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나를 가장 감동시켰던 영화 한 편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본다.
학창시절 이후 극장을 가본 적은 손꼽을 만하다.
아마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25년전 쯤,
그러니까 벌써 아련한 4반세기전 마산의 어느 극장,
마이클 더글라스와 캐서린 터너가 나왔던 무슨 보물을 찾아서 였던지,
별로 내용도 기억나지 않고 구태여 내용도 없는 엎치락 뒷치락 코메디...
그 이후 기껏해야 일년에 두어 편 정도 영화를
그나마 TV를 통해 접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감동을 주는 영화는,
마치 평생토록 남을 수 있는 책처럼,
일년에 한두 편이 아니라,
일생동안 두어 편이라도 볼 수 있다면 행운이라 할 수 있겠지.
엘리펀트 맨.
이 영화는 10여년전 쯤 TV에서 재방송으로 처음 보았다.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이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시작임을 알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너무나 영국적인 흑백영화.
영화를 보는 순간의 장면부터 필름이 끝나버린 한참 후까지
사람들에게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만드는 영화.
시작 부분을 놓쳤기에 언젠가는 꼭 다시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해적판 DVD가 오늘 그 소원을 풀어 주었다.
유럽의 떠돌이 유랑극단에서 탈출한 엘리펀트 맨 John Merrick이
런던의 잿빛 안개 낀 워털루 역에서
- 사실 21세기의 오늘날도 워털루 역 주변은 얼마나 황량한가 -
잔인한 군중들에게 쫒기면서 외치는 말.
I am not an elephant!
I am not an animal!
I am a human being!
I am a man!
나는 사람이예요!
I am a man... 그 얼마나 위대한 명제인가.
유사이래 수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사람이예요 라고 외쳤는데
왜 그 소리는 들려지지 않고만 있는 것인지.
터미네이터 1편에서
Kyle Reese가 Sarah Connor를 구해 도망치며 하던 외침이 생각난다.
I am not a machine. I am a man!
아주 어렸을적 TV의 만화, 요괴인간 벤 베라 베로.
우리는 요괴인간~~~ 인간이 되고 싶다~~~
이런 노래도 있었던 것 같다.
진짜 사람처럼 살고 싶다.
엘리펀트 맨을 보니 진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살고 싶어진다.
엘리펀트 맨에서 느끼는 또 한가지.
이곳 아정포에서도 누군가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좋은 말을 퍼뜨렸는데.
처음부터 너무 사랑과 관용과 이해가 넘쳐나기도 했지만...
과연 긍정의 힘이 그토록 아름답고 위대할까.
좋아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는 것이 더 진짜 인간다움이 아닐까.
어쨌거나,
고마움은 고맙다는 말로 결코 표현이 되지 않는다.
고마움의 마음은 오직 미안함의 마음으로만 표현된다.
너의 사랑을 도움을 받을 자격이 나는 없는데,
너가 나를 사랑하고 도와주니 그저 미안할 뿐이라는 것이다.
엘리펀트 맨 John Merrick은
Thank you 라는 말을 쓸 자리에서 항상 I am sorry 한다.
그의 의사 Frederick Treves도 엘리펀트 맨에게
감히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낯 간지러운 표현 자체가 사랑을 훼손한다.
사랑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니까.
사실 사랑함은 빚이고 사랑하게 만듬은 죄이다.
I owe to you.
I am obliged to you.
너에게 빚을 졌다는 것.
너의 앞에 이렇게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는 말.
너의 앞에 있는 나는 보잘 것 없는 존재.
I am your humble servant.
너에게 잘해줄 수 없는 나의 미약함.
내가 받은 은혜를 너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나의 미안함.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듯이
진정 감사하다면 감사하다는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I am sorry...
어쩌면 가장 기독교적인 원죄의식을 엘리펀트 맨에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요란한 예배만으로 자신의 죄가 사해진다고 믿는
수많은 거짓 기독교인들의 무식과 오만이 슬퍼지고 화가 난다.
첫댓글 오늘 자알~보내셨나봐여~^^ 리드미님! 멋있는 안소니 홉킨스 ㅎ 저는 오늘 브래드피트 나오는 영화 봤는디요~
리드미님 올려주시니 꼭 다시 봐야할것만 같으네요~ 남은휴일 편한한시간 되세요..^^
가...갑자기 리드미님이....야만..인으로 보일라 카네요~( 이러다 맞을라~ 도망갈 준비해야쥐~ㅋㅋ...) 어찌 영화를 그리 안보고 살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것도 예술의 본고장 파리에서 20년씩이나 사셨으면서..(뭐 프랑스 영화가 재미없긴 하지만서도)...그라고...리드미님이 본 마이클 더글라스 나오는 영화는 "로맨싱 스톤"입니다. 췟~!
[엘리펀트 맨] 30년 전쯤 본 영화군요. 사람이 사람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요. 당시 저는 초등(국민)학생이었습니다.
리드미님!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죠?^^편한 휴일 되시길....
저는 살아가면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자주 씁니다..그런데 "사랑합니다" 라는 말은 쓰질 못합니다...이상하게 나오질 않네요 ... 사랑은 행동과 실천이 같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해서요..실천을 잘 못하는 자라서....
1970년대 이후 프랑스 영화는 재미없어서 돈 주고 봐라 해도 안 봅니다. 참. 그러고 보니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며 한 번 탈 때 마다 네 편까지도 영화를 공짜로 봤군요. 영화 두 편 보고 잠 좀 자고 또 두 편 보고 하니까 10시간 그냥 가더군요. 근데 자리를 잘 잡아야지. 요즘 좌석 앞에 붙어있는 모니터는 눈이 아파서... 그리구 비행기에서 본 영화는 나중에 뭘 봤는지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용산 가서 해적판 DVD 사서 보는데... 근데 DVD는 사다만 놓고, 언제라도 보겠거니 하니까 오히려 잘 안 보게 되네요. 작년부터인가 맹박이 대통되고 난 이후 해적판도 잘 안파는 것 같음.
긍께 영화는 영화관에서 오징어다리 질겅 질겅 씹어가면서 봐야 오래 남고 지 맛이랑께유~~~^^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 끝에 항상 미안합니다. 라고 쓰고 싶은 충동이 있답니다.ㅋ 글 감사합니다.^^
아주 어릴적에 TV에서(명화극장인지 토요명화인지) 본 기억이 납니다.
헉! 해도 너무 하십니다~ 이러다 우리나라 영화산업 망하겠습니다. ㅋㅋ
고맙습니다라는 말 밖에 전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25년전 마산의 극장이라면 ......시민극장,중앙극장,강남극장 중의 하나입니다^^ 나머지 두곳 태양극장(2편연속상영)마산극장(3편연속상영) ......그러고보니 다섯극장 다 문 닫아버리고 없네요 ㅋ ......마침 마산cgv극장표(2009년 일년동안 유효) 두장 있습니다. 아는 후배가 올 년초에 새해인사라며 두장을 줬었는데 아직 못보고 있습니다. 혹 25년 지난 마산의 극장을 음미하시려면 드릴수도 있습니다. ㅎㅎㅎ -필승-
먗 달만에 로그인하게 하는군요, "노동자도 인간이다" -전태일- 중년에 다시 보는 그는 전사가 아니라 성자였습니다. 예수나 붇다 반열의... "내가 아닌 모든 나에게..."로 시작하는 그이의 일기는 오도송이지요,
아고라에 readme글 찿아봤더니 알밥들만 줄줄이 나오더군요. 님의 글이 그리웠어요. 이제야 좀 갈증을 풉니다.
언제나 건강 하길 바라면서 자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