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겐 '현재 이 상황에서' 결단이 중요 야당 출신 국회 부의장 '백봉 라용균'이 정치인으로서 내린 결단에 대한 아들의 회상(回想). 문무대왕(회원)
'정치인에겐 현재 이 상황에서 결단이 중요'는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라종일이 '중앙SUNDAY' 35면에 발표한 '선데이칼럼' 제목이다.(3월25일) 라종일 교수는 칼럼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라 교수의 아버지이자 6대 국회 야당출신 부의장이었던 '백봉 라용균'이 정치인으로서 내린 정치적 결단에 대한 회상(回想)을 담담하게 술회했다.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한자 및 일부 자료는 필자가 첨언) <한국전쟁(6·25 남침)이 끝난 후 하와이 교포들이 모국(母國)의 재건에 쓰라고 3만 달러를 모금해서 보냈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그 돈으로 공대(工大)를 만들었다. 지금은 종합대학으로 성장한 '인하공대'였다. 미국 외교관과 국내 여론은 비판적이었다. '터무니없는 망상' '가당찮은 야심' '그 자금을 농우(農牛)나 벼 품종개량에 투자하라' '한국이 어떻게 산업국가가 되느냐' 등, 이승만 대통령의 조치를 비현실적으로 본 것이다. 오래 전에 읽은 외교문서가 기억에 되살아난 것은 작금의 한·일관계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중략)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문제는 국내의 반대 여론에 봉착했었다. 당시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를 비롯한 대학교수와 대학생 등의 반대는 치열했다. 세칭 6·3사태는 서울대 문리대가 중심이었다. 나(라종일)도 문리대학생으로 반대였다. 그러나 남 모르는 고민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이자 당시 야당 추천 국회 부의장인 라용균이 박정희 정부의 한·일 국교정상화에 찬성을 천명한 것이다. 청년시절 독립운동에 몸담았고 일본의 박해로 대학마저 중퇴(와세다대 정경학부)했고 온갖 유혹과 압력에도 창씨개명도 반대했던 아버지, 그리고 제헌국회 등 다선 국회의원에다 당시 장면 정권을 제외하곤 평생 야당을 택했던 야당추천 현역 국회부의장인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찬성한다는 것은 아들인 나로서는 도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아버지에게 따지고 들었다. 아버지는 예상이라도 한 듯 조용한 어조로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가 농업만으론 결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우리가 산업화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도 않고 아예 관심도 없다. 실제로 우리는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도 없고 기술과 숙련된 노동력도 없다. 산업경영 능력도 박약하다. 유일한 기회가 일본과의 협력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영구히 농사만 주로 하여 간신히 먹고 사는 나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일본에 있고 일본도 자신의 속셈이 따로 있겠지만 협력할 의사가 있어 보이니 이 좋은 기회를 놓쳐선 안될 것이다." 정치인이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인(要因) 가운데 '지금 현재 이 상황에서(hic et nunc)'라는 표현을 이 때 처음 들었다. "가장 요긴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고 말씀하셨다. 물론 나는 수긍할 수 없었다. 6·3 항쟁이 20여 년 지난 후에 미국 외교문서를 연구하다가 앞에 인용한 '인하공대 설립'에 관한 미국 외교관들의 반응 자료를 보았다. 나의 아버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게 된 뒤였다.> 필자는 오늘 아침 라종일 교수의 칼럼을 읽고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라용균 국회부의장과 같은 어른들이 국가의 장래에 대해 정치적 선견지명을 가진 선각자였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꼈다. 한편 감언이설과 요설로 지껄여대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라용균 국회부의장이 친일파였던가? 매국노였던가, 이완용의 부활이었던가? 라종일 교수가 친일파인가?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한·일 국교정상화가 계묘늑약인가, 일본 자위대의 군화가 대한민국에 상륙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에 혈안이 된 나부랭이들의 가련한 행색에 침을 밷지 않을 수 없다. 백봉 라용균 부의장은 전북 고부군 출신으로 정읍갑에서 제헌국회의원과 3, 4, 5, 6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장면 정권에선 보사부장관을 지냈다. 라종일 교수는 경희대 교수와 국정원 차장과 주일대사 등도 역임했다. 현재 국회에는 라용균 선생의 정치역정을 기리는 '백봉 라용균 신사상'이 제정, 시행되고 있다. 국회 출입기자 100여 명이 의정활동을 신사답게 하는 국회의원을 뽑아 시상하고 있다. '자제통제력' '정직성' '공정성' '원칙준수' '유연성' '균형성' 등이 선정 기준이다. 주호영. 정세균 등이 수상자들이다. 수상자 가운데는 상을 받고도 상의 명예를 더럽히는 못난 국회의원도 있다. 라종일 교수가 거명한 세칭 '6·3세대'에 대해 첨언한다.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반대한 세칭 '6·3사태'는 김중태. 김도현. 현승일 등 서울대 문리대학생들이 앞장선 전국 규모의 대학생 시위였다. 김중태는 독립운동가 장덕수 선생의 손서(孫壻)가 되어 서울 중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했고 현승일은 국민대학교 총장과 국회의원을 지냈고 김도현은 YS정권 때 문화관광부 차관을 지냈다. 이밖에 김덕룡, 홍사덕 같은 정치인들이 배출됐고 고려대의 이명박은 후일 대통령이 되었다. 그 때 6·3세대들은 서울시청 앞에 들어선 특급호텔 한 채를 두고 매판자본((買辦資本)이라며 매도한 적이 있다.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우물안 개구리 같았던 그 시절이 부끄럽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