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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2)
마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 25:14-30 / [달란트 비유;눅19:11-27] 하늘나라는 마치 어떤 사람이 먼 나라로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돈을 맡긴 것에 비유할 수 있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그 돈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였다. 17)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렇게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 돈을 안전하게 묻어 두었다. 19) 얼마 뒤에 주인이 여행에서 돌아와 자기 돈을 셈하려고 그들을 불렀다. 20)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열 달란트를 주인에게 가지고 왔다. 21) 주인은 그가 일을 썩 잘해 낸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이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더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어서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 22) 다음에는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와서 보고하였다. `주인님이 주신 두 달란트를 제가 배로 남겼습니다. 23)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다. 너는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이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더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어서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 하고 말하였다. 24-25) 이번에는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씨를 뿌리지도 않은 곳에서 거두어들이고 심지도 않은 데서 모아 들이는 인색하고 매정한 분이신 줄을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제가 이익을 남기더라도 빼앗아 갈 것이므로 돈을 다만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26)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게 호통을 쳤다. `이 악하고 게으른 놈아! 네가 나를 그런 매정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면 27) 너는 적어도 내 돈을 이자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겨 두어 내가 이자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28) 여봐라, 이자가 가진 돈을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29)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더 많이 받아서 풍족하게 될 것이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빼앗길 것이다. 30) 이 쓸모없는 인간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앞서 비유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는 하나님의 약속된 종말의 천국을 깨어서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달란트의 비유는 천국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14-18) 어떤 주인이 타국으로 갈 때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그들의 재능대로 맡기십니다. 자신의 소유를 맡기는 데는 주인의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맡은 바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윤을 남기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맡은 바 주어진 책임을 주인을 위하여 성실히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맡겨진바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때 주인이 종들의 재능에 따라 책임의 양을 정해줍니다. 여기에서 책임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책임의 양에 대하여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19-30) 주인이 자신의 소유를 맡긴 것에 대하여서는 반드시 돌아와 결산을 합니다. 맡은 바 사명에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맡겨진바 책임을 잘 감당해 낸 종들에게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시고 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라 하십니다. 반면에 맡은 바 사명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에게는 맡겨졌던 것도 빼앗기고 주인의 즐거움 저편에 있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책임을 감당하는 자와 감당하지 못한 자가 나눠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가올 종말에 천국을 준비함에 있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과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바를 알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맡겨주신 책임과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칭찬과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나눠주신 사명과 책임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잘 감당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구원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의 어떤 공로를 주장할 수 없는 전적인 은혜입니다. 은혜로 받은 선물인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에 대해 진심으로 성실을 다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도록 행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대에 걸맞는 삶으로 살아내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설 교 >
네 속에 숨어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개발하라
마 25:14~30 / 조용기 목사
오늘 저는 “네 속에 숨어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개발하라” 이 말씀을 가지고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자기 종들을 불러서 각각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 금 다섯 달란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사람은 한 달란트씩 나누어 주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실 때 빈손 들고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의 재능을 또 한 사람은 두 달란트의 재능을 또 한사람은 한 달란트의 재능을 주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능이 없는 빈손 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주인이 먼 나라에 가 있다가 상당한 기간이 되어서 돌아오니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심히 그것으로 일을 해서 열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두 달란트는 네 달란트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굉장히 기뻐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 하였은즉 더 큰일을 맡기겠다. 나의 기쁨에 참여하라고 했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주인님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기 때문에 겁이 나서 내가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놓았다가 그대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이 주신 재간을 발휘하지 않고 그냥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다가 일생을 보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굉장히 노했습니다. “내 돈 한달란트를 네가 사용해서 이윤을 남기지 못하겠거든 이것을 취리하는 사람에게 맡겨서 이자라도 받아서 함께 줘야되지 않겠느냐.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을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아 울며 이를 갊이 있게 하라.”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다섯 달란트 만든 사람에게 주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있는 자에게는 더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일은 주님께서 우리 각자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다 달란트를 받아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재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재간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생겼든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이미 재간을 주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본론>
1. 자신의 잠재능력을 알라
하나님께서 얼굴이 똑같은 두 사람을 짓지 않은 것처럼 똑같은 잠재능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주님이 만드신바 된 사람입니다. 육체도 주님이 만드시고 우리 영혼도 주님이 만드셨습니다. 오늘 우리 크리스챤으로 주님이 만드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만드신대로 우리의 재간을 알아내야 됩니다.
“사과 속에 있는 씨는 헤아려 볼 수 있지만, 씨 속에 있는 사과는 하늘만이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과를 깨면 씨는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씨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과가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씨를 뿌리면 사과나무가 나고 그 사과나무에 사과가 얼마나 많이 일리지 않겠습니까? 사과씨 하나를 심으면 수십개의 열매가 맺히고 그 사과 열매의 씨앗들을 심으면 얼마나 많은 사과가 맺힐 지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도 심어져 자라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여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 만큼 큰 나무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작은 도토리 알 속에서 거대한 도토리 수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잠재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사용을 하면 굉장한 성과를 거둘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 잠재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면 하나님께 큰 수치를 돌리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을 마음속에 가져서 자기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도토를 속에서 도토리 수풀을 보는 것같이 자기 속에 조그마한 재간이 있지만 그 재간을 사용하면 하나님이 굉장히 크게 복을 주셔서 30배, 60배, 100배가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을 때 아담과 하와만 본 것이 아닙니다. 그들 속에 68억 인구를 보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인데 무슨 68억입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 한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68억의 후손들이 생겨날 것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수십억의 구원받은 사람을 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매달려 있을 때 사람들은 한 사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여 있는 것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 예수님 속에 구원받은 수십억의 인류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재적인 자기의 가치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저는 저 한사람 구원받았을 때 조용기 목사 한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 그렇게 보았을 것인데 하나님은 너를 통하여 70만명이 주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용기 한 사람만 본 것이 아니라 조용기를 통한 70만명의 영혼들을 보신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큽니다. 여러분 한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은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로 5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창세전에 해와 달과 별, 하늘과 땅이 생기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택했습니다. 보통 여러분 귀중한 존재가 아닙니다. 창세전에 여러분을 하나님이 보시고 아시고 택했으니 보통 인물이 아니지요. 하나님께는 여러분이 광징히 귀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보배 덩어리입니다. 창세전에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래뵈도 지금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을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요, 우리 아버지가 말할 수 없는 부자니 우리도 부잣집 아들인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항상 승리하시니 우리는 승리하는 집 아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비하하지 마십시오. 절대 못나고 버림받고 형편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굉장히 잘 살았어요. 그 결과로 아버지도 상속을 받아서 잘 사니까 우리도 잘 사는 집에 태어났으니까 동리에 내려가면 부자집 손자 내려온다. 부잣집 손자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내가 부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할아버지가 부자니까 자연히 아버지가 부자고 그에 따라서 부잣집 생활을 한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집 개가 내려오면 부잣집 개가 내려온다고 그럽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래뵈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니까 못나고 버림받고 패배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이래뵈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누리는 것을 여러분 같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영혼이 못되는 것 보았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범사에 실패하는 것 보았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병든 것 보았습니까? 가난한 하나님을 생각해 본적이 있어요? 헐벗고 굶주리고 동냥하는 가난한 하나님을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인데 우리 아버지가 영육간에 부유하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천지를 소유하고 계신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었으므로 여러분 자신에 대한 꿈을 좀 크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아버지가 여러분에게 잘 승리하고 살 수 있는 재간을 주셨습니다. 달란트를 다 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빈손 들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2. 어떻게 나의 잠재력을 알아내는가?
그러므로 여러분이 잠재력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게 어떤 잠재력이 있는가?
하나님이 그냥 보내주시지는 않고 잠재력을 주어서 보냈는데 내게 어떠한 잠재력이 있는가? 그것을 알려면 무엇에 지치지 않는 취미가 있는가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이것만은 정말 취미가 있다. 하고 싶다. 굉장히 취미가 있는 것을 발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잠재력을 주시면 그 잠재력을 따라 취미로 나타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무슨 소질이 있는가. 뭘 잘하는가. 원래 자랄 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 못하는 일도 있고 자기가 취미가 있고 잘하는 것을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재간을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믿음의 분량대로 취미를 주시고 소질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나같지 않고 다 남같지 않습니다. 특별히 여러분만을 위해서 하나님이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분량대로 주신 믿음이 어떤 것인지 발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분량대로 믿음이 나는 교수가 되라고 했는데 나는 자꾸 사업가가 되려고 하면은 자기의 소질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지요. 나는 사업을 해야될 사람인데 자꾸 음악가가 되려고 하면은 그것은 잘못 발견한 것입니다. 자기를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 세상에 보낸 달란트를 반드시 알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달란트대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데니 콕스(Danny Cox)는「당신의 잠재능력을 이끌어 내는 세 가지 힘」이란 책에서 장벽을 깨고 목표를 성취하게 해주는 세 가지 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흔들림 없는 목표 의식를 가져야 되고, 둘째, 억누를 수 없는 모험심이 있어야 되고 셋째, 자신의 발전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잠재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 내 인생을 살면서 목표가 있어야 된다. 아무 목표도 없이 방황을 하고 살면 세월만 보내는 것입니다. 목표를 세워서 그 목표를 향해서 나가면 굉장한 성과를 거둡니다. 어떠한 목사님이 굉장히 영어를 잘하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느냐고 기자가 물으니까 군대에 있을 때 보초설 때면 보초만 서는 것이 아니라 영어 단어를 외웠다는 것입니다. 내가 군대 3년 동안 있을 동안에 완전히 영어 단어를 사전에 있는 것을 다 외워서 나가리라. 그 목표를 세우고 군대 3년 동안에 죽도록 영어 단어를 외웠는데 그 결과로 오늘날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영어를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군대생활을 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목표없이 하루하루 그냥 지내면 귀한 세월을 허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데니 콕스에 의하면 이 세 요소는 과거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잠재력 개발의 힘이요, 장벽을 깨는 힘으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고 모험심을 가지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그렇게 하고 끝없이 자기가 잘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힘을 써야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모험이라도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갈망하며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달란트를 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잠재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이 지치지 않고 하고 싶어 하는 취미와 소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한 목적의식과 모험심과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면 여러분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 알렉산더 대왕이 이웃나라 왕으로부터 사냥개 두 마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주 기뻐해서 그 사냥개 두 마리를 데리고서 사냥을 나갔는데 눈 앞에 있는 토끼를 보고도 잡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생각하기를 ‘아.. 낯선곳에 오니까 익숙하지 못해서 사냥을 안하는구나.’ 좀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또 두 마리 개를 데리고 사냥을 하러 나갔는데 아 옆으로 뛰어 다니는 토끼도 안잡거든요.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화가 나서 “이 놈 죽여버려라! 살아있을 필요가 없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선물을 준 이웃나라 왕이 알렉산더 대왕을 방문을 했을 때 알렉산더 대왕이 그 이야기를 하니까 무릎을 탁 치면서 “대왕님! 대왕님이 그 사냥개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 두 마리 사냥개는 사자나 호랑이를 잡도록 훈련받았지 토끼를 잡도록 훈련 안 받았습니다. 굉장히 귀중한 개인데 대왕께서 그 소질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일은 무엇이든 그 목적과 소질에 합당한 일을 해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질이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가장 깜짝 놀란 사실이 있습니다. 생각해봐도 언제나 깜짝 놀랄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집사람 이야기입니다. 김성혜 목사, 저가 한평생을 같이 살았지만 목사가 될 것이라고는 제가 꿈에도 생각 안했습니다. 원래 수줍음을 많이 타서 사람들 앞에 나가서 인사말도 잘 안했어요. 항상 제 뒤에만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나는 말 안하는 사람입니다. 늘 내 뒤에만 서 있어야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 60이 넘어서 갑자기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사람 모아놓고 구역예배 인도하더니 그 다음에는 교회가서 설교를 하더니 아 그 다음에는 외국에서 초청을 받아서 대 부흥회를 여는데 저 사람이 나하고 같이 사는 사람인가 안 사는 사람인가? 알 수가 없어요. 요사이는 김성혜 총장은 오라는 사람이 많고 외국 각교회에서 와서 부흥회를 열어달라고 합니다. 그것 왜 내가 놀래느냐면 야~ 사람마다 감추인 소질이 있구나. 그런데 그것을 개발을 안하면 그냥 일평생을 지나가되 개발을 하면은 김성혜 목사같이 되는구나. 그러니까 혹시 나는 70이 넘었지만 지금도 내가 개발하지 못한 재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있으면 그것을 개발해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써야 되겠다. 여러분의 재간이 있어요. 여러분 속에는 모두다 조용기 목사처럼 김성혜 사모처럼 하나님이 주신 재간이 있습니다. 달란트가 있어요.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나는 이대로 인생을 지나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우리는 소질이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우리의 잠재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그 일을 지치지 않고 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잘 살펴 지치지 않고 좋아하며 소질이 있는 일을 발견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빨리 여러분의 소질을 발견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이끄시느냐. 하나님이 나를 무엇하기를 원하시는가 그것을 열심히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6절에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내 인간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님이 보셨으면 인생에 태어나서 하루가 되기 전에 내 일생이 하나님 책에 다 기록되었다. 소름이 끼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태어날 그 시간에 벌써 일생을 다 알고 하나님 책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일생을 손금 보듯이 보고 계세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이미 여러분 갈 길이 예정한 곳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한 길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갈려고 하면은 실패합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
계획은 내 마음대로 하지요. 그러나 발걸음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돼요. 결혼안한 여성이 돈 많고 학력이 좋다고 해서 꼭 그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신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이 그런 신랑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시고 그런 신랑을 만나면 못살아도 행복하게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꼭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화가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은‘미국의 샤갈’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놀랍게도 70세가 넘어서부터인 것입니다. 내 나이가 되어서 화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다른 일을 하다가 은퇴하여 마을 노인정에서 체스를 하며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체스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청년이 무심코 “할아버지 왜 앉아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까? 시간도 보내고 재미도 있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세요. 그림을...”그리고 청년이 지나가 버렸어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재간이 나타났습니다. 그 후 30년간 101세까지 살면서 무려 22회의 전시회를 열어서 화가로써 미국에 명성을 날렸습니다. 70에 그것도 우연히 지나가는 청년이 할아버지 그림 한번 그려보라고... 그림을 그리니 거기에 취미가 있고 거기에 소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계속 그림을 그려서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여러분 지금 안지가 여러분의 최고가 되지 못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주어진 달란트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지금보다 30배, 60배, 100배로 위대한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우리 인생은 끝까지 무엇이 될지 모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나이나 환경 팔자 등을 탓하지 마시고 지금부터라도 우리 각자가 가진 소질을 개발하며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를 어떻게 쓰실 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래 전 영국에서는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설교하는 자는 무조건 벌을 받는다.”는 법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이 법을 어겨 1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야 되는데 그가 감옥살이 하는 동안 그 부인은 죽고 애들은 고아가 되었었습니다. 그는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저는 지금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제가 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감옥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글을 써라. 나는 너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었으니 글을 써라. 그래서 그가 엎드려서 기도하는 중에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천국가는 역정을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천로역정입니다.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기록하고 난 다음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자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오늘날까지도 천로역정은 굉장히 유명한 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했으나 존 번연은 감옥에 갇혀 있어도 하나님께 의지해서 자기가 준 달란트를 개발하니까 역사적인 문학자가 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고 알아내기 위해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손길을 잘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잠재력은 개발되어야 한다
우리의 잠재력은 반드시 개발되어야 합니다. 이 귀하고 귀한 일생을 허무하게 보내서는 안돼요. 더구나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아버지 아들 딸들이 된 우리들은 하늘나라를 위해서 위에 주신 재간을 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처럼 파묻어 놓아서는 안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님께 와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땅에 감추어 두면 어떻게 합니까? 개발해야지요. 여러분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학교 교육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디에서 우리 달란트를 개발할 수 있느냐. 교육을 통해서 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데 소질이 있느냐. 교육을 통해서 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개처럼 희미하고 덮여 있더라도 교육을 통해서 안개를 걷어내고 소질이 있는 것을 개발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60, 70이 되어도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교육을 통해서 여러분의 감추인 달란트가 개발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9장 9절에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로 15절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우리가 성경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성경도 우리가 성경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면 더욱 지혜로워지고 더 하나님 앞에 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배우십시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가르치십시오. 쇠가 쇠를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이웃이 이웃을 날카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재능을 피땀을 흘려서 발전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되는 일을 하나도 없습니다. 피땀을 흘려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50년 동안 한번도 휴가를 간적이 없습니다. 우리 가족들에게 미안한 것은 다른 교회 목사님들은 10년 만에 1년씩 꼭 휴가를 갑니다. 그런데 저는 50년 동안 한번도 그런 휴가를 간적이 없습니다. 가족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왜냐, 마음속에 꿈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 최대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니까 한시도 아끼지 않고 뛰어야 되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데 놀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전력을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지역장도 전력을 기울이면 지역이 살아납니다. 구역장도 전력을 기울이면 구역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자기 사업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력을 기울이면 그 사업이 자라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이 다가와도 오히려 그 고통은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더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서로 격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성악가 카루소는 그 어머니의 격려를 통해서 위대한 음악가가 된 것입니다.
잠언 27장 21절에 보면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엔리코 카루소는 나폴리의 한 가난한 집에서 7남매의 세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넉넉지 못하여 그의 어린 시절은 음악과는 무관한 가정 환경이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카루소는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카루소에게 격려를 해주고 배울 수 있는 자신감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 레슨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듣던 선생님은 그에게 성악가로서 자네는 자질이 없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덧문에서 나는 바람소리 같다. 문풍지 소리같다. 자네는 전혀 성악가로서 자질이 없으니까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카루소가 낙심천만해서 집에 돌아오니까 어머니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너는 틀림없이 위대한 성악가가 될 거야. 엄마는 널 믿는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너는 위대한 성악가가 된다.” 카루소는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어 혼자 더욱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습니다. 나폴리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노래를 하다가 그 곳에서 그의 천부적인 성악 소질이 발견되어 오페라까지 설 수 있게 되고 그는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된 것입니다. 어머니 덕분입니다. 어머니가 격려해 주므로 그의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개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격려해 주는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도 무려 1천 93개의 특허를 가진 천재인데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1학년 밖에 못 다녔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에디슨은 학교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다가 말썽을 일으키고, 엉뚱한 질문을 하여 선생님을 당혹하게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이 하나 보태기 하나는 둘이다라고 하니까 손을 들고 선생님 아닙니다. 하나 보태기 하나는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고양이 플러스 쥐는 한 마리밖에 안됩니다. 에디슨 말도 맞거든요. 자꾸 그런 질문을 하니까 선생님이 이 놈은 바보라. 교육 못시키겠다고 어머니를 불러서 내보냈습니다.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보셨군요. 우리 아이는 바보가 아니고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아이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그를 가르쳐서 1년내 6학년을 마치게 하고 그가 소질이 있는 과학책을 어머니가 계속 읽도록 해주어서 발명가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에디슨이 발명1호를 들고 어머니에게 갔을 때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남다른 애라는 것을 잘 안다. 정말 잘 커줘서 고맙구나.” 에디슨은 그 어머니가 단점보다도 장점을 보고 격려를 해준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러한 격려로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들을 발명한 발명왕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격려를 받고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간을 주셨으면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노력하고 애쓰지 않고 일을 이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3절에도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충성했다. 자기 일에 대해서 전력을 기울였다.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서 충성했기 때문에 많은 성취를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잠재력이란 속에 숨어 있는 힘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타날 때는 놀라운 힘을 보입니다. 철학자 짐론(Jim roh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당신이 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는다.”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힘은 우리 속에 숨어있는 잠재력을 발견하여 그것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조엘 오스틴(Joel Scott Hayley Osteen) 목사는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8가지를 제시했습니다. ❶ 꿈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으로 믿어야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마음에 꿈과 믿음을 가져라. 꿈과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먼저 꿈과 믿음을 분명히 가져라. ❷ 믿음을 가지고 기대수준을 높이라 즉,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현재 사는 것보다 더 30배, 60배, 100배로 나아질 것을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그대로 있을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질 기대를 마음속에 가져라. ❸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라. 내가 못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박대받는 자기 모습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자기 꿈이 이루어지는 승리의 자화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❹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하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말을 할 때 놀라운 일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한대로 됩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살면서 먼 눈으로 보면은 생각하는대로 되고 꿈꾼대로 되고 믿음대로 되고 말하는대로 됩니다. 뭐 보통 우리가 말을 하잖아요. 아무 관심없이 부정적인 말, 비평적인 말, 손가락질하는 말을 합니다 늘.. 그러나 나중에 보면은 말하는대로 돼요. 그것이 그 생활에 다가오도록 환경에 변화를 끌고 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내가 집요하게 생각하는대로 되고 늘 마음속에 소원을 하고 바라보는대로 되고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대로 되고 말하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고 항상 긍정적인 꿈을 꾸고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은 긍정적인 생활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우리 속에 주어주신 달란트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믿음도 하나님이 여려분에게 믿음을 주어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믿어야 역사가 나오지 여러분이 안 믿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가 너를 고쳤다고 말 안하시고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미 하나님은 믿음을 주어 놓았기 때문에 믿음을 우리가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은 이미 여러분 속에 주어진 은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어 놓았기 때문에 평안하라.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왜, 이미 그런 은사가 마음속에 주어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❺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라. 과거에 내가 실패하고 낭패를 당했던 것을 늘 생각하고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❻ 역경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찾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내가 강한가 약한가, 강한 점 약한 점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기의 강점을 발견하라. ❼ 베푸는 삶의 즐거움을 누리라. 나눔과 섬김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장해 놓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❽ 행복하기를 선택하라. 그럴 때 인생의 성공과 행복이 우리의 것이 된다. 항상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행복한 길을 택하지 슬프고 낭패되고 불행한 길을 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달란트를 받았다 할지라도 자기가 받은 달란트가 남보다 적다고 불평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갖지 말고, 그저 파묻어 놓아서는 안 되고 파묻지 말고 어찌하든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은 열매 맺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못나고 머리가 나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이것을 사용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 나름대로 승리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모두가 다 보배덩어리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하나님께 보배덩어리다. 그러나 개발을 하지 못했습니다. 파묻혀 잇는 보배 덩어리에요. 이 보배 덩어리를 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개 그 보배를 한 달란트처럼 파묻어 버리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보배덩어리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식구입니다. 부잣집 아들입니다. 성공한 자의 아들입니다. 창조주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비상한 존재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낡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새것입니다. 보배덩어리입니다. 생각을 바꾸십시오. 나는 보배덩어리라고 생각하십시오. 꿈을 바꾸십시오. 나는 하나님께 보배라는 것을 꿈을 바꾸십시오. 믿음을 바꾸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보배다. 말을 바꾸십시오. 나는 보배로운 사람이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나는 승리하는 사람이다. 나는 영광스러운 사람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진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하드필드(J.A. Hardfield) 박사는 「힘의 심리」라는 책에서 “난 할 수 있어! 난 뭐든지 해 낼 거야!”라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 능력의 500%를 발휘하지만 “난 할 수 없어, 난 별 볼일 없는 불량품이야!”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자기 능력의 30%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500%를 발취하겠느냐, 30%도 발휘하지 못하느냐.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과 꿈과 말과 믿음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신경의학자 에코노모(Constantin von Economo)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의 뇌 세포는 136억 5천 3백만 개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처럼 엄청난 창조력을 가진 뇌세포를 거의 못 쓰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뇌의 약 0.4%를 사용하였고,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 0.6% 밖에 사용 못했습니다. 에코노모 박사는 만약 우리가 뇌의 10%만 사용할 수 있다면, 역사를 바꾸어 놓는 엄청난 일을 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보배덩어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보배를 땅에 파묻어 버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이처럼 놀라운 잠재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두 다 잠재력을 개발하여 인생에 크게 성공함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보배덩어리일 뿐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도 보배요, 이웃에게도 귀하고 귀합니다. 여러분은 우연히 어머니 아버지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지구가 생기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을 하나님의 책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니 상상이 안되지요. 보통 하나님 앞에 귀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늘도 땅도 세계 그 무엇도 생기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여러분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예정을 하시고 여러분의 일생을 하나님의 책에다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여러분이 인생을 한 달란트처럼 파묻어 버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나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습니까? 하나님 내가 무엇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그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 깨닫게 해주십시오.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그 길로 내가 담대하게 나가겠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길을 보여주시면 모험심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담대하게 나가십시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나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 중에 우리 교회에서 나가서 우리 한국을 움직이는 위대한 목사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 있을 때 평범한 집사요, 평범한 권사요, 평범한 성도였는데 우리 교회에서 나가서 목회를 시작해서 큰 교회 목사가 되고 수만명을 거느리는 주의 종이 되었었습니다. 그것을 볼 때 야~ 우리 교회 와서 하나님을 섬길 동안에 자기 달란트를 찾아내고 그것을 개발해서 저렇게 크게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구나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아직 70이 안되었습니다. 70이 된 사람도 세계적인 유명한 화가가 되었는데 아직 70이 안되었으니까 아직 갈 길이 창창합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승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어나서 앞으로 나가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달란트 비유가 주는 교훈
마 25:14-29 / 이한규목사
본문의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먼 타국에 출타하며 종에게 맡긴 달란트에 대해 주인이 돌아와서 그 책임을 묻는 비유다. 본문의 달란트 비유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1. 소명감을 가지고 살라
어떤 주인이 타국에 갈 때 세 명의 종을 불러 각각 그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다(14-15절).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달란트를 주셨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달란트를 받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남처럼 가지지 못했다고 섭섭해 하거나 기죽어 살 필요가 없다. 없는 것이나 잃은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하나님이 지금 내게 주신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때가 되지 않아 나의 달란트를 잘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때로는 나의 달란트가 나의 일과 맞지 않아서 그 달란트를 잘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계속 현재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 때를 기다리라. 절호의 기회가 없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능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조급한 마음으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도 말라. 하나님은 내게 재능을 주셨듯이 기회도 주신다.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잘 잡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친구로부터 사냥개 두 마리를 선물 받고 토끼 사냥을 나갔다. 그런데 사냥개들이 사냥은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대왕은 개들이 컨디션이 나쁜 줄 여겼다. 얼마 후 또 토끼사냥을 나갔는데 그때도 사냥개들은 사냥할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대노한 대왕은 사냥개들을 죽여 버렸다. 얼마 후 사냥개를 선물한 친구가 방문했을 때 알렉산더가 사냥개를 죽인 얘기를 하자 친구가 말했다. “대왕! 그 사냥개는 사자를 사냥하도록 키워진 최고 사냥개였습니다.”
내 인생의 목적에 맞는 일을 아직 얻지 못했으면 능력 발휘가 안 될 수 있다. 그래도 그 사냥개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일단 토끼 잡는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신다. 사자를 사냥하도록 키워진 최고의 사냥개 같은 성도도 일단 현재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라. 지금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하지 못해도 실망하거나 위축되지 말라.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겠다는 강한 소원을 가지고 준비하면 언젠가 절호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2. 최선을 다하며 살라
주인이 달란트를 맡겼을 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는 모험을 감수해서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당시의 가장 안전한 돈 보관 방법이던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두는 현상 유지 방법을 택했다(16-18절). 후자의 종처럼 한 달란트를 경시해 사장시키지 말라. 달란트는 양의 문제가 아닌 질의 문제다. 물매도 잘만 활용하면 골리앗을 물리치는 도구가 된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듯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고 바로 가서 하라. 시간의 노예가 아닌 시간의 주인이 되어 주어진 달란트로 맡은 분야에서 힘써 일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땀을 통해 땅을 얻으라. 게으름은 죄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 직분, 물질, 시간, 생명 등을 사장시키면서 현상유지만 꾀하는 것은 악하고 게으른 것이다.
꿈과 비전도 최선의 땀이 따르지 않으면 그저 공상으로 끝난다. 요셉의 성공 비결은 그가 찬란한 꿈을 꾸면서도 어디서든지 최선을 다해 일했다는 점이다. 입만 가지고 살지 말고 손과 발을 앞세워 최선을 다해 맡겨진 일을 좋아하면서 하면 점차 인물의 길이 펼쳐진다. 믿음은 수고와 땀도 없이 복을 얻는 기복주의가 아니다. 싸구려 기복주의 믿음을 가지면 싸구려 인생이 된다. 믿음의 경주는 최선의 땀을 흘리며 나아가는 장거리 경주다. 인생에 싸구려 지름길은 없다.
후회와 아쉬움이 없이 살려면 소명감을 가지고 내게 맡겨진 일에 마음과 정성과 뜻과 최선을 다하라. 여기에 있으면 저기를 생각하고 저기에 있으면 여기를 생각하는 삶을 버리라. 금년에도 최고의 삶은 살지 못해도 최선의 삶을 살라. 사람은 최고가 되었는지를 보지만 하나님은 최선을 다했는지를 보신다. 사람은 크기와 등수로 상대평가를 하지만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절대평가를 하신다.
3. 적극적으로 살아가라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달란트를 맡긴 각각의 종들과 결산했다(19절).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상징한다. 그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고 하자 주인이 말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자신이 잘 보관해 두었다고 했다.
주인은 종에게 달란트를 그저 보관하라고 맡긴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해 이윤을 남기라고 맡긴 것이다. 그처럼 무엇인가 가진 것을 책임의식으로 발전시켜 잘 활용하라. 없는 것을 탓하지 말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해야 열매도 얻고 행복도 얻는다. 결국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재능이나 IQ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프로가 되라.
요새 길어진 수명으로 정년 제도의 수정이 요구된다. 미국 기독교선교연맹(C&MA)은 목사와 선교사의 공식 정년이 없다. 한국 C&MA 총회는 목사와 장로의 정년이 75세다. 그에 비해 일반적인 정년이 60-65세인 것은 너무 빠른 감이 있다. 충분히 건강하다면 일할 수 있도록 정년 개념을 바꿔야 한다. 경험도 경쟁력이다. 생물적인 나이보다 정신적인 나이가 중요하다. 노년에도 시대 흐름과 시대정신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소극적인 생각을 버리라. 사람들은 늙어서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 마음이 늙어서 일을 못하는 것이다. 역사 이래로 부정적인 사고가 틀이 된 위대한 인물은 없다. 적극적인 자세를 늘 잃지 말라. 동시에 하나 되기를 힘쓰라. 혼자서는 잘하는데 둘이서는 못한다면 플러스인생이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부지런한 장점은 있지만 하나 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부지런하게 적극적으로 일하면서도 자기 자리에 충실하고 하나 되기를 힘쓰면 어디서든지 플러스인생이 될 수 있고 그가 속한 공동체도 복을 받을 것이다.
4. 섬김의 자세를 가지라
주인은 한 달란트를 그냥 내놓은 종에게 말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동시에 주인은 그가 가진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면서 말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9-30절).” 이 비유는 영적인 빈익빈 부익부 원리를 교훈한다.
왜 하나님은 더 일하면 더 복 받고 더 섬기면 더 섬김 받고 더 드리면 더 받는 영적인 부익부 빈익빈 원리를 세우셨는가? 자신의 인생과 시간에 대한 책임적인 존재가 되라는 뜻이다. 성도의 책임감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응답하려는 마음이다.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께는 믿음으로, 자신에게는 소망으로, 이웃에게는 사랑으로 응답하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책임적인 성도에게 있는 삼원색의 빛이다.
힘이 있으면 그 힘을 힘없는 자를 위해 사용하라. 세상에서는 없는 자가 있는 자를 섬기지만 교회에서는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섬긴다. 본 회퍼는 성도를 ‘타자를 위한 존재’라고 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왜 이처럼 많이 맡기셨습니까? 왜 이처럼 적게 주십니까?”라고 불평하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 묵묵히 행했다. 그런 섬김의 자세를 가지라. 전략적으로 사랑의 거리 두기를 할 때도 섬김의 자세를 바탕으로 하라.
한 권사가 20대에 혼자가 된 후 40년 이상 교회를 잘 섬겼다. 가끔 그 교회에 혼자되는 사람이 생길 때 그 권사가 전하는 위로의 말은 목사가 전하는 위로의 말씀만큼 혼자된 사람에게 큰 치유제가 되었다. 어느 날 그 권사가 말했다. “목사님, 하나님이 혼자된 사람을 전도하고 위로하라고 저를 일찍 혼자되게 하신 것 같아요.” 그처럼 섬김의 정신이 넘치는 자세를 가지고 살라.
섬김의 자세는 선한 일꾼에게 있어야 하는 기본자세이고 행복을 불러오는 핵심 요소다.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믿음도 자라고 복도 커진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거름이 필요하듯이 교회에서 겸손한 자세로 거름 역할을 하면 교회는 은혜를 입고 자신은 복을 받는다. 때로 리더가 영성과 실력이 부족해 보여도 나보다 낮게 보지 말고 나보다 낫게 보면서 힘써 따라 주라. 그런 겸손한 충성심을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뻐하실 것이다. 성공이 무엇인가? 해피엔딩만이 성공이 아니라 꾸준히 충성하는 것 자체도 성공이다.
하나님은 나를 믿고 투자하셨다. 나의 재능, 소유, 건강, 시간도 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투자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까지 나를 위해 투자하셨다. 그처럼 하나님이 투자하신 것을 힘써 활용해 하나님께 가치 있는 것을 배로 돌려드릴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그것이 진짜 성공이다. 항상 내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2024년을 승리하는 한 해로 만들라.
칭찬받는 삶의 자세
마 25:14-30 / 김재곤목사(전주태평교회)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모여 드리는 주일예배는 그 예배를 어느 주일에 드리든지 모두 다 귀하고 소중한 예배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 드리는 주일예배는 다른 주일에 드렸던 주일예배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년종주일인데, 이 년종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가 지난 일 년을 잘 정리해야 사흘 후로 다가온 새해를 바로 맞이하여 새해에 승리의 역사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달란트 비유라 이름 붙여진 예수님의 비유설교인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그들의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집에 돌아온 종들의 주인이 종들을 불러 결산을 하는데 그 결산의 자리에서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배를 남겨 열 달란트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도 배를 남겨 네 달란트를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처음 받은 그대로 한 달란트를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그러자 주인은 자신에게 이윤을 남겨준 두 종들에게는 잘하였다고 칭찬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는 약속도 해줍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윤도 남기지 않은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면서 쫓아냅니다. 이상이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런 본문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먼저 지난 일 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강과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윤을 남기는 인생을 살아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될 것인가, 아니면 아무 이윤도 남기지 못한 인생을 살아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인가를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살펴봄을 통해 자신의 지난 일 년의 인생이 책망받을 인생이었다고 판단된다면, 이제 맞이하게 될 새해에는 칭찬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 삶의 자세를 고쳐야 합니다.
그럼 칭찬받는 인생을 살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삶의 자세가 무엇일까요? 본문에 나오는 주인으로부터 칭찬받았던 종들의 자세에서 몇 가지를 배우도록 하십시다.
1.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 즉 달란트의 귀중함을 바로 아는 자세입니다.
달란트라는 말의 원뜻은 재능입니다만 신앙적 시각에서 이 달란트라는 단어를 해석한다면 이 단어는 재능을 포함하여 시간이나 건강이나 물질이나 지혜와 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여러 은혜들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달란트, 즉 재능과 시간과 건강과 물질과 지혜와 같은 은혜들을 우리에게 각각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우리는 그런 은혜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저의 말에 여러분 중에는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 즉 재능이나 시간이나 건강이나 물질이나 지혜 등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누리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그 받은 것에 차이는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저 사람보다 받은 것이 적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까지도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기에 그 만큼만 주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즉 달란트를 주시되 우리의 분수에 맞게 주셨다 그 말입니다.
어떤 미국 사람이 복권에 미쳤습니다. 그래서 돈이 있을 때마다 복권을 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고 또 샀어도 복권은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복권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남의 돈까지 빌려 복권을 샀고, 그로 인해 결국 많은 빚을 진 사람이 되어 거리에서 동냥질을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동냥으로 모은 돈을 다 털어 복권을 한 장 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복권이 1등에 당첨되었습니다. 상금은 자그마치 2억 달러, 요즘 환율로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약 이천 삼백 억 원입니다.
복권회사에서는 그 큰 상금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지입니다. 그래서 혹시 그 거지가 1등으로 당첨되었다는 소식에 쇼크를 받아 쓰러지지 않을까 고심하다가 그 거지가 성당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그 거지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을 통해 그 상금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그 거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이번에도 복권을 샀습니까?” “예. 샀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1등에 당첨된다면, 그 상금이 2억 달러라던데 그 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에게 그런 행운이 오겠습니까?” “그래도 이야기나 한번 들어봅시다.” 신부님의 재촉에 그 거지가 대답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상금 2억 달러 중 절반을 뚝 잘라 1억 달러는 신부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 신부님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분수에 맞게 우리에게 은혜, 즉 달란트를 주십니다. 돈도, 지위도,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우리 분수에 맞게 주십니다. 즉 우리의 욕심에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그것 가지고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고 또 이웃에게도 유익을 주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판단하시어 그 만큼만 주셨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가 받은 은혜, 즉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것들을 정말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이 받은 한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와 비교하면서 자기가 받은 것을 적게 여기고 초라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 비해 자기가 받은 것이 적고 초라했지만 그 두 달란트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두 달란트로 열심히 일하여 이윤을 남겼고, 그래서 칭찬도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생을 실패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적고 초라하다 하면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의식은 분명 인생을 실패하게 하는 근본적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 의식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인생을 실패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있는 그것 가지고 성공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남은 시간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시간으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비록 병약하다 할지라도, 그 병약한 몸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라 믿고 그 몸도 은혜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과 재능과 직책이 별로 내세울만한 것이 못 된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하신 은혜로 수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어진 시간을 성실하게 사용할 수 있고, 하는 일에 보람도 느낄 수 있으며, 거기에 덤으로 인생의 이윤까지도 남길 수 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내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 즉 달란트인줄 모르고 살았다면 그래서 그 은혜, 즉 그 달란트를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면 이제 다가오는 새해에는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은혜, 즉 달란트로 알고 그 은혜, 즉 그 달란트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들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새해를 그렇게 산다면, 우리는 이윤을 남기며 한해를 결산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그렇게 새해를 살아 내년 년 말에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가 준 은혜, 즉 달란트를 가지고 인생을 참 잘 살았다’는 칭찬을 듣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긍정적으로 인생을 사는 자세입니다.
종들이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어떤 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 그들은 사실 그 일에 대한 위험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에는 손해를 볼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혹시 잘못되면 처음 받은 달란트까지도 다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위험을 크게 생각하며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습니다. 그렇게 위험을 생각하며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던 종의 생각은 인생을 부정적으로 사는 자세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까뮈는 사람을 성격을 가지고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첫째는 과거지향적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현재나 미래를 바라보는 것 대신 과거를 그리워하며 오늘을 삽니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가 언제나 과거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런 과거지향적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현실은 늘 불만입니다.
둘째는 부정적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 잘 알지 못하면서도 먼저 거부하고, 그리고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지 않으면서도 먼저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이 되고 무능한 사람이 됩니다.
셋째는 긍정적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모든 일은 다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다 줄 일이고, 내일은 언제나 기대할 만한 날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식으로 인생을 살아 성공을 이룬 주인공이 되고 내일의 주인공이 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이런 긍정적 성격의 사람이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크게 쓰임을 받게 됩니다.
분명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여러 통계자료나 과학적 분석을 근거로 삼아 미래를 예측한다 하여도, 그것은 그냥 예측일 뿐이지 그 이상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래와 관계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지향적이고 부정적인 자세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는 절대 성공의 미래가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옛날이 좋았다, 힘들어 죽겠다, 나는 안 된다, 이제는 끝났다’는 말이나 하면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어떻게 미래에 좋은 일과 기쁜 일이 생기겠습니까?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이 바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틀림없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가 긍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미래가 불확실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땀을 흘리고 성실히 노력하면 틀림없이 미래에 성공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자세를 그들이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이 그렇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긍정적인 자세가 있었기에 그들은 성공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결국 이윤까지도 남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난 1년 동안 여러분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인생을 사셨습니까? 과거지향적 자세였습니까, 아니면 미래지향적 자세였습니까? 그리고 부정적인 자세였습니까, 아니면 긍정적인 자세였습니까?
그러기에 여러분이 다가오는 새해에 정말 승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시다면 여러분은 2020년이라는 미래를 먼저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2020년은 나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은혜의 시간이다. 분명 2020년의 내 인생은 큰 이윤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런 긍정적인 자세로 새해를 살아 내년 년종주일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즉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많은 이윤을 남겨 하나님께 드리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충성하며 사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즉 달란트를 우리가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 은혜, 즉 달란트는 엄밀히 말해 우리에게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게 주신 은혜, 즉 달란트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게 주신 은혜, 즉 달란트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그 자세는 바로 충성의 자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 모두에게 ‘잘 하였도다’ 그렇게 칭찬하면서, 그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부르며 그들의 충성을 인정해주었습니다.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니 내일까지도 포함된 어느 시대든지 지식이나 기술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충성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충성의 사람이 그 시대를 지키고 그 시대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든지 충성의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칭찬의 기준도 지식이나 기술이나 능력이 아닌 충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충성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적은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인은 이윤을 남긴 종들에게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칭찬합니다. 주인의 칭찬 그대로 적은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충성입니다.
둘째, 보지 않는데도 맡겨진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오랜 후에 주인이 와서 그들과 결산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칭찬받은 그 종들은 오랜 시간동안 주인이 보지 않고 있었음에도 열심히 일을 했었기에 주인에게 이윤을 남겨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충성은 누가 보지 않아도 맡겨진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셋째, 대가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길 때 주인은 그들에게 그 어떤 대가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칭찬받은 종들은 최선을 다해 일했고, 그래서 이윤을 주인에게 남겨주었습니다. 어떤 대가가 있기에 일한다면 그것은 충성이 아닌 장사이고 거래입니다. 분명 대가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넷째, 끝까지 변함없이 잘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하는 과정에 쉬고 싶은 유혹과 놀고 싶은 유혹이 계속해서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칭찬받은 종들은 처음 달란트를 받았을 때의 그 자세를 끝까지 잘 지켰습니다. 그래서 잘 하였다는 칭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변함없이 잘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칭찬받은 종들은 이런 네 가지 충성의 자세를 가지고 일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난 일 년 동안 그런 종들이 보여준 충성의 자세로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새해 우리가 칭찬받는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에게도 그런 종들이 보여준 충성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충성의 자세로 새해를 살아 내년 년종주일에는 칭찬받았던 종들과 같이 하나님의 더 큰 일을 맡게 되는 복된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우리에게는 여러 아쉬움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은 그만두고라도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인생도 살지 못했다는 아쉬움, 그리고 성실하게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그 이유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 즉 달란트를 하찮게 여기며 더 많은 은혜, 즉 더 많은 달란트가 없다고 불평하며 인생을 살았기 때문 아닙니까? 그리고 긍정적으로 인생을 살려는 자세보다는 부정적인 자세로 인생을 살았기 때문 아닙니까? 그리고 또 충성의 자세가 바로 되지 않은, 즉 적은 것을 소홀히 여겼고 보지 않는다고 대충했고 대가만 계산하면서 일했고 시작과 끝이 같지 않은 자세를 가지고 인생을 살았기 때문 아닙니까?
오늘 이 년종주일에 그런 모습이 있는 것이 발견된다면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새해가 여러분의 해가 될 수 있고, 내년 년말 결산의 자리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이 년종주일에 다가오는 새해의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잘 정리하고 보완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라
마 25:11-30(눅 19:11-27) / 이동휘목사
1. 좋은 환경에서 공부도 잘해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최고의 대기업에서 취업했습니다. 그는 능력도 많고 건강해서 승승장구 고속으로 승진하여 CEO, 기업 경영자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간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정이나 사회에서 부러워할 정도의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떠한 권력이나 금력(金力)에 연루된 부정부패가 없어서, 지금까지 이룩한 성공이 한 순간에 무너지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조만간 퇴직을 앞두고 있지만 수백억이라는 어머어마한 퇴직금과 100억대가 넘는 아파트에 1천만원에 육박하는 연금이 보장되어 있어 그의 노후의 삶은 그야말로 장밋빛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길한 얘기지만 그의 노후에 어느 날 갑자기 치매가 찾아올지, 심근경색으로 쓰러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온 노후 다음에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세상에서 비록 아주 많이 행복했더라도 그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느 사람은 일찍 조실부모(早失父母),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원 등을 전전하다 학교도 제대로 다닌 적이 없이 성년(成年)이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막노동하다 허리를 다쳐 그나마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구청에서 중소기업을 알선하여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공장 프레스에 끼어 한 쪽 팔을 잃어버리는 불상사를 당했습니다. 이제 그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입에 풀칠하며 지내다 공공근로 기관의 배려로 주차관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고 한 달에 20만원하는 여인숙이나 고시촌에서 고달픈 하루하루의 삶을 쉴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글프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중, 피곤하여 곯아떨어져 자는 중 고시촌에 화마(火魔)가 덮쳐 그만 까맣게 그을린 몸둥이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왠 운이 그렇게 좋아 ‘금수저’로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흙수저’로 힘들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인생은 모두 죽는다는 면에서 불행한 것입니다. ‘금수저’든 ‘흙수저’든 때가 되면 그 수저를 내려 놓아야만 합니다. 이 세상은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천국’을 소망하게 됩니다. 천국을 소망하면서 산다면 조금은 나을 것입니다. 상당수 인생들은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관심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사는 인생들을 참으로 사랑하셔서 영원히 행복한 나라, 천국에 그들을 데려가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선포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리고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비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천국에 대한 비유 말씀입니다.
어떤 돈 많은 사람이 여러분에게 6억이나 12억, 또는 30억원을 아무런 조건없이 맡겼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돈 많은 주인이 멀리 타국으로 갈 일이 있어서 종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그 능력과 재능에 따라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또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나머지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여기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인데,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형편대로 노동자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계산한다면, 한 달란트인 6천 데나리온은 6억 원입니다. 두 달란트는 12억 원, 5달란트는 무려 30억 원이나 되는 돈입니다. 30억 원을 받은 종은 곧 바로 가서 열심히 장사하여 물경 30억 원이나 남겼습니다. 그리고 12억 원을 받은 종도 마찬가지로 장사해서 12억 원을 더 남겼습니다. 그러나 6억 원을 받은 종은 그 돈을 고스란히 항아리에 담아 땅 속에 묻어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종들을 불러서 맡긴 돈에 대해 결산보고를 받았습니다. 30억 원을 맡은 종은 열심히 장사해서 30억 원으로 30억 원을 벌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때 주인이 그 종을 칭찬하기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12억 원을 맡은 종도 12억 원을 벌었다고 결산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게도 똑같은 칭찬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6억 원을 맡은 종이 보고하기를, “주인님, 당신은 좀 딱딱하신 분으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알고 무서워서 당신이 주신 6억 원을 땅에다 숨겨 두었습니다. 여기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라며 땅에 묻어 두었던 6억원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주인은 이 종에게 말했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느냐, 그렇다면 너는 차라리 그 6억 원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라도 맡겨서 그 이자라도 받아왔어야 했을 것이다. 저 놈한테서 6억 원을 빼앗아 30억 원을 벌어온 종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 뻬앗을 것이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여기 비유 말씀가운데 ‘달란트’(talent)는 사람마다 가진 능력이나 재능, 힘 등을 말합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겼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소유, 지식, 환경, 교육, 그리고 저마다의 인격과 성격 등을 맡겼다는 뜻입니다. 그 모든 종류의 ‘달란트’를 주인이 종들에게 맡겼다는 데서, 종들은 맡은 것들을 잘 관리하고 주인의 뜻에 따라 사용해야한다는 면에서,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 청지기(steward)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달란트를 하나님께서 맡겨주셨다는 점에서 그 달란트가 많든 적든, 그 달란트의 종류가 어떠하든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각자의 재능에 따라 적합한 소유가 맡겨졌다는 믿음에서, 각각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일을 맡긴 주인의 뜻에 대한 충성의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지녔던 지식이나 소유, 재능이나 능력, 그리고 그 성격이나 인격 등이 모두 끝이 납니다. 그 후에는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로부터 맡겼던 달란트에 대해 결산 보고를 받는 것처럼 ‘심판’이 있습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주인’은 하나님을 뜻하는데, 반드시 돌아와 종들에게 맡겼던 달란트에 대한 결산 보고를 받습니다.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에게 각기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맡겨진 <달란트>가 많든 적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5달란트 맡은 자나 2달란트 맡은 자에게 주어진 칭찬이 똑같다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능력과 재능 등을 많이 맡아서 많이 남긴 사람이나, 능력과 재능 등을 적게 맡아서 적게 남긴 사람이나 주인으로부터 받은 칭찬과 축복은 똑같은 것입니다. 주인은 30억 원을 맡은 자에게도, “작은 일에 충성했다.” 12억 원을 맡은 자에게 “작은 일에 충성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한 달란트 뿐만 아니라 다섯 달란트 역시 ‘작은 일’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 아무리 크고 위대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도토리 키 재기식으로 초라해 보일 뿐입니다. 세계 제일의 부자 빌 게이츠나 거리에서 붕어빵틀 놓고 붕어빵 팔아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작은 일>에 불과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얼마이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인의 뜻에 따라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 다음으로,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은 즉시 가서 장사에 착수(着手)하여 투자금을 두 배로 늘렸습니다. 장사, 투자에는 확정적인 이윤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래 갖고 있던 소유, 원금마저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장사를 하는데는 위험 부담을 안고 모험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주도 면밀(周到綿密)한 계획과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항상 진취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청지기로서의 마음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섯 달란트 맡은 자는 자기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뜻을 바로 알고,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과 일에 대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지체없이 그 일을 시작하여 갑절을 남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한 청지기로서의 바른 자세입니다. 두 달란트 맡은 종도 첫 번째 종과 똑같이 행하여 갑절, 즉 12억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주인의 관심사는 이윤을 많이 남기거나 적게 남기는 데에 있지 않고, 주인이 맡긴 뜻을 헤아려 주어진 여건 안에서 성실히 최선을 다함으로써, 주인의 기대에 부응(副應)했다는 것입니다. 실로 그들은 100% 충성과 성실을 통해 100% 결실과 만족을 주인께 돌려 드렸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 즉 6억원을 맡은 종은 모험을 두려워하는 안전제일주의의 소심한 종, 어찌 보면 주인의 눈치만 살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6억원을 자신에게 맡긴 주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의로 그 재능을 묵혀버리고만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6억원을 맡은 종이 주인을 두고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 고 한 것입니다.
주인을 두고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고 말한 것은, 주인을 악한 인격자로 몰아세워 결국 자신의 불성실과 직무 유기(遺棄)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는 주인의 인격을 매도하는 더 큰 죄를 주인 앞에서 범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주인을, ‘굳은 사람’, ‘심지도 않고 거두는 사람’, ‘헤치지 않고 모으는 사람’ 등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 비난이 한 달란트를 받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인 앞에 나온 게으른 종 자신에 대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 종을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 종은 있는 것 마저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
3. 마지막으로,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두 달란트 맡은 종에 주어진 칭찬과 축복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는 말씀이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라는 주인의 말씀은 그 두 종,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두 달란트 맡은 종이 주인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달란트를 맡기셨든 적은 달란트를 맡기셨든 주인되시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셔서 칭찬과 축복을 겸하여 받으시기 바랍니다. “착하다”(agados,good)는 말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충성된 종”(faithful servant)은 ‘믿음을 가진 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다음으로 그 하나님께서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11:5-6을 보겠습니다.
(히11:5-6)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와 미워하시는 자가 있고(잠6:16-19),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는 자와 멀리 하시는 자가 있습니다. 성전을 소중히 여기고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다윗같은 사람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멋대로 예배드렸던 사울같은 사람은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우상숭배하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교만한 자를 멀리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믿음이 없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믿음으로 살 때 기뻐하십니다.
모세가 각 지파에서 족장 하나씩 12명을 선발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보냈습니다. 40일간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들 모두 한결같이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여기 그 땅의 실과를 가져왔습니다.”며 보고했습니다. 여기까지 보고는 12명 모두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절대 다수인 10명의 정탐결과에 대한 보고내용은 이렇습니다.
(민13:28-33) 그렇지만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은 강하고, 성읍들은 견고한 요새처럼 되어 있고, 매우 큽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입니다....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데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보니까 그만 주눅이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읍이 강하고 견고할 뿐만 아니라 그곳 사람들이 기골이 장대하여 승산이 전혀 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 말대로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는데 그곳 사람들이 만약 자신들을 발견했더라면 얼마나 조롱거리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정복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없는 보고였습니다. 이 믿음 없는 절대 다수의 보고를 듣고 난 백성들은 그 동안 광야를 지나오면서 기적과 하나님의 능력을 무려 10번이나(민14:22) 체험했으면서도 오히려 그 땅을 악평하며 밤새도록 대성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며 이렇게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민14:1-4)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왜 우리를 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왜 우리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사로잡히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차라리 다른 우두머리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렇게 믿음 없는 저들의 행패를 보고 답답하고 안타까워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고 이렇게 외칩니다.
(민14:6-9)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주를 거역하지만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방어력은 사라졌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제발 믿음을 가지라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안타까운 부르짖음도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악평하며 원망 불평을 늘어놓았던 10명의 정탐군들은 재앙으로 죽임 당했고, 이들 10명의 무리에 동참했던 모든 무리들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그 40년간 광야 생활로 인생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가나안 땅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땅을 구경도 못하고 죽어야만 했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생존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민14장) 믿음 있는 자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믿음 없는 자들과 함께 하는 무리들이 모두 광야에서 시체로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고 믿음 있는 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혹 믿음이 없더라도 믿음 없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고 믿음 있는 자와 함께 하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도 원망 불평이나 늘어놓는 믿음 없는 자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다수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단 2명 극소수일지라도 믿음이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고전10:5)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더 나아가 여호수아와 갈렙은 한결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나안 정탐 후 세월이 흘러 45년이 지나 갈렙이 여호수아를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수14:7-12) 내가 40세 되던 해에 여호와의 종 모세는 가데스-바네아에서 나를 보내며 가나안 땅을 탐지해 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보고 느낀 사실을 정직하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들에게 겁을 주어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전적으로 따랐으므로 모세는 내가 밟은 땅을 나와 내 자손이 소유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때 이후로 광야 생활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45년 동안 나를 생존하게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내 나이 85세이지만 모세가 나를 정찰대원으로 보내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도 여전히 건장하여 나다니는 것은 물론 출전하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정찰 보고를 하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이 산간 지대를 나에게 주십시오. 당신도 그때 우리 보고를 들어 알고 있겠지만 이 곳엔 거인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고 또 그 성들도 크고 견고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여호와의 말씀대로 내가 반드시 그들을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정탐군이었을 때 나이 40세였는데 45년이 지난 85세가 되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따랐다.”며 모세를 통해 약속한 “그 험악한 산간 지대를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따랐다.”는 것은, 변함없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왔다는 뜻입니다. 갈렙은 정탐군으로 보고할 때의 신앙,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 신앙을 45년이 지난 85세에 똑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85세의 늙은이라 해도, 여전히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약속받은 땅을 점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힘들 때만 아니라 순탄할 때도, 절박할 때나 어려울 때만 아니라 여유롭고 잘 살게 되었을 때도, 젊었을 때에도 늙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온전한 믿음, 한결같은 믿음으로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갈렙처럼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충성을 다 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변함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삶에 점령해야 할 산지가 있습니까?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산지를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후퇴하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히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변함없는 믿음, 한결같은 믿음으로 맡은 달란트에 충성을 다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라
마 25:14-30 / 우선동목사
1. 자기 소유를 맡기고 떠나는 주인
주님의 비유는 멀리 타국으로 사업을 벌이려고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주님 당시에 타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수년 혹은 그 이상 자리를 비워야 했고 그 동안 본국의 사업은 믿을만한 종들에게 맡겨야만 했습니다. 이때 종들은 그저 막노동을 하는 노예가 아니라 노예의 신분이기는 하나 그 집안에서 일하는 가족과 같은 존재여서 그 중에는 큰 사업을 믿고 맡길만한 사람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상당한 정도의 재량과 자율권도 주어지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1) 소유주와 기간
14절에 나타난 종들은 각각 주인의 소유를 맡았다고 했습니다. 주인은 그가 평소에 아끼며 관리하던 그의 재산을 종들에게 주어 관리하게 한 것이지 자신의 재산을 종들에게 완전히 양도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보관만 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재산의 증식을 기대하며 종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긴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두 달란트 맡은 종이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한 것을 통해서 우리는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종들은 주인의 뜻을 잘 분별한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기간을 정확히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19절에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다고 하셨으니 그 기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다 주인의 소유를 맡은 자들입니다. 자기 것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어떤 사람은 적게 맡았습니다. 우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주인의 소유를 가지고 사업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종들입니다. 주인이 언제 오실지 혹은 주인이 언제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실지 우리는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 동안 우리는 주님이 허락하신 모든 재능들을 가지고 영적인 이윤을 남기기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2) 종들에게 준 달란트
이 비유에서 주인이 자신의 재산을 종들에게 맡기는데 그 액수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비유에는 세 명의 종이 등장하는데 각각 다섯, 둘, 한 달란트씩 나눠주고 사업을 하게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달란트를 검색하면 교회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상품으로 주는 달란트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달란트 쿠팡이나 달란트 11번가가 나올 정도로 쉬워 보이지만 당시의 화폐단위로서의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평균 연봉 20년 치에 해당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연봉을 3천만 원으로 잡는다면 한 달란트는 6억 정도가 되고, 두 달란트는 12억, 다섯 달란트는 30억에 이를 정도의 엄청난 액수가 됩니다. 주인은 이 정도의 가치를 그 종들에게 나눠주고 떠났던 것입니다. 로또에 맞아야만 만져볼 수 있을 정도의 큰 액수의 자본금을 주인이 종들에게 나눠 준 것입니다.
이 달란트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영적, 육적, 일반적인 모든 은사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건강, 학문, 재산, 지혜, 가족, 직장, 복음, 주님의 교회를 위한 사명, 성도로서 가지는 특권, 성경을 가진 자의 유익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이것들은 전부 주님의 것이었는데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이런 달란트들은 그 본성이 생산적인 요소를 띠고 있어서 활용만 잘하면 틀림없이 이윤을 남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은 “남기다”라는 단어를 네 번(16,17,20,22절)이나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받은 다섯, 둘, 한 달란트와 그 달란트를 맡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아주 유용한 재료, 엄청난 생산적인 자본금을 받은 것입니다.
3) 재능대로 맡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인이 세 종들에게 각각 다섯, 둘, 그리고 한 달란트를 준 것입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닙니다. 15절에 “각각 그 재능대로” 라고 한 말을 보십시오. 주인은 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죽 보아왔고 정확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능력이 부족한 종에게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맡겨서 넘어지고 실패하게 만드는 주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각각 ‘재능대로’ 자기 소유를 맡겨서 사업을 하게 했습니다. 능력에 따라서 맡기는 일이 다른 것은 차별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을 아시고 거기에 맡게 우리에게 재능이나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재능 없는 사람은 없으며 누구도 은사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고 합당하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2. 돌아와서 결산하는 주인
1) 결산 날은 주인의 약속
15절에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떠났다는 말은 되돌아 올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19절에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라고 말합니다. 주인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여기 “오랜 후”는 바로 신약시대의 복음전파의 기간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기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온다.”는 것은 ‘너희 주가 임하다, 인자가 오다, 주인이 오다’라는 표현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그 종들의 주인이 그 종들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시간입니다. 그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시간입니다. 우리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로 돌아오시는 바로 그 시간입니다.
2) 남긴 이윤은 중요치 않음
19절에서 종들에게 돌아 온 주인은 오래 전에 맡겼던 자신의 재산들에 대하여 종들과 결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주인이 결산을 하면서 종들이 남긴 이윤의 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맡겼던 종과 두 달란트를 맡겼던 종은 각각 그 만큼씩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 두 종에 대한 주인의 칭찬은 동일합니다. 21,23절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고 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더 많이 남긴 종에게는 더 큰 칭찬이 있을법한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처음에 맡긴 달란트의 액수가 달랐던 것이 차별이 아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주인은 이윤을 남긴 종들을 똑같이 칭찬했습니다.
3) 핵심은 종들의 충성됨
여기서 주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았던 종들을 칭찬할 때와 한 달란트 맡은 종을 꾸짖을 때 그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21절의 착하고 충성된 것과 26절의 악하고 게으른 것이 대조가 됩니다. 이것은 충성된 것은 착한 것이고 게으른 것은 악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인이 인정해주는 중요한 개념은 ‘충성됨’ 이라는 사실입니다. 충성이란 단어는 다른 말로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속이 꽉 찼다는 것으로 믿음이 꽉 찬 것을 말합니다. 헬라어에서 ‘믿음’은 pistis 이고 ‘충성됨’은 pistos 로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충성되다’는 칭찬은 믿음직스럽다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향해 믿음직하다고 하시는 것은 그가 ‘믿음에서 나온 행위를 했다’거나 혹은 ‘믿음에 부합하게 행동했다’는 의미입니다. 믿음과 행위가 함께 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계2:10에서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 가운데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도 ‘끝까지 신실하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믿음을 지키라, 믿음에 부합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한 달란트를 맡았던 종에게 주인은 뭐라고 합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했습니다. ‘충성됨’의 반대가 ‘게으름’입니다. 이 게으름은 그냥 천성이 아니라 경건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큰 대적입니다. 한 달란트를 맡은 종이 보여준 이 게으름의 원인은 그가 주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오해에서 나온 것으로 그가 한 변명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24,25절을 봅시다. 주인이 굳은 사람이라는 것은 ‘아주 엄하다’ 혹은 ‘냉혹하다’ 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재능에 따라서 맡긴 달란트를 보거나, 그들의 충성됨에 대한 상급으로 베푸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결코 그 주인이 굳은 사람, 엄한 사람,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악한 종은 그의 주인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불충성스러운 게으름으로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주인을 신뢰하지 못했던 종은 주인을 사랑할 수 없었고 사랑하지 않던 주인을 위해서 충성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악했으며 게을렀습니다. 그 결과는 쫓겨남이었고 저주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행위에 달려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종들의 충성됨과 불충함은 전적으로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결국 종은 주인을 향한 믿음이 없기에 충성하지 않은 것이며 나아가 믿음이 없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3. 달란트 비유의 적용
1) 개인적 적용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 마지막 심판과 관련된 것이라고 했고 특별히 결산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무엇인가를 하나님께로부터 맡은 종들이고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받은 그 모든 달란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설명 드려야 할 날이 온다, 결산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일정 기간입니다. 종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언제 이 시간이 끝날지 모릅니다. 그 순간에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평가와 결산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때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주께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칭찬을 모두 다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교회적 적용
또한 우리는 이런 마지막 날의 평가가 교회적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계2-3장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해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들 그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물질적으로 부유했고 많은 능력을 맡은 교회였다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맡은 교회였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주님을 향한 믿음을 잘 간직했던 교회였지만 서머나 교회는 많은 환난과 궁핍을 당해야만 했던 교회였습니다. 이처럼 역사 속의 모든 지역교회들도 각각 그 재능대로 주인의 달란트를 맡은 것입니다. 그 중 어떤 교회는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처럼 행동하기도 했고 또 어떤 교회는 재산을 잃고 불에 타서 죽어가면서도 그 충성됨을 보이며 사명을 잘 감당한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개개인의 충성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도 받게 되지만 이것은 결코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속해있던 지역 교회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개인적으로 구원하시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의 무리에 속하게 되고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됩니다. 이 점에서 여러분과 저도 서창동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도의 몸인 열린문 교회에 속하게 하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셔야 하고 믿음으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큰 교회들에 비하면 우리 교회는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가 아닌 한 달란트를 맡은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를 맡았느냐? 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했는가? 입니다. 감사함과 성실함으로 주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잘 감당하는 충성스런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랜 후에 회계할새
마 25:14-19 / 김명혁 목사
오늘은 2004년 12월 26일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일생에도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이 오면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한 평생을 회계하게 됩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저희와 회계할새.” 여기 회계한다는 말을 영어로는 settle accounts 라고 했습니다. 셈을 하다 계산을 하다 결산을 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계산하고 결산할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종들을 향해서 이렇게 물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맡겼던 한 평생의 시간과 건강과 재물과 재능과 기회들을 너는 어떻게 사용했느냐?” “내가 네게 맡겼던 한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너는 어떻게 사용했느냐?”
아마 사도 바울은 이렇게 대답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던 죄인 중의 괴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저의 운명과 저의 인생관이 바꾸어졌습니다. 그래서 저의 남은 삶을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저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모든 것을 사용했습니다.”(고전10:31-33).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재물도 허비하고 나중에는 저 자신도 허비했습니다.”(고후12:15).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너는 수고를 가장 많이 한 나의 종이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니라” 라고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마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저는 귀신과 죄악에 사로잡혀서 길거리에 버려졌던 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저를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저의 남은 삶을 주님께 사랑의 제물로 드리면서 살았습니다. 저의 눈물을 주님께 드렸고 귀하게 간직하던 향유도 주님께 쏟아드렸습니다. 다른 여인들과 함께 소유를 모아서 주님과 주님의 제자들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아래서 주님이 죽으시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시체를 안장한 무덤을 찾아가서 울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한 평생 십자가의 주님과 부활의 주님을 사랑으로 증거하면서 살았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너는 보석과 같은 빛난 사랑의 삶을 살았구나.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니라” 라고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마 작은 예수로 살았던 장기려 장로는 이렇게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사랑하는 가족과 동포에게 못할 짓을 한 죄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동포들을 버리고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의학 기술과 명예와 재물을 가난하고 병들고 불쌍한 환자들과 이웃들을 돌아보는 일에 다 사용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부족했지만,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셨던 주님을 본 받고 싶어서, 집도 재산도 통장도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한 평생을 빈 손으로 살았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너는 한국에서 예수 닮은 착한 삶을 살았구나.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니라” 라고 주님께서 장기려 장로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도 언젠가는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한 평생을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아무개야, 사랑하는 딸 아무개야, 내가 네게 맡겼던 한 평생의 시간과 건강과 재물과 재능과 기회들을 너는 어떻게 사용했느냐?” 어떤 사람은 그것들을 잘 사용해서 두 배로 남겼다고 대답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것들을 잘 사용해서 세 배로 남겼다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주인이 맡겨주었던 것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들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인생의 운명과 종말이 두 가지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까? 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 원인을 한 가지로 생각합니다. 주님에 대한 태도와 자세가 달랐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주님에 대해서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지녔었지만 다른 종류의 사람은 주님에 대해서 고마움의 마음도 사랑의 마음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죄인인 한 여인은 주님에 대해서 뜨거운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지녔지만 바리새인 시몬은 주님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도 사랑의 마음도 지니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주님에 대해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지녔습니다.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이 말에 감사라는 말이나 사랑이라는 말이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간단한 말 속에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포함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주님, 저에게 어떻게 이런 많은 것들을 맡겼습니까? 주님, 황송한 일입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주님, 보시옵소서. 부족하지만 제가 열심히 일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주님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도 사랑의 마음도 지니지 못했습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이 말에 불평이라는 말이나 원망이라는 말이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넉 두리 하는 말 속에 불평과 원망의 마음이 포함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끼는 대신 무정하고 굳은 분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은혜로우신 분으로보다는 무서운 분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의 담임 목사로서 한 해를 마감하면서 성도 여러분들의 한 해의 삶을 결산해 봅니다. 이름 없이 선교사들과 개척교회와 어려운 이웃들을 힘을 다해서 사랑으로 물질로 도우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곡동에 사는 이웃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시간과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들과 직장인들과 복음주의협의회 회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서 땀을 흘리며 몸으로 부엌에서 수고하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새벽마다 먼 길을 달려와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제단을 쌓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은혜와 감동이 넘치는 아름다운 찬양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기도와 정성을 쏟아 부은 성가대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시간과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은 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서 지금 몇 사람들만을 지적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조그만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김정숙 권사님은 몸이 불편하고 연세가 많으신데도(77세) 새벽마다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집에 올라와서 기도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를 많이 사랑하시는데 권사님의 딸까지 저를 많이 사랑합니다. 오정석 집사님은 직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와서 기도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남편 황규종 집사님은 주일이면 누구보다 일찍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합니다. 딸 선희는 어릴 때부터 믿음의 생활을 얼마나 예쁘게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정정례 권사님은 65세인데도 지난 2년 동안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부장의 일을 너무 충성스럽게 했습니다. 전도부원등은 누구보다 교회에 자주 와서 이슬비 전도편지를 쓰고 사랑의 선물을 만들어 이웃에게 전하고 양재천에 나가서 전도를 하는데 그분들 중 박정희 집사님은 수고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황규민 집사님은 직업이 변호사인지 교사인지 모를 정도로 청소년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 바치며 희생적으로 중등부를 봉사해오고 있습니다. 최정애 권사님은 지난 10여년 동안 초등부 교사로 또는 부장으로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으며 봉사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성가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예배를 얼마나 은혜롭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대표적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릅니다. 몇 사람들의 이름을 생각해 보다가 그래도 성가대를 지휘하는 장로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다가 그러다가 아니 주일은 물론 새벽마다 반주를 하는 이계은 집사님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나오지는 못하지만 이계은 집사님과 함께 항상 충성스럽게 피아노 반주를 해오고 있는 박혜승 집사님에게도 감사를 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름 없이 선교사들과 개척교회와 어려운 이웃들을 힘을 다해서 사랑으로 물질로 도우신 몇 분들이 있지만 그들의 이름은 부르지 않습니다. 저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가 이름을 부른 여덟 분들은 앞으로 나와서 제가 준비한 조그만 사랑의 선물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곰 인형들을 선물로 드립니다. 곰처럼 미련할 정도로 충성스럽게 일하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큰 선물은 하늘에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선물은 받으신 다음 성가대가 이 분들을 위해서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오랜 후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계산하고 결산하실 때,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해 동안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정성을 바쳐 수고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중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을 중심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창의적 생각을 하십시오
마 25:14-20 / 김경수 목사
삼성전자 전 회장이 복귀한다는 소식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애플의 첨단 제품들이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이에 맞물려 이러다가는 삼성전자 이회장의 말대로 10년 안에 한국의 일등제품들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이미 예견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벤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딸 때 많은 사람들은 김연아와 그의 상대 일본 선수인 아사다 마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경쟁은 단순히 피겨스케이팅이 아니라 현 시점의 한국과 일본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격상하여 평가함으로 인해 이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판단합니다. 물론 아사다 마오는 기술에 집착하고 우리나라 선수인 김연아는 작품성에 역점을 두면서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일본의 산업 구조와 내지는 패턴이 기술 집중적이고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가 작품성에 있다고 할 수 있을런지 의문점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작품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여전히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조선술, 자동차, 반도체 이 모두 기술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인성이 내재되고 사용자 중심의 편의성이 철저히 고려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 조그마한 애플이라고 하는 회사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쉽게 이길 수 없다는 데에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애플사는 1976년에 스티븐 위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라고 하는 두 청년이 차고에서 회사를 설립을 합니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게 되죠. 물론 아주 단순한 8비트의 컴퓨터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철저히 사용자 중심의 편의성이 고려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마이크로 소프트라고 하는 회사를 설립한 빌 게이츠 역시 윈도우라고 하는 운영체제를 갖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게 됩니다. 도스를 기반으로 하는 오픈 소스를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고 시작된 게임은 마이크로 소프트의 완승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 편의라고 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애플 컴퓨터는 소스를 오픈시키기 않음으로 인해 호환성이라고 문제점에 봉착하면서 크게 히트를 치지 못한 것입니다.
가까스로 연명을 해오던 애플은 2001년을 기점으로 자기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에 나온 아이팟이라고 하는 MP3가 상상을 초월하는 히트를 치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또 다른 영역으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얼마전에 나온 아이폰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아가 지금은 아이패드라고 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조그마한 회사 애플의 생각과 가치관을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뒤늦게 삼성전자의 이회장도 이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소프트에 전념하겠다고 하면서 세계적으로 1만 명의 소프트 전문가를 뽑겠다고 들었습니다. 위기이죠.
왜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잡는 것이 쉽지 않을까요? 스티브 잡스의 창의적 생각을 모방할 수는 있겠으나 그 사람 자체가 창의적 생각의 모체인데 그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의적 생각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만들 때 특별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도 많은 이론이 있습니다만 저는 생각하고 말을 한다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각하고 말을 하는 존재는 인간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인간을 만드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생각하는 존재, 말을 하는 존재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어떤 것일까요?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십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시죠. 인간은 동일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있는 생각과 말을 가졌다는 데에 인간은 위대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은 창의적이며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창의적이며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생각을 잘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거기에는 마귀의 유혹과 그 유혹에 넘어간 인간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사단에게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게 되자 하나님의 형상이 깨지게 되었고 생각과 말에 지대한 변형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인 생각과 말을 하게 되어진 인간은 죄를 지어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되면서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과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열등의식을 가지게 되고 심성이 이그러진 인간은 쉽게 분노하는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분노는 상처를 주고 상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되면서 인간은 삽시간에 불행의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좋은 생각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창의적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게 됩니다. 오직 본 것만 믿는 퇴보적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과 사고, 열등의식과 분노, 그리고 상처와 복수심, 좋은 일에 결심을 하지 못하고 연기하는 습성 등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어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은 가만히 앉아 있고 아무 생각도 없는 데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행복하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좋아지기를 원한다면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발전적이고 풍성해지기를 원한다면 그와 같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온 우주 만물을 아무 생각 없이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광대무변한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실 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셨겠습니까? 물론 창조적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당신이 떠나면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실 것인데 그분께서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생각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생각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요?
당연히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들입니까? 없는 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와 같은 생각들을 꿈이라고 합니다. 비전이라고 합니다. 이상이라고 합니다. 환상이라고 합니다. 성령님께서 마지막 때에 오시면 이와 같은 것들을 주실 것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존재하는 것들이 더 아름답고 더 발전적이며 더 행복하고 더 풍성하고 더 감동이 되도록 생각들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들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은 더 아름답고 풍성하도록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합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마귀로부터 종노릇하면서 노예 정신, 메뚜기 정신, 병아리 정신을 가지고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이런 버릇과 습관들을 용인하지 말고 거부하면서 독수리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자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없지만 있을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더 발전적이며 풍성하도록 생각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영역에서 창의적 생각과 생산적 생각, 그리고 건설적인 생각들을 해야 할까요?
피폐하고 삭막한 심성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심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이대로 살겠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나의 심성이 하나님의 마음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풍성할 수 있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자학하며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자신을 저주하고 싶은 삶을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그런 생각을 거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저와 여러분의 주가 되시는 그분께서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이 모든 저주를 청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용서해야 하며 축복해야 합니다. 모든 실수와 허물, 그리고 부끄러운 일들을 잊으십시오. 기억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축복하십시오. 나 자신을 축복하지 못하면 결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지 못합니다.
금이 간 부부간의 관계를 방치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옳다고 정당화시키지 마십시오. 절대로 옳은 것이 아닙니다. 처음 사랑하는 연인으로 만났을 때를 기억하십시오. 아름답고 절절한 사랑을 나누었을 때의 일들을 생각하십시오. 만나면 헤어지기 싫고 헤어지면 또 보고 싶었던 시절을 떠올리십시오. 부부는 원수가 아닙니다. 나의 뼈이고 살이며 내 본체입니다. 또 사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뉘어지면 안 됩니다. 창의적 생각을 하십시오. 더 좋아질 수 있고 좋아질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럭저럭 살면 안 됩니다.
부부는 세월이 지날수록 더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닮아야 합니다. 결혼할 때 서약을 잊지 마십시오. 생각하십시오. “백년해로”를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해로동혈 ”을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왜 자꾸만 나쁜 생각들을 하십니까? 무례하십니까?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아내가 고맙지 않습니까? 그의 이마에 핀 주름살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살포시 앞으로 고개를 내민 뱃살도 귀엽지 않습니까? 어디 폭행할 때가 있습니까? 그리고 나의 평생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남편이 너무나 고맙지 않습니까? 아침마다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폄하할 때가 어디 있습니까? 등을 돌리고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남편이 안쓰럽지 않습니까? 세상을 받아내야 하는 남편을 속상하게 해서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직장이나 사업장에 나가면 듣기 싫은 소리, 자존심 상하는 말 등을 모두 받아내고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가지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어서 좋은 일이 무엇입니까?
창의적 생각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격려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야단치고 매를 대고 주눅 들게 해서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한다고 아이들이 강하게 크고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의적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 아이들의 자긍심을 키워주고 백지와 같은 순결한 그들의 마음과 미래에 한없는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가녀린 몸에 매를 댈 데가 어디 있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고 감정이 상할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눈물로 기도해 주십시오. 강하게 키우는 것이 매로 됩니까? 야단친다고 됩니까? 아이들이 창의적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대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을 갖게 해주면서 기도해 주면 그들은 강하게 클 것입니다.
목장이 진실로 창의적 생각이 필요합니다. 익숙한 것을 지향하십시오. 구태의연한 것을 거부하십시오. 매주 마다 감동이 있고 풍성한 목장이 되도록 생산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목장 모임이 기다려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와야 된다는 것이 아니고 올 수 있도록 창의적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목장 분가는 필연적인 하나님의 축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목장 분가가 힘들고 고단한 것이 아니라 기쁨이고 감사인 것을 알게 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절대적으로 창의적 생각이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직장에 흐르도록 하십시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은 보디발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원망과 불평, 형들에 대한 상처와 분노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창의적 생각을 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인인 보디발은 요셉으로 인하여 날마다 자신의 집이 부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그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수동적인 삶을 버려야 합니다. 시키는 것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시키는 것만 합니까? 그보다 더 발전적이고 더 잘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에 따른 보상은 반드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인정을 받게 될 것이고 존귀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업을 창의적 생각으로 하십시오.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창의적 생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일이 잘 되면 더 넓은 지경을 향해 기대하고 기도하며 창의적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잘못되고 마귀적이며 세상적인 관습과 전통을 과감히 철폐해야 합니다. 남존여비 사상, 반상구별 등등. 노약자들이 보호를 받고 여성들이 존귀함을 받는 생산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더럽고 악한 관습들이 소멸되었습니다. 식인종조차도 변화되고 새롭게 됩니다. 아직도 한국교회는 미성숙하고 창의적이며 건설적인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 내에 존재하는 잘못된 권위주의,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을 교회에서 표출함으로 인해 모두가 고통을 받는 일들, 직분을 받으면 신앙생활은 끝이라고 여기는 미성숙, 분파와 나뉨, 상처와 도전 등이 존재합니다. 복음과 십자가 보혈의 치유로 인해 모두가 성숙하여 신사가 되고 숙녀가 되는 생각들을 하십시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주인이 먼 타국을 가면서 종들을 불러 각각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깁니다. 일정한 기간이 흘러 주인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결산을 하자는 것입니다.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을 때 즉시로 바로가서 장사를 하여 이문을 갑절이나 남겼기에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듣습니다. 그런데 1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묻어 두었기에 주인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르다는 책망을 듣게 됩니다. 갑절의 이문을 남긴 종들은 주인이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창의적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문을 남길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주인이 어떻게 하라고 하는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그들은 주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또 바로가서 장사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 앞에서 결산을 할 때 오히려 주인을 완고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혹평하면서 땅에 묻어 두었던 것을 그대로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땅에 묻음과 동시에 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것입니다. 변화도 없었고 새로움도 없었습니다. 주인을 잊고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익숙한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잘못된 습관과 버릇을 단지 개혁하고 고치는 것이 번거롭고 기분이 상하다는 이유로 구태의연한 삶을 고집한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과 다르지 않는 삶을 사는 자가 될 것입니다. 뜻을 정하고 결심을 했지만 내일로 차일피일 미루며 연기하면서 산다면 이 또한 불현듯 주인이 와서 결산을 하자고 했을 때 악하고 게으른 자가 되어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창의적 생각을 하십시다. 더 아름답고 더 발전적이며 더 풍성하고 더 행복하고 더 감동적인 삶이 될 수 있도록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인 생각들을 하십시다.
더 아름다운 인격의 사람, 더 사랑스러운 부부, 더 감동이 넘치는 가정, 더 발전적인 직장과 사업, 더 헌신적이고 섬김이 있는 직분과 사명.
창의적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는 절대로 변화되지도 않을 것이며 개혁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바뀌지도 않을 것입니다.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의적 생각을 하면서 삶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흐를 것입니다. 행복이 담을 넘어 넓은 지경으로 퍼져가게 될 것입니다.
충성의 열매
마 25:14-23 / 이동원목사
1947년 미국의 시카고 근교의 위스 칸신 주에 있는 천체연구소에서 근 무하고 있었던 과학자, 천체물리학 자 닥터 첸드리스카 박사는 시카고 대학 University of Chicago에서 걸 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박 사님 겨울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와서 고급물리학 Advanced Physic 에 관한 특별강의를 좀 해주시겠습 니까? 그는 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몇 주후에 다시 대학에서 전화가 왔 습니다. 박사님 아무래도 강의를 cancel해야만 하겠습니다. 왜 그렇 습니까 클래스가 너무 작아서요.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첸드리스카 박사는 이런 대답을 했 다고 합니다.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두 학생, 등록한 학생의 information이 어떤 지요 그래서 알려줬어요. 그러니까 첸드리스카 박사는 제가 강의를 하 죠. 그래서 그 겨울동안, 시카고의 겨울은 유난히 춥습니다.
눈보라, 차 가운 사나운 바람을 헤치고 시카고 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는 일주일에 이틀동안 한번도 빠 짐이 없이 그는 계속적으로 이 겨울 동안 강의를, 두 학생을 상대로 했 습니다. 그로부터 꼭 십년이 흘러갑 니다. 이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 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 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 은 첸넝 양 박사라는 분이고 그리고 또 한 분은 충도 리라는 중국계의 미국 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상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 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 상을 수 상하게 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 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 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 면 이 성실한 강의, 두 사람을 앞에 둔 이 한 분의 강의가 아름다운 열 매로 나타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 했던 본문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소위 탈란 트의 비유로 널리 알려진 얘기가 오 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 았던 종들. 주인이 먼 나라로 떠나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다섯 달란트 남겼던 사람, 또 두 달란트를 가지 고 두 달란트를 남겼던 사람에게 칭 찬을 내리면서 유명한 이런 칭찬을 내렸습니다.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너희들에게 맡기마.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계절, 우리는 일년 동안에 우리들의 섬김을, 우리 들의 봉사를, 우리들의 미션을, 사명 을 결산해 봐야 할 중요한 시점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한해동안 우리 의 삶의 장, 사역의 장에서 우리의 봉사는 얼마나 충성 되었다고 결산 할 수가 있을까요? 바울은 갈라디아서22장5절 이하에 성령의 열매를 가르치면서 오직 성 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그 다음 에 뭐겠어요? 충성. 일곱 번째 열매 가 바로 충성의 열매였습니다. 우리 가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성령을 체 험하고 주께서 친히 우리의 삶을 인 도하고 다스리신다면 마땅히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할 중요한 열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충성의 열매, 혹은 신실함의 열매라고 성경은 가 르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본문 의 비유를 통해서 이런 질문을 던져 야 합니다. 무엇이 이 칭찬을 받았 던 종들로 하여금 그들을 착하고 충 성 된 종이 되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전 일생을 걸고 하나 님 앞에서 우리 삶을 결산하는 그 날 여러분과 제가 충성 된 종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반드시 대답해야 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무엇이 여러 분과 저를 충성 된 종으로 만들 수 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맡 은 자의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맡 은 자의 의식, 혹은 청지기 의식이 라고 말할 수가 있겠죠. 자, 본문의 1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1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다같이 시작. 또 어 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그 가 먼 나라로 떠나가면서 자기 종들 을 불러 그들에게 자기 소유를 어떻 게 요. 맡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맡겼다. 종들 편에서는 주인이 맡겨 주신 것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맡 은 자들. 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주인이 맡겨 주었습니다. 그들은 관 리하는 관리자에 불과했습니다. 요 즈음 말로 매니저에 불과했습니다. 좀 더 고대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그 것이 청지기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 다. Steward. 그들은 맡은 자에 불 과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맡았느냐 그것은 오늘 본문의 중요한 포인트는 절대로 아 닙니다. 중요한 것은 맡은 것을 어 떻게 관리할 수 있느냐 입니다. 다 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자와는 다르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적게 받았기 때문에 책 망을 받았을까요? 그건 절대로 아닙 니다. 그에게 맡겨진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 랬을까요? 뭐 여러 가지 원인이 있 겠죠. 그러나 본문을 푸는 열쇠 가 운데 하나가 우리가 본문에서 19절 의 말씀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 다. 19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자 주인이 돌아오는데 성경은 오랜 후 에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혹시 한 달란트 맡았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 니다. 주인이 떠나간 후에 오랜 동 안 돌아오지 않으니까 아마도 주인 은 영 돌아오지 않을지 몰라. 그리 고 맡겨주신 것에 관해서 전혀 책임 의식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 아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이 매우 중 요, 강조되어야 할,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라고 생각을 하는데 왜냐 하면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5장의 한 부분이고요 마태복음 25장 전체 를 읽어 보십시오.
또 선행하는 장 마태복음 24장을 읽어 보시면 마태 복음 24장과 25장은 한 중요한 신학 적인 주제, 기독교 교리의 가장 중 요한 주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 도의 재림사건 소위 second coming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기독교인들이라면 주님의 재림 을 믿는 다고 쉽게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론 적으로, 논리적으로, 두뇌로 고백하 는 것과 마음으로 믿고 그렇게 사는 것은 다릅니다. 정말 주님이 오실 것을, 다시 역사와 시간 속에 그 분 이 돌아오신다, 이 사실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십니까? 그 분이 다시 돌아오실 것이고 따라서 내가 살아왔던 삶, 또 인류의 모든 역사는 그 분 앞에 서 반드시 심판되고 결산 될 그 날 이 다가오고 있다. 그 사실을 참으 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달 라지지 않을까요? 우리 기독교 신앙을 가리켜서 우리 는 종말론적 신앙이라 이렇게 말합 니다. 종말론적 신앙. 이 종말론적 신앙이란 말은 세상이 끝난다 그래 서 아우성을 치고 뭐 집을 떠나고 가정을 떠나고 직장을 등지고 산으 로 올라가든지 기도원으로 올라간다 든지 그것이 종말론적 신앙이 아니 예요. 이 종말론적 신앙의 본질은 언제나 역사 속에 다시 오실 수 있 는 그 분, 그리고 역사를 마침내 심 판하고 결산할 그 분 앞에서 언제 역사가 종말이 와도 내 개인의 종말 이 언제 와도 그 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준비되어져야 할 삶,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신앙의 본질입니 다. 이것이 본질이 예요. 우리가 그 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내 삶은 심판 된다 회계의 날은 온다 결산의 날은 온다 그 날은 반드시 온다 이 사실 을 참으로 믿는다면 오늘 하루하루 의 삶은 그 분의 심판대 앞에서 드 러나야 할 우리의 삶의 내용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사십니까? 매우 중요 한 것이죠. 자,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 겨주셨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주인 이 종들에게 맡기듯 저와 여러분들 에게 우리 주님을 많은 것을 맡겨주 셨습니다. 무얼 맡기셨습니까? 시간 도 맡겨 주시고, 돈도 맡겨 주시고, 재능도 맡겨 주시고, 은사도 맡겨 주시고, 또 우리의 몸도 맡겨 주시 고, 우리의 목숨, 인생도 맡겨 주셨 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갖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 니라 맡겨 주신 시간을 어떻게 사용 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중요하죠. 내가 돈이 얼마나 많으냐 이거 하나 도 중요한 것이 아니 예요. 나에게 맡겨진 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 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재능과 탈란트를 갖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탈란트, 탁월한 재능을 갖고도 별로 볼 품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아주 적은 재능을 갖 고도 그것을 아주 유익하게 이웃들 에게 기쁨을 주면서 살아가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내가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 니라 건강한 몸을 가지고 어떻게 하 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인생에서 얼마나 기회가 주어졌느냐 출세할 수 있는 기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 회, 인생에서 얼마나 좋은 기회가 주어졌느냐 그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회 를 가지고 어떻게 사셨습니까? 그리 고 나서 우리의 삶을 다 살고 맡겨 주신 모든 것들을 다 관리한 후에 마지막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 들은 모두 둘 중에 하나로 결정될 것입니다. 하나는 착하고 충성 된 종 하나는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나는 어느 편에 속할까요? 우리 인 생이 결산 되는 그날 착하고 성실한 종, 충성 된 종으로 결산 되기 위해 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의식이 있 다면 맡은 자 의식 이예요. 청지기 다, 청지기다.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 며 살아야 한다. 한해를 마무리 짓 는 시점에서 금년 한해의 삶이 주 앞에서 신실하지 못했다고 판단되는 그런 삶의 모습들이 비추어진다면 새로운 천년, 새로운 내일을 바라보 면서 우리는 다시 맡은 자의 의식으 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맡은 자. 인생은 짧고 시간은 짧습니다. 그 동안에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삶, 주님 내가 청지기임을 잊지 말 게 도와 주십시오. 여러분과 저의 의식 속에서 이 맡은 자의 의식, 청 지기의 의식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이 계절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정말 충성 된 종으로 한 평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두 번째로 중요한 의식을 저는 신뢰 의식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신뢰하 는 의식.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 았던 종들이 또 다른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을 때 그들을 칭찬 하면서 이렇게 칭찬하시죠. 착하고 충성 된 종아 여기서 충성이란 단어 를 다른 말로, 가장 근사치에 본래 의 뜻대로 다시 옮긴다면 그것은 믿 음직스럽다 라는 뜻입니다. 믿음직 스럽다. 실제로 믿음이란 단어에서 충성이란 단어가 나온 것 이예요. 피스테란 말이 믿음직스럽다 라는 말입니다. 이 믿음직스럽다는 말은 철저하게 우리의 내적인 성실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성실성, 겉으로 드러난 어떤 모습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간직 되어 있는 내적인 성실성, 거기에 초점이 맞추 어진 중요한 단어입니다. 오늘 우리 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겉으로만 쇼업하는, 쇼업하게 바쁜 시대가 된 것처럼 보여집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사실 인지 누가 꾸며낸 이야긴지 모르겠 는데 어떤 자매 하나가 취직하려고 비서로 취직하려고 어떤 사무실에 갔습니다.
마치 벤처기업 같은 젊은 사장이 조그만 사무실 하나 만들고 사람을 모집한 것입니다. 한참 사무 실을 꾸미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 비서로 자원했던 이 자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중요 한 질문의 초점은 나를 멋있는 사장 으로 당신이 만들 수 있느냐 나를 잘 이렇게 선전해 주고 PR해 줄 수 가 있느냐 하면서 내가 얼마나 위대 한 사람인지 훌륭한 사람인지 이런 얘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누가 사무 실 문을 노크합니다. 쉬~ 내가 하는 거 잘 보라구.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이 사람이 전화를 탁 들더니 막 뭐라고 떠들어요. 아 그러십니까 아 회장님 하면서 막 얘기를 합니 다. 전화 한참 후에 끊더니 아 죄송 합니다. 마침 기업체 아무개 회장님 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요. 그래 어 떤 일로 오셨습니까? 유니폼 입은 사람이 요렇게 한참 쳐다보더니 저 요 이 사무실 열었다고 그래서 전화 선 연결하려고 전화국에서 왔는데 요. 물론 이 자매가 그 회사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 다. 우리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입니 다. 그런 세상일수록 우리 세상은 성실한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우 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정말 믿 을 수 있는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 성실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까? 우리들의 성실의 문제는 크리스챤에 게 있어서는 내가 성실한 사람이 되 자 라는 자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이 아니 예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게 있어서는 우리는 성실한 하나님 을 우리가 고백하는 데서부터 시작 해야 합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 배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성실 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찬송가 불 렀잖아요? 오 신실하신 주. 우리 신 명기 32장4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 을 향해서 고백하기를 하나님 당신 은 진실무망하십니다. 당신은 성실 하십니다 고백을 했어요. 하나님은 성실하시다. 그 성실하신 하나님은 역사와 우주를 성실하게 섭리하고 계시다. 그 하나님이 나에게 성실한 미션을 주셨다. 이것은 믿는 자들, 거기서부터 우리의 성실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좀 성실해보자 이렇게 시 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 그러나 아직도 성실 한 가치가 있다. 창조주 하나님, 그 분은 성실하시며 그 분은 인생들에 게 어떤 성실한 과제를 맡겨 주신 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내 인생을 걸고 성실을 향해서 나의 존재를 만 들어 갈 수가 있는 중요한 기초가 있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그리스도 인들의 성실의 작업은 시작되는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한 달란 트 받았던 종, 유일하게 칭찬 받지 못하고 책망을 받았던 한 달란트 받 았던 종의 경우에는 이 주인관이 왜 곡되어 있었습니다. 주인에 대한 생 각이 잘못 되어 있었습니다. 성실한 가치가 없다 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는 불성실하게 살게끔 되어 있는 거 예요. 아무렇게나 이 세상에 뭐 그 냥 그냥 출세하는 게 뭐 제일 중요 한 거지. 역사관에 어떤 성실한 가 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 는 사람이 성실한 인생을 추구할 수 가 없습니다. 이게 세계관의 중요한 전제, 밑바탕에 숨어있는 하나의 전 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한 달란 트 받았던 종의 문제가 어디 있느 냐? 자기에게 그것을 맡겨 주신 주 인을 믿지 못했어요. 주인을 신뢰하 지 못한 것입니다. 자, 24절, 마태복 음 25장에 24절을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24절 다같 이 읽습니다. 다같이 시작. 한 달란 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 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자, 주인을 향해서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당신 은 굳은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번 역하면 당신은 인색한 사람입니다. 주인보고 인색하다 그랬어요. 왜 그 랬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혹은 두 달란트를 주면서 나에게만은 왜 한 달란트 밖에 주지 않았느냐. 당 신은 나에게만 짜고 인색한 분이군 요. 아마 이런 의미가 숨어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달란트란 것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예수님 당시에서 금 달란트면 적게 쳐도 20년은 살 수 있는 생계비에 해당되었다고 해요. 20년을 살아갈 수 있는 생계비. 그러면 생각해 보 세요. 앞으로 20년, 내가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20년을 살 수 있다. 적어요? 커요? 감동이 안 됩니까, 20년? 네, 굉장한 거죠. 20년. 자기 의 20년이란, 아 그래도 나에게도 이렇게 많이 맡겨 주셨구나. 고맙구 나. 내가 이것을 제대로 잘 관리해 야 되겠구나 생각하는 대신에 거기 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아니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왜 나에게 만 한 달란트를. 왜 이런 불평을 가 졌을까요? 비교하니까 그래요. 비교. 이 비교라는 것이 항상 인생을 비참 하게 만들죠. 비교 그러면 저는 늘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얘기 하나가 있는데 전에도 아마 여러분에게 이 얘기를 드렸을 것 같아요. 미국의 어떤 도시에 지방 시골 도시 에 목사님 한 분이 교회에 부임을 했는데 부임하고 보니까 그 교회 안 에 아주 깡패 같은 형제가 있어요.. 교회는 나와요. 동네에선 아주 불량 하고 사람들 못 살게 굴고 빼앗고 행패도 부리고 그러면서도 교회에 나오는 안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런 형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형 이 죽었어요.
어느 날 죽었어. 동생 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목사 님 장례식을 잘 치뤄 주셔 야죠. 목 사님 앞으로 부임하셨으니 여기 새 교회도 지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러 면서 blank check을 빈 수표를 하 나 주면서 여기에 목사님 필요한 만 큼 제가 다 도와 드릴께요. 그 대신 저의 형님 장례식을 잘 지내주시기 바랍니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목 사님 장례식 주례사를 할 때 저의 형님에 대한 얘기를 잘 해주셔야 합 니다. 그리고 꼭 이 말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형이 좀 성자 같 은 사람이었다고. saint였다고 말해 주시겠습니까? 목사님 가만히 생각 을 하다가 해 보죠. 자, 드디어 장례 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뭐 동네 유명 한 깡패가 죽었으니까 동네 사람 다 왔어. 그래서 목사님의 그 장례 주 례사가 시작됩니다. 한참 크라이맥 스에서 형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 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이 고인은 우리 동네에서 유명했던 분입니다. 불행히도 그 분은 동네 많은 사람 가슴 속에 상처를 주었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 리고 커다란 고통과 두려움을 안겨 다 주었던 사람입니다. 참 많이 인 생을 잘못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러나 여러분, 이 고인은 살아있는 형제에게 비교하면 그 사람은 분명 히 성자였습니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아주 복 잡해집니다. 저는 이 두 달란트 받 았던 종도 만약 비교했다면 불평할 수 있는 소지가 얼마든지 있죠. 왜? 두 달란트 받았던 종이 어떻게 불평 할 수가 있습니까? 왜 나에게만 두 달란트 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를 주고. 이 세상에는 항상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존재하죠. 나보 다 더 많이 있는 사람 존재합니다. 그러면 항상 난 비참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초점을 거 기다 맞추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 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것을 맡겨 주셨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 시는, 내가 이만큼 관리할 수 있다 고 믿었기 때문에 주께서 나에게 이 렇게 맡기셨겠지. 만약 그 주님을 바라보고 자기의 주어진 인생의 미 션 앞에 성실했더라면 얼만큼 달라 졌을까요? 이게 바로 신뢰하는 의식 이예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의식. 그 리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나의 삶에 대한 가능성을 또한 신뢰하는 믿음. 여기서부터 우리의 성실성은 시작되 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인생을 다 살고 살아계신 주님 앞에 역사의 심판자이신 그 분 앞에 우리가 충성 된 종으로 나타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신뢰하는 의식. 인생을 너무 부정적으로 비판적으로 이렇게 보지 마시고 항상 비교하고 그러지 마시 고 늘 신뢰하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 것을 맡겨 주셨다. 신실하신 하나님 저는 모세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 각해요. 모세가 뭐 그렇게 탁월했던 사람이 아니라 나는 말도 못하고 그 런데 어떻게 이 백성을 설득해 갖고 이 백성을 이끌고 나갑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랬더니 믿었어 요. 모세가 믿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모세보고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모세야 너는 나의 온 집 에서 충성 된 자로다. 신실한 사람 이로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떻게 우리 인생에서 이런 성실함에 충성 스러움에 결론을 가질 수가 있을까 요? 이 신뢰하는 의식. 나머지 살아 가야 할 인생을 내다보면서 저는 주 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이 신뢰하는 의식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충성 된 자 로 나타나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의식, 세 번째 중요한 의식을 존재 의 의식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존재 의 의식.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우 리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어요. 한 종류 의 사람은 소유의 가치관을 갖고 살 아가는 사람, 더 많은 소유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은 이것은 훨씬 적은 소수이긴 하지만 존재의 가치 관,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어떤 사 람이 되느냐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 냐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소유의 인 생 가치관에 무게를 두지 않고 존재 의 가치관에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만 있어요. 물론 대부분 의 사람들은 더 많이 얻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더 많은 달라를 소유하기 위해서, 더 많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서,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기 위해서, 더 많은 기술을 소유하기 위해서, 소유, 소유, 소유를 위해서 달려가는 인생 을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거기에서 보람을 찾습니다. 그 것을 위해서 땀을 흘립니다. 소유와 성취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어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 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드물게는 존재의 가치관 being 내가 어떤 존 재가 되느냐 인생은 소유로만 따질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을 다 살고 중 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 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저는 이 본 문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 던 사람들이 칭찬을 받았던 이유가 반드시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꼭 다섯 달란트 남겼고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두 달란트를 꼭 남겼 기 때문에 주인이 칭찬하셨다. 그렇 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남긴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주께서 보셨던 어떤 성실함, 그것이 칭찬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해 요. 칭찬한 내용을 잘 보세요. 착하 고 충성스러운 종아 그 quality 칭 찬의 quality 그 내용이 뭐예요. 어 떤 질적인 칭찬을 했습니까? 착하고 착하고 믿음직스러운 충성스러운 내 종들이여. 또 계속되는 칭찬에 무엇 이 있습니까?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어떤 일에 작은 일에 충성하였 으니 작은 일. 작은 일. 여러분, 제 가 한 달란트 받으면 20년을 살 수 가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 다섯 달란트 가지면 얼마를 살 수가 있어요?
다섯 달란트. 제가 특수 마 이크 갖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뒤 돌아볼 수 있거든요. 다섯 달란트 가지면 몇 년 살 수가 있습니까? 100년을 살 수가 있어요. 100년. 100 년. 그런데 다섯 달란트 가지고 얼 마를 남겼습니까? 다섯 달란트를. 또 100년을 살 수 있는. 이건 어마 어마한 액숩니다. 그런데 주인이 어 떻게 칭찬합니까? 네가 정말 너에게 맡겨준 어마어마한 것을 가지고 어 마어마하게 많이 남겼으니 너는 정 말 어마어마한 종이로다 이렇게 칭 찬하지 않았어요. 뭐라고 칭찬했습 니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 니. 주인 보시기에는 다섯 달란트를 남긴 것도 작은 일. 크고 작은 것을 나누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큰 일, 작은 일, 위대 한 일, 평범한 일 사람들은 계속해 서 그렇게 나누죠. 하나님 보시기에 는 내가 볼 땐 다 작은 일이다. 니 가 국회의원 되는 일 굉장한 일 같 지만 내가 볼 땐 작은 일이야. 네가 볼 때 뭐가 되는 일 굉장한 일 같지 만 내가 볼 땐 작은 일이야. 다 작 아. 중요한 것은 그 작은 일 앞에 얼마나 성실할 수가 있었느냐 그것 이 중요한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 들은 그러한 성실히 한 과정이나 성 실히 한 태도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그 일 자체, 결론 자체 만 강조점을 두는 사람들이 있어. 이런 사람들은 큰 일이 주어져야만 일을 해요. 큰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만. 작은 일, 내가 그런 일 할 사 람이야. 내가 누군데 말이지. 저는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판단은 그가 차지한 자리나 그가 쓰고 있었던 벼 슬이나 감투에서 평가될 것이 아니 라 그 감투를 벗고 자리를 벗어 놓 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뭐가 남아 있을까요? 그가 진짜 그 사람의 모 습 이예요. 제가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설 교할 때 등장하는 우리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 정치가로서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을지 몰라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갈수록 그 사람의 인격 의 무게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 더 아름답고 더 빛나고 더 많은 사 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한 기자가 지미 카터의 퇴임 후에 그의 삶을 추적하 면서 그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이런 인상 깊은 기사를 썼습니다.
백악관 이 목표가 아니었었던 아마도 유일 한 대통령이 아니었을까. 백악관이 목적이 목표가 아니었던 유일한 대 통령.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 세요. 최고의 목표가 뭘까요? 아마 청와대 입성일 거예요. 그러나 백악 관이 목표가 아니었던 사람. 백악관 은 수단이라는 거죠. 지미 카터의 목표는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섬김의 한 과정에서 백악관이라는 자리가 주어 졌을 따름 이예요. 그러니 백악관 나와도 괜찮은 거예요.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을 다르게 만들지 않아요. 여전히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면 돼 요.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자리에 가 서 또 섬기면 돼요. 그는 조지아로 돌아왔어요. 조그만 교회로 다시 돌 아와서 거기서 옛날처럼 주일학교 교사를 해요. 한 달에 한 번씩 정확 하게 그는 자원 봉사자로 volunteer 로서 교회 청소를 로잘린 여사와 함 께 정성스럽게 한 달에 한 번씩 교 회 청소를 해요. 카터가 어떻게 청 소하나 사람들이 많이 구경온대요. 주일학교 어떻게 teaching하나 그것 도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대요. 어 떤 때는 그 교회는 교인보다 구경꾼 들이 더 많을 때가 있다고 그럽니 다. 한 달에 한 번씩 헤비 탓 이라 는 ministry가 있는데 homeless people을 위해서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집 지어 주기 위해서 망치 들고 가서 집 지어 주는 일을 해요. 또 카터 연구소에 가서 연구도 하 고.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나면 지금 도 아직도 국제분쟁 지역에 카터를 조정자로 보내달라는 요구가 높습니 다. 왜냐하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다. 김일성이 죽기 전에 자기가 믿 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사람 카 터였습니다. 이 성실성, 이것이 바로 성실성 이예요. 그 사람의 인생관, 어떤 자리가 아니 예요. 벼슬이 아 니란 말이죠. 소유가 아니 예요. 그 의 존재, 그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날이 갈수록 그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의 무게는 더 감동과 아름다움 으로 다가옵니다. 이것이 존재의 의 식, 존재에 가치를 두었던 사람의 모습입니다. 피자 가운데 여러분, 도미노 피자라 고 있죠. 한국에 와서는 별로 먹어 보지 못했는데 도미노 피자 있죠. 한국에 와서는 저는 주로 미스타 피 자만 열심히 먹습니다.
제 동생이 그걸 해 갖고 열심히. 지나가다가 미스타 피자만 보면 찾아 다니는데. 도미노 피자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의 구단주로 있었던 타마스 모네간의 스토리를 제가 읽어 본 적이 있습니 다. 이 사람은 다른 사업가와 마찬 가지로 사업가로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이 사 람의 꿈이었습니다. 열심히 사업을 확장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는 땀을 흘리고 열심히 노력을 했 습니다. 근데 자기 인생의 절정에 자기가 중년기를 넘어섰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 대한 회의가 생기 는 거예요. 내가 사업을 이렇게 확 장하지만 도대체 인생이란 뭘까? 사 람이 교회는 나갔던 사람인데 자기 신실한 크리스챤 친구 하나가 책을 준 것이 있는데 C.S.루이스 라는 사 람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가 갑자기 책의 한 부분에서 그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마침 이 사람은 집을 짓고 있었어요. 27에이 커에. 미국에서 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멋있는 집 소위 dream house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집이 거의 절반쯤 지어지고 있었 어요. 마침 그 책을 읽다가 충격과 은혜를 받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 이 드는 거예요. 그래 내가 미국서 제일 멋있는 집을 짓고 거기 들어가 서 내가 산다고 하자 그 다음에 자 기가 자기 자신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는 거예요. So what?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 내가 그 멋진 집 에서 산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아, 그 러자 자기가 짓고 있었던 드림 하우 스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는 갑자기 집 건축중단을 명했습 니다. 그리고 그 집 설계를 변경했 어요. 그것을 이웃 사람들을 돕고 섬기기 위한 자선 사업을 위한 Institute로 바꾸었습니다. 그것을 재 단으로 바꾸었어요. 복지재단으로 바꾸었어요. 그리고 현재에 있는 자 기 집을 팔고 더 적은 집으로 이사 를 갔습니다. 그것이 굉장한 뉴스가 됐습니다.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와 그 사실을 두고 인터뷰를 하게 되었 어요. 그래 소감이 어떠냐고. 나는 더 적은 집으로 이사 갔고 우리 회 사의 profit은 나의 이런 심경의 변 화 때문에 이익은 조금 줄어들 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건 신문에 난 기사예요. 나는 비로소 세상에 태어 나서 아 이것이 행복이로구나 라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느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소유가 가져다 줄 수 없 는 행복을 그는 자기의 존재에서 비 로소 그는 소유하기 시작한 것 이예 요. 존재를 통해서.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변화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한해가 빠르게 지나간 것처 럼 인생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것 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창 조주 하나님 그리고 심판주이신 하 나님 앞에 서서 인생을 결산할 때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이렇 게 말할 수 있을까요? 착하고 충성 된 나의 종들이여 너는 작은 일에 충성할 수 있었구나. 내 인생을 걸 수 있는 그 작은 일을 발견했습니 까? 그리고 작은 일 그 성취의 자체 보다도 그 작은 일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신실한 인격 의 변화 그 자체에서 내 삶의 행복 을 느낄 수 있는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결산. 착하고 충성 된 종아 인 생의 마지막 순간에 주 앞에 드러내 야 할 이 신실함의 열매, 충성의 열 매가 우리의 삶 속에서 준비되고 있 을까요?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다 일어나서 함께 기도하시겠 습니다. 일어나서 기도할 때 하나님 일년이 다 지나갔습니다. 빠르게 지 나갔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바쁘 게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지나간 일 년. 돌이켜보면 일년 동안에 우리의 삶 속에서 내가 정말 주 앞에서 의 미를 느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의 흔적들은 얼마나 될까요? 인생은 빠 르게 지나갑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하나님, 정말 당신 때문에 내 삶은 가치가 있었고 의미 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 그 인생을 위하 여 후회할 필요가 없는 성실함의 인 생을 위하여 성실하신 주님 바라보 고 내 인생을 다시 만들 수 있다. 밝아오는 새천년, 정말 비전의 인생 을, 의미에 가득찬 인생을 향하여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 주시 옵소서.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 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 다.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을 받 습니다. 지나간 한해를 돌이켜 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주님 앞에 묻습니다. 아버지 인생이 끝났을 때 주님 앞에 정말 보람 있 게 설 수 있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 님 오늘 이 말씀을 붙들고 주 앞에 살아가는 자들이 되도록 도와주시옵 소서.
달란트(은사)를 개발하며
마 25:14-30, 롬 12:6-8 / 김명혁 목사
지난 주일에는 "역사의식을 가지고"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자기라는 번데기에서 벗어나서 하늘을 높이 날면서 넓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과거와 미래와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달란트를 개발하며, 은사를 개발하며"란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하겠습니다. 달란트와 은사란 말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달란트와 은사들을 나누어 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와 은사를 개발하고 사용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감격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지난 월요일 밤 교회에서 집으로 가는 도중 MBC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청취자 한 사람이 편지를 읽는 데 감격에 사로잡힌 목소리로 편지를 읽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다가 스스로 감동이 되어서 목이 메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프로를 진행하던 진행자 역시 가슴에 감동이 되는 듯 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아주 소박한 작은 이야기였습니다. 미장원을 하고 있는 그 여자의 미장원에 어느 날 어린 아이 하나가 할머니와 함께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아이와 할머니였습니다. 아이가 입을 열고 할머니 파마 값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미장원 주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정가보다 조금 싼 값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나가자고 했고 어린 아이는 아쉬운 눈 빛으로 미장원 아주머니 얼굴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미장원 아주머니가 왜 그러냐고 묻자 어린 아이는 손에 든 저금통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아주머니, 제가 할머니 파마해 드리려고 일년 동안 모은 돈이 7천5백 60원밖에 안 되요. 아주머니, 이것으로는 안되지요."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몇 년 전에 집을 나가서 할머니가 자기를 키워 주시는 데 수고하시는 할머니 파마해 드리고 싶어서 돈을 모았는데 7천5백 60원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장원 주인 아주머니는 그 아이의 착한 마음에 너무 감동이 되고 감격이 되어서 돈을 받지 않고 그 할머니의 머리에 파마를 해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 자기가 할머니 머리를 무료로 파마를 해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편지를 읽으면서 그 날은 온 종일 미장원에 감동과 감격이 파도친 하루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감동은 그 날 하루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장원 아주머니는 그 아이의 집을 찾아 가 보았습니다. 너무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장원을 하는 자기 언니와 함께 그 아이와 할머니를 조금씩 이라도 돕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달란트를 개발하며 살아야 한다는 설교를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효선이라는 그 어린 아이는 달란트를 아름답게 개발하며 살고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고 유은영이라는 그 미장원 아주머니도 자기의 달란트를 너무나 아름답게 개발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효선이는 고마워 할 줄 아는 자기의 마음을 아름답게 개발하고 표현했습니다. 고마워 할 줄 아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고귀한 달란트입니다. 컴퓨터를 잘 하는 기술만이 좋은 달란트는 아닙니다.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그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아는 의지는 더 귀중한 달란트입니다. 유은영 미장원 아주머니도 착한 마음에 감동할 줄 아는 자기의 순수한 감성을 아름답게 개발하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파마하는 달란트를 돈 받지 않고 무료로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순수한 감성을 개발하는 대신 짓밟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효선이와 유은영씨는 하나님이 주신 착한 심성을 개발하고 표현하므로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도 훈훈한 감동을 전해 주었습니다.
기술만이 달란트는 아닙니다. 기술보다 더 귀한 달란트는 심성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착한 심성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고귀한 달란트입니다. 우리 교회의 김영선씨는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워하는 친구 정승연씨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교회 자랑, 목사님 자랑, 자기 자랑을 하면서 그를 감동시켜서 결국 그 친구와 남편은 지금 자기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기쁘고 감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김영선씨는 이웃을 생각하는 착한 마음을 아름답게 개발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박인수군은 신앙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삼촌 박호준씨 부부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교회 자랑, 목사님 자랑, 자기 자랑을 하면서 그 분들을 교회로 인도하므로 지금은 박호준씨와 최종분씨 부부가 교회에 나온지 한 달밖에 안 되었지만 두 분이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인수군은 친척을 생각하고 위하는 착한 마음을 아름답게 개발한 것입니다. 박인수군, 김영선씨 한번 일어나 보세요. 정승연씨 부부와 박호준씨 부부도 일어나 보세요. 격려의 박수를 하세요.
최병우 집사님은 남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고 신나게 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유년부 모임에는 물론이고 지난번 체육대회 모임에도 얼마나 큰 소리로 사람들을 신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최병우 집사님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뜨거운 가슴과 마음을 마음껏 개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황규민 집사님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중학생들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가출한 중학생들을 붙잡고 격려하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대치중학생 800여명이 우리 교회에 와서 오전과 오후 합창대회를 만족스럽게 가졌는데 그와 같은 좋은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황규민 집사님의 뜨거운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황규민 집사님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인 남을 돌보고 싶은 착한 마음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박현호 집사님과 이복남 집사님은 새 가족에 대한 관심이 대단합니다. 어제 새가족 45여명의 친목 나들이가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아주 즐거운 나들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박현호 집사님과 이복남 집사님의 철저한 준비와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두 분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은사인 새 가족을 돌보고 격려하고 관리하는 은사를 마음껏 발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이인교 권사님은 손과 몸으로 봉사하는 봉사의 은사를 받았는데 그 봉사의 은사를 개발하고 사용하면서 살고 있고, 우리 백혜란 집사님은 어려움을 당한 약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랑의 은사를 받았는데 그 사랑의 은사를 개발하고 널리 사용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최병유 집사님, 황규민 집사님, 박현호 집사님, 이복남 집사님, 이인교 권사님, 백혜란 집사님, 한번 일어나 보세요. 격려의 박수를 하세요.
우리 성가대원들 중 김경희양과 김혜은양은 찬양의 은사를 받았는데 그 은사를 개발해서 지금은 찬양을 더 잘 부르며 은혜를 끼치고 있습니다. 지난 번 사랑의 음악회 때 두 사람이 독창을 아주 잘 했습니다. 김경희 양이 "감사해" 라는 복음 찬송을 부를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연습할 때는 사람들을 주목하지도 않았고 별로 웃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람들을 눈으로 주목하라고 했고 사랑의 웃음을 환하게 웃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지도를 잘 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느 때 보다도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은사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경희양과 김혜은양 한번 일아나 보세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달란트를 개발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사들을 개발하고 사용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은사 개발과 관련해서 몇 가지 기억해야 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은사들을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자들에게 여러 가지 선물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은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가지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은사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 즉 설교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섬기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가르치는 교사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권위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구제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다스리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은사를 주셨는지를 발견하고 개발하고 그리고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효선이처럼 고마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유은영씨처럼 착한 마음에 감동을 받고 도움을 베풀기로 작정한 것도, 김영선씨나 박인수군처럼 친구나 친척에게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좋은 교회를 소개하는 것도, 황규민 집사님처럼 어려움에 처한 중학생들에게 뜨거운 사랑의 관심을 베푸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은사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은사란 굉장한 기술이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은사는 가슴과 입과 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기 손은 물론 기술과 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로마서 12장에 나열된 은사들은 대부분 가슴과 입과 손을 사용하는 은사들입니다. 효선이와 유은영씨와 조금 전에 일어섰던 모든 분들이 개발하고 사용한 은사들도 대부분 가슴과 입과 손을 사용한 은사들입니다. 저는 애기 재우는 은사를 받은 것 같습니다. 애기들이 제 가슴에 안기면 그리고 제가 예쁘다 예쁘다 라고 말하면서 손으로 등을 두드려 주면 곧 잠이 듭니다. 작년 4월 그리스에서 유라시아 선교대회가 열렸는데 거기 지나라는 8개월 된 애기가 있었습니다. 지나는 내 품에 안기면 어떤 때는 두 시간을 계속해서 잠을 잤습니다. 우리 교회의 이례는 제가 안으면 어제도 그랬지만 곧 잠이 듭니다. 지난 주일과 어제는 5살 난 진수와 원주도 제 가슴에서 잠을 잤습니다. 은사는 따뜻한 가슴과 부드러운 말과 사랑의 손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둘째 은사 개발의 목적은 이웃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기 만족과 유익을 위한 은사 개발이라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명예를 위한 은사 개발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는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주신 모든 은사들을 저기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33).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여러 가지 은사들을 주신 목적은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한 사람은 현세와 내세에서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은사를 잘 개발하여 사용하면 이웃이 행복해 지고 내가 행복해 지고 그리고 주님의 교회가 아름답게 자랍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과 늘 함께 다니면서 자기들에게 주신 은사인 따뜻한 가슴과 부드러운 말과 천막치는 손을 개발하고 사용하면서 바울을 기쁘게 했고 만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봉사한 교회들을 아름답게 성장시켰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손 발이 다 닳도록 아니 목이라도 내 놓으려고 하면서 자기들에게 주신 모든 은사들을 마음껏 사용했는데 그것은 결국 그들에게 영원한 행복과 축복을 가져 다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극찬을 받았고 주님의 칭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은사 개발과 사용 여부에 따라서 마지막 날 주님으로부터 칭찬이나 책망을 받는 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은 25장에 보면 은사를 개발하여 사용한 사람은 마지막 날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개발도 하지 않고 사용도 하지 않은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준엄한 책망이 주어진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만간 여러분들은 생명의 주님 그리고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은사들을 골고루 나누어 주신 주인 되시는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말이나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어지 은사들이 다 낡아지고 시들어지기 전에 그 은사들을 개발하며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슴이 다 식어지기 전에 우리들에게 주어진 입과 손과 발이 굳어지기 전에 우리들에게 주어진 재물이 다 날아가 버리기 전에 마음껏 개발하고 마음껏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웃이 행복하고 여러분들이 행복하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의 교회가 아름답게 자라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13) "달란트(은사)를 개발하며"(요약) 2000. 5. 28.
마25:14-30, 롬12:6-8
사람은 감격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며칠전 MBC 방송에서 청취자 한 사람이 감격에 사로잡힌 목소리로 편지를 읽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미장원에 어린 아이 하나가 할머니와 함께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할머니 파마 값이 얼마냐고 물었고 미장원 주인은 조금 싼 값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나가자고 했고 아이는 아쉬운 눈 빛으로 미장원 아주머니를 바라보면서 저금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주머니, 제가 할머니 파마해 드리려고 일년 동안 모은 돈이 7천5백 60원밖에 안 되는데 이것으론 안되지요." 아주머니는 아이의 착한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돈을 받지 않고 파마를 해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 무료로 파마해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편지를 읽으면서 그 날은 온 종일 미장원에 감동과 감격이 파도친 하루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효선이는 달란트를 아름답게 개발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고 미장원 주인 유은영씨도 자기의 달란트를 아름답게 개발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효선이는 고마워 할 줄 아는 마음을 아름답게 표현했고 유은영 씨도 착한 마음에 감동할 줄 아는 순수한 감성을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기술만이 달란트는 아닙니다. 기술보다 귀한 달란트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착한 심성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달란트를 개발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은사들을 골고루 나누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설교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섬기는 은사를, 가르치는 은사를, 권위하는 은사를, 구제하는 은사를, 다스리는 은사를,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은사란 굉장한 기술이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은사는 가슴과 입과 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가슴과 부드러운 말과 사랑의 손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둘째 은사 개발의 목적은 이웃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 만족과 유익을 위한 은사 개발이라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는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한 사람은 현세와 내세에서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은사를 잘 개발하여 사용하면 이웃이 행복해 지고 내가 행복해 지고 주님의 교회가 아름답게 자랍니다.
셋째 은사 개발 여부에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이나 책망을 받게 됩니다.
조만간 우리들은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말이나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지 은사들이 다 낡아지고 시들어지기 전에 그 은사들을 개발하며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웃이 행복하고 여러분들이 행복하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의 교회가 아름답게 자라게 되기를 바랍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
마 25:14-30 유승훈목사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작가가 어떤 작품을 완성했을 때 기대를 가지듯이 말입니다. 음식을 만들면 손님이 맛있게 먹기를 원하고, 자기가 만든 작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깊은 감동을 받고, 또 자신이 저술한 책을 많은 사람이 읽고 거기에 공감을 가진다면 작가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와 그곳에 거하는 모든 생명들과 인생들을 지으신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들에 대하여 한없는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을 구별하여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수도 있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될 수도 있는데, 여러분 모두가 다 주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듣고 인정 받게되기를 원하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신자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 사실 본문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합격점을 받은 자이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선언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에서 실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전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께 합격점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데, 그러면 어떤 신자가 착하고 충성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 본문 마 25:14-30의 말씀을 중심하여 하나님의 심판에서 합격점을 받는 길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전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무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또 하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그는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라고 하였고,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라고 하였고, 그의 주인이 말하기를,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나아와서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라고 하였더니, 주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합격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 이겠습니까 ? 오늘은 그 점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받은 은혜대로, 재능대로 자신의 능력껏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에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주인이 종들에게 자기의 재산을 나누어 맡기기를,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주인은 재산을 종들의 각기 재능대로 맡겼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활용하고, 그 열매를 주인에게 바치는 종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요, 하나님의 심판에서 합격을 받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를 하나님이 칭찬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계 3:8에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기를,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잘 감당하여 칭찬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을 오직 주인을 위하여 잘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활용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받은 주님의 은혜와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였으며, 누구를 위하여 사용하였는가? 자신을 살펴보시고, 얼마나 내가 받은 재능을 사용하는데 정성을 다하였는지 자신을 살펴보시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생선을 가지고 요리를 한다면, 머리와 지느러미와 꼬리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분은 머리와 지느러미와 꼬리를 다 잘라내고 그저 조금만 남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명한 항해사는 바람과 파도를 이용하지만 어리석은 항해사는 오히려 알지 못하는 바람과 파도에 침몰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어떤 고난과 풍파가 닥쳐와도 그것을 잘 이용해서 오히려 그런 것을 통해서 믿음이 성장하고, 그 신앙이 단련되어서, 하나님 앞에 더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최선을 다해서 활용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주님 나라에 득이 되고, 유익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주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하여 미스태평양에 뽑힌 분이 있었습니다. 기자가 인터뷰하는 내용 중에 수상 소감을 묻기를, '어떻게 이렇게 예쁘신가요 ?'라고 했더니, '저는 잠자기 전에 꼭 성경 말씀을 2장씩 읽고 자기 때문에 이렇게 예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고 얼굴이 예쁜 것보다도 그 말이 더 예뻤습니다. 그의 믿음이 더 예쁩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고있는 자리에서 자기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준 재산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을 한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러분들도 주님께서 맡겨주신 재산을 찾아서, 그것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나라에 덕이 되는 삶을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은 어떤 분에게는 지혜를, 어떤 분에게는 아름다운 미모를, 어떤 이에게는 손재간을, 어떤 이에게는 말재간을, 어떤 분에게는 취미와 명예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의 삶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필요하고 적절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에게는 복이 되는 가능성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나에게 없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있는 것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자세를 바꿔서 다른 사람에게 없는 것이 나에게 있는 것을 바라보고 감사해야만 할 것입니다. 남에게는 없는 이 귀한 달란트를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서 노력하고, 기도하며, 성령님의 적절한 역사와 도우심을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을 때, 그 사명에 대하여 두려움과 부담감을 느끼면서, 어떻게 하면 이 짐을 벗어버릴까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분들은 '주여, 내가 하겠습니다. 나를 당신의 도구 삼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사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재능이 있어도 자기의 사명에 대하여 부담스럽게 생각하거나,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재능과 능력이 부족하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 나를 보내주소서'라고 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지혜와 능력의 주인이요, 당신의 일꾼들이 일할 수 있도록 지키시고 돌보시고 역사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전 1:27-28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은 이사야 11:2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부어주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사모하는 자에게는 그 소원을 채워주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참으로 귀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말하기를 질그릇 속에 보배를 담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질그릇인 내 안에 담긴 보배인 그리스도를 스스로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내 안에 계신 보배인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달란트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내게 어떤 은혜의 선물인 달란트를 주셨는지 한번 자신의 받은 은사의 내용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세요, 모세가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성막을 건축할 때에 여호와께서는 재능 있고 지혜로운 사람 브사렐을 지명하여 세우시고 오홀리압을 택하시고, 그 외에 여러 재간 있는 사람들을 세우셔서 그들이 모세를 도와서 성막을 하나님의 뜻대로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공교하게 나무를 깍는 재간을, 또 어떤 이들에게는 성전 기명을 만드는 재간을,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홍색실 자색실 청색실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재간 등 여러 가지 필요한 재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와 복음을 위하여 일 하는데 필요한 각종 은사를 날마다의 생활을 통해서 주십니다. 그러니 나의 부족함을 핑계하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쓰시는 도구가 되고자 사모하고 '의의 병기' 노릇을 하고자 노력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충성'이란 '마음이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마음을 바친 존재에게 온전하고 성실하게 대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충성스러운 사람이란 (1) 마음이 대상과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2) 한 번 마음을 준 존재에 대하여 회의하거나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3)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상관없이 자기의 사명과 역할에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충성스러운 사람은 핑계하지 않고, 시비하지 않으며, 원망하지 않고, 다른 소리를 하지 않으며, 안색이 변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아, 여러 곳에 많은 일에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사명과 할 일이 많아서 눈 코 뜰 사이가 없을 정도로 바쁜 반면에 어떤 사람은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며, 불평하기를 일은 골고루 나누어 맡아야지 한 사람한테만 집중되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은 그래서 일을 나누어 맡겨보면 일은 하지 못하고 분란만 만드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분주한 것 같아도 일 많은 사람에게 일이 맡겨지면 소리 없이 일이 열매를 맺는 것도 봅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 충성스러운 사람인가 ? 아닌가 ?에 있습니다. 나는 어떤 종류에 속하는 사람인지 한번 스스로 살펴보시고 이제부터는 주님 보시기에 충성스러운 사람으로서 살고자 정성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본문에서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배나 더 남겨서 열 달란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때 주인은 그 종에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더 많은 것을 맡겨준다'고 했습니다. 사실 주인이 무엇인가를 맡길만한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복에 대하여 정의를 내립니다. 잘 먹고 잘 입으면 복 받았다고 합니다. 비싼 관광 다니면서 '아이고, 행복해'라고 합니다. 누가 자기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 복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 하나님께서 큰 일을 맡겨주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의 일을 할 때마다 마음 속에 기쁨이 생기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일을 찾고, 그 일에 충성을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도 맛볼 수 없는 참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언제나 변함 없이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변덕이 심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시종이 여일한 사람, 언제보아도 변함이 없는 성품의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은 말하기를,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라고 했습니다. 만일 어제 맡기고 오늘 와서 회계를 한다면, 순간적으로 반짝하는 식으로 사는 사람이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1회용 컵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많은 사람에게 쓰임을 받고, 오래도록 쓰임을 받고,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쓰임을 받고, 그리고 길이 길이 그 이름을 들어도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나오는 주인은 '오랜 후에' 그 충성을 점검하고 평가를 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 당신은 언제까지 예수를 믿겠습니까?'라고. 성도는 언제나 변하지 않고 끝까지 견고하게 주님의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워한 생명을 말하는 사람들이므로 변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여일한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어야 됩니다. 생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죽은 나무는 열매가 없습니다. 산 나무에서만 열매가 맺힙니다. 움직임이 없는 곳에 건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움직이는 곳에는 힘이 있고, 거기에서 건강이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모든 삶이 항상 살아있고 주 앞에서 변함 없는 진실함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주인은 충성한 종들에게 말하기를,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일은 작은 일도 큰 일이고, 세상의 일은 큰 일도 작은 일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절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면 안됩니다. 성도는 주의 일이 맡겨지면 언제나 '아멘 할 수 있습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나는 못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바쁩니다. 이제 좀 쉬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주께서 주실 복을 거절하는 것과 같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줄에서 단절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생명나무 가지에서 잘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는 죽으나 사나 주의 손을 붙잡고 주님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만 합니다. 주님은 요 15:7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주님과 생명의 줄이 이어져야 됩니다. 주님과 소망의 줄이 이어져야 됩니다. 주님과 기도의 줄이 이어져야 됩니다. 주님과 찬송의 줄이 이어져야 됩니다. 주니과 전도의 줄이 이어져야 되고, 봉사의 줄이 이어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다 주님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선 제사장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서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몸과 마음을 바쳐서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고 헌신하며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서 무엇을 맡았습니까? 선교회에서는 무엇을 맡았습니까? 하나님 앞에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대해서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주인의 즐거움과 큰 기쁨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이 세상 모두를 다 헤매고 다녔다고 해서 참 만족과 즐거움을 발견한 사람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프란시스 피사로는 젊어지는 샘을 찾아 남미 대륙을 다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고, 유명한 여행가 김찬삼씨는 전 세계를 다녀보고 말하기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영종도 낙조라고 한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참 즐거움과 복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있는 줄 믿으시고, 적은 것이라고 해도 예수를 위하여 충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말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서 주님 오시는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고 상급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9:8 이하에서 충성된 자는 자손들에게까지 복을 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잘되고, 자손도 잘되며, 충성된 가정으로 복을 받는 여러분과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