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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공주 마곡사의 불타는 가을
Ernesto Cortazar - A moment You Will Always Remember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로 현재 충청남도 70여 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대광보전(보물 제802호)·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국사당·대향각·흥성루·해탈문·천왕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밖에 중요문화재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보물 제270호),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동제은입사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등이 있다.
항일독립운동가 김구선생이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마곡사
산사는 공주 마곡사, 보은 법주사,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총 7곳 사찰로 구성된 연속유산입니다. 7~9세기에 창건되어
고대 한국불교와 종교적 의례의 지속적인 중심지가 되어 왔으며,
각각의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다른 종파와 역사적인 관계를 맺으며
많은 역사적 건축물, 유물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역사적 단절없이 오늘날까지 신앙, 수행, 생활의 복합적 종교 공간이
온전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큽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곡사!
마곡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충남 공주시 태화산에 자리잡은 충남 지역 대표 사찰
기근이나 병란의 염려가 없는 길지로 이름 났으며
봄의 경관이 특히 아름다워 春麻谷(춘마곡)이라 일컬어집니다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천년 고찰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
개울을 경계로 남원과 북원으로 구성된
독특한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희귀한 상륜부를 지닌 5층석탑(보물 제 799호)을 비롯하여
대웅보전(보물 제 915호), 대광보전(보물 제 802호) 등
수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곡사는 불화를 그리는 스님을 대대로 배출한 사찰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김구선생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인 장교를 살해하고
일제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머물렀던 백범당과
해방 후 마곡사에 방문하여 심었다고 전해지는 향나무
백범명상길은 백범선생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천년의 시간을 넘어 세계인의 유산이 된 마곡사
소중히 지켜나가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마곡사의 전각 배치
마곡사는 공주시 태화산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입니다.
사적기에 의하면 마곡사는 선종 사찰이 확산되던 9세기에 중창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마곡사는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남원과 북원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북원은 주불전인 대광보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당에 14세기에 건립된 티베트식 상륜부를 갖춘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원은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영산전과 선 수행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임진왜란기 승병의 집결지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중건으로 원모습을 회복하여
18세기에 현재의 가람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마곡사는 불화를 그리는 유명한 화승들을 많이 배출하여 남방화소(南方畵所)라 불릴 정도였습니다.
금호(錦湖)-보응(普應)-일섭(日燮)으로 이어지는 화승의 계보를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화승들을 추모하는 불모다례제가 매년 행해지고 있습니다.
마곡사는 구한말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과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김구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이고 은거 하던 중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 수도하였는데
이때 마곡사 백련암에 몸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곡사 대광보전과 응진전 사이에 김구선생이 광복 후 1946년
마곡사에 들러 심었다고 하는 향나무가 남아 있습니다.
마곡사와 백범 김구
1896 명성황후가 시해된 날,
백범 선생은 명성황우의 복수로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였습니다.
그 후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인천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그 곳을 탈옥하여 1898년 마곡사에서 은신하게 되었고,
하은당이라 불리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이라 하였습니다.
이로써 스님이 된 김구 선생은 삭발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삭발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다리를 놓아 백범교라 부르고
마곡사에서 마곡천 절경을 굽어보는 또 다른 명소가 되었습니다.
또한 마곡사 생태농장에서 군왕대로 이어지는<백범 솔바람 명상 길>을 두어
마곡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1시간 가량 산보하기에 좋습니다.
봄날에 찾으려던 마곡사를 늦은 가을에 찾게 되었다.
마침 올해 늦은 단풍이 충청권에서 절정을 이룬 날,
태화산 산행후 만난 충남 공주 마곡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다운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평일임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린 마곡사의 단풍은 이번 주말이 절정일 것으로 보인다.
예상을 뛰어넘는 마곡사의 가을 풍경은 진정한 힐링의 하루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2024.11.13
영산전(靈山殿) 보물 제800호
조선시대의 불전으로 마곡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건물은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릅니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산전 내부에 7 분의 여래불상과 1,000분의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어
일명 천불전이라고도 합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입니다.
건물 앞쪽에 걸린 현판은 세조의 글씨라고 하며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으며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주는 훌륭한 전통 목조 건물입니다.
- 공주 마곡사는? :
마곡사가 위치한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擇里志)』, 『정감록(鄭鑑錄)』 등에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절의 창건 및 사찰 이름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전한다.
첫 번째는 충청남도 청양군 장곡사와 공주 마곡사, 지금은 없어진 충청남도 예산시 안곡사
세 절을 이 지역에서는 삼곡사라고 불렀고,
긴골·삼골의 이름을 장곡(長谷)·마곡(麻谷)으로 바꾸었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신라시대의 승려 무염(無染)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공주 마곡사를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寶徹)을 사모하는 뜻에서 공주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절을 세우기 전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공주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다.
공주 마곡사는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전기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1172년(명종 2)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지눌이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이 오히려 지눌을 해치려 하자 지눌은 공중으로 몸을 날리는 신술(神術)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자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지눌은 왕에게서 전답 200결(結)을 하사받아 공주 마곡사를 중창하였다.
당시에는 건물 수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된 채 방치되었다가 1651년(효종 2)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 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 31본산(本山) 시대에는 충청남도 지역의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었다.
또한 공주 마곡사는 김구(金九)[1876~1949]와 인연이 깊다.
김구는 대한제국 때 일본인 스치다 조스케[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나루에서 죽인 뒤 붙잡혀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로 가장하여 살았다.
지금도 대광보전 마당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나무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있다.
현재 공주 마곡사는 70여 개의 말사(末寺)를 관장하고 있다.
공주 마곡사는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있을 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
백련암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은 매우 빼어나며,
북가섭암의 바위 뒤에 있는 천미장군수(天米將軍水)는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약수이다.
또 공주 마곡사 앞 냇가 암벽에는 부여군 고란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2018년 1월 22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지정문화재로는 보물 7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6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점 등
총 18점이 있다.(디지털공주문화대전 참조)
명부전
5층석탑, 대광보전, 대웅보전
5층석탑에서 보면 대광보전 뒤로 지붕 하나가 불쑥 솟아 보인다. 보물 801호 대웅보전이다
조선중기 17세기 건축 양식을 보이는 대웅보전은 1층이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이런 중층의 건물은 화엄사 각황전이나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
법주사의 대웅보전에서나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건물이다.
앞쪽의 전각이 대광보전이고 뒤쪽의 2층으로 된 불전이 대웅보전이다
대광보전(大光寶殿) 보물 제802호
이 건물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해탈문·천왕문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습니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입니다.
앞면 5칸에는 3짝씩 문을 달았는데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 머리를 조각해 놓았습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은 서쪽으로 마련하였는데
불단 위에는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꾸며 달았습니다.
오층석탑(五層石塔) 보물 제799호
절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입니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습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합니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습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집니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광보전 앞에 서있는 5층석탑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801호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법당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킬 때(1651)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규모는 1층이 앞면 5칸·옆면 4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습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 위에 연꽃을 조각해 놓아
조선 중기 이후의 장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건물 2층에 걸려 있는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합니다.
건물 안쪽은 우물 정(井)자 형태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을
2층 대들보와 연결하여 만들었고 마루도 널찍해 공간구성이 시원해 보입니다.
건물 내부에 들어가 보면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모셨고
서쪽으로 아미타여래를 동쪽으로 약사여래를 봉안하였다
정면 문의 칸살이 얌전한 조각을 얹은 빗꽃살이다. 화려하지 않으나 은근한 맛이 있고
안에서 밖으로 보면 간결한 격자무늬 그대로 빛이 비쳐들어 매우 단정한 인상을 준다.
대웅보전 내부에 손때가 묻은 윤기가 흐르는 싸리나무 기둥이 넷 있다.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이 '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번이나 돌았느냐고 물어'
많이 돌면 극락가는길이 가깝다고 하여 사람들이 싸리나무를 손으로 잡고 돌아 윤이 난다고 하였다.
과연 극락은 어디인가?
마곡사 가시면 잊지말고 꼭 이들 굵은 기둥을 감싸안고 돌아야 합니다. _()_
저는 잘 몰라서 그러지 못하고 온 기억이 납니다.
스님들의 요사채인 심검당의 날렵하고 우아한 모습
첫댓글 마곡사 어린적 소풍도 같던 고향 동네인데
요즘 단풍이 한창인가 봅니다
잘보았습니다^^
아모르파티님의 고향이시로군요
네 11월13일날 사진이 위쪽에 있습니다
어젯밤 늦게 검색이 되어
정리해서 올리고 자는라 좀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범종루의 전각이 독특하네요 싸리나무기둥의 이야기도
재미 납니다
대웅보전 싸리나무 이야기를 몰라서
저는 돌지 못하고 왔습니다만
혹시 가시게 되면 꼭 도시기 바랍니다 ^^*
잘 봤습니다.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가 본 적은 없습니다.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그러셨군요
마곡사 참 좋은 곳입니다
봄이 더 좋다고 합니다
춘마곡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 그리고 젊었을 때 몇 번 다녀 온 곳이지만
새로운 감회가 돕니다
단풍이 이렇게 곱게 물들어 있을 줄 몰랐었습니다
당장 차를 몰고 달려 가고 싶어 집니다
그러나 언제 우리 회원님들과 역사 탐방의 장소로
귀하게 모셨다가 들리 렵니다
세심한 기록 잘 인지 하고 갑니다.^*^
네 저도 몇 번 갔었던 곳입니다
그 때의 기억은 거의 없어졌지만
대웅보전에 들어가 불공드린 기억
그 것만은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기둥을 안고 돌지는 못했습니다
네 꼭 다시 가 보시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청솔
ㅎㅎ 난 마곡사의 추억이 남 다릅니다
학창시절 첫 사랑이라고 하는 동생이
어느 날 보살이 되여 마곡사 근처에서
법당을 열게 되지요
참, 삶의 기구한 사연이 운명의 역사를
바꿔버린 안따까운 일이 였지요
지금은 공주 반포면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별의 아픔도 벌써 오래 되였지만
아직도 아련하게 떠올려지곤 합니다
참, 글도 잘 쓰고 문학의 소질이 뛰여난
동생이 였는데...ㅎ
공연히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망상의
추억을 떠 올려 봅니다 ㅎㅎ
@거 산 (부천) 가슴 아픈 추억이시네요
속세를 떠나는 사람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곡사 단풍이 참 대단합니다
저도 꼭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