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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단적으로 말해 말씀, 말씀대로의 신앙인 것이고, 좀 더 정확하게는 말씀이신 하나님을 말씀대로 믿고 의지하며 구하면서 말씀 그대로 누리고 전하며 이뤄지고 성취되며 참예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실상 근본적으로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 자체가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에 믿음이란 것이 말씀과 전적으로 직결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들이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됨과 함께 하나님의 것이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되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도 절대 진리이자 절대 의이며 완벽한 선이고 완벽한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중심이고 말씀으로 통치하는 나라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한 번 더 강조하면 무엇보다 본질적, 실제적인 측면에서야 말로 바로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으며 구하고 갈망하며, 말씀대로 누리고 거하며 증거해 나가는 것이 믿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증거된 말씀 등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출발도 다름 아닌 말씀대로의 순종이었으며, 로마서 10장에서도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했고..
실상 어떤 것이든 말씀 아닌 것을 믿을 수는 있겠으나 그러한 것은 영적인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믿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굳이 표현하자면 미신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말씀대로의 믿음이 필요하고 실질적이며 중대하고 절대적이면서 유일한 방법인 이유는 본질적으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선악을 하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끝까지 믿고 사모하며 따르지 않았기에, 다른 말로 죄악을 범했기 때문인 것으로..
그로 인해 원론적으로는 말씀으로 인한 모든 은혜와 복들을 잃었을 뿐 아니라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된 것이며, 말씀 자체를 상실케 된 것이고 말씀의 동산인 에덴도 박탈당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이가 완전히 깨어지고, 어긋나게 된 것이며, 근본부터 무너지게 된 것이고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잘못되게 된 것이며, 실상 죄악으로 인한 비참과 심판들에 휩쓸리게 된 것으로 영적으로는 죄와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바꾸어 말하면 본질적으로의 모든 회복과 새로워짐에 있어서도 다름 아니라 바로 말씀, 어떤 식으로든 말씀, 말씀대로의 믿음과 직결되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창세 전부터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말씀과 함께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인한 뜻과 계획과 약속과 예정과 준비와 진행들이 있었던 것이고, 특히 그러한 모든 일들 가운데 다른 그 누구보다 아브라함은 현실적으로 참 힘들고 믿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실행하기는 더욱 곤란한 상황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으며 순종하고 실천하면서 그의 본토와 아비 집 대신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예비하신 땅으로 말씀대로 떠났는데..
다름 아닌 바로 그러한 말씀대로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셨고, 사실상 의의 근본이시자 실체이시며 전부이신 하나님께서 말씀 그 자체이시기에 바로 그와 같은 말씀의 믿음이 본질적으로 의와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진정 그 정도까지의 말씀대로의 신앙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까지 불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특히 그렇게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음과 그로 인한 의는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이나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여자의 후손에 대신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특히 유월절 어린 양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제사장과 선지자들,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과 같이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곧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좀 더 정확하게 말해 바로 그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진정 그 어떤 죄와 무거운 짐들, 사탄과 음부의 세력들, 사망과 심판들에서든지 구원받게 되고,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그러한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영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말씀과 함께 약속된 대로 정말 거듭나게 되며,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와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 곧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된다는 것에 있어서도..
참으로 그와 함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과 함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등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말씀 그대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정말 세상 끝 날에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누리게 된다는 모든 말씀들에 있어서도, 사실상 이성이나 논리나 상식이나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고 납득하기 힘들며, 어떤 의미에서는 참 많이 이상하고 황당할 수도 있는 그러한 모든 말씀들을 말씀 그대로 믿는 믿음과 그로 인한 의롭다 칭함 받음 곧, 이신칭의에 있어서도, 또한 그로 인한 구원의 모든 실제와 역사들에 있어서도 전적으로 직결되며,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연결선상에 있는 것이고, 생각 이상의 기초와 근거, 증거와 예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상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됨도, 또한 예수님도, 성령님도,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나라도 결국 모두 말씀에 직결되고 극히 일부라도 의와 별개일 수 없는 것인데..
실상 근원적으로는 그 모든 시작이며 창세 전부터의 존재이시자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이시고 근본이시며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의의 근원이시자 근본이시며 전부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야 말로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정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와 현실과 실제들에 적용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참예하며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난 자들, 게다가 말씀의 영이시자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전이 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와 세속에 헤매는 병든 신앙, 곧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듯한 신앙이 아니라, 또한 인간적인 힘이나 의, 세상적인 능력이나 방법들도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사도 바울처럼, 또는 어떤 식으로든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되는 죄악들에서는 즉시로 회개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주야로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묵상하며 실천하고 증거하면서 오직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믿음을 깨어 있는 믿음, 살아 있는 믿음, 진정 의롭고 복되며 뜨거운 믿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야고보서 5장 15~16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와 같은 말씀과도 온전히 합치하는 것입니다..
사실 의를 갈망하는 그러한 말씀대로의 믿음, 특히 다른 그 무엇보다 주야로 더욱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과 열정들은 그 자체로 말씀이신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될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에게야 말로 다 표현 못할 유익과 복과 능력들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인데..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갈수록 더 말씀의 영, 믿음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게 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이 되면서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울 수 있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더더욱 말씀의 신앙, 더 뜨거운 말씀의 열정으로 나아가게 되는 점진적, 점증적인 선순환, 성화의 과정에 온전히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와 함께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그 한가운데에서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언제나 변함없이 풍성하고 뜨겁게 역동하시고 있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와 충만하심으로 인해, 또한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으로 인한..
다양한 모양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역사들, 더 나아가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복과 능력들, 말씀, 말씀 신앙의 절정인 복음의 능력과 온갖 응답의 역사들 등을 모든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서 그 자신의 속에서부터 순간순간 실제로 맛보게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온 지경이 함께 경험케 되고, 더 나아가 땅 끝까지, 지구 반대편에 이르기까지 선한 영향력과 열매들이 될 수 있게도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말씀대로 신령한 몸을 입으며 부활해서 말씀 그대로 영원한 나라와 생명을 실제로 누리게도 되는 것인데..
그것은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누리게 되고 확장되며 완성되고 성취되어 영원히 거하게 되는, 참으로 이 세상 속에서의 제한이나 한계 아닌 한계를 뛰어 넘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인 하늘나라인 것이고, 좀 더 직접적으로는 요한계시록 21장에서의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의 영원한 생명과 희락인 것으로, 좀 더 부연하면 완전한 믿음과 의와 생명과 행복의 나라, 특히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그 나라는 말씀이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고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빛이 되어 주시며 완전하게 통치하시는 절대적인 말씀의 나라인 것이면서 가장 신령하고 영화로우며 복된 하늘나라인 것이고, 말 그대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영원히 거하고 상상도 다 못할 하늘의 행복들을 실제로 누리게 되는 본향인 것으로 어쨌든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그러한 모든 일들에 있어서의 모든 본질과 공통과 중심과 전부와 관건은 바로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1~3)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1월 14일(목)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