이 아니다. 마승비구(馬勝比丘)라고 하는 부처님의 제자가 탁발을 갔다가 돌아오는데 그 걸어가는 모습이라든지, 걸음걸음이 하도 교양있고 품위 있게 보여서 그 모습에 그만 사리불이 감동을 했다. 사리불도 대단한 안목이 있다.
그래서 그 마승비구라고 하는 스님을 붙들고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스승을 모시고 어떤 내용을 공부하기에 당신의 인품이 그렇게 밖으로 출중하게 드러나 보입니까?”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는 내용이다.
우리 사바세계 중생은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하다. 보고 말을 듣고,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하지 않는가.
신(身) 몸의 모습을 보는 것, 언(言) 말하는 내용들, 말하는 솜씨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인품이 어느 정도인가, 교양이 어느 정도인가, 교육수준이 어떤가, 시골에 사는가, 도시에 사는가 이런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다음에 서(書)는 글씨 쓰는 솜씨다. 글씨에도 그 사람의 인격이 잘 나타난다. 그다음에 판(判)은 판단력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사상, 정신 이런 것을 가지고 옛날에 공무원을 뽑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도 우리는 그런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가.
화엄경에도 보라.
가장 수승한 지혜와 미묘하신 몸을 보니
단정하고 엄숙한 상호 모두 갖추었도다
이렇게 존중하심은 심히 만나기 어려워
보살이 용맹하게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저런 부처님, 저러한 분 밑에 가서 공부해야지. 저러한 분은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갈까?’
딱 보고 그만 반해버린 것이다.
인생사가 다 그렇다.
견무등비대신통(見無等比大神通)하며 문설기심급교계(聞說記心及敎誡)와
제취중생무량고(諸趣衆生無量苦)하고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비교할 이가 없는 큰 신통을 보고
수기[記心]를 설하심과 가르침을 듣고
여러 갈래 중생들의 한량없는 고통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비교할 이가 없는 큰 신통을 보고
또 부처님의 신통까지 보게 된 것이다.
여기 부처님이 비교할 수 없는 큰 신통도 있으시고
수기[記心]를 설하심과 가르침을 듣는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수기 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르침, 교훈이 될만한 가르침, 그것을 교계(敎誡)라고 하는데
여러 갈래 중생들의 한량없는 고통
뿐만 아니라 여러 갈래 중생들이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차마 눈에 밟혀서 ‘저들을 내가 구제하지 않고는 안되겠다’ 싶어서 수행을 해서 성불하는 내용이다.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그렇다.
일반적으로 불교에 신심을 일으킬 조건과 인연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처음에 불교에 어떤 마음,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인연을 맺게 되었는가’를 이런 시간에 한 번쯤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절에 놀러 갔다가 절이 좋아서, 법회에 참석했다가 법문의 내용이 좋아서, 아니면 개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사를 해결하는 방법이 없을까 등등 여러 가지가 많이 있을 수 있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보증을 한 수기가 중요한 조건이 된다. 또 교훈적인 가르침에 감동하여 발심하기도 한다.
교훈적인 가르침이라고 하면 신라의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이라고 하는 글이 있다. 참 감동을 주는 교훈적인 가르침이다. 그 내용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원효스님의 발심장을 명문으로 알아주었다.
한국 조선 후기에 배불정책 때문에 불교가 아주 어려운 시기에 처해서 그야말로 불교가 거의 사라질 상황에 처했었다. 그때 아주 훌륭한 도인스님, 여러분들 잘 아시는 만공스님의 스승 경허스님이 나와서 불교를 다시 일으켰다. 경허스님은 평생동안 발심수행장을 읽었다고 한다.
그분도 참 천재이고 공부도 많이 하신 스님이신데 평생을 발심수행장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경허스님이 발심수행장에서 읽은 내용이
부제불제불(夫諸佛諸佛)이 장엄적멸궁(莊嚴寂滅宮)은 어다겁해(於多劫海)에 사욕고행(捨欲苦行)이요
모든 부처님들이 적멸궁을 장엄한 것은, 성불해서 이렇게 훌륭한 삶을 펼친 것은, 오랜 세월동안 사욕고행이라, 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또는 육신이 하고자 하는 욕심들을 버리고 아주 힘들고 어렵게 고행을 한 덕분이다.
중생중생(衆生衆生)이 윤회화택문(輪廻火宅門)은 어무량세(於無量世)에 탐욕불사(貪慾不捨)니라.
많고 많은 중생들이 화택문에 윤회하는 것은 우리 사바세계를 화택, 불타는 집과 같은 곳이라고 하지 않는가.
화택문에 윤회하는 것은 한량없는 세월 중에서 탐욕을, 탐진치에 대한 온갖 하고자 하는 일들을 버리지 못할 까닭이다.
그런 아주 근원적인 중생들의 문제, 이러한 것들을 쭈욱 읊어서
무방천당(無防天堂)에 소왕지자(少往至者)는 삼독번뇌(三毒煩惱)로 위자가재(爲自家財)요
아무도 천당에 오지 말라고 막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천당이 됐든 극락이 됐든 가는 거기에 사람은 참으로 적다. 왜 그런가?
삼독번뇌(三毒煩惱)로 위자가재(爲自家財)요 탐진치 삼독이라고 하는 이 독한 것, 탐욕 진심 치심 이런 것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보배를 이룬다는 것이다.
탐진치로 자기의 보배를 이룬다.
탐진치 삼독은 얼른 버려야 할 것인데 그것을 보배로 여기고 끌어안고 사니 그 결과가 오죽하겠는가. 그다음에
무유악도(無誘惡道)에 다왕입자(多往入者)는 사사오욕(四蛇五欲)으로 위망심보(爲妄心寶)니라, 라고 하였다.
오라고 오라고 지옥으로 오라고 오라고 누가 유혹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도 많이 간다.
지금 우리나라에 형무소 들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오라고 유혹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런데도 그렇게 많이 들어가 있다.
그 사람들은 사사오욕(四蛇五欲)으로 위망심보(爲妄心寶)니라
지수화풍 네 가지로 형성된 이 몸뚱이, 안이비설신 이 다섯 가지 오근의 하고자 하는 욕망, 그것이 오욕이다. 그것으로써 마음의 보배를 삼는다. 사사오욕(四蛇五欲)으로써 망령된 마음의 보배를 삼는다. ‘삼독으로써 자기 집의 재산을 삼고’ 이렇게 표현했다.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발심수행장, 이것이 원효스님이 우리에게 일러준 교훈인데 글은 얼마 안 되지만 구구절절이 우리들로 하여금 발심을 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과거의 선지식들은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을 그렇게 조석으로 읽었다고 한다.
문제여래보승존(聞諸如來普勝尊)이 일체공덕개성취(一切功德皆成就)하사대
비여허공불분별(譬如虛空不分別)하고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모든 여래 두루 수승하신 어른께서
일체 공덕을 모두 다 성취하심을 들으니
허공을 분별할 수 없음과 같아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모든 여래 두루 수승하신 어른께서
일체 공덕을 모두 다 성취하심을 들으니
부처님은 공덕을 성취하신 최고의 어른이시다. 온갖 공덕을 다 성취했다.
허공을 분별할 수 없음과 같아
허공을 분별할 수 없듯이 부처님의 그 많은 온갖 공덕을 분별할 수 없다.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부처님에 대한 내용을 잘 이해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공부해서 부처님의 위대성을 이해하다 보면 발심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마음에 ‘나도 얼른 저런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원효스님 이야기가 났으니까 하는 말인데
망용상덕(望龍象德)하야 능인장고(能忍長苦)하고 기사자좌(期獅子座)하야 영배욕락(永背欲樂)이어다
온갖 고통을 다 참고 견딘다, 온갖 욕락을 다 버린다, 그런 이야기도 있고, 발심수행장만 가지고 한 번 이야기해도 아주 훌륭한 내용이 되겠다.
(2) 열 가지 힘을 얻기 위한 발심
부처님의 위대성을 표현할 때 십력, 그래서 십력존(十力尊) 열 가지 힘을 갖추신 어른, 이런 표현을 많이 한다. 화엄경에서는 아주 자주 이야기한다.
여기 십주품 게송에서 이 열 가지 힘을 자세하게 설하고 있다.
삼세인과명위처(三世因果名爲處)요 아등자성위비처(我等自性爲非處)니
욕실요지진실의(欲悉了知眞實義)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삼세의 인과는 옳은 곳이요
우리들의 자성(自性)은 그른 곳이니
이렇게 진실한 뜻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이것이 보살이 발심한 동기인데
부처님의 위대하신 열 가지 힘[十力]을 인연하였다. 부처님의 위대함을 나타낼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열 가지 얻기 어려운 법이다. 첫째는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이다.
옳은 것, 옳지 않은 것 그것을 분별하는 지혜의 힘,
도리와 도리가 아닌 것을 아는 지혜의 힘이다. 이 세상 모든 법이 인과와 인연과 연기라는 절대적인 이치에 의해서 생성하고 소멸하며 흥망성쇠하고 성주괴공 한다는 사실은 옳은 이치며 옳은 도리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시하여 모든 존재에 어떤 고정불변 하는 실체[自性]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옳지 못한 도리며 그른 이치이다.
그것을 아등자성위비처(我等自性爲非處)라고 하였다. 우리들의 믿는 고정불변하는 자성자리는 옳지 못한 이치, 그른 이치라는 뜻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진실한 도리를 모두 알고자 처음 발심하였다.
과거미래현재세(過去未來現在世)의 소유일체선악업(所有一切善惡業)을
욕실요지무부진(欲悉了知無不盡)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의
있는 바 선과 악의 모든 업보를
끝까지 분명하게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십력에 대해서 자주 나오지만 매번 내가 자세하게 설명은 못해드렸는데 이 부분을 잘 보시고 숙지하면 십력에 대한 제일 좋은 설명이 된다. 물론 핸드폰 안에도 십력을 찾으면 그냥 설명이 나온다.
둘째는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이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의
있는 바 선과 악의 모든 업보를
끝까지 분명하게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사람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에 어떤 선을 지었고, 어떤 악을 지었고, ‘아 저런 사람하고는 내가 과거에 내가 무슨 인연이 있었고, 무슨 업을 지었고, 그래서 금생에 이해가 안 되는 경우를 볼 때 ‘아 도대체 과거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이런 인연이 되었는가?’ 참 궁금하다. 정말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모두 알고자 보살은 이를 위해서 발심했다, 그런 이야기다.
제선해탈급삼매(諸禪解脫及三昧)의 잡염청정무량종(雜染淸淨無量種)을
욕실요지입주출(欲悉了知入住出)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선정과 해탈과 모든 삼매의
물들고 청정함이 한량없거늘
들어가고 머물고 나옴을 다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이것을 셋째 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이라고 하였다. 선정과 해탈과 모든 삼매를 다 아는 지혜의 힘이다. 그것을 게송으로 이렇게 설명한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것을 남김없이 다 알고자 처음 발심했다, 하는 내용이다.
수제중생근이둔(隨諸衆生根利鈍)하야 여시종종정진력(如是種種精進力)을
욕실요달분별지(欲悉了達分別知)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중생들의 근기가 영리하고 둔함을 따라
이렇게 가지가지 정진하는 힘을
분명하게 모두 알아 분별하려고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다.
중생들의 근기가 영리하고 둔함을 따라
중생들의 근기는 각양각색이다. 영리한 사람도 있고, 둔한 사람도 있고, 어느 분야에는 영리한데 어느 분야에는 둔하고, 어떤 데는 둔한데 어떤 데는 아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지가지 정진하는 힘을
분명하게 모두 알아 분별하려고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다
이런 경우도 있다. 이것은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이다. 근기에 상하가 있다. 그것도 궁금할 때가 많다.
도대체 나는 어떤 능력이 있고, 어떤 소질이 있는가?
우리가 어려서부터 자기의 소질이 어떤 분야에 있는가를 잘 알아서 소질 있는 분야를 처음부터 교육하고 그것을 열심히 갈고 닦으면 발전이 클 것이다.
소질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자꾸 다른 사람도 하고, 세상에서도 하니까, 그 부모들이 시키는 경우가 많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헛 시간을 많이 보낸다.
음악에 별 소질도 없는데 피아노를 사주고 바이올린 사주고서 ‘음악을 해라’ 한다면 그것은 자기 욕심 채우려고 하는 것이지, 그 아이에게는 그런 소질이 없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런 것을 좀 잘 알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환하게 알아서 한 열 가지의 소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유력한 소질은 무엇이다, 딱 이렇게 꼬집어서 그 분야에 매진하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하는 것보다는 백 배 능력이 나타날 수가 있다.
일체중생종종해(一切衆生種種解)와 심소호락각차별(心所好樂各差別)인
여시무량욕실지(如是無量欲悉知)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중생들이 가지가지 이해가 있고
마음에 좋아함도 각각 다르니
한량없는 이런 차별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이것은 다섯째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이라고 하는 내용이다.
중생들이 가지가지 이해가 있고
마음에 좋아함도 각각 다르니
앞서 말씀드린 것과도 유사하다.
한량없는 이런 차별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보살은 욕심이 많다. 욕심보다는 원력, 원력이라고 하는 표현이 맞다.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각양각색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중생에게 내재되어 있는, 여러 가지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환하게 알고, 그 사람들을 꼭꼭 집어서 지도를 한다면 얼마나 효과가 좋겠는가? 바로 그런 점이다. 보살은 그래서 발심을 했다.
마음의 문제도 그렇지만 몸의 문제도 그렇다.
몸의 문제도 정말 그 사람에게 장점이 뭔지, 신체의 장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이고, 오장육부 가운데 어떤 부분이 좀 약하니까 그것을 잘 보완하고 치료를 하고 관리를 하라, 이렇게 해놓으면 사전에 예방효과가 아주 뛰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모르고 엉뚱하게 치료를 하든지 약을 먹든지 그렇게 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보살은 그런 문제까지 아주 궁금해하고 답답해하고 ‘확연히 알았으면 좋겠다’ 지혜가 투철해서 ‘중생들의 그런 문제까지 내가 환하게 알아서 낱낱이 꼭꼭 집어서 일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침도 그 아픈 몸에다가 또 아픈 침을 이백 개 삼백 개씩 한꺼번에 놓는다.
한 번에 이백 개 삼백 개 말고 한 방에 딱 침 한 대 놓으면 되는 방법이 없는가?
그런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일침 이뜸 삼약이라고 하지 않는가?
처음에 침을 정확하게, 딱 그 병에 해당되는 맥에다가 한 방만 놓으면, 그것도 오래 걸리지도 않고 잠깐 한 방만 딱 놓으면, 그만 모든 혈맥을 다 틔워 줘서 이백 개 삼백 개 놓은 것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누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침도 무턱대고 여러 개를 놓아서 생사람을 고생하게 만드는 경우가 참 많다.
중생제계각차별(衆生諸界各差別)이며 일체세간무유량(一切世間無有量)이니
욕실요지기체성(欲悉了知其體性)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중생의 모든 경계 제각기 차별하며
일체 세간도 한량없거든
그 자체와 성품을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이것은 여섯째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이라고 하는 내용이다
중생의 모든 경계가 제각기 차별하고 일체 세간도 한량없고, 중생들도 한량없다. 중생들의 온갖 경계들, 그들의 성품, 이런 것들을 환하게 잘 알면 중생제도하기가 얼마나 좋겠는가? 몸의 병도 잘 고칠 수가 있고, 마음의 병도 잘 고칠 수가 있고, 그런 이치가 있다.
일체유위제행도(一切有爲諸行道)의 일일개유소지처(一一皆有所至處)를
실욕요지기실성(悉欲了知其實性)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일체 유위의 모든 행하는 길이
하나하나가 다 이르러 갈 곳이 있나니
그러한 참된 성품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일곱째는 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이라고 해서 중생들의 여러 가지 행업으로 어디에 가서 나게 되는 것을 다 아는 지혜의 힘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것을 남김없이 다 알고자 처음 발심하였다.
일체세계제중생(一切世界諸衆生)이 수업표류무잠식(隨業漂流無暫息)을
욕득천안개명견(欲得天眼皆明見)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일체 세계의 모든 중생이
업을 따라서 표류하여 잠깐도 쉴 새 없나니
천안통을 얻어서 밝게 보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이것은 십력 가운데 사생지력(死生智力)이다. 일체 세계 모든 중생이 죽어서 어디에 태어나는지를 천안통으로 아는 지혜의 힘이다.
부모들이 돌아가셔서 49재를 지냈다든지 아니면 가까운 분이 열반하셔서 재를 지냈다든지 할 때 ‘아 어디 가서 태어났을까’ 또 ‘나는 과거생에 어떤 삶을 살다가 죽어서 오늘날 금생에 이렇게 태어났을까?’ 이것도 참 어떨 때 생각하면 아주 궁금하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니까 이것을 가지고 사기 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것을 부처님은 다 잘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도 ‘부처님의 이러한 능력이 나도 한 번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것이 중생을 교화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 가서 태어났을까? 어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지만 유명한 사람이 돌아가셔서 어느 마을에 어떤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런 설은 무성하다.
여기 우리 노스님 지효스님도 열반하셔서 이 밑의 마을에 어떤 아이로 태어났다, 그런 설도 들었다.
아주 유사한 점이 많다.
티베트에서는 환생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지금 수백 명의 환생이 입증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달라이라마도 상당히 여러 번 환생을 반복해서 지금 달라이라마로 저렇게 계신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티베트에서는 아주 많다. 그런 문제들이다.
어디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고 계신가.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하다가 죽어서 태어났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얼른 다시 그 생을 반복할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다면 아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과거세중증소유(過去世中曾所有) 여시체성여시상(如是體性如是相)을
욕실요지기숙주(欲悉了知其宿住)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지나간 세상에서 있던 모든 일
이와 같은 체성과 이와 같은 형상을
그 숙명(宿命)을 분명히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아홉째는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이다. 숙명통으로 중생이 과거세에 지은 일들을 다 기억하여 아는 지혜의 힘이다.
앞의 것과 유사한 내용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것을 남김없이 다 알고자 처음 발심하였다.
숙명통, 중생이 과거생에 지은 일들이 어떠한가, 이것은 지혜가 아주 뛰어난 부처님 같은 분, 부처님과 유사한 지혜를 가진 보살들이 갖는 신통이다. 이런 이들은 과거에 많이 있었을 것이다. 중생을 교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그런 교화를 받는 사람에게도 아마 큰 덕이 될 것이다. 그다음은 열 번째인데
일체중생제결혹(一切衆生諸結惑)과 상속현기급습기(相續現起及習氣)를
욕실요지구경진(欲悉了知究竟盡)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일체 중생의 모든 맺힌 번뇌가
상속하여 일어나고 익힌 버릇들
모두 알고 끝까지 다하려 하여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열째는 누진지력(漏盡智力)이다. 번뇌를 모두 소멸시켜 없애는 지혜의 힘이다.
누진통이라고 해서 제일 어려운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것을 남김없이 다 알고자 처음 발심하였다.
번뇌가 다 없어지는 지혜의 힘, 번뇌가 다 없다.
일체 잡티가 하나도 없는 완전한 백퍼센트 순금이다, 그런 것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겠다.
진여와 생멸의 차이가 있는데, 완전히 그 진여의 입장, 순수한 진여의 입장으로 진여가 생멸하는 것이다.
중생들은 진여가 크게 드러나지 않고도 생멸의 능력이 있다. 그것은 망상으로 생멸하는 것이다. 진여로써 생멸을 해야 옳은데 망상으로써 생멸하는 일이다.
여기 누진지력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 번뇌가 다 소멸해서 순수한 진여만으로 생멸을 반복하는 것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다음에 한 가지만 더 하겠다.
(3) 속제(俗諦)의 지혜를 얻기 위한 발심
수제중생소안립(隨諸衆生所安立)하야 종종담론어언도(種種談論語言道)를
여기세제실욕지(如其世諦悉欲知)하야 보살이차초발심(菩薩以此初發心)이로다
중생들이 펼쳐 놓은 모든 언론과
가지가지 담론과 언어를 따라서
그러한 세속 일을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불교 공부를 하다 보면 ‘야 이거 불교 좀 시원하게 아는 길이 없을까? 또 유교의 이론이라든지 도교의 이론이라든지 서양철학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좀 시원하게 알 수가 없을까?’
이럴 때가 참 많다.
중생들이 펼쳐놓은 모든 언론과
가지가지 담론과 언어를 따라서
그러한 세속 일을 모두 알고자
보살이 이를 위해 처음으로 발심하였네
발심해서 공부 열심히 하다 보면, 물론 출세간적인 공부가 우선이고 그것이 목표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세간의 일들도 따라서 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공부가 절로 다 잘 되게 되어 있다.
출세간 공부만 잘 되는 것이 아니다. 공부 분야는 어떤 공부든지 다 따라서 잘 되게 돼 있다.
그러니까 우리 불교 공부하는 분들이 연세가 높을수록 제가 ‘공부하면서 살아야 된다. 그래야 머리가 공부하는 업으로 무장이 되고, 공부하는 업을 잔뜩 짊어지고 다음 생에 태어나야 공부하는 데 소질이 있고, 힘들지 않고도 얼마든지 불교 공부가 됐든지, 세속공부가 됐든지, 얼마든지 잘할 수가 있으니까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공부하는 이 습관을 버리지 말고 가지고 가야 된다’ 이런 말씀을 강의할 때 자주 이야기한다.
그러한 내용들이 여기도 포함될 것이다.
오늘 화엄경 십주품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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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못 살펴본 분들
오신 분들 한 번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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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