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니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 휴전회담 이 진행되는 시기에 동부전선에서 빼앗은 수많은 고지로 인해 우리 국토가 넓어진 것을 감탄하고 당시의 지휘관이 대단하고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과연 우리 민족끼리의 그러한 땅따먹기 싸움에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는 것이 합당한가? 과연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중에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을 그토록 희생하며 모든 것을 바쳐야만 했던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런 차에 영화 “고지전”은 그러한 회의가 옳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영화 “고지전”은 전쟁의 비참함과 우리 민족의 현실 상황 인식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 준다. 당시의 고지전에서 아군과 적군은 약 50만 명 이상이 죽었다. 이는 휴담회담 진행 전의 사망자(본격 전투의 전사자) 보다 더 많이 죽은 숫자이다. 이런 어리석음이 어디있는가? 고지전을 감행하도록 만든 최고 지휘관은 진정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일까? 언젠가는 역사에서 그 시시비비가 밝혀져야 한다.
조선시대 광해군의 지혜가 아쉽다. 임진왜란 중에 여진족이 힘을 모아 후금을 만들었다. 명은 위기를 느끼며 조선에 파병요청을 한다. 광해군은 실리를 중시해, 강홍립 부대에게 금이 공격하면 바로 항복하란 명을 내린다. 그리하여 파병한 군사들 대부분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미 국력을 잃은 명은 조선에 대하여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금의 인정을 받게 된 광해군은 실리외교와 무역에 많은 이익을 남기게 되었다. 하지만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인조 때에는 유교사관에 의해 만주족을 오랑캐라 멸시하다가 결국 청나라에 패배하여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 번을 절하고 아홉 번을 땅에 머리를 찧으며 조아린다)의 치욕을 당하게 된 것이다.
휴전협정 진행 중일 때의 고지전에서는 광해군과 같은 지혜가 발휘되지 않았을까? 일선 지휘관은 왜 쌍방간에 그런 협상을 하지 못했을까? 왜 최고지휘관들은 회담 진행 과정에서 현 수준에서 전투를 하지 않도록 협상을 하지 못하였을까? 우리 민족성은 왜 그토록 끝장을 보고야 마는 듯이 감정적으로 싸워야만 했는가? 남북통일이 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인가? 남북 분단 현실을 생각하니 흐릿한 가을 날씨 만큼이나 우울해 진다.